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가 진정 원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 아시시로 향한다. 페루자 시외버스 정거장은 제법 터미널답다. 승객 대기실도, 출발시간 표시판도, 행선지 플랫폼도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런 제대로 된 터미널은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본다. 움브리아의 시골길은 참 아름답고 시골스럽다. 거리로는 고작 16km 정도인데 몇 군데 자그마한 마을들을 돌고 돌아 1시간 만에 아시시에 도착한다. 이런 시골길은 기차보다는 역시 버스가 제격이다. 버스가 아니면 이런 움브리아의 시골 구석구석을 어떻게 구경할 수 있을까?
아시시는 꽤 높은 산허리에 위치해 있다. 해발 400m 더 될까? 한적한 버스 정거장에 내리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때는 현지 사람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 상책이다. 꽃들로 장식된 아름다운 골목길을 구불구불 따라 걸으니 곧 널따란 중심 광장이 나온다. 코무네 광장(Piazza del Comune)이다. 광장에는 갈색의 카푸치노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느 건물 앞에는 트로이 목마를 닮은 뚱뚱하고 못생긴 말의 조각상이 방문객을 미소 짓게 한다. 광장의 또 다른 한쪽 길에는 청색(Azzure) 깃발들이 요란스럽게 걸려 있다. 오늘이 특별한 날인가? 아니면 상시 걸려 있는 아시시 깃발인가?
코뮤네 광장에는 상가들과 중세 팔라조(궁전)들이 다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1세기 로마 시대에 세워진 미네르바 사원의 육중한 석주가 중세 건물들 사이에 유난히 눈길을 끈다. 안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보니 지금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나 보다. 아시시의 골목과 집들은 작은 돌들을 쌓아 지은 모양새이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대신 아기자기하고 살가운 모습이다. 지나가는 길가에는 사제복 옷가게도 눈에 띄어 이곳이 유명한 가톨릭 성지임을 알려준다. 코무네 광장을 지나 약간 언덕바지 아래로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성 프란체스코 교회가 눈앞에 나타난다. 뒤로는 움브리아 평원이 배경으로 넓게 펼쳐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 가톨릭교회의 수호성인 프란체스코의 유해가 안치된 교회이자 가톨릭의 성지. 이 작은 도시에 매년 5~6백만 명의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찾아온단다. 아시시(Assisi)의 프란체스코(Francesco)인지 프란체스코의 아시시인지 혼돈되지만 어쨌든 아씨시는 프란체스코 때문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평소 성 프란체스코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어쩌다 리스트의 피아노곡'새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를 들어 본 정도이다. 그런데 언젠가 로셀리니(Rossellini) 감독의 영화<신의 방랑시인,성 프란체스코(Francesco, Giullare di Dio)를 보고 아시시에 꼭 오고 싶어졌다.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성인들 중에 성 프란체스코야말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진정한 의미의 성인이 아닐까? 그는 아시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아 가진 것을 모두 다 버리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과 함께하며 청빈과 겸손과 무소유의 삶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분의 이야기가 움브리아 구릉을 배경으로 한 폭의 수채화처럼 꾸밈없이 담담하게 그려진 로셀리니 감독의 오래된 흑백영화는 그 어떤 화려한 교회나 종교화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있었다.
전형적인 중세 카지노 게임 사이트양식으로 지어진 성 프란체스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넓은 앞마당을 지나 지상 예배당(Upper Church)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지 중세 미술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안의 벽과 천정은 온통 프레스코화로 도배되어 있다. 곳곳에 경비원들이 삼엄하게 서서 Sirenzo!(조용히)를 외쳐댄다. 사진 촬영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조금은 위압적인 분위기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부는 상당히 어둡다. 차츰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자 사방 벽에 연작으로 그린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모두 28점으로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그린 그림들이다. 그런데 그림들이 눈에 익다.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 같은데. 알고 보니 모두 지오토(Giotto)의 그림 아닌가? 아니 이렇게 많은 지오토의 그림을 여기서 보다니! 갑자기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오토는 이 성 프란체스코의 연작 그림만으로 그치질 않는다. 천정에도, 지하 예배당에도, 온통 지오토 천지이다. 그리고 지오토의 스승이던 치마부에(Cimabue)의 그림도 보인다. 우리는 잠시 밖으로 나와 숨을 돌리고 수도원 입구 매점에서 한국어판 아시시 안내서를 한 권 사 들고 다시 교회로 들어간다. 안내서의 그림 해설을 보며 다시 찬찬히 지오토의 프레스코화를 구경하니 훨씬 이해가 쉬워진다. 궁륭 형의 지하 예배당(Lower Church)의 벽과 천장 역시 지오토와 치마부에, 마르티니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프레스코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도 우리의 관심은 오직 지오토이다. 서양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피렌체 출신의 위대한 중세 화가 아닌가? 그의 그림은 언젠가 피렌체의 크로체(Crece) 교회의 제단화를 본 것이 전부인데 오늘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지오토를 원 없이 보게 되다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지상 예배당의 지오토 그림들은 1,997년 지진으로 크게 파손된 것을 복원한 것들이란다).
지하 예배당의 밑에는 어두컴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프란체스코의 무덤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주위에는 그의 동료 사제들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다. 성 프란체스코가 45세의 나이로 죽은 지 2년 후인 1,228년에 그는 시성(諡聖)된다. 같은 해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아시시의 한 언덕에 성 프란체스코를 위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세우도록 결정한다. 이 교회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건설된다. 일차적으로 순례자들을 위해 그의 무덤을 옮기고 지하 예배당(Lower Church)을 짓는다. 얼마 후 그 위에 지상 예배당(Upper Church)을 추가로 건축하면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총동원하여 벽과 천장을 온통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한다. 가톨릭교회의 위세를 한껏 자랑하며 문맹인 신자들의 신앙 교육장으로 삼기 위하여서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 틈에서 청빈과 겸손으로 평생을 살아온 프란체스코가 과연 그의 이름으로 이런 화려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짓는 것을 기뻐했을까? 더구나 건축비가 어떻게 조달되었는지를 안다면?(교황 그레고리 9세는 이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하는 사람들과 노역하는 사람들을 면죄해 주는 40일간의 관용(?)을 베풀었다.)
성 프란체스코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둘러본 후 비를 맞으며 기차역으로 걸어 내려오다가 도중에 잠시 둘러본 산 피에트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자꾸 생각이 난다. 제단만 달랑 있고 벽에도 기둥에도 장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다. 오로지 재단 뒤 작은 창문으로 한가닥 빛이 들어오고 있을 뿐이다. 성 프란체스코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비교하면 소박 하다기보다는 남루해 보이기조차 하다. 마치 일본의 세계적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만 들어오는 노출 콘크리트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보는 것같다. 혹시 안도 다다오가 이 교회에서 영감을 받은 건 아닐까?어쩌면 성 프란체스코가 진정 바라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예수님이 친히 임재하시고 싶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면 오히려 이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돌아오는 기차 칸에서 내내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