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제3권 중 제2부
멤논을 포함해 급하게 소집된 지방장관들의 작전 회의에서 멤논은 초토화 작전을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거느린 그리스 군대는 적지에 이제 막 들어온 상태이기 때문에 보급선의 정비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므로, 적을 군량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체력이 약화될 때 전투를 벌여 괴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르시아인 지방장관 전원이 반대했다. 통치하는 지방에서 생기는 수익 가운데 사전에 정한 비율만큼 왕에게 납부하고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에 챙겨야 하는데, 초토화 작전을 하게 되면 황제에게 납부해야 하는 금액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지만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막 적지로 들어온, 그래서 아직 기운이 왕성한 마케도니아 군대를 직선거리로 6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평원에서 맞서 싸우기로 결정되었다. 멤논은 작전 회의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라니코스전투’는 기원전 334년 5월에 벌어졌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22세에서 두 달이 모자라 아직 21세였다. 그런 왕에게 2인자인 파르메니온이 가까이 다가와 나란히 말을 타고 가면서 말했다. 전쟁터에 들어가는 때가 저녁이니 야습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지만 21세가 대답했다. “나는 승리를 훔치러 가고 싶지 않아요.”
군사 배치
다음 날 아침 병사들은 폭이 100미터나 되는 강 맞은편을 메우고 있는 페르시아 군대를 처음 보았다. 페르시아 군대는 페르시아인으로 구성된 우익과 멤논이 지휘하는 그리스에서 온 용병으로 이루어진 좌익으로 확실하게 나뉘어 있었다.
페르시아 쪽 우익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1만 5,000명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기마 군단이었다. 좌익은 멤논이 지휘하는 그리스인 용병 부대로 8,000명의 중무장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 병력은 4만 5,000명을 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 군대는 보병 3만 명과 기병 5,000명으로 합계가 3만 5,000명이었다. 그는 적은 수가 많은 수의 적과 싸울 때의 상식을 완전히 깨뜨렸다. 강을 따라서 전선을 가로로는 길게 두께는 얇게 포진했다. 그리고 파르메니온의 좌익에게 적 우익 기병 부대의 맹공을 견디고 전선을 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만 5,000명이 넘는 페르시아 기병 군단의 맹렬한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군대의 왼쪽 끝에 테살리아에서 온 1,800명의 기병을 배치했다. 적의 기병 군단이 오른쪽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참가한 기병의 절반 2,500명도 좌익에 배치했다.
그리스 군대에서 전통적으로 최고사령관의 위치인 우익이 알렉산드로스의 자리였다. 그가 사용한 병력을 보면 기병 2,500명에 더해 궁병 등 경무장 보병과 명령에 따라 이동이 가능한 특수부대까지 포함하면 많아도 6,000명 정도였다. 그와 직접 부딪치게 될 멤논이 지휘하는 용병이 8,000명에 비해 수로는 열세였다.
우익의 기병 2,500명 가운데 2,000명은 ‘콤파니온’(or 헤타이로이)라 불리는 왕의 근위 군단으로 필로타스가 지휘하며, 전투 전반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전략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우익의 오른쪽에 수목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발견하고 기병을 그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전투의 시작은 나머지 500명에게 맡겼다. 소크라테스라는 대장이 거느린 이 500명의 역할은 한마디로 말하면 적에게 던져진 먹이였다. 이들은 가장 먼저 강을 건너 적진으로 뛰어드는 역할을 맡았는데, 적의 좌익을 지휘하는 멤논에게 그리스 군대가 정면에서 공격해온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전이었다.
불쌍한 쪽은 소크라테스가 거느린 500명의 기병이었다. 기병 전체의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적군도 결사적으로 맞섰기 때문에 곧바로 전멸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아군을 버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아니다. 이때 이미 강을 건넌 알렉산드로스의 2,000명의 기병이 적의 옆구리를 급습했다.
소크라테스의 500명 기병이 돌진하는 것을 보고 페르시아의 기마 군단도 돌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1만 5,000명 기병의 맹공격도 팔랑크스를 무너뜨리기 쉽지 않았다.페르시아 군대의 좌익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좌익 끝을 지키는 테살리아의 기병들도 옆으로 우회하는 페르시아의 기병 군단을 저지했다.
그런데 적의 옆구리를 기습한 기병을 이끈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의욕이 지나쳤다. 기병 군단의 선두에 서서 적진으로 돌격한 것은 좋았지만 너무 지나친 탓에 아군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남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검은' 클레이토스와 그가 거느린 250명의 기병 덕분이었다.
속공으로 일관한 전투였기에 승패가 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라니코스전투’도 태양이 뜨고 시작되었는데 태양이 아직 높이 있을 때 끝이 났다.페르시아의 전사자는 4,000명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그 가운데는 지방장관 2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멤논이 지휘하는 그리스의 용병 부대도 절반 이상이 전사했다. 멤논과 함께 도망친 병사를 제외하고 2,000명이 포로가 되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2,000명의 포로를 마케도니아 광산으로 보내 강제 노동을 시켰다. 코린토스 회의에서 그리스 군대를 상대로 하는 전투에 용병으로 참가하면 엄벌에 처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쪽의 전사자는, ‘근위 군단’이라고 불러도 좋은 기병 군단의 전사자 25명. 이외의 기병 전사자는 60명. ‘팔랑크스’를 포함한 보병 전체의 전사자는 30명, 모두 합쳐 150명이다. 이 전투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왕이 된 이후 치른 첫 번째 전투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이 페르시아 적지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그리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라니코스에서 전사한 페르시아 무장 300명의 군장을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본국인 그리스로 보냈다. “스파르타인을 제외한 전체 그리스인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보냄.”
300명은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상대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함께 옥쇄했던 스파르타 병사의 수와 동일하다. 그리스인이라면 그 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알았다. 소아시아 서해안 일대는 페르시아인이 지배자가 된 지 70년이 지났다. 이런 페르시아의 힘을 그리스에서 원정한 젊은이가 깨뜨린 것이다.
승리를 활용하다 - 이오니아 지방
다음 목표는 사르디스(Sardis, 현 튀르키예 사르트)로 정했다. 페르시아의 세력 안에 있는 소아시아 서해안에 위치한 중심 거점이 사르디스였다. 게다가 사르디스에서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까지 직행 도로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페르시아제국의 중심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르디스까지 대규모 군대가 이동하기 쉬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사르디스 책임자인 페르시아 고위 관료에게 “남아 있는 병력을 모아서 철저한 항쟁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지위와 현상 유지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평화롭게 문을 열 것인지” 선택을 강요했다. ‘그라니코스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었던 페르시아의 고위 관료는 후자를 선택했고 서약도 했다.
