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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Dec 27. 2024

D-65

내가 왜?

“오늘부터 2025년 3월 1일 자 전보내신서를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말머리의 교내 메신저 쪽지가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도착했다. 12월 말은 한 카지노 게임 추천에서의 4년 만기를 채우고 다른 카지노 게임 추천로 옮겨야 하는 교사들의 ‘내신서 작성 기간’이다. 내신서란... 옮기고 싶은 카지노 게임 추천를 적어내는 일종의 희망 서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내신서에 총 10개의 희망 카지노 게임 추천를 적어야 한다. 10개나 적어야 하니 좋은 거 아닌가요? 생각할 수 있겠지만 1 지망 아니고선 아무 데나 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는 내신이라 크게 도움은 안된다. 나도 이날을 위해 핸드폰 메모장에 10곳의 초등카지노 게임 추천명을 적어두었다. 이름들을 보니 난 이번에도 네이버 지도를 펴놓고 거리만으로 기준을 잡았구나.


내신으로 옮길 때의 기준은 저마다 다양하다. 누군가는 학부모의 민원이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어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규모가 큰 카지노 게임 추천로 가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승진 점수를 얻기 위해 12 학급 이내의 소규모 카지노 게임 추천로 가기도 하며 조용한 성향의 아이들이 다니는 카지노 게임 추천로 가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 100명의 교사라면 100개의 기준이 있다. 나의 경우 말을 꺼낼 때마다 상대방이 피이익, 코웃음을 흘리게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비웃음을 사는 기준은 ‘집에서 가까운 순서’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 화장실 창문에서라도 멀리나마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면 더없이 좋은 카지노 게임 추천라 생각한다. 민원이 많아도,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날아 차기를 하더라도, 학급의 규모가 작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집에서 가까우면 그걸로 행운이라 여겼다. 이를테면 폭설이 와서 차를 끌지 못했을 때 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 거리라든가 두터운 어그부츠를 신고 걸어서라도 출근할 수 있다든가.


무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삶을 붙잡고 흔들 수도 있는 기반인데 그걸 고작 거리로 결정한다고? 많은 이들이 내 기준을 듣고 살레살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봐 자네, 카지노 게임 추천를 옮길 땐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해. 집에서 가깝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네가 아무리 지금 승진할 생각이 없더래혹시 모르는 일이거든. 미래를 생각하며 선택하도록 해. 맞아요. 저도 미래를 생각했그든요. 폭설이 내릴 미래의 겨울을 떠올리며가까운 카지노 게임 추천를 고른다 이거예요!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기로 한다. 등신 머저리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3월 1일 자 전보내신서. 그런데 나는 그날로 교직을 그만두는데 왜 이걸 작성해야 하지? 궁금함에 여쭈어보았더니 교감선생님 본인도 의아해하셨다고 한다. 내신 명단에서 날 빼버리면 되는 걸 면직하는 마당에 10개 카지노 게임 추천를 골라서 써야 해? 하지만 나의 경우, 3월 1일 의원면직을 하는 것이니 일단 이 카지노 게임 추천에서 명단이 정확히 빠져나가고 나서야 면직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러려면 어쨌든 내신서를 작성해야 하고, 내신서엔 10개의 희망카지노 게임 추천가 포함되어 있다. 해서 나는 쓸데없이 희망카지노 게임 추천를 적어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지울까 말까 딱 백 번 고민하다 그대로 놔둔 핸드폰 메모장의 10개 카지노 게임 추천 명단을 다시 꺼냈다. 아마 지난 4월쯤 작성한 것 같은데 핸드폰을 돌려 보고 어떻게 보아도 그 10개 카지노 게임 추천의 기준은 ‘집에서 가까운가’였다.이름들을 보자마자 위치가 띠링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거기. 정문 쪽에 작은 개인카페가 있어. 저 카지노 게임 추천는 가는 길에 스타벅스를 만날 수 있지. 세 번째로 정한 카지노 게임 추천는 근처에 메가커피가 있을 거야. 가만, 기준이 근처 카페 유무였던가.


4년 만기자 교사들은 요즘 마음이 분주하고 머릿속이 번잡스럽다. 동학년 선생님들도 올해 만기가 되어 내신서를 작성하시는데 나와 함께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다. 내가 사랑하는 A 선생님은 같은 카지노 게임 추천로 옮기자고 권유하려 하셨다 한다. 그 마음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다. 죄송하지만 저는 빠질게요. 아, 아예 빠진다고요. 그렇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를 옮기는 자의 살짝 들뜨며 동시에 가라앉는 기분은 함께 느끼려 애써본다. 4년 동안 함께 한 이 카지노 게임 추천, 그동안 정들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만기자들에게 근무카지노 게임 추천는 이렇듯지긋지긋함이 디폴트 값으로 매겨져 있어 새로운 카지노 게임 추천에 대한 희망으로 조금은 눈이 반짝인다. 하지만 옮기면 알게 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이 카지노 게임 추천가 마지막 근무지가 될 것이라곤 참새발톱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굳이 그만둔다면 50세에나 그럴 줄 알았다. 10년이 당겨진 것이다. 4년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나치게 성장했다. 마음만 성장하면 좋을 텐데 중년의 나이에 몸까지 성장해 버려 둔탁한 몸매가 되었다. 어린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극에서 극으로, 수업에 대한 관점 또한 지하 200미터에서 못해도 지상 5층까지는 옮겨졌다고 생각한다. 이럴 수도 있구나. 저런 가능성을 얕잡아 봐선 안되는구나.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구나.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가 좋을 순 없구나. 구나, 구나... 끝도 없는 깨달음의 연속.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안으로 더욱 풍성해졌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한 심지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 카지노 게임 추천에서의 교직 생활이 행복했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지옥이 있다면 여길까. 아파트 20층 복도 창문에서 바닥 아스팔트를 자꾸만 바라보게 만드는 카지노 게임 추천, 이곳에서 몸을 날린다면 나는 과연 자유로울까 자꾸 상상하게 만드는 카지노 게임 추천. 이봐, 카지노 게임 추천가 전쟁터라면 바깥은 지옥이야. 어떡하지. 나는 카지노 게임 추천마저 지옥인데. 지옥보다 더한 곳엔 무엇이 있을까.


어차피 그만둘 거면서 마치 내년에 새 카지노 게임 추천에서 새로운 어린이들을 만날 것처럼 꿈을 꾼다. 10개의 카지노 게임 추천를 차근차근 자판으로 입력한다. 3월 2일이 되면 잔뜩 긴장한 표정의 어린이들이 교실 문턱을 넘겠지.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을 거야... 아니구나. 내년 3월 2일엔 이불 동굴 속에서 잠시 몸을 웅크리고 싶다. 모든 것이 새로운 3월. 나는 어떤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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