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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원 Apr 06. 2025

내 안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마주한 순간

영화 버드박스를 통해 본 내면의 얼굴들

버드박스라는 영화를 추천받아 감상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어느날부터 정체불명의 무언가(이하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보면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로 인해 주인공 일행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야외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마주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눈을 가리고 다녀야하며, 오직 건물 내에서만 안대를 풀고 생활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정체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피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다룬 공포 영화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관련된 현상들은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지금부터 스포주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하여

영화 속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무엇을 상징할까? 왜 사람들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것일까? 나는 영화속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자신의 내면을 직시한 후, 상상력이 만든 극도의 심리적 공포라고 해석하고 싶다. 결국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란 외부의 존재가 아닌 스스로가 만든 공포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어둠을 품고 있는데, 이를 증폭시키는 것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일종의 트리거인 셈이다. 결국 사람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는것 자체가 위험한게 아니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고 난 후 스스로에게 휘둘리는 멘탈이 문제 아닐까.


그렇다면 멘탈이 강하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걸까.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인정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할까?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일까? 자신의 내면의 어둠이 나타나더라도 그것 또한 자기 자신이라며 버텨낼 수 있다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마주하고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내면의 어둠은 피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마주하고 이겨냄으로써 나를 지킬 수 있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즉, 자신의 내면의 심연을 보고나서도 그걸 극복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포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절망의 무게를 강조하거나,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심연을 보지 않는, 즉, 외면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내 가치관과는 조금 다르다. 나였으면 내 안의 심연,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맞서 싸우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설령 그러다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말이다.




싸이코패스

영화속 싸이코패스들은 괴물을 보고도 자살하지 않고 오히려 환호하는 사람들로 등장한다. 이들은 괴물을 보고도 죽지 않고 심지어 괴물을 숭배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려고 한다. 이는 마치 내면의 어둠, 즉 괴물과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괴물을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보이지만, 반대로 싸이코패스들은 다른 사람에게 괴물을 보게 강요하고, 타인파괴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괴물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 마치 광신도들처럼 말이다.




건물의 내부와 외부 / 공동체와 심연

영화 상에서는 건물 안에서만 눈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수 있고, 건물 외부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때문에 눈을 가리고 다닌다. 그렇다면 건물 내부와 외부는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건물 내부는 공동체를 나타내며 이는 곧 자신의 외부세계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물 외부에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존재하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본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건물 외부가 곧 내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 내부는 공동체이므로 사회적 관계, 타인의 시선, 규칙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며, 건물 밖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마주하는 곳으로 타인과 분리된채 자기 내면을 직면하는 곳을 의미한다.




모든 단점은 장점이 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바깥 세상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지 않아도, 볼 수도 없는 안전한 공간이다. 시각 장애인들은 볼 수 없다는 특성 덕분에 역설적으로 그 세계에서 가장 생존에 유리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부르는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결핍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다른 조건에서는 얼마든지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는 순간, 단점이 곧 장점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카페에 간적이 있다. 나는 그곳이 그런 공간인지 몰랐고고 노트북으로 여느날 처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독 이상하게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손님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고 카페 손님들 중 시력이 온전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소름 돋을 일이 아니었지만, 나 자신이 그 상황을 낯설게 느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등장 인물에 대한 생각


게리

이 캐릭터는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사실은 사이코패스이다. 게리가 집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공동체에 스며든 보이지 않는 적을 나타낼까. 게리는 처음에는 정상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미 괴물을 숭배하는 지경에 이른 싸이코패스 였다. 그리고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을 다른 사람들도 억지로 보게 만들었다. 이는 일종의 사이비 사상을 전염시키는 부류를 상장하는게 아니었나 싶다. 그는 오히려 창문을 가리고 사는 것을 답답해하고, 창밖을 보라면서 이것이야 말로 진실이고 너희들은 이걸 꼭 봐야한다고 말하는 것 처럼 행동한다. 정작 그걸 보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죽어나가는데도 말이다. 사실 창밖의 괴물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게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자기 가치관이나 이념이 진실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걸 다른사람에게 강요하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더글라스

이 캐릭터는 술을 좋아하고, 시니컬하며 거의 모든걸 불신하는 캐릭터로 처음에는 비호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신뢰하지 않으며, 특히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는걸 항상 강하게 반대한다. 이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싸이코패스 게리를 의심했던 유일한 인물이 더글라스인것을 보면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더글라스는 사람들에게 게리를 의심해야한다고 계속 외쳤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그를 단지 꼰대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외면했다. 이는 마치 우리사회에서 종종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대중들이 외면하는 모습을 보는듯했다. 그래서 더글라스는 공동체 속에서도 고립되어 있었고 작중 가장 고독해보이는 인물이었다. 더글라스는 마치 현대 사회 속 사람을 믿지 말라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들이나, 감정보다 이성, 이상보다 현실을 우선시하는 관점을 보여주는게 아니었을까.




올림피아

이 캐릭터는 영화에서 선함을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역설적으로 그 선함으로 공동체를 위험에 몰아넣는다. 그녀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싸이코패스 게리가 문밖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을 때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동체 붕괴, 전멸에 가까운 인명피해였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라는 말 자체는 틀린말이 아닐 수 있으나 이건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올림피아는 불쌍한 게리를 도왔지만 결과는 전멸이었듯 말이다. 올림피아는 작중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 올림피아는 마치 SNS나 미디어만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듯 했다.




찰리

마트에서 일하던 직원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초반부터 괴물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데,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저 판타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흘려듣는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찰리의 설명이 괴물의 정체와 가장 유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누군가 진실을 말해줬지만 사람들이 진지하게 듣지 않고, 활용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찰리는 괴물에 대해 말할때 현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괴물을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몰입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찰리는 진실과 가장 가까웠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게 아쉬운 캐릭터다. 이는 현실세계에서도 지식은 있지만 활용을 못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렉

이 인물은 논리를 상장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그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면 위험하니까 CCTV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맞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틀린 선택이 된다. 결국 그는 CCTV에 나온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고 목숨을 잃게 딘다. 그는 애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등장하는 초자연적 현상도 과학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을 나타내며 기술만능주의를 상징한다. 이와 같은 부류는 이성만으로 세상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학의 힘을 믿었고, 그 힘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펠릭스&루시

이 커플은 공동체에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를 훔쳐 달아나는데, 이는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을 보여주고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보여준다. 그들은 위험상황 속에서도 일시적 쾌락을 추구하고 계획된 탈출이 아니라 충동적인 탈출을 보여준다. 마치 그들의 탈출은 자유를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 회피처럼 보이기도 한다.




셰릴

이 할머니는 공동체를 다독여주는 버팀목 같은 엄마 같은 존재이다. 공동체속 사람들이 감정적이 될때마다 다독여주고, 말없이 감정을 받아주는 존재이다. 사실 공동체에는 이런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멤버들간 정서적 끈을 이어주는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어쩌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늘 우리 곁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것을 보는 순간이 너무 두려워서 외면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내 안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무서워하기 보단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영화속 인물처럼 눈을 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나는 눈을 뜨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설령 그 끝에 절망이 있다고 해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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