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우리에게 정해진 길을 미리 예고할까?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렇게 미리 설계되어 있는 걸까?
세상에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불리는 성경, 그중 첫 챕터인 창세기에 보면, 태초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배우자를 직접 자신이 정하거나, 이삭을 보고 찾아오라고 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의 배필을 예비하셨단다. 내 아들에게 가장 합당한 아내를 주실 것이야.”라며, 자신의 종을 시켜 며느리를 데려오라고만 한다.
같은 맥락으로, 교회에서도 각 사람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배우자가 있다고 믿는다. 고로, 교회 안에선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 외에 자신이 보기에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을 금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은 죄니까.
실제로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택하지 않은 아내들을 인간이 삼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신 구절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리라"(창세기 6장 2,3절)
모태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 역시 교회의 뜻을 따라 선을 보고, 결혼을 하기 전까진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면 안 된다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어왔다. 중, 고등학교 시절 여학생들에게 빼빼로와 함께 ‘나랑 사귈래?’라는 편지를 종종 받으며, 연애할 수 있는 기회가 꽤 주어졌음에도 난 그들과 사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이성의 유혹을 이기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내 마음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왔다. 먼 훗날 준비된 그녀와의 만남만을 기약하며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게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을 한 뒤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 적정기만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행복 회로를끊임없이돌리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로 인해 내 세상이 무너지게 된 날,2021년당시코로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코로나 확진 예방차원에서 2인이상 대면 무료 카지노 게임이 금지되고 있던 시기였는데, 나는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마다 진행하는 비대면 교회 독서 토론 모임에 조장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또 지긋지긋한 독서토론 시간이네.", “오늘은 귀찮으니 들어가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끊임없이 버티고 있었지만, 조장이라는 자리가 나를 질질 끌고 들어갔다. 노트북 키고 독서토론 모임 링크를 눌러 화상통화를 열자마자 대표 모임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우리 무료 카지노 게임에 새로 참가하게 된 학생들이 있어요. 인사 한 번 해요.”
그러자 누군가 마이크를 켜고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독서토론을 함께하게 된 22살 김혜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매달 평균 3,4명의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는 우리 모임에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나는 참가자의 얼굴을 한 번 보고 한숨을 쉬며, 탁자아래 숨긴 핸드폰으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7시 10분. 독서토론은 시작하면 끝날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 게 특징이다. 이어서 모임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세진 학생, 세진 학생도 인사 한 번 해요.”
“안녕하세요. 박세진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3살이고 부족하지만, 앞으로 잘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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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노트북 화면에 가득 담긴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난 동공이 커졌고, 만감이 쉴 새 없이 교차되어 진정되질 않았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내 친구들에게 이상형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느다란 눈썹에 사슴처럼 큰 눈망울,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오뚝한 코까지
귀여움과 청순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다음 모임 때는 방금 공유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오세요.” 대표 모임장님이 모임의 끝을 알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였다.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