다음 목표는 에페소스(Ephesus, 현 튀르키예 셀추크)였다. 그 뒤로는 밀레토스, 할리카르나소스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리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세 도시는 페르시아 주민이 사는 사르디스와 달리 오히려 같은 그리스인인 알렉산드로스 앞에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스 본토는 상황이 변했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델로스 동맹 시절의 사고방식과 높은 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마케도니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경제 감각도 뛰어난 이오니아 주민에게는 그동안 크게 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페르시아의 지배가 그다지 불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정치인에 의해 그런 상황에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테네에서 들어온 정보도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테네의 논객 데모스테네스는 여전히 알렉산드로스를 폭군이라고 맹비난하고 있었다.
여기에 멤논과 페르시아쪽엔 페니키아의 400척에 이르는 해군이 도착하자 이오니아 주민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더욱 적대적으로 변했다. 그나마 이런 상황 속에서 에페소스가 고분고분하게 성문을 열어주었는데, 멤논과 페니키아의 400척이 에페소스를 버리고 밀레토스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밀레토스에 가까이 다가가자 적의 배들이 바다를 메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페니키아 지방은 페르시아제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400척에 이르는 페니키아의 배는 페르시아 황제의 해군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파르메니온에게 해상은 신경쓰지 말고 육상 공격만으로 밀레토스를 함락하라고 말했다.
그 시대에 그리스와 달리 이집트나 페니키아를 포함한 오리엔트에서는 노예를 갤리선의 노 젓는 선원으로 활용했다. 해상에서 폭동을 방지하기 위해 노 젓는 선원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당연히 무기도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해전이 벌어지든 상륙전이 벌어지든 갤리선의 노 젓는 선원이 병사로 변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멤논조차 패색이 짙어지자 곧바로 전쟁터를 버리고 페니키아의 400척을 끌고 할리카르나소스로 달아나자, 결국 밀레토스도 22세 젊은이 앞에 성문을 열고 말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밀레토스가 저항한 뒤에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를 에페소스 정도의 관용적인 태도로 대했다.
멤논이 지휘한 300명의 그리스인 용병들을 포로로 잡았지만 그들에게도 ‘관용’으로 대했다. 과감하게 싸운 병사에게는 그에 적합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자신의 군대에 들어오라고 했다. 코린토스 회의의 결정에 따라 조국에서 추방되었던 이들은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밀레토스를 제압한 이후 다음 목표는할리카르나소스였다. 서양 중세 이후에 보드룸(Bodrum)이라 이름을 바꾼 이 도시는 소아시아 서남부의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게다가 밀레토스에서 도망친 멤논이 또다시 이 도시에 가서 방위를 맡고 있었다. 양쪽의 공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그런데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할리카르나소스 내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저한 항전을 주장한 쪽은 멤논과 페르시아인 지방장관이었고, 온건한 해결을 주장한 쪽은 할리카르나소스의 기존 통치자인 카리아 왕가사람들이었다. 왕가를 대표한 사람은 선왕의 여동생인 '아다'라는 이름을 가진 노부인이었다.
이 노부인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유쾌한 제안을 했다. ‘나는 노령이고 자식도 없다. 마케도니아 왕이 나의 양자가 되어준다면 할리카르나소스를 마케도니아 왕에게 주겠다. 다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통치하고 싶다.’ 이런 내용이 담긴 제안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노부인과 양자의 연을 맺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철저하게 저항을 주장한 사람들은 국외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멤논도 코스섬으로 도망쳤다.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파르메이온은 부대를 나누어 다음 해 봄에 합류할 곳을, 오늘날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 바로 남쪽의 고르디온(Gordion)이라는 도시로 정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부대가 소아시아 내륙부를 통해 북상하는 동안 먼저 도착한 파르메이온이 이미 고르디온의 장로들을 잘 설득해서 제압해 놓았다.
한편 수도 수사에 있는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는 나쁜 소식만 받았다. 먼저 소아시아는 서부뿐만 아니라 중앙부까지 마케도니아의 손안에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둘째, 코스섬으로 도망친 멤논이 그를 따르던 부하가 줄어든 상황에 절망한 것인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되면 황제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다리우스는 47세였다. 나이는 아직 한창때였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늘 대처가 늦었다. 물론 페르시아 쪽에는 아직 스파르타인 용병이 2만 명이나 남아 있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고르디온에는 예부터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고 불리는 것이 전해지고 있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도시의 중앙 광장에 있었다. 1인용 전차와 말을 연결하는 나무로 만든 채가 있는데, 이 채와 전차를 연결하는 매듭이 심상치 않았다. 몇 가닥의 가죽끈을 묶어서 만든 강인한 줄로 연결된 것이라면 어찌 해보겠지만 그 줄이 여러 겹으로 얽혀 있었다. 누가 만든 것인지부터 시작해 어디에 매듭의 끝이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고르디온의 원로들이 알랙산드로스에게 말했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오리엔트의 지배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은 잠시 침묵하면서 매듭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오래 망설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긴 칼을 들고 단번에 내리쳤다. 가죽끈으로 묶여 있던 줄은 둘로 조각났다. 전차와 그것을 끄는 채도 둘로 나뉘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인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의지로 명쾌・단순・과감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소스로 가는 길
소아시아에서 시리아로 가려면 타우루스(Taurus)산맥이라는 험한 산길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산맥은 ‘킬리키아의 문’이라고도 불렸다. 옥시덴트(서방)에서 오리엔트(동방)으로 가기 전에 지나야 하는 ‘문’이 타우루스산맥이었다.
소아시아 내륙의 아나톨리아 지방은 지형적으로 복잡해서 작은 부족들이 할거하고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곳곳에서 할거하고 있는 작은 부족들을 평화적으로 제압하며 산맥을 넘어야 했기 때문에 앙카라를 뒤로하고 지중해에 도착할 때까지 2개월 이상 걸렸다.
타우루스 산맥을 무사히 넘고 ‘킬리키아의 문’을 나서면 마주하게 되는 타르소스(Tarsus, 튀르키예 타르수스)*에 도착했을 때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안도감과 다시 지중해를 눈 앞에 둔 기쁨이 더해서 병사들은 근처에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어 오랜만에 목욕을 즐겼는데 여기에 젊은 왕도 가세했다고 한다.
* 클레오파트라가 기원전 41년에 이집트에서 화려한 배를 타고 타르수스의 강을 통해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온 사건으로 유명해진다.
주치의 필리포스
그런데 그날 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병으로 쓰러졌다. 목욕한 다음에 나체로 걸어 다닌 탓에 감기라도 걸린 것인지 확실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고열에 시달리는 왕의 침소로 곧바로 주치의가 달려왔다. 필리포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의사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주치의와 같은 존재로 어릴 때부터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진찰해온 인물이다.
