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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Apr 28. 2025

우울과 슬픔/ 카지노 게임에는 반드시 기대가 선행한다

카지노 게임의 느낌 들여다보기




우울과 슬픔이란 감정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각각의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과 표현 방식에서는 큰 차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지만, 느낌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슬픔에 내재하는 미묘한 쾌감이다. 우울감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힘이 빠지고 정신이 황폐해지는 듯한 불쾌감만 일으키고, 따라서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일부러 그런 정감을 바랄 만한 측면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슬픔에는 독특한 만족감이 고통과 알 수 없는 형태로 정도 차를 달리하여 뒤섞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가끔 슬픔을 일으켜줄 수단을 자발적으로 찾기도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느끼게 된 경우라 하더라도 슬픔에 내재된 만족감은 그 정감을 최소한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슬픔에 내재된 고통에만 주목해 보면 그것이 우울감의 고통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슬픔의 불쾌감은 만족을 일으키는 측면과 한데 융합되어 있고, 따라서 느낌의 질도 우울감에서 느껴지는 불쾌와 다소 다른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슬픔에 내재된 만족을 상상 속에서나마 감소시켜 보면 슬픔의 불쾌감이 우울감으로 점차 근접해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울감의 기본적 고통 위에 그 고통을 완화해 주는 무언가가 첨가된 감정이 슬픔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우울감이 더 단순한 감정이라면 우울감이 유발되는 방식부터 파악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의지의 유출


우울감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그 진행 과정이 비교적 단조롭고 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울감을 느꼈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어떤 격한 충돌도, 인상적인 기복도 없이 그저 지루하게 이어지는 쓸쓸함만 일정 시간 동안 계속되다 소멸했던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게다가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보통 그 느낌을 유발한 외부적 요인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외부 요인을 우울감의 원인으로 단정 짓고 우울감 특유의 느낌과 진행 과정 자체는 그런 상황에서 겪어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당연시하기 쉽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울감이 일어난 것처럼 보일 때도 분명 있다. 우울한 기분도 들고 우울감 특유의 반응들도 나타나지만,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상황이 도리어 우울감을 제대로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당혹감이 정신을 자극하여 우울감을 일으킨주관적 요인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이 자극되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우울한 느낌이 발생하는 시점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그 느낌이 특정한 정신적 태도를 취하는 순간 비교적 갑작스럽게 불러일으켜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감의 원인이 되는 이 태도는 대체로 외부 환경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취해지지만, 결코 외적 요인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 태도는 우울감을 일으킨 외적 사건 이후 상상적 노력에 의해 반복적으로 취해지기도 하고, 별다른 외적 사건 없이 오직 상상에만 의지하여 취해지기도 한다.


아마 우울감이 다른 감정에 비해 길고 단조롭게 진행되는 듯이 보이는 이유도 우울감을 촉발하는 이 정신적 태도가 최초의 우울감이 일어난 뒤 몇 차례 반복적으로 연달아 취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태도로 인해 약화되던 우울감이 다시 강화되어 지속 기간이 늘어나지만, 정작그 태도 자체는 망각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감을 일으키는 태도란 무엇이고 왜 망각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답하려면 우울감 자체와 그 느낌이 촉발되는 상황의 앞뒤 맥락을 더듬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울감이 촉발되는 순간 그 정감과 연계된 상상 내용에 끌려가지 말고, 그 느낌 자체의 흐름에 주목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아마도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열기를 담고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며 가슴이 텅 비고 서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좀 더 위쪽 어딘가에서 정신이 새어 나가기라도 하듯, 저릿 거리는 통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정말 ‘맥 빠지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보통 당면한 외적 현실 때문에 품고 있던 기대나 소망, 사랑, 욕망 따위를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 유발된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기대나 소망과 같은 요인들이 우울감의 전제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카지노 게임열기를 담은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렇다면 이와 같은 조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모든 요인이 만족이나 충족의 경험으로 향하는 당사자의 의지라는 사실, 상당량의 정신적 힘을 머금은 긍정적 성질의 의지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보면, 우울감의 고통이 이러한 의지의유출, 또는소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면한 현실 상황과 자신의 의지가 공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한 당사자가 현실을 인정하고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를 놓아버릴 때, 정신에 의한 구성 작용을 상실한 의지가 흩어져 소멸하면서 우울감 특유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는 한 집단의 장이 죽거나 사라졌을 때 집단 전체가 와해되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아마도 현재로서는 이런 묘사가 너무 개괄적이고 불분명하게 들리겠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해명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더 구체적인 과정은 잠시 후에 다루게 될 것이다.


