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했지만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박완서 작가가 쓴 《카지노 게임 울음소리》, 단편이었다.
카지노 게임 울음소리? 책의 제목을 소리 내어 읽고서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카지노 게임가 소리를 낸다고?
카지노 게임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책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는 허겁지겁 책을 펼쳤다.
사실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생물이다. 시골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밭일을 하다가, 또 비가 오는 날 흙바닥을 기고 있는 카지노 게임를 보는 것은 돌이 발에 차이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다. 카지노 게임를 자주 보았다고 해서 카지노 게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밭에서 카지노 게임만큼 흔하게 보는 노린재나 풍뎅이, 그리고 무당벌레처럼 색색깔로 장식된 아름다운 갑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 눈길을 붙잡는 생물은 아니다.
오히려 기다란 살덩어리를 드러낸 채 꿈틀대는 카지노 게임를 볼 때면 징그러운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틀어 외면해버리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밭에서 만나는 카지노 게임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호미를 들고 흙을 파헤치다가 카지노 게임를 만나게 되면 얼른 흙을 덮어주거나 또는 호미로 카지노 게임를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며 “고맙다, 카지노 게임야”라고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카지노 게임가 많은 땅이 좋은 땅이라는 것은 아이들도 알고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정설이 되었으니까.
카지노 게임가 땅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카지노 게임가 소리를 낸다...? 그것은 이제껏 들어본 바가 없다. 혹시 우리 집 둘째라면 카지노 게임 웃는 소리를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 집 둘째인 창이는 흙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다. 그 아이가 흙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세 살 때 알아보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 모든 사람이 그 아이가 흙을 좋아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아봤다. 창이는 종일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놀이터와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런 창이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이는 저렇게 자라야 해” 라며 웃음 지으며 응원을 해 주기도 했지만 성격이 깔끔한 또 다른 사람 중에는 “재 엄마는 뭐 하는 사람이야? 혹시 새엄마 아니야?” 하고 뒤에서 수근 댄다는 소리를 이웃들이 전해주어 들은적도 있었다.
시골로 이사를 와서 진짜 흙을 만지며 살게 되었을 때 창이가 찾아낸 새 친구는 카지노 게임였다. 아이는 예쁜 색깔의 갑옷을 입고 있는 노린재나 풍뎅이, 무당벌레보다도 땅속에서 사는 카지노 게임나 땅강아지를 찾았을 때 얼굴이 더 환해졌다. 아이가 땅속 생물들을 좋아하는 것은 땅을 이롭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유치원 교육의 힘이었다.
둘째에게 카지노 게임 소리를 들어본 적 있냐는 문자를 보내겠다는 생각도 깜빡 잊어버리고 급하게 책장을 펼치고선 읽었다. 마지막 장까지 읽었어도 <카지노 게임 울음소리라는 제목을 제외하고는 책에서 흙, 풀, 호미, 씨앗, 나무, 밭, 숲, 비 오는 날 같은 카지노 게임와 연관될 수 있는 어떤 단어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카지노 게임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단어 하나가 뇌리에 남았다. 그 단어가 쓰인 문장은 이랬다.
“그는 예의 탁하고 처진 소리로 길길길길길 오래 웃었다. 욕에도 찌꺼기라는 게 있다면 아마 저 ‘길길길길길’이야말로 그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는 소리로 표현되는 ‘길길길길길’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나온다.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낄낄낄낄낄’도 아니고 ‘길길길길길’이라니. 웃는 소리로는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다. 어쩌면 생소한 이 단어가 카지노 게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밭의 터줏대감이기도 한 카지노 게임의 소리를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초록창에 카지노 게임 울음소리를 검색하기 위해 신중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길길길길길’
다섯 개의 길길길길길 뒤에 커서(cursor)가 깜빡깜빡 눈을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