필리포스는 침대에 누워 있는 왕을 진찰한 다음 그 자리에서 약을 조제했다. 그때 한 병사가 들어와 긴급 소식이라며 파르메니온이 보낸 편지를 알렉산드로스에게 전했다. 편지에는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가 알렉산드로스를 독살하기 위해 주치의인 필리포스를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적혀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의사가 내민 약을 오른손으로 받고는 왼손으로 파르메니온의 편지를 의사에게 건넸다. 약이 든 잔을 모두 마신 왕과 편지를 읽으면서 창백해진 의사. 아침이 되어 눈을 뜬 왕이 멋진 미소를 지었을 때 밤을 꼬박 새운 의사는 마음속 깊이 안도했다. 이후에도 필리포스는 변함없이 주치의 역할을 계속했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거짓 소문을 전한 파르메니온에게 이 일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다리우스의 출정
동방에서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가 편성을 끝낸 대군을 거느리고 서방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리우스가 거느린 페르시아 군대는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보다 5배나 많은 대군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알렉산드로스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본거지인 중동에서 나와 중근동까지 와주는 셈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다리우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7월을 맞이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적을 기다리면서 킬리키아 지방의 확보와 병사의 훈련을 동시에 진행했다.
황제가 거느린 페르시아의 군대가 중근동으로 들어온 시기는 이미 겨울이 가까운 무렵이었다. 여기서 다리우스는 다시 잘못을 저질렀다. 합류를 끝낸 군대를 안티오키아(Antiochia)라고 불리는 지역에 집결시킨 것까지는 좋았지만, 사실 그 부근에서 알렉산드로스와 대결했어야 했다. 안티오키아 주변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대군을 거느리고 싸우기에 유리했다.
엇갈림
그런데 그 땅을 버리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는 북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자기의 정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적을 두들겨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한 건지도 모른다. 다리우스가 안티오키아에 들어온 것을 알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군대를 이끌고 안티오키아를 향해 남하했다. 도착해보니 페르시아의 군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북쪽으로 갔다고 제보했다.
해안선을 따라 남하한 알렉산드로스와 북상하는 다리우스 사이에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양쪽 모두 상대의 행군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한쪽은 북상하고 한쪽은 남하했기 때문에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그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대로 유턴해서 강행군을 했다. 아무튼 이소스를 전쟁터로 선택한 쪽은 그곳에 먼저 도착한 다리우스였다.
‘이소스전투’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활용한 병사 수는 보병 2만 4,000명과 기병 5,000명으로 합계 2만 9,000명이었다. 잡병을 포함해도 3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다리우스의 병력은 60만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5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5배가 넘는 전력이었다.
페르시아 군의 배치
기원전 333년 11월 초반에 마침내 ‘이소스전투’ 당일을 맞이했다. 전쟁터에 먼저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페르시아 군대의 포진은 완벽했다. 첫 번째 군대는 2만 명이 넘는 기병 군단으로 지중해를 우측으로 바라보는 우익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엘리트이자 자부심이었다. ‘중앙’에는 2만 명이 넘는 그리스인 용병으로 배치되었다. 대부분이 스파르타 출신이었다.
용병 집단 바로 뒤에는 ‘불사신의 남자들’이라 불리는 페르시아의 정예 1만 명이 다리우스가 탄 전차를 에워싸듯 포진하고 있었다. ‘불사신’이라고 불린 것은 전투에서 죽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전사하면 곧바로 그 자리를 메워 늘 1만 명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황제는 좌익에 보병과 기병이 뒤섞인 혼성 부대를 배치했는데(이소스전투 1), '그라니코스' 전투의 양상을 듣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거느린 우익의 돌격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 군대의 좌익 가운데 일부에게 미리 강을 건너게 만들어서 그리스 쪽 우익의 측면에 배치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군의 배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안쪽 깊이가 깊은 적의 진용을 보고 자기 군대의 포진을 그와 반대되는 진용으로 변경했다. 적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병력이지만 적보다 가로로 길고 넓게 포진했다.
그리고 자기 군대의 배치도 바꾸었다. 마케도니아 기병에 이어 실력을 인정받은 테살리아 기병 전부를 좌익으로 돌렸다. 적의 기병 군단이 맹공을 펼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좌익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동시에 자기가 거느린 우익에도 손을 보았다. 특수부대라고 해도 좋은, 공격용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1개 부대를 급하게 편성해 마케도니아 기병만으로 이루어진 우익의 오른쪽 끝에 배치했다. 이 부대에는 마케도니아 기병 군단이 돌격할 때 방해가 되는 적의 부대를 제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전투의 시작
기원전 333년, 초겨울의 햇살 아래 ‘이소스전투’의 불꽃이 타올랐다. 급하게 배치를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른쪽에 배치된 그리스 쪽의 혼성부대는 장애물 제거라는 임무를 충분히 수행했다.페르시아 쪽의 전초부대를 언덕으로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괴멸 상태로 만들어서 전투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이것을 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3,000명의 마케도니아 기병 군단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돌격 명령을 내렸다기보다는 애마 부케팔로스를 타고 스스로 ‘돌격, 돌격’을 외치면서 뛰어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왕이 뛰쳐나가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마케도니아 기병이 뒤를 따랐다.
동시에 전쟁터 반대쪽에 있는 바다에서 페르시아 기병 군단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중앙은 아직 격돌하지 않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파르메니온이 지휘하는 중앙에 적의 공격을 끝까지 견디라는 명령을 내렸다.가로로 길게 늘어선 팔랑크스의 진형이 무너지면 곧바로 패배로 가는 길이었다.
젊은 왕은 이번에도 강물을 튀기면서 강을 건너 돌격했지만 앞서 나가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 마케도니아 기마 군단이 페르시아 쪽 진용에 쐐기를 박는 데 성공했다. 즉 서로 지켜야 하는 페르시아군의 중앙과 좌익이 분리되고 말았다(이소스전투 2).
페르시아 쪽 좌익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좌익이 전투 능력을 상실하자 다리우스가 있는 중앙부의 왼쪽 옆구리가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중앙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이끄는 3,000명의 기병이 공격을 집중했다.
전황의 2막
전황은 이때부터 제2막이 올랐다. 23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기가 지휘하는 기병을 모두 다리우스 공격에 투입했다. 물론 선두에 선 사람은 알렉산드로스였다. 하지만 황제를 에워싸고 있는 ‘불사신의 남자들’이라는 벽은 두꺼웠다.
전쟁터 중앙에서는 분노한 고슴도치 같은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와 소형 탱크 집단 같은 그리스인 용병 군단이 마침내 격돌했다.7미터에 이르는 긴 창의 숲을 붕괴시키는 것은 힘들었다. 쓰러지는 쪽은 소형 탱크와 같은 스파르타의 중무장 보병이었다. 파르메니온은 이렇게 왕의 엄명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바다 쪽에서는 강을 건너 적진으로 뛰어든 페르시아의 기병 군단과 조금씩 후퇴하면서도 반격을 멈추지 않는 그리스의 기병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10배가 넘는 페르시아 기병 군단이 우세를 보였지만 그리스의 테살리아는 기병 왕국이었다. 적의 맹렬한 공격에 끈질기게 반격하면서 한 명의 기병도 등을 돌리지 않았고 진형도 무너지지 않았다.
전황의 3막
‘이소스전투’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제3막을 올린 것은 다리우스가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이소스전투 3). 왼쪽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선두에서 이끄는 마케도니아의 기병 군단이 밀려왔고, ‘불사신의 남자들’도 정예였지만 그래도 보병이었다. 차례로 적의 말발굽 아래 희생되어 1만 명 가운데 6,000명이 전사했다.