어쨌든 사정이 이렇다면, 일단 이 의지 또는 욕구에 대한포기행위를 우울감의 원인이 되는 태도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측면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으로서, 그 어떤 것보다도 우울감에 밀착해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포기 행위는 보통 우울감의 원인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기는 사실상 이미 어느 정도 우울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기는 당사자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취하는 행위도 아니다. 포기는 기존에 취하고 있던 태도를 내려놓는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로서, 의식에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 망각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실 의지에 대한 포기 행위로 돌려졌어야 할 우울감의 원인이 무언가를 결여한 현실 상황으로 전가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포기 행위와 현실에 대한 인정 또는 인식이 동시에 발생하는 데다가, 그 순간 당사자의 관심도 자신의 의지로부터 철회된 채 이미 현실의 결핍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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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인식으로부터 원인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까지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 의미에서는 현실의 결핍을 우울감의 원인으로 돌리는 이 같은 태도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게다가 현실의 인정과 의지의 포기란 것도 결국 동일한 과정의 두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울감이라는 느낌 자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만을 고려한다면, 현실 상황은 구체적 원인에 인접한 환경으로서의 자격만 떠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울감을 일으키는 태도에 포기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현실과 합치되지 않는 의지를 불러일으킴으로써 포기의대상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 당사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향해 의지를 일으키는 행위만으로는 우울감이 일어날 수 없고, 포기가 잇따르기 바로 전까지는 일종의 만족감이나 막연한 희망 같은 감정마저 느끼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불러일으켜진 의지가 없다면 그 의지의 소멸에 따른 우울감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가 우울감의 필수적인 한 측면인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신이 조금 전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점검해 보면,정신적 충족이나 만족을 향한 기대를 어떤 식으로든 일으켰음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울감에 선행하는 기대만 제대로 알아차려도 감정에 덜 휘둘리게 된다.



우울감의 원인이 되는 태도가 망각되는 또 하나의 주된 이유도 바로 이 선행 단계의 모호성과 연관되어 있다.


만족을 향한 이 의지는 그것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현실 인식이 잇따르지 않을 경우 우울감과 아무런 연관성도 지니지 못하는 데다가 느낌 자체도 우울의 불쾌감과는 거리가 멀 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태도가 우울감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애초부터 배제한 뒤 모든 혐의를 자신의 의지와 상충되는 현실 상황으로만 전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우울한 느낌의 진정한 원인은 현실 상황 자체가 아니라그 현실 너머로 부풀어 오른 의지의 포기이다.


설령 현실 인식을 포기와 결국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우울감의 원인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그 원인과 사실상 일체를 이루고 있는 능동적 측면을 무시한다면, 다시 말해 현실의 압력에 짓눌려 곧 무산되고 말 의지를 굳이 일으키는 이 맹목적 행위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전체 원인의 반쪽을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능동적 측면이 원인으로서 더 큰 자격을 갖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대나 의지를 일으키는 행위는 상당 부분 의식의 주도적 통제 범위 내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상적 기대와 포기를 반복하며 우울감을 연장하는 상황에서는 정감에 대한 주도권이 사실상 당사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 머무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끌어올려다 밖으로 내던져 흩어버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스스로는 자신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태도를 취하는 자가 당사자 자신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우울감 #기대 #포기 #감정 조절 #마음 챙김 #메타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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