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결혼생활(1)
평화로워 보이는 집에도 사소한 문제가 있고, 집집마다 고민 없는 집이 없다.
우리도 그렇다.
슬기로운 결혼생활, 현명한 결혼생활, 행복한 결혼생활의 스토리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연애 + 결혼 도합 30년 사이에 위기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종교 문제"였다.
지난 글(K 장남 ♥ K 장녀의 결혼 전야)에서 밝혔다시피, 우리는 종교가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모태신앙이 달랐다.울 신랑 쪽은 기독교, 우리 집은 불교였다.
각자 어릴 때는 교회에 가고 절에 가는 생활을 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그리고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거의 무교에 가까운 생활을 해서 서로의 집안종교로 인한 트러블을 만들지 않게 노력했다.
그러나우리 둘의 마음가짐과는 별개로,결혼 후 시어머님께서는 나를 동네 교회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셨고, 친정아버지께서는 울 신랑이 집안 제사에 참석해 절을 하고 술도 따르길 원하셨다.
우리는 각자서로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어 나는 시댁 동네의 교회에 갈 일이 없었고, 울 신랑도 집안 제사에 참석할 일이 없도록 현명하게 처신했다. 우리 둘에게 종교는 좀 미묘한 부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살면서 문젯거리가 될 정도의 이슈는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종교문제를 잘 덮어놓고 살고 있었는데, 그게 수면 위로 떠올라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생겼다.벌써 10년이 넘은 일인데도, 그날의 일을 쓰려고 하니(분노에 찬)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카지노 쿠폰께서 크게 다치신 적이 있었다.
논에서 일하시다가 넘어지셨는데, 골절상을 당하셔서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었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알리지 않으셔서 뒤늦게 알게 되자마자, 부랴부랴 본가 근처병원에 가 보니 거동도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한 상태셨다.
우리가 간병을 할 수 있게 우리 집 근처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씀드렸지만, 동네 친구분들도 오고 가는 그곳이 좋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할 수 없이간병인을 쓰고 우리는 매 주말 시어머님을 뵈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퇴원을 하신 후에도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 등 한동안 거동이 불편하셨다.
카지노 쿠폰만,연세 드신 분들은 뼈가 잘 붙지 않고 재골절이 많다는 우려에도 시어머님께서는 거뜬히 이겨내셨고, 지금은 그날의 사고가 기억에서 흐릿할 정도로 잘 회복하셨다.
그런데, 시어머님께서 입원을 하고 계시던 그 무렵,서울 근거리에 살고 있는 시누이 아이의 돌잔치를 하게 되었다. 시어머님께서는 첫 외손주의 돌잔치에꼭 가고 싶어 하셨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참석을 못하게 되어 우리와 시동생이대신 참석을 하게 되었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에 올라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가는 김에 서울 근방에 살고 있는친척들도 좀 뵙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경기도에 살고 계시던 시이모님 댁에안부차 잠시 들르기로 하였다.
시이모님은 결혼 이후 처음으로 뵙는 자리였다. 시어머님의 유일한 혈육이셨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시이모님 집에서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과일 좀 내올게. 잠시 앉았다 가."
"네."
명색이 며느리인데, 울 신랑과 시동생처럼 소파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부엌으로 가시는 시이모님을 따라나섰다.
"이모님, 제가 좀 도울까요?"
내 말에 이모님은 전혀 반응카지노 쿠폰 않으셨고, 조카들에게 시어머님의 안부를 물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조카들과대화를 이어나가며 과일들을 쟁반에 담으시길래 손을 뻗어 쟁반을 잡았는데, 그걸 그냥 낚아채서 거실로 들고 가셨다.
그때서야,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물론 그때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결혼식 이후 처음 만난 자리인 데다가 내가 딱히 뭔가를 한 게 없는데, 나에 대한 시이모님의 적개심이 느껴져서 매우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집을 나오면서 확신했다.
'나, 싫어하시네.'
인사를 했는데, 받아주지 않으셨고, 눈을 맞추지 않으셨다.
돌잔치 장소를 향해 가는 차 안에서기분이 상한 내가 울 신랑에게 물었다.
"이모님이 나 싫어하시는 것 같지?"
"왜 그렇게 생각해?"
"투명인간 취급했어."
"그럴 리가. 이모도 네가 낯설어 그렇겠지."
"아니야. 이건 분명 적개심이야."
나만 느낀 그 애매한 기분을 더 설명할 수 없어서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는데, 그 이유는 며칠 뒤 시어머님께서 퇴원하시고 시댁에서 시이모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카지노 쿠폰이 퇴원하시는 날, 퇴원 수속도 할 겸 본가에 내려갔는데, 퇴원 소식을 들은 시이모님께서 마침 우리가 내려간 날 와 계셨다.
그리고, 두 분께서 대화를 나누시는데,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거실까지 대화 소리가 들리는 상황이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왜 카지노 쿠폰을 안 시켜서 이 사달이 났어?"
"에이, 그냥 나 혼자 넘어진 거야."
"언니가 적극적으로 전도를 안 해서 벌 받은 거야."
헐~~
시이모님 댁에서 내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게 맞았다.그리고, 내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이유는 "카지노 쿠폰을 카지노 쿠폰 않은 죄"를 지어카지노 쿠폰이 사고가 났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셨을 테지만, 아무 대꾸도 카지노 쿠폰 않았다.
적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처구니없음을 얼굴에 티 내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시이모님의 막말에 아무도 동조카지노 쿠폰 않았다는 것이다.카지노 쿠폰도,시동생도, 시이모님의 어이없는 말을 막으려고 애쓰는 걸 내 눈으로 봤다.
근데, 그때 울 신랑은 뭘 하고 있었지?
그 사건 이후, 내 인생 손절 리스트에 시이모님이 적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복, 혼자만의 손절이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시이모님 댁 결혼식, 그러니까 울 신랑의 이종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정말 안 가고 싶었지만, 시어머님도 참석하시는 자리라 내키지 않았지만 참석했다.
그런데, 그날 시이모님께서는 정말 환한 미소를 띠며 내게 오셔서 손을 잡아주셨다.
"아이고, 오랜만이야. 와줘서 정말 고마워."
'뭐지?'
그날 결혼식에서 만난 시이모님은 과거 나를 거의 사탄이나 다름없다고말씀하시던 그분이 아니셨다.
내 손을 잡으며 하시는 인사는 가식적인 반가움이 아니었고, 진짜 반가워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은 날이라 연기를 하신 거라면 대상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시이모님의 "치매" 소식을 들었다.
인생, 참...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위기는 우리 둘이 아닌 외부의 개입으로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종교 문제를 잘 덮어두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 이 글은 기독교 전체를 폄하하는 글이 아닙니다. 종교가 다름으로 인해 일어나는 위기의 결혼생활이주제입니다. 왜곡된 시선으로 오해카지노 쿠폰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