이를 본 다리우스는 4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잊었다. 다리우스의 머리에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그래서 데리고 있던 말에 올라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전쟁터에서 달아났다. 그 황제의 뒤를 따른 것은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페르시아 기병이었다.
이렇게 해서 페르시아 군대 전체가 붕괴했다. 그렇다고 엘리트들이 모두 무사히 도망친 것도 아니다. 테살리아의 기병대를 선두로 그리스 기병 부대가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망치는 데 성공한 기병은 절반 이하였다고 전해진다.
페르시아 중앙군 괴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곧바로 달아나는 황제를 추격하려고 했다. 그때 파르메니온이 보낸 병사가 급하게 달려왔다. 적의 중앙부를 공격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돌아가겠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돌아갔다. 앞은 팔랑크스, 뒤는 마케도니아의 기병 군단 사이에 낀 페르시아 군대의 중앙은 말 그대로 괴멸되고 말았다(이소스전투 4). 3만 명과 15만 명이 싸운 ‘이소스전투’는 3만 명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고대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르시아 쪽의 희생자는 보병 10만, 기병 1만 명이었다. 2만 명이 넘는 그리스인 용병 가운데 전쟁터에서 도망친 인원은 8,000명이었다. 동방으로 달아난 페르시아 병사와 달리 이들은 서쪽으로 달아났다. 대부분 스파르타 출신이었기 때문에 모국 스파르타까지 달아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이끄는 그리스 군대는 450명의 전사자만 냈을 뿐이다. ‘그라니코스’에서는 150명이었는데, 5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적과 싸운 ‘이소스’에서는 전사자도 늘어났다. ‘이소스전투’도 23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유프라테스강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한 다리우스에게 ‘불사신의 남자들’ 가운데 살아남은 4,000명이 쫓아왔다.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는 이 4,000명을 거느리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횡단하고 티그리스강도 건넌 뒤에 마침내 수도인 수사에 도착했다.
격전 도중 넓적다리에 적병의 창에 찔려 부상을 입은 23세 젊은이는 의사 필리포스의 응급처치를 받고 곧바로 활동을 재개했다. 먼저 전사자의 매장이 행해졌고, 그 뒤에는 상처를 입은 전우들을 문병했다. 이 또한 최고사령관이 해야 하는 전투 직후의 행사였다.
페르시아의 모후
이 모든 일을 끝낸 뒤, 그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친한 동료 헤파이스티온과 첫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 부하가 들어와 알렉산드로스에게 페르시아 황제의 모후와 황후가 울부짖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어디를 가도 늘 함께하는 헤파이스티온과 같이 그들을 찾아갔다.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을 보자 페르시아의 모후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발밑에 엎드려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모후는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 대상을 착각했다. 둘이 의상이 비슷하고 헤파이스티온이 약간 더 컸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모후는 그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크게 당황하는 노부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신경 쓰실 일은 없습니다. 이 사람도 또 한 명의 알렉산드로스니까요.” 그리고 다리우스의 소식이 알려지면 곧바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엄명을 내려 명예나 지위를 훼손하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리우스의 강화 제안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얼마 후에 도착한 다리우스의 강화 제안은 딱 잘라 거절했다. 타우루스산맥 서쪽의 소아시아를 양도하고, 황실 여자들의 몸값으로 1만 탈란톤을 지급하며, 왕녀 하나를 알렉산드로스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조건이었다.
23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타우루스산맥 서쪽의 소아시아는 이미 내 손안에 있다. 둘째, 황실의 부인들도 억류할 필요가 없어지면 몸값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다. 셋째, 내가 마음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왕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다.
'해상교통로'를 확립하다
‘그라니코스’ 이후 소아시아 지방은 이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또한 제국의 남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이집트인데, 이소스전투에 페르시아인 장관을 따라 이집트 군대가 참전해 그 지방장관이 이소스에서 전사하기까지 했으니 이곳은 페르시아 군사력의 공백상태가 되었다.
페르시아제국의 중추는 지중해의 동쪽 끝에서 시작해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티그리스강의 동쪽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오늘날의 국가로 보면 중근동의 여러 나라, 즉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서쪽을 차지하고 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라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야말로 역사적으로 늘 중동의 중추였다. ‘이소스전투’의 승리가 지닌 참된 의미는 이 중추를 상대로 이겼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제국의 동쪽은 티그리스강에서 동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오늘날의 국가로 보면 이란의 동쪽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북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으로 대부분이 산악 지대였다. ‘이소스전투’에는 이 지방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던 유력자 대부분이 참전하지 않았다. 다리우스가 권토중래를 원한다면 알렉산드로스와 다시 싸워야 했고 그러려면 이들을 소집해야 했다.
전쟁터에서 끝없는 속공으로 승리한 23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 후 방침을 바꾸었다. 단숨에 적의 본거지를 공격하자는 목소리가 병사들 사이에서 강하게 흘러나왔지만 그는 두 번째 선택지를 선택했다. 먼저 중근동과 이집트를 제압하기로 했는데, 역시 ‘이소스’의 영향력은 컸다.
지중해 동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는, 라오디키아(Laodicea), 트리폴리(Tripoli, 리비아 수도), 베이루트(Beirut, 레바논 수도), 시돈(Sidon), 그리고 가까운 바다 위에 떠 있는 키프로스섬까지 차례로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에게 성문을 열었다.이들은 모두 항구도시였기에 규모는 작지만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도시 내의 현상 유지는 인정했지만 해군만은 자기 지배 아래 두었다.
그때 다마스쿠스로 갔던 파르메니온이 다량의 금과 은을 갖고 돌아왔다.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곧바로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병사들에게 급여와 상여금으로 주었다. 자기의 옆얼굴을 통화에 새긴 인물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처음이다. 훗날 헬레니즘 시대의 왕들이 이를 흉내 냈고 카이사르를 비롯해 로마의 황제들도 흉내 냈다.
이소스의 전쟁터에서 다리우스가 버리고 간 화려한 물건 가운데 오리엔트의 기예가 들어간 아름다운 작은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상자 안에는 진주와 루비, 에메랄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상자를 물끄러미 보면서 말했다. “나라면 상자 안에 『일리아스』를 넣어둘 텐데.”
티로스 공방전
그런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앞을 막아선 곳이 있었는데, 바로 티로스(Tyros, 현 레바논 티레(Tyre))였다. 티로스는 육지에도 시가지가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 500미터 정도 떨어진 해상에 떠 있는 섬으로 도심지를 옮긴 상태였다. 섬에는 북쪽과 남쪽에 대량의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항구까지 있었다.
해상에 떠 있는 항구도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대로 통과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두 가지나 있었다.
첫째, 페르시아 쪽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도시를 절대로 등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알렉산드로스의 전략에 어긋났다. 둘째, 티로스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페니키아 해군을 그대로 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와의 해상 교통로,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시 레인(sea lane)’의 확보가 달려 있는 일이었다.
