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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관찰자 Apr 11. 2025

쳇바퀴

교수님의 단호한 결정

카지노 게임가 다시 입원을 하였다. 마음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개방병동 일인실에서 24시간 카지노 게임 옆을 지키는 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나는 저번처럼 밤에는 남편이 교대하여 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빠가 필요하다는 작은 카지노 게임의 요청으로 낮과 밤으로 큰 카지노 게임 옆에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하루 이틀 만에 바로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는 숨 쉬는 것조차 지겨워진다.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도 지겹고 헛헛하기까지 하다. 기도와 명상을 해도 마음이 전혀 새로워지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도카지노 게임가 아기처럼 쌔근쌔근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어젯밤의 난동이 언제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다. 카지노 게임는 여전히 너무나 예쁘다. 제기랄!


내막은 이렇다. 대학교 청강생으로 학교를 잘 다니던 카지노 게임가 갑자기 입원해서 쉬고 싶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 담당 교수님께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알리고 입원하고자 일찍 하교하였다. 입원을 하더라도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개방병동에 있으라는 부모와 교수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카지노 게임는 보호병동에 입원하여 이틀을 보내고 퇴원하였다. 교수님은 카지노 게임의 상태가 안정되어 보여 보호병동 입원을 일단 허락하셨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곳에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에 대한 마음이 자극이 되어 튀어나왔다. 카지노 게임는 더 극심한 불안증상을 보였다. 급기야 자살 충동이 올라와 집에서 자기 방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시도를 다시 하였다. 그런 카지노 게임를 붙잡고 대치하느라 남편과 모든 힘을 쓰고 응급실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나의 기력도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그런 위험한 상태인 카지노 게임는 보호병동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교수님과 우리의 기준선이었다. 그래서 개방병동 일인실에서 카지노 게임와 같이 지내야 했다.


결국 카지노 게임의 안부를 묻고자 전화한 여동생으인해 폭발하고 말았다. 얼마 전 더 이상 감추기 어려워카지노 게임의 상황을 대충이라도 알려 주었는데 여동생은 뭔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전화를 것이었다."언니야, 운동하면 좋다던데 운동하면 되지 않아?"라는 단무지 같은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만 것이다. 전화를 끊고 "지가 안다고!" 다소 경직되고 분노 어린나직한 나의말이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딸을 자극하고야 말았고 바로 딸의 발작은 시작되었다.


볼펜을 꺼내 자기 팔에 피를 내려고 열심히 찔렀고 그것을 말리는 간호사를 향해 냉장고를 열어 유리병에 든 음료수를 꺼내 휘두르고 그것을 저지하다가 간호사가 상처를 입었다. 병원 경호원들이 넷이 와서 카지노 게임를 강박한 뒤에도 어젯밤처럼 온 병동이 울리도록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보통은 재빨리 진정제를 투여하고 교수님도 와서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미리 경고도 해 주시지만 그날따라 교수님은 다르게 행동하셨다. 호출받고 병실로 들어오시자마자 소리 지르고 있는 카지노 게임에게 다가와 "조용히 해!"라고 같이 더 큰소리로 맞대응을 하시고는나를 따로 부르셨다. 간호사도 다친 상황에서 자기가 카지노 게임를 데리고 있는 것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다른 병원 보호병동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카지노 게임는 본능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진정제 없이도 바로 조용해졌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나에게 침착하게 물었다.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어?" "어... 이제 우리 여기서 나가야 된대. 그게 더 너를 위해서 좋겠대."


집으로 갈지, 어느 병원으로 갈지 결정을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교수님은 보호병동을 운영하는 가까운 전문정신병원 리스트를 내밀었고 우리는 다시 막막해졌다. 소아병동이 따로 있는 병원들은 대부분 자리가 없었고 대형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이 아닌 보호병실이 있는 전문정신병원은 카지노 게임가 무서워 가길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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