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사노 요코 <죽는 게 뭐라고
"책들은 도시로 올라가지만, 책을 쓰는 사람은 시골로 내려간다.". (178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자연 속에서 우리는 더 풍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나는 동네에 사는 막내아들 친구의 엄마와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이나 과일을 사서 아이 등교 후 바로 그 집으로 간다.
정성스레 깎아놓은 사과에아몬드잼이 발라져 있다.
처음 맛본다. 딱히 나한테 별 감흥은 주지 않는 맛이었다.
바리스타로 일했던 그녀가 내려주는 특별한 커피머신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우리 집에도 있는 커피머신인데 왠지 그녀가 내려주면 더 맛(?) 있다.
사실 커피 맛을 잘 몰라서 산미(신맛), 꽃향만 안 나면 마실 수 있다.
그녀가 내려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는 새벽독서 글을 수정하고 올린다.
그 사이 그녀에게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들이민다.
내가 글 마무리할 동안 딱 여덟 페이지만 읽어보라고.
어제 소로의 글을 읽고 봄햇볕 속을 좀 걷고 싶어서 바람이 쌀쌀해도 그녀와 함께 동네를 걸었다.
개나리, 앵두꽃, 매화, 제비꽃, 히어리꽃이 피어있었다.
역시나 동네 산책하면 내가 늘 그렇듯이 곧 사라질 것 같은 풍경들을 사진에 남긴다.
낡은 철대문이나, 문을 닫아 비어버린 동네 구멍가게, 어르신들이 벽담장에 쪼르르 세워둔 빈 의자 같은 것들.
자연 속에서, 세월의 흔적 속에서 나를자극하는 단어와 글감들이 봄꽃처럼 피어오를 것 같다.
읽어야 할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_숲 속의 소리들, 고독 부분을 읽는다.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과분할 정도로 신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듯하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갖지 못한 허가증과 보증서까지 갖고 있어, 신들에게 특별한 인도와 보호를 받고 있는 기분이다.내가 우쭐대는 게 아니라 신들이 나를 우쭐하게 만들고 있다. (중량)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 속에, 내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풍경 속에 너무나 상냥하고 다정한 교제 상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 주는 대기처럼 무한하고 설명할 수 없는 친밀감이었다."(202, 203면)
소로는 자연 속에서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소리, 풍경,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은 신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오롯이 감상하고 느끼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혼자 있어도 이웃과 멀리 떨어져 교류가 거의 없어도 소로는 고독하지 않다. 오히려 그 평온함을 즐긴다.
요즘 내가 관심 있게 생각하는 게 인간관계 중에 "느슨한 관계"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말은 인간관계에 지나친 집착이나 상처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 같다.
때 되면 꼭 인사치레를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친밀감을 확인시켜줄 카톡 문자로 안부를 전하며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은 만나야 이 관계가 유지되지... 하며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어느 한쪽이 그 에너지의 파장이 약해지면 그 관계는 삐그덕 거린다.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관계가 아니라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어지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잔잔한 관계를 원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는 나에게 집중하고 가끔 만나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다정하고 건전한 관계. 그런 관계를 꿈꾼다.
"가느다란 솔잎 하나하나가 공감으로 확대되고 부풀어 올라 내 친구가 되었다. 황량하고 음산하다고 흔히 말하는 곳에도 친근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나와 혈연적으로 가깝거나 친절한 존재가 반드시 사람, 특히 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앞으로는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3면)
자연 속에서 눈에 담기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 피부를 자극하는 바람이나 비 온 뒤 흙냄새나 바람결의 꽃향기처럼 나를 둘러싼 자연의 모든 것들이 나의 친구가 되는 상상. 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내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주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거실 베란다 창틀에 달아준 새 모이통 앞에 아침 6시 51분경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작년부터 찾아오는 두 녀석인데가끔씩 모이를 두면 먹고 사라지고 최근에는 내가 출근하면서 모이를 주면 나 없는 사이에 와서 먹곤 했다.
그런데 새벽독서를 하면서 아침에 모이를 주기 시작했더니 일찍 날아와서 모이통을 확인하고 날아간다.
아마 꽤 오래 기다렸나 본데 내가 창밖으로 시선을 안 주고 책을 보다 보니 새들이 온 줄 몰랐다.
내일부터는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한 마리, 참새 두 마리의 간식을 챙겨야 하는 추가 루틴이 생겼다.
고양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이를 쪼아 먹는 강심장의 참새 두 마리가 나의 친구다.
읽고 싶은 책, 사노 요코 <죽는 게 뭐라고를 읽어본다.
사실 <사는 게 뭐라고를 이어서 읽어야 하는데 어제 동네 산책을 같이 간 친구 집에 놓고 왔다.
내가 새벽독서글 마무리하는 동안 읽어보라고 주고서 챙겨 오질 못했다.
<죽는 게 뭐라고의 부재는 "시크한 독서 작가의 죽음 철학"이다.
죽음 철학이라니까 왠지 우울하고 무거울 것 같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사는 게 뭐라고의 냉소적이지만 위트 있고 인간애가 살짝 묻어있는 그녀의 글로 예방주사를 맞았으니까.
내가 왜 사노 요코의 책을 그동안 서점에서 계속 보고도 집에 안 데리고 왔는지 어제 동네 친구와 이야기하다 깨닫게 되었다.
<사는 게 뭐라고 , <죽는 게 뭐라고라는 책 제목이 너무 냉소적이어서 안에 들춰서 내용을 볼 생각도 못했던 거였다.
내 삶이 너무 고단하고 인생이 우울한데 책까지 이렇게 심각한 거 읽어야 해?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 대신 헤르만헤세 <삶의 견디는 기쁨을읽었던 것 같다.
뭔가 내 삶을 견디는 작은 기쁨, 이유,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물론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책을 독립서점 서가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추천 도서로 판매도했다.
그만큼 아끼는 책이고 <싯다르타를 통해서 헤르만헤세를 좋아하게 되고 그의 다양한 작품과 자연에 대한 찬사, 그림을 그리는 모습까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1면)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짧은 인맥을 동원해 보더라도 나 역시 그렇다.
헤르만헤세, 빈센트 반고흐,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타샤튜더....
얼마 전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1800년대 1900년대 초에 태어났던인물들을 좋아할까?
나름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삶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며 그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도 여러 고전이나 문학작품, 음악 등을 듣고 접하다 보면 내가 더 친해지고 싶은 인물들이 또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친구인데 직접 만날 수 없고 내가 그들을 찾아 문학 작품 속으로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제대로 "느슨한 관계"의 벗이 될 것이다.
"나는 알고 싶다. 죽은 뒤에도 미워하고픈 사람이 나타날까.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죽으면 용서하게 될까."(11면)
나도 궁금하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 물론 그 사람의 100%를 미워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 미워하는 마음이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그 사람에게 편지 쓰듯 왜 그랬냐고 물을 때마다 어떤 답장이 내 마음속으로 배달되어 오는 것 같다.
미워했던 마음이, 이해되는 마음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것.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죽어서일까?
아니면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이해하게 돼서일까?
나는 오늘도 아빠에게 마음으로 묻는다.
나한테 왜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어?
나한테 왜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
아빠는 하늘에서 나에게 어떤 답장을 보내올까.
문득 그립다가 미워지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미웠다가 이해되어 가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런 사람을 마음에 담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작가의 첫 페이지는 강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듯하다.
그래, 살아있을 동안 잘 살아보자.
참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사노 요코 <죽는 게 뭐라고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