기원전 332년 1월부터 시작된 이 공방전은 7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얕은 여울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500미터를 돌제(突堤, 댐)를 쌓아 이으려고 했다. 그런데 모래사장에서 조금 더 가자 갑자기 바다가 깊어졌다. 게다가 티로스의 군사들이 배 위에서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며 집요하게 공사를 방해했다.
젊은 왕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건축 중인 돌제 양쪽 끝에 두 개의 탑을 쌓고 그곳에 투석기를 설치해 거만한 표정으로 방해 작전에 열중하고 있는 배를 격침시키려고 했다. 높은 탑에서 공격하자 허가 찔린 티로스 쪽도 새로운 공격 방법을 고안해냈다.
두 척의 예인선으로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을 가득 실은 삼단 갤리선, 아니 그보다 더 큰 대형 선박을 끌고 항구를 나섰다. 돌제 위에 서 있는 탑에 접근하면 가연성 물질에 불을 붙여 불타는 배를 탑으로 향하게 해서 탑을 불태우겠다는 작전을 실행했다.
티로스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소부대를 이끌고 50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시돈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로도스, 키프로스섬들에게 군선을 보내라고 명령을 받은 배가 동지중해의 각지로 흩어졌다. 아시아에 들어온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의 위대한 이름은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단숨에 아테네의 20척을 포함해 243척이나 되는 배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물론 각 선단에는 베테랑 해군 장군이 탑승해 있었다. 아마도 바다를 앞에 둔 알렉산드로스의 본진에서는 해군 장군과 작전 회의가 계속 열렸을 것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티로스 공방전’이 2단계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의 변화는 티로스 쪽이 병사를 보내 방어해야 하는 지역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티로스 쪽은 두 개의 항구를 품고 있는 도심부에 방위의 주력을 집중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신전이 있는 남쪽 일대의 방위를 위해 병력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방어막이 얇아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모든 배에 섬 북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으로는 티로스 쪽의 방어가 얇아진 섬의 남쪽 성벽을 향해 투석기가 일제히 돌을 날리기 시작했다. 벽이 파괴되자 곧바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보병 정예부대를 투입했다. 결국 티로스 섬 전체가 전쟁터로 변했고 섬의 도심부까지 완전히 괴멸되었다.
티로스 함락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적에 대한 처리는 매우 냉혹했다. 티로스쪽의 전사자는 8,000명에 달했고, 살아남은 티로스의 남자와 여자 모두 노예로 팔려나갔다. 바다에 떠 있는 섬 티로스는 주민이 일소된 뒤 마케도니아의 해군기지로 바뀌었다. ‘티로스 공방전’은 ‘시 레인’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였다.
가자 공방전
이제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앞을 가로막는 도시는 없었지만, 단 하나 가자(Gaza)가 막아섰다. 2,300년 전에도 가자는 중근동에서 이집트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중요한 도시였다. 기원전 332년 9월, 통치자인 페르시아인 고위 관료가 알렉산드로스의 평화적인 제안을 거부했고, 2개월에 걸친 ‘가자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티로스와 달리 육지에 있는 도시를 함락시키는 데 2개월이나 걸린 것은 평소처럼 최전방에서 싸우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왼쪽 어깨에 화살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티로스 공방전에서도 왼쪽 어깨에 돌덩어리를 강타당했다. 이소스 전투까지 포함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큰 부상을 당한 횟수는 벌써 세 번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진로를 막아섰다는 이유만으로 함락 이후 가자가 지불한 대가는 엄청났다. 요인 전부는 사형을 당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나갔다. 가자 공방전이 끝난 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집트로 향했다. 기원전 332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집트 정복
이집트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런 이집트는 페르시아에게 승리한 마케도니아의 젊은이를 구세주처럼 환영하며 맞이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집트에서 반년 동안 체재했다. 그 반년은 전투가 없었다. 먼저 나일강 하구에 펼쳐져 있는 델타지대에 들어가 편안하게 겨울을 보냈다.
3분할 정책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군사적으로 제패한 지역을 그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해 재편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일관되게 펼친 전략은 앞으로 나가면서 뒤에 남겨진 지역이 페르시아 세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지방장관과 부족장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셋으로 분할해 각각 다른 사람이 담당하게 만들었다. 행정 업무는 유임을 인정한 페르시아인에게 맡겼다. 방위를 담당한 군사 업무는 마케도니아인에게 맡겼다. 세금의 징수와 같은 재정 업무는 마케도니아인이 아닌 그리스인에게 맡겼다.
페르시아로부터의 해방을 환영한 이집트에도 이 3분할 정책을 적용했다. 3분할 정책으로 아시아 서부는 그리스인의 세계로 바뀌어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세상을 떠난 뒤에 찾아온 ‘헬레니즘 시대’는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집트의 특수성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자 곧바로 강대국이 된 이집트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이집트의 실제 지배자는 신을 섬기는 것이 임무인 신관이었다. 따라서 이집트를 지배하려면 그들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 그들의 존재 이유를 인정해주는 것, 즉 그들이 섬기는 신을 이쪽도 존중한다는 태도를 분명하게 취하면 된다.
나일강 하구에서 2개월 동안 겨울을 보낸 24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오랜만의 휴가를 끝내고 행동을 재개했다. 먼저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현 이집트 카이로 북동쪽 교외 지역)로 향했다. 이후 나일강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멤피스를 방문했다. 이집트의 중심부 일대를 방문한 공식적인 이유는 전통적인 이집트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겠다는 것이었다.
멤피스에서 다시 나일강의 흐름을 따라 하구인 델타로 돌아왔지만 바다와 면한 그곳에 과거 지중해 세계에 없던 규모가 크고 본격적인 항구도시를 건설하겠다고 결정했다. 모래사장 위에 칼로 이러이러한 형태라고 그려가며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고 전한다.
새로운 도시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고 붙였다. 그는 속도감을 매우 좋아했다. 실제 도시계획과 공공건물 건설을 담당할 기술자 선발까지 이미 마치고 신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건설 공사를 바로 시작했다.
시와의 아몬신전
그런데 이 아이디어맨은 자기 아이디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공사 현장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지중해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계속 서쪽으로 갔다. 오늘날의 리비아까지 간 것이다.
여기서 시와(Siwa)에 있는 아몬 신전 등에 가보지 않겠냐는 말이 나왔다. 지중해 세계에서 유명한 아몬 신전이었지만 이 또한 이집트인의 기호를 반영해 사막 속에 있었다. 이 아몬 신전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신의 계시’를 들었다.
신전 안에서 24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신을 향해 물었다.
