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고층건물의 기원
호텔 직원에게 부탁하니 시에나(Siena) 행 버스 정보를 전화로 자세히 알아봐 준다. 페루자무료 카지노 게임 시에나(Siena)까지의 버스 편은 하루 단 1번 있고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40분 정도란다. 당일치기로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에나 행 버스 정거장은 역 앞에 있는 간이 정거장이다. 아무런 표시도 없고 표 파는 곳도 없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간신히 버스를 탄다.
고속도로변으로 펼쳐지는 움브리아와 토스카나의 시골 풍경을 보느라 정신을 파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시에나에 와닿는다. 관광 안내소에서 가르쳐 준 대로 역 맞은편에 있는 쇼핑센터의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쉽게 시에나 중심가(Centro)로 가는 언덕까지 힘 안 들이고 올라간다. 사람들을 따라 10여 분쯤 걸으니 오래된 성문과 성벽이 보인다. 이곳이 한때 피렌체와 자웅을 다투던 토스카나의 무료 카지노 게임도시 시에나(Siena) 임을 말해주고 있다.
카모리아 성문( Porta Camollia)을 지나 카모리아 중심거리를 조금 더 가니 오른쪽 큰 길가에 우리가 찾는 시외버스 정거장이 보인다. 산 무료 카지노 게임(San Gimignano)행 버스가 1시 10분에 있다. 6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는데,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왕복 소요 시간을 감안하면 산 무료 카지노 게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시간 정도뿐이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언제 산 무료 카지노 게임를 가볼 수 있을까? 평생 후회하지 않게 무조건 버스에 오른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가 토스카나 시골길로 접어들자 그림 같은 토스카나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나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이다. 완만한 구릉지대에는 이름 모르는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넓은 포도밭과 올리브 숲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시골집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길섶의 사이플러스 나무, 모두가 전형적인 토스카나 풍경들이다.
버스는 완전 시골 완행버스이다. 나들이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길가에서 손을 흔들면 아무 데나 세워주고 또 내려달라면 내려 준다. 버스 기사는 오지랖도 넓게 타고 내리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수다까지 뜬다. 마음 바쁜 우리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버스는 동네방네 돌고 돌아 1시간이 훨씬 넘은 2시 30분경에 산 무료 카지노 게임에 도착한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딱 1시간. 배도 고프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어느 시간에 둘러보나? 내려서 보니 산 조반니 성문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엄청 붐빈다.
평소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제법 아는 척(?) 하는 편이지만, 몇 해 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자전적 영화 <무솔리니와 차 한 잔(Tea with Mussolini)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사실 나는 '산 무료 카지노 게임(San Gimignano)'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아니 이탈리아에 이런 데가 있다니! 영화 속의 산 무료 카지노 게임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영화 속의 'Have you ever been there?(저기 가본 적 있어?)라는 물음에 오늘에야 비로소 'Yes'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산 무료 카지노 게임는 이탈리아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올려 본 적이 없는 토스카나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불과하다. 웬만한 대학 캠퍼스보다 작은 20여만 평 넓이에 인구는 고작 8천 명 정도이다. 그러나 탑의 높이로 부와 힘을 과시한 유별난(?) 조상 덕분으로 지금은 세계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게다가 토스카나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중세도시의 모든 길은 마을 중심인 광장으로 통한다. 산 조반니 성문 입구에서 시작되는 산 조반니 거리는 광장에 이르는 메인 스트리트이랄까?. 양옆으로는 기념품점과 상점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산 무료 카지노 게임(San Giminagno)라는 지명은 6세기경 훈족의 침입으로부터 신의 도움으로 이 도시를 구한 모데나의 주교 산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산 무료 카지노 게임의 중심에는 두 개의 광장이 있다. 전형적인 중세 마을의 향취가 잔뜩 배어 있는 치스테르나 광장(Piazza della Cisterna)이 그중 하나이다. 흙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들과 담쟁이덩굴이 광장의 세월을 말해준다. 광장에 우물이 있는 곳은 처음 본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나 볼 일이다. 치스테르나는 이 우물의 이름이란다. 지금에라도 동네 아낙들이 물 길러 올 것만 같다. 광장의 바닥 무늬가 지그재그로 새겨져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삼나무 잎 모양을 딴 것이란다.
