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ed by 초조
“초조씨. 오늘 지각하신 거, 시말서 써서 내세요.”
시계를 확인했다. 8시 52분. 시선이 곧장 팀장에게로 돌아갔다. 나를 지나쳐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팀장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는 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사무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외투를 입은 채로 내 자리로 향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곧이어 사무실로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막 출근한 그들은 가벼운 인사를 건네면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의아한 얼굴을 하고 나를 돌아보는 게 느껴졌지만 어쩐지 이대로 발을 떼 내 자리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왜냐면 그 자리는 8시 51분 출근에 대해 시말서를 써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저 시말서 못쓰겠는데요.”
어색한 침묵이 맴돌기 시작한 사무실 안으로 내 목소리가 울렸다.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 팀장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말서를 쓰지 않겠다고 버티는 이상,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알게 된 이상, 그는 이 상황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퇴사하겠습니다.”
꼬끼오오—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진 것 같았다.
숟가락에 소복이 쌓인 분홍빛 가루약.
어릴 적의 기억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가루약이 ‘먹으면 죽는 약’이라고 했다. 그리곤 숟가락을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앞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약을 먹고 죽을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선택에 앞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말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약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안과에서 처방받아온 약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치만 ‘먹으면 죽는 약’을 내게 건넨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었다.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한 간절함이 드러나 있었고, 그걸 확인하고 나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기를 바라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연민과도 비슷한 감정에 눈물이 터졌던 것 같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새끼손가락이 어떤 약속을 예감하듯 움찔거렸지만, 나는 곧장 숟가락을 들어 약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기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쳐다보며 입 안의 침을 끌어모아 약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아마 나는 또 잘못을 저지르게 될 텐데 그걸 알면서도 그런 약속을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잖아.‘
당연하게도 나는 그 약을 먹고도 죽지 않았다. 그 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 모임에서 종종 회자되곤 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죽음을 선택한 나의 정직성에 혀를 내둘렀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사실 그 약이 먹어도 죽지 않는 약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지 않은 채 애매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알고 있을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그 정직성을 닮은 고집으로 인해 오늘 내가 세 번째 직장을 잃었다는 것을?
다시, 세 번째 직장에서의 마지막 아침.
시말서와 반성문의 구성 요건은 동일하다. 자신의 잘못을 서술하고 사죄한 뒤 이에 대한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그러니 팀장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요구한 시말서에는 지각에 대한 경위를 밝히고, 그에 대한 사죄와 재발 방지의 내용이 들어가야만 했다. 그 시말서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저는 20XX년 O월 OO일 8시 51분에 출근했습니다. 사실은 그 날 뿐만이 아니라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입사한 이래로 대부분의 날들을 8시 51분에 출근했습니다.
각주를 달면서 글을 쓰는 대학원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8시 51분’에는 다음과 같은 각주를 붙일 것이다.
‘2) 8시 51분, 그건 이 회사의 공식적인 업무 시작 시간인 9시보다는 이르지만 팀에서 정한 조례 시간인 8시 50분보다는 1분이 늦은 시각이다.’
왜 각주 번호가 2)냐면, ‘20XX년 O월 OO일’에도 이미 다음과 같은 각주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1) 20XX년 O월 OO일에 가장 먼저 사무실에 출근한 사람은 초조이며, 초조에게 시말서를 쓰라고 지시한 팀장은 8시 52분에 출근했다. 나머지 팀원들은 그날 모두 팀 조례 시각을 넘긴 8시 53분에서 55분경에 출근했다.’
이어질 사죄의 말을 적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언제가 됐건, 모두 지각했는데 혼자만 처벌을 받는 게 부당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어쨌든 그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8시 50분 출근이라는 팀의 약속을 상습적으로 어겨왔기 때문이었다.
8시 50분에 오기로 한 팀의 약속을 어기고 상습적으로 8시 51분에 출근한 점, 사실상 오늘 날씨 얘기나 어제 본 드라마 얘기만 오가는 팀 조례 시간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점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올 재발 방지 부분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분명 8시 51분에 출근할 것 같았다. 말로 하고 글로 써서 고쳐질 버릇이었으면 이미 진작 고쳐졌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8시 50분을 넘겨서 출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될 게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 어떻게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말서를 쓸 수가 없었다. 어릴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직후에 퇴사를 선언한 것은 팀장의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어린 날 엄마의 얼굴에서 봤던 간절함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약속을 원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연민으로, 그럼에도 거짓은 말할 수는 없는 나의 고집에 대한 사죄로써 나는 ‘먹으면 죽는 약’을 자진하여 삼킨 어린 날처럼 자진하여 퇴사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벌줌으로써 상대의 체면이라도 살려주기 위하여.
“그래서 시말서 대신에 사직서를 냈다고?”
딱, 딱, 딱. 엄마의 손 아래에서 애호박이 일정한 크기로 잘려나가고 있었다. 일정한 도마 소리를 들으며 나는 침을 꼴깍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하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엄마의 손에 칼이 들려있지 않을 때에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도마 위에 칼을 내려놓은 엄마가 손을 씻었다. 그대로 식탁 맞은편에 와서 앉은 엄마와 칼의 거리가 가까운 게 괜시리 신경 쓰였다. 그도 그럴게 올해만 벌써 세 번째 퇴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갑작스러운 퇴사에 대해 화를 내진 않을 모양이었다.
“넌 여전히 누가 찍어 누르는 걸 견디질 못하는구나.“
담담히 말하는 얼굴 위로 뭔가에 질린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엄마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으니 퇴사하겠다고 말한 나의 위선과 위악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뜨끔했다. 엄마의 말대로 이 사건의 본질은 ‘찍어 누르는 것을 견디지 못함’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걸 왜 견뎌야 하는데?’라는 바보 같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걸 견디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부당한 요구더라도, 수단이 극단적이고 강압적일지라도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있었다. 견디지 않고 번번이 저항해서야 규율과 질서가 존재하는 이 사회에 발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치만 닭을 닭장 속에 넣는 일은 왜 어려운가? 닭을 해치려는 것도 아니고 안온한 보금자리로 돌려보낼 뿐인 그 행위는 왜 닭으로 하여금 사지를 퍼덕이며 지랄발광을 하게 만드는가? 닭은 그 누구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죽음을 맞수로 두며 제 말을 듣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의지 앞에서, 그리고 오늘 조직 내 권위를 이용하여 내 지각 같지 않은 지각을 고치고 말겠다는 팀장의 의지 앞에서 나는 충동과도 같은 꼬끼오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종류의 찍어 누름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생에의 의지였다.
식탁에 앉아 내 어깨너머 바닥을 한참 내다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다시 도마 앞으로 다가가 칼을 들었고, 그걸 내게 들이대는 일 없이 바지런히 찌개 재료를 썰었다.
평소와 같으면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각, 집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해주는 점심을 뜨면서 아직 밝은 창밖을 바라봤다.
‘다음 회사에서는…’
거기까지 떠올린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잠시 머뭇거렸다. 언제까지고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고 유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찍어 누르는 사람이 없게 해 주세요.‘
꼬끼오—
기도문에 답하듯 어딘가에서 닭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