“아버지를 암살한 주모자가 아직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아들로서 그 죄에 합당한 처리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에 아몬 신은 신관의 입을 통해 대답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아버지는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이 대답은 진짜 아버지는 필리포스가 아니라 불사의 존재, 즉 신이라는 말이 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놀랐겠지만, 동시에 이것으로 이집트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몬 신전을 나와 왔던 길을 돌아서 가면 안전하겠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곳에서 곧바로 동쪽을 향했다. 400킬로미터나 되는 사막을 한 여름에 횡단하기로 한 것이다. 이 또한 유럽인 최초의 일이다.아몬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인지 무사히 멤피스에 도착했다. 나일강의 델타지대에 집결한 군대는 알렉산드로스를 맞이했다.
'가우가멜라'로 가는 길
이집트를 떠난 뒤에는 중근동을 북상해야 했는데, 해안을 따라 남하했던 지난해와 달리 그때는 내륙으로 행군했다. 먼저 티로스까지 북상했다. 그곳에서 다마스쿠스를 통해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프라테스강을 목표로 행군을 시작했다.
다리우스가 거느린 대군이 유프라테스의 동쪽 티그리스강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기원전 331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행군 도중에 25세의 생일을 맞이했다. 그의 군대는 4만 1,000명의 보병과 7,250명의 기병으로 합계 4만 8,250명의 마케도니아 병사를 주축으로 하는 그리스 군대였다.
한편 49세를 맞이한 다리우스가 거느린 페르시아 군대는 20만 명이 넘는 보병에 3만 5,000명의 기병으로 합치면 25만 명에 육박하는 대군이었다. 여기에 더해 다리우스는 200대의 전차와 15마리의 코끼리까지 참전시켰다.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전투였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아무튼 4만 8,000명의 알렉산드로스 군대는 모두 무사히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렀다.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는 여기서 알렉산드로스의 발을 멈추게 했어야 했다. 여름철이라 수량이 줄었다고 해도 유프라테스는 대하였다. 강을 건너오는 4만 8,000명이 대형을 정비한 채 건널 수가 없었다. 대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맞은편에 도착했을 때 공격해야 했다.
다리우스가 두려워한 점은 유프라테스를 건넌 후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그 물결을 따라 하류로 향하는 것, 즉 진로를 남동쪽으로 바꾸어 페르시아제국의 가장 중요한 도시인 바빌론과 수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이를 피하기 위해 굳이 바빌론에서 북쪽으로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티그리스의 동쪽 강변 근처인 가우가멜라를 결전의 무대로 선택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유프라테스강도 무사히 건넜다. 이후에도 진로를 남동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바빌론이나 수사는 뒤로 미뤄놓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횡단해 티그리스강으로 향했다.아무튼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의 두 번째 도시인 모술까지 중동 전역을 4만 8,000명의 군대를 별다른 손실 없이 행군시킨 것을 보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지도력은 상당히 뛰어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리우스의 대군
다리우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는 대제국의 황제가 나라에 총동원령을 내린 탓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군대였다.
20만 명을 충분히 넘는 보병.
4만 명에 육박하는 기병.
200대의 낫이 달린 전차.
15마리의 인도코끼리까지 포함해 합계 25만 명이 전쟁터에 투입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사륜 전차의 양쪽 바퀴에 달려 있는 1미터짜리 예리한 낫은 전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좌우를 베어 넘겼다. 여기에 등 위에 설치된 목책에서 창을 던지거나 활을 쏘는 코끼리까지 포함해 ‘이소스전투’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병기를 갖춘 대규모 군대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이끄는 그리스 군대는 페르시아 군대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4만 명이 조금 넘는 보병과 7,250명의 기병 등 합계 4만 8,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전쟁터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아니라 다리우스가 선택한 곳이었다. 물론 ‘그라니코스전투’나 ‘이소스전투’ 모두 페르시아가 선택한 곳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가우가멜라’는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평원이 되었다. 다리우스는 그곳을 전쟁터로 결정하고는 그를 따르는 모든 보병에게 평원 전체 땅을 고르라는 작업 명령을 내렸다. 낫이 달린 전차와 코끼리를 철저하게 활용하기 위해 땅을 고르라고 한 것이다.
기원전 331년 11월 1일,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처음으로 적군을 확실하게 보았다. 다리우스가 ‘이소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소스’의 다리우스는 양쪽 군대 사이에 있는 강의 맞은편에 목책을 둘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어떻게 나올지 보고 공세를 취하려고 ‘기다리는’ 진을 쳤다.
하지만 ‘가우가멜라’에는 양쪽 군대를 나누는 강이 없었다. 개전 직후라고 해도 기다리는 자세를 보여주는 목책도 쌓아두지 않았다. 대신 최전방에는 인도에서 온 15마리의 코끼리와 낫을 단 전차 200대가 5대씩 나뉘어 배치되어 있었다(가우가멜라전투 1). 다리우스가 개전 직후 재빨리 공세를 취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소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리우스는 좌익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거느린 그리스 군대의 우익과 격돌해야 하는 좌익을 과연 누구에게 맡겼을까? 다리우스는 좌익을 박트리아(Bactria)의 지방장관인 베소스(Bessos)에게 맡겼다. 고대의 박트리아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겹친다.
페르시아 쪽 진형을 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평소처럼 전략과 전술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가우가멜라’에서는 가로로 진형을 유지하면서 적에게 접근했던 방식을 우익과 좌익을 뒤로 조금 물려서 활의 형태로 만들었다.그렇게 한 첫 번째 이유는 머릿수로 압도적인 적이 좌우로 돌아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모순이 되지만 페르시아 군대의 우익과 좌익의 공격을 유발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소스’에서는 초반부터 공세로 나섰지만, ‘가우가멜라’에서는 아군의 도발로 적이 공격해오면 비로소 공세에 나서는 전술로 바꾸었다. 병력이 적에 비해 열세였지만 이를 위해 군대의 ‘중앙’을 둘로 나누어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로 이루어진 제1군 뒤에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에서 온 병사로 구성된 '예비' 제2군을 편성했다.
전투의 개시
마침내 다리우스는 낫이 달린 전차와 코끼리에 출격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병기들은 곧바로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코끼리는 체구가 거대하기 때문에 돌격할 때 강력한 인상을 주어 적의 진지를 붕괴시키는 데 최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이 이 거대한 동물을 조종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적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싫어해 폭주하는 일이 많았는데, 방향을 유턴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문제가 ‘가우가멜라’에서도 일어났다. 15마리 코끼리 모두 6미터가 넘는 창을 세워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팔랑크스를 향해 돌진하기를 거부했다.
또 다리우스가 땅을 고르게 했지만 낫이 달린 전차 200대는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 공포의 병기에도 결함이 있었다. 밀집대형을 이룰 수 없다는 게 결함이었다. 다리우스는 낫이 달린 전차 200대를 그가 거느린 ‘중앙’ 좌우 양쪽에 100대씩 배치했는데, 그 100대도 대형을 이룰 수가 없고 결국 1대씩 ‘개별적’인 공격밖에 가능하지 않았다.
