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 못해서 어쩌냐."
"아뇨. 선배가 기다리느라 고생했죠. 오랜만에 좋았어요. 전화는 혼자 쓰는 거예요?"
"전화는 내 거야."
일하다 심심하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똑 똑똑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댓돌 위에 신발을 들어서 마루 위에 올려놓았다. 팔을 뻗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톡톡 튕겨 나가는 빗물이 2분 음표에서8분 음표길이로 떨어졌다. 빗물 받으면 사마귀 생긴다고 못 하게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물장난 못 하게하려고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에게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k로부터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고 그와 다시 만난 1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를 만나고 난 후에 그가 연재하는 만화가 궁금했다. 내가 봤던 만화는 아빠가 보시던 산림 잡지에 실리는 산불 조심, 나무 심기 홍보 만화가 전부였다. 만화를 좋아하지도 볼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비현실적인이야기로 가득 찬 만화책은 소설책보다 매력이 없었다. 만화책을 보고낄낄 대는 친구들도 이해를 못 했다.
"소년 챔프있나요?"
"단행본은 저쪽에 있고 주간지는 여기 있어요."
다양한 만화책사이에 그의 책이 1권부터 5권이 꽂혀 있었다. 단행본 다섯 권과 바로 지난주에 출판사에 넘긴 그 만화가 실려 있는 주간지를 구입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화책을 샀다. 만화가 궁금했다기보다 그가 무엇을 그리는지 궁금했다.
"무슨 책 샀어?"
정은이가 내가 들고 있는 봉투를 뺏을 듯이 들여다보았다.
"만화책이네. 이거 숙희가 빌려보는 만화책인데."
절에 같이 사는 막내 숙희가 공부는 안 하고 만화책만본다고 스님께 혼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책 중에그의 만화도 끼어 있었다니 신기했다.
"동생이 사달라고 해서 보내주려고 샀어."
퇴근하고만화책을 읽었다. 동네만 다를 뿐이고 내 일기장에 있을 만한 이야기가 만화책 속에 있었다. 짓궂은 표정, 슬픈 눈동자와 작은 점과 선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책상 앞에서 그림에 집중하는 그는 어떤 모습일까? 만화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며책장을 넘겼다.
"뭐해요?"
"만화책 보고있었지."
서점에 다녀온 얘기를 들은 그는 집에 책이 있는데 뭐 하러 돈을 주고 샀냐는 황당한 말을 했다.
"다음에는 사지 마요. 내가 줄게요."
"이제 만화책 안 산다. 그런데 책 속에 그림을 다 손으로 그리는 거야?"
만화 그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가 궁금증을 쏟아 냈다. 모두 손으로 그린다는 말에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화구통을 메고 다니던 학생이아니라 당당하게 만화가로 우뚝 선 그를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 한번 와요."
"그래."
그는 일을 끝내는 시간에 전화카지노 가입 쿠폰. 대부분 늦은 밤이었다. 한 달에 두 번에서 1주일에 한 번으로 전화 통화횟수가 늘었다. 나도 주말에 혼자 있다 생각나면 전화카지노 가입 쿠폰. 용건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림은 잘 그려져? 뭐해요? 서로가 특별한 목적이나 용건은 없었지만, 할 말이없어서 말이 끊기지는 않았다. 온종일 작업실에서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세상밖에 소식을 전하듯, 내가 보낸 하루를 들려줬다.
"오늘 반찬으로 볶음김치가나왔는데 한 녀석이 안 먹고 앉아 있는 거야."
"왜?"
대답을 궁금해하는 그에게 밀당하는 연인들처럼 대답을 미뤄두고 다른 얘기를 했다.
"너는 별일 없었어?"
"스토리가 안 오고 연락도 없어서 하루 종일놀았어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다 안 오면 알아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은 그렇게 약속을 안 지키면 어쩌라는 거야? 그림이 라면 끓이듯 그려지는것도 아니고 이상한 분이네. 늦어지면 그냥 연재 펑크 내라고 막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스토리가 늦어지면 그의 식사 시간은 물론 수면 시간을 줄여야 했다. 그에 비해 나이가 많았던 스토리작가에게 이럴 때마다 겪어야 하는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가 내놓지 못하는 속마음을 내가 대신 떠들어 주면 어떻게 그러냐면서 웃었다.
"늦었다. 잘 자."
"근데 볶음김치는…."
"아, 김치 색깔이 더러워서 못 먹겠데. 볶으면 색깔이 어두워지잖아. 어둡다는 단어를 더럽다고."
이렇게 한동안김치 얘기가 이어졌다.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만날 수 없었지만, 매일 만난 것같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선생 좋은 일 있어요?"
정은이와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내가 웃상이되었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개울에서 세수하고 바르는 화장품도 변화가 없었는데 예뻐졌다는말도 들었다. 달라진 것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나는 볼 수 없는 내 얼굴과 표정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말해주고 있었다.
"주말에 우리 집에 올래요? 여기 궁금하다고 했잖아요."
원고 마감을 맞추려면 주말에나오는 것이 어려웠던 그가 금요일 밤전화를 끊기 전에 말했다.
"가도 될까?"
생각해 본다고 말하고전화를 끊었다. 갈까? 말까? 밤새 고민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예전에 동기들이나 후배들 집에 놀러 갔던 것처럼 가면 된다. 왜 이렇게 고민하지? 작업하는모습이 궁금하다는 것은 그를 만나기 위한 핑계라는 것을 알았다. 일단,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아침 일찍 절을 나섰다. 작업실이 집과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듣고 어른들과 만날 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마을버스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자가용으로 가면 1시간 안에 도착할 집을 2시간 이상 걸려 찾아갔다.
"네가 말한 대로 내렸는데 여기는 그냥 벌판인데?"
"진짜 왔네요. 다리에서 기다려요. 내가 갈게요."
진짜 왔냐는 말에 너는 매번 빈말이냐? 그냥 간다는 말에 아니라고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리와 이어진 신작로 양쪽에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렸다. 양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사각형 틀을 만들었다. 멀리 내 손가락 사진틀 안으로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분명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선배, 뭐 해~"
"아이씨, 깜짝이야."
내 귀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그가 나를 불렀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냐는 말이 튀어나올뻔카지노 가입 쿠폰.
"타요."
그가 끄는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그의 등뒤에 나는 바짝 앉았다. 코스모스 가득한 길을 달리는순정만화 주인공으로 변신했다.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