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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Feb 26. 2025

카지노 게임 맞추기

한여름 어느 금요일에는 새벽 5시쯤 초인종을 눌러 나가 보니 카지노 게임이었다. 퀭한 눈으로 어머니 어디 있냐고. 너무 생생한 꿈이었는지 어머니, 어디 가셨냐고 계속 묻는다. 25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우리 집에서도 어머니가 안 보이니 커피 한잔 끓여달라 하고 바로 집에 간다고 얘기한다. 조금 있다 확인하니 아침도 안 먹고 어디론가 나갔다. 그날 본 어머니의 모습은 현실과 구분 안 될 정도로 생생하고 선명했나 보다. 이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 그리곤 저녁 7시경에 돌아왔다. 카지노 게임 말로는 어머니 찾아 고향까지 89000원 택시비 내고 갔는데 어딘지 잘 모르겠어 헤매다 힘들어 길에 주저앉아 있는 걸 지나던 행인이 도고 파출소에 데려다주었고, 순경들이 기차 태워 서울로 보내주었다고. 내가 귀찮아질까 내 연락처는 말 안 했다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얼빠진 사람 같이 보이면서도 도고 파출소에 고맙다고 연락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한다. 오늘은 기적처럼 집에 잘 왔지만 언젠가, 곧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이 닥칠 것이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고 이 상황이 낯설까. 카지노 게임이 현재 있는 시간에 나도 있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럴 때 말해야 할 것 같아 지난번에 할머니 산소에 다녀왔고 어머니는 산소에 있다 했다. 카지노 게임도 본인 할머니 찾아다닌 거라 하다, 어머니 찾아간 거라 하더니… 순간 기억의 시제가 엉켰다. 많이 놀란 눈빛이 잠깐 스쳤다. 그러더니 자신이 치매인가 보다’고,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내가 너무 잔인한 걸까.


이 모든 일상의 유지에 나와 삼촌의 다른 세계가 충돌했다. 왜 상한 음식을 버리지 않느냐, 유통기한 지난 재료는 버려야 한다. 음식 많이 사놓지 마라. 세탁물 내놓아라, 세탁소 맡기라며 삼촌의 일상을 통제하려던 2년 전 정도는 아니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삼촌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시점도 다르고 시제도 달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2년 전 어느 날 삼촌이 너무 싫은 내색을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나 싫었을까.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기를 쓰고 내 한 몸 내가 건사하기 위해 애쓰는데, 본인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점점 약해져 가는, 몸의 감각이 점점 둔해지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느끼는데, 나는 내 고집으로 삼촌이 내가 원하는 자리에 있길 원했다. 내 카지노 게임에 맞추지 않는다고 짜증 내고 울상을 한 것이다. 셔츠 단추를 왜 잠그지 않을까 귀찮아 안 잠그나 의아해했는데, 매번 잠가 주며 생각해 보니 삼촌은 단추 잠그기가 어려워져 그냥 두기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이해 못 하는 세계.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 삼촌의 시계는 언제 시점에서 멈춰 선 걸까. 각자 소우주로 세상을 떠돌면서 40여 년을 함께 버텨온 삼촌의 발걸음이 자꾸 빨라지더니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로 들어섰다. 삼촌의 젊은 시절인 1950-60년대와 2020년대가 함께 흐른다. 인터스텔라의 엉킨 시공간처럼.


생각해 보면 삼촌이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작년 4월 집에서 몇 달 동안 먹지 않은 약봉지를 발견하고 병원에서 지어온 약도,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걸 알고 내가 그냥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오지랖이 넓었을지 모른다. 일찍 세상 떠난 부모 대신, 혼자 살아오며 아버지 역할을 해온 삼촌에 대한 조카딸로서 의무감이었을까. 오전에 동생이, 오후에 내가 식사와 약 챙겨드리기를 맡아 매일 돌본 지 1년 5개월이 넘었다. 처음에는 본인이 챙겨 먹는다고 했지만, 이제는 밥 차려달라 한다. 매번 너희가 수고한다면서 데이 케어, 방문 요양 보호는 싫다 한다. 아직 그 정도 아니라고. 나이 들어 자꾸 잊는다고 미안해하고 겸연쩍어하면서 삼촌도 모르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삼촌의 일상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싶지 않고, 삼촌의 카지노 게임를 인정하고 싶지만, 솔직히 언제까지 어느 선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음이, 나 혼자만의 싸움이 혼란스럽다. 내가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던 노인 돌봄의 세계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걸까. 뜬금없는 울컥함이나 억울함 없이 삼촌을 잘 돌볼 수 있을까. 언제 요양원에 가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내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감당하고 뭘 결정하겠다는 건지 두렵기만 하다.


삼촌은 손이 닿을만한 곳, 거실 바닥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갑 티슈, 안경, 손톱깎이, 펜, 담뱃갑, 커피, 쓰레기통 등 카지노 게임 일상의 물건들과 함께 서서히, 천천히 허물어져 간다. 부모님의 젊은 죽음으로 늙어감보다 죽음이 더 익숙하다. 카지노 게임 조용한 쇠락을 보며 이제‘늙어감’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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