25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 점을 착안했다. 낫이 달린 전차가 다가오면 재빨리 몸을 비키고 지나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 두 번째 전차가 다가오면 다시 재빨리 몸을 피했다가 지나가고 나면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를 되풀이하는 사이에 적군이나 적의 말을 향해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았다. 전차를 끄는 말이 쓰러지면 타고 있던 마부나 병사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코끼리와 낫이 달린 전차라는 새로운 병기가 곧바로 무력화되는 것을 본 다리우스는 상당히 동요했을 것이다. 그는 좌익과 우익에 있는 기마 군단에 총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익의 페르시아 기병과 좌익의 박트리아 기병 모두 무리를 이루어 공격에 돌입했다.
페르시아 기병(우익) vs. 테살리아 기병(좌익)
이때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스 쪽의 좌익을 맡은 주요 전력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마케도니아 기병 다음으로 신뢰한 테살리아 기병이었다.
바빌론의 유력자인 '마자이오스'가 지휘하는 3만의 페르시아 기마 군단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버텼다. 하지만 '가우가멜라'에서는 페르시아 기마 군단에 페르시아인이 아닌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서 온 기병이 많이 섞여 있었다. 페르시아 기병의 절반 이상이 ‘이소스’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기병(좌익) vs. 그리스 보병 + 크레타 궁병(우익)
박트리아 기마 군단이 맹렬한 공격을 가해온 그리스 쪽 우익은 좌익과 다른 전투 양상을 보였다. 이곳에서는 적의 기마 군단을 보병이 상대했다. 그 대신 활을 쏘는 궁병 하면 ‘크레타’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로 크레타 출신 궁병은 유명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궁병에게 기병을 쏘지 말고 말을 쏘라고 명령했다. 사나운 박트리아 기병도 말이 쓰러지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을 이끌던 베소스도 철수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돌진
페르시아 쪽 좌익에서 일어난 이 움직임 때문에 베소스가 지휘하는 ‘좌익’과 다리우스가 있는 ‘중앙’ 사이에 틈이 생겼다(가우가멜라전투 2).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익의 가장 오른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콤파니온’이 거느린 마케도니아의 3,000명 기병이 공격에 나섰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한 번 결정하면 돌아보지 않았다. ‘이소스’에서는 오른쪽에서 우회해 적의 중앙을 공격했지만, ‘가우가멜라’에서는 적의 중앙에 있는 다리우스를 목표로 삼았다.동시에 파르메니온이 거느린 거대한 고슴도치도 공격을 시작했다. 즉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지휘하는 그리스 군대의 모든 병사가 전쟁터로 투입되었다.
제2군의 지원
같은 시각 전쟁터의 반대쪽에서는 전황의 변화가 생겼다. 테살리아 기병이 주력인 그리스 군대의 좌익은 페르시아 기병 군단의 맹렬한 공격을 견디고 있었지만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보병 주력인 팔랑크스의 배후에 중무장 보병으로 구성된 제2군을 배치한 것은 이런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의 전쟁사 연구자들은 제2군의 움직임이 좌익의 전황을 결정지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제2군의 응원을 받고 그때까지 좌익을 지키고 있던 테살리아 기병도 재정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세로 나섰다. 적 우익의 기병 군단에도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기병의 분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서 온 기병은 그리스 쪽 좌익을 향한 공격을 멈추고 멀리 후방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기지로 약탈을 하러 떠났다.즉 3만 명의 위력적인 페르시아 쪽 우익은 전투를 계속하는 페르시아인 기병과 약탈을 하러 간 동방에서 온 기병으로 양분되었다. 결국 약탈 그룹은 그 움직임을 알아차린 그리스 쪽 제2군이 재빨리 추격했기 때문에 약탈품을 손에 넣기도 전에 살해되고 말았다.
이때 황제가 달아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가우가멜라전투 3). ‘이소스’ 때처럼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가까이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다리우스가 본 것은 개전 초의 예상을 빗나갔던 몇 가지 불리한 상황들과 알렉산드로스의 기병 군단이 자기가 있는 ‘중앙’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 정도인데, 그것만으로 도망칠 구실을 찾아낸 것이다.
다리우스는 자기 병사들을 헤치고 ‘이소스’에 이어 또다시 병사들을 버리고 전쟁터에서 달아났다. 그는 남쪽에 있는 바빌론이나 수도인 수사로 향하지 않고 동쪽으로 끝없이 달아났다.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작전을 마치면 반드시 이 도시를 공략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빗나갔던 다리우스의 예상은 이때만은 적중했다.
그리스 군대의 좌익과 교전하고 있던 우익의 마자이오스 이하 페르시아 기병은 황제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들은 유턴해 전쟁터에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패주하면 통솔력이 급속도로 약해진다. 알렉산드로스 기병은 달아나는 페르시아 기병을 향해 달려들었다(가우가멜라전투 4).
페르시아의 엘리트 기병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선두에 선 마케도니아 기마 군단의 맹렬한 공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대다수가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다. 그래도 가장 먼저 달아난 마자이오스를 비롯해 소수의 기병은 바빌론까지 달아났다. 이미 베소스가 거느린 박트리아 기병은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황제뿐만 아니라 기병으로부터 버림받은 페르시아 군대의 '중앙'에 있던 보병도 비참했다.전방에서는 파르메니온이 지휘하는 거대한 고슴도치의 공격, 후방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이끄는 기마 군단이, 오른쪽에서는 그리스의 좌익이 공격을 가했다. 병사들은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졌고, 아군에게 밟혀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전쟁터에서 장군과 병사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병사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최고사령관이 없을 정도이다. 전쟁터에 늘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 큰 위험을 안고 싸웠기 때문에, 그의 상징이 된 투구의 하얀 깃털 장식을 보면서 일개 병사까지도 왕을 따르겠다는 일념으로 싸우게 만들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생각하는 리더는 부하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솔선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의 모델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존재여야 했다. 따라서 "너희가 나를 사랑해준 것도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용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앞으로도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각각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싸운 카르다고 장군 한니발과 로마 장군 스키피오는 전투가 끝나고 몇 년 뒤에 만나 무장을 평가한 적이 있다. 그들 모두 자신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최고라고 인정했다.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 으로 적진에 쐐기를 박는 전술이 유효하고, 그 전술이 가능한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지휘했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모두 공감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재능이 만개한 시절은 20대였다. 한편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반도에 난입했던 한니발은 30대에서 시작해 40대 중반까지 활약했다. 한니발에게 승리하고 제2차 포에 니전쟁을 끝낸 스키피오의 최전성기는 30대에 들어선 이후였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갈리아전투를 시작한 것은 40세가 되던 해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누구보다 젊었다.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 전법도 젊으니까 가능했고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빌론, 수사, 그리고 페르세폴리스
'이소스전투'가 끝난 다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가우가멜라' 이후에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진격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페르시아제국의 본거지이며 그 위세의 상징이기도 한 바빌론과 수사, 페르세폴리스를 손에 넣는 것이 다음 목표였다.달아난 다리우스를 쫓는 일은 이를 끝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바빌론
다음날 아침 일찍 남쪽 방향으로 행군이 시작되었다. 유프라테스강 근처의 고대 도시 바빌론으로 향했다.거리는 400킬로미터 정도였는데 모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드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난 평야를 지나는 길이어서 행군 속도는 빨랐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행운 덕분에 바빌론을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바빌론 성문을 열고 나온 페르시아인은 젊은 왕에게 항복하겠다고 말했다. '마자이오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페르시아인은 가우가멜라 전투에 참여했는데, 또다시 아군을 버리고 전쟁터를 떠난 황제를 더 이상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신변의 안전을 약속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항복을 표명했던 것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마자이오스가 제안한 항복과 바빌론의 무혈입성을 받아들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자이오스를 바빌론과 그 주변 일대를 직할하는 지방장관으로 임명했다. 그 후 페르시아인의 등용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는데, 대부분은 알렉산드로스의 직감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페르시아 황제의 고관인 사람 가운데 그리스인 왕의 고관으로 말을 갈아타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지방장관’이라는 관직명은 바뀌지 않아도 내용은 달라졌다. 페르시아제국의 ‘사트라프’는 행정·군사·경제를 한손에 장악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사트라프’는 행정만 담당했고, 군사는 마케도니아인, 재정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권력을 셋으로 나누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현실적인 통치자이기도 했다.