또 바로 옆에는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시청사로 쓰이는 포폴로 궁이, 광장 정면 가파른 계단 위에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가 있다. 포폴로궁(宮) 옆에는 산 지미냐노에서 제일 높은 54m의 그로사 탑(Torre Grossa)이 자리하고 광장 주위로 7개의 탑이 모여 있다. 산 지미냐노의 탑은 멀리서 보면 맨하탄의 마천루를 연상케 한다. 더구나 두오모 광장의 쌍둥이 탑은 테러로 무너진 맨하탄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과 거의 흡사한 느낌이다. 혹시 세계 무역센터가 이 탑들에 영감을 받아 지어진 것이 아닐까? 한국의 건축가 김석철도 그의 책 <세계 건축 기행에서 고층 현대도시의 이미지가 산 무료 카지노 게임에서 발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13개만 남아 있지만, 1,300년 경엔 이런 탑들이 무려 72개나 있었다. 700년 전 토스카나의 한 시골 언덕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중세의 맨하탄은 얼마나 장관이며 경이였을까? 그런데 왜 이 조그만 중세도시에 이렇게 많은 탑이 세워졌을까? 한때 중세의 자치 도시로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산 무료 카지노 게임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와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탑을 높이 지었다고 한다. 이후 시 당국에서 탑의 높이를 제한하자 쌍둥이 탑으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순전히 흙벽돌로 지어진 이 탑들은 귀족들이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누어져 서로 싸울 때는 유사시에 탑의 구멍에 건널 판을 걸어 같은 편끼리 신속히 연락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탑들은 평상시에는 주로실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당시 이 지방은 염색된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염색된 옷감의 가치는 옷감의 길이와 비례하였으므로 가급적 기다랗게 펼쳐 말리기 위해서 이런 높은 탑이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두오모 광장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Assunta). 외관은 평범하지만 제피렐리의 영화를 보면 예사로운 교회가 아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버금가는 르네상스 프레스코화의 보고이다. 교회의 내부는 르네상스 시대 유명 화가들의 프레스코화로 온통 덮혀져 있다. 그중 도메니코 지르란다 코(Domenico Ghirlandaco)의 그림 <성녀 피나(Santa Fina)의 장례가 이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세계 제 2차 대전 중 퇴각하는 독일군들이 이 성당을 폭파하려 들자 산 지미냐노에 감금된 영국 여인네들이 필사적으로 이 교회와 성녀 피나의 그림을 지키려 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제피렐리 감독의 어린 시절의 자전적 영화이고 세계 제2차 대전 중의 실화라고 한다. 토스카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아주 좋아할 영화이다.
왜 그들이 필사적으로 이 그림을 지키려 했냐고? 그림의 배경을 보라! 그 당시 있었던 무수한 탑들의 모습을! 이 그림은 15세기 당시의 산 지미냐노의 탑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그림이다. 산타 피나를 지키는 것은 곧 산 지미냐노를 지키는 것이다. 산타 피나(Santa Fina)는 산 지미냐노의 수호 성녀이다. 13세기 중반 이곳에서 태어난 피나(Fina)는 전신이 마비되는 불치의 병으로 15세의 나이로 죽는다. 죽는 순간까지 그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신을 의지하고 의연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그 이후 그녀의 유해를 본 사람들이 병에서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단다. 이 교회 내부를 꼭 보고 싶지만 도저히 시간이 안된다. 우리는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돌아가는 버스를 탄다. 너무나 아쉽지만 그래서 더 인상에 남는 산 지미냐노.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중세의 맨하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