‘바빌론의 영화(榮華)’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도시 바빌론은 화려했다. 알렉산드로스도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던 유명한 옥상정원도 견학했을지 모른다.당시 페르시아는 문명의 정도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그리스의 아테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궁극적인 목표를 절대로 잊지 않는 남자였다. 고대 도시의 아름다움이 주는 유쾌함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인 수사를 가능한 한 빨리 손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사
바빌론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사(Susa, 현 슈쉬)까지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가면 약 400킬로미터 정도의 여정이었다. 유프라테스강변에 위치한 바빌론과 달리 수사는 티그리스강 너머에 있었다. 아마도 바빌론에 체류하면서 이미 수도의 무혈입성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빌론의 지방장관에 취임한 마자이오스와 수사의 방위 책임자 사이에서 사전 교섭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전략은 제대로 먹혔다. 수사의 주민들은 25세의 승리자를 꽃잎을 뿌리며 화려하게 환영했다.사전 교섭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환영식 중에도 사고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다리우스가 늘 앉아 있던 옥좌에 앉자, 그 앞에 몰려온 페르시아 고위 관료들이 일제히 엎드려 신하의 태도를 보였다. 알렉산드로스와 그리스 장수들은 모두 놀랐다. 하지만 오리엔트에서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는 것은 신하의 예를 표현하는 행위였다. 이것이 훗날 문제가 되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뒤에 수사를 뒤로하고 페르세폴리스로 향했다. 물론 바빌론과 마찬가지로 수사에도 마케도니아인으로 구성된 병사들을 남겨두었다. 전투에서 희생자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전략 요충지에 병사들을 배치하는 것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늘 병사의 보충이 필요했다.
페르세폴리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페르세폴리스에도 무혈입성했다. 제국의 중심부에 있는 페르시아인들은 두 번씩이나 적 앞에서 도망친 다리우스를 더 이상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 도시는 예부터 중요 도시인 바빌론과 달리 키루스부터 시작된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대 페르시아 황제들이 고대 도시 바빌론과 경쟁이라도 하겠다는 듯 온갖 사치를 다해 꾸민 도시였다.
그래서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 본토 정복을 꿈궜던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시절 전성기를 누렸던 아케메네스 왕조에 속한 페르시아 황제의 도시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체재 중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 그는 거기서 자기가 제3차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끝내려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한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페르세폴리스의 왕궁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파르메니온이 반대했지만 젊은 왕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제2차 페르시아전쟁 때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 도시 전체를 불태웠다. 자신이 불태우는 것은 페르세폴리스 도시 전체가 아니라 크세르크세스가 화려하게 꾸민 왕궁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왕궁을 불태우는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멸망을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그들이 거주한 왕궁과 함께 소멸했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키루스를 비롯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속한 황제들의 무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엑바타나
기원전 330년 여름, 25세의 젊은이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서북쪽에 있는 엑바타나(Ecbatana, 현 이란 하마단)로 향했다. 페르시아 황제들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도시였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가는 것과는 다르게 산악 지대를 지나는 행군이었지만, 이 일대에서 젊은 정복자의 앞을 가로막는 부족은 아무도 없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엑바타나에 파르메니온을 남기기로 결정했다.각종 정보에 따르면 페르시아제국의 동쪽은 산악 지대가 연속되는 곳이었다. 70세가 된 파르메니온을 동행시키기에 무리가 따랐다. 물론 왕을 동행하지 않더라도 그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군대의 절반 이상을 남기고 파르메니온에게 지휘를 포함해 후방 기지의 책임자로 삼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엑바타나에 체류하는 동안 그 이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실행해야 했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엑바타나에 있을 때 알게 된 기쁜 소식 때문이다.
스파르타의 몰락
그것은 스파르타가 마침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메갈로폴리스부근에서, 페르시아 쪽 용병으로 참전했던 용병들이 주축이 된 스파르타 군대가 마케도니아 군대와 전투를 벌여 5,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왕도 전사하는 패배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의 몰락은 이제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려고 하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매우 기쁜 소식이었을 것이다. 첫째, 이미 그의 모국이라고 해도 좋을 그리스 전역을 완전히 마케도니아가 지배할 수 있었다. 둘째, 이제까지 페르시아와 내통하고 있던 그리스 내의 세력이 스파르타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셋째, 용병 대국인 스파르타의 몰락으로 그리스 세계에 타국의 용병이 된 자들이 어떤 운명에 놓이는지 깨닫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메갈로폴리스전투에서 전사한 스파르타 병사 대부분이 페르시아의 용병들이었고 실제로 그 이후 페르시아 쪽에 서서 싸우는 그리스 병사는 사라졌다.
다리우스 추격
엑바타나를 뒤로하고 재개된 행군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고대의 역사가뿐만 아니라 현대의 연구자까지 ‘경이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25세의 젊은이가 이끌고 산악 지대로 들어간 병사들은 젊은이가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눈앞에 있는 유일한 목표는 달아난 다리우스를 쫓는 것이었다.
다리우스는 제국의 ‘지방장관’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또 한번 대군을 편성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설욕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리우스는 제국의 중심이 모여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옛 가신들이 자기를 버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게다가 제국 동쪽의 ‘지방장관’들도 이제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트라프’는 본질은 황제를 섬기는 고위 관료가 아니라 지방호족들의 우두머리였다. 문명인이었던 다리우스는 그런 베소스와 그의 동료들을 신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황제의 내심을 알기 시작한 베소스와 동쪽의 사프라트들이 도주하는 황제와 관계가 악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다리우스는 병력은 갖고 있지만 문명 수준이 낮은 그들을 통솔할 힘이 없었다. 이런 사정에 더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추격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행이 있는 장소를 상당히 정확한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다리우스 쪽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엑바타나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베소스가 ‘지방장관’을 맡고 있는 박트리아 지방을 향해 동쪽으로 향하는 도피행을 시작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