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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Jan 23. 2025

D-74

카지노 게임

“00 선생님, 잠깐 교감실로 좀 오세요”


민원이 없는 평화로운 올해, 교감선생님께서 나를 찾는다는 건 의원면직에 관한 일일 것이다. 평소 성격대로 급하게 하던 일을 마무리카지노 게임 총총 빠르게 걸어갔다. 교무실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시던 교감선생님은 몇 달 전 갑자기 교감실의 필요성을 주장하셨고 이는 신속 정확하게 추진되어 금세 실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꽃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작업용 테이블과 회의용 테이블이 전부였다. 하얀 벽은 생각보다 더 단출카지노 게임 냉랭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교감선생님을 페인트로 만들어 얇게 펴 바르면 이런 느낌일까.


교감선생님과 회의용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여전한 입가의 주름. 지난번 의원면직을 말씀드릴 때 순간적으로 확 펴졌던 주름은 이제 다시 안정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간 모양이다. 나에게 세 장의 문서를 전해주셨다. 카지노 게임, 서약서, 사직동의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카지노 게임. 나의 자유의지로 교육공무원직을 사직하고자 함을 명시하여 공식적 절차를 밟는 서류였다. 단 몇줄이면 나의 16년은 가볍게 마무리되는구나. 이 짧은 내용 안에 사유까지 써야 하니 앞이 아득해진다.


‘상기 본인은 ( )의 카지노 게임...’


사유가 따로 있을까. 뭐라고 적어야 적당하지.



-더럽고 치사한 직무상의 카지노 게임

-나를 고소의 불안에 떨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의 카지노 게임

-그냥 하기 싫은 개인적인 변덕의 카지노 게임

-다른 일을 카지노 게임 싶은 변심의 사유로

-내향인이 외향인인 척하기 힘든 카지노 게임

-내 마음도 읽기 힘든데 아이들 마음을 읽어줘야 하는 정신없음의 사유로

-아 몰라 그냥 내 맘이야의 카지노 게임


.. 이렇게 적어내면 교감실에서 바로 전화가 오겠지. 장난하냐고. 결국 고심하다 ‘개인적인 일 및 건강상의 사유로’라고 단순하게 적을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 게임는 손으로 써야 한다. 키보드 타이핑이 아니다. 사유는 만들었으나 막상 A4 용지 위에 펜을 올려놓으니 막막하다. 깨알 같은 글씨를 잘 쓰는 나는 지금부터 사. 직. 서라고 큼직하고도 결의 있는 글씨를 써야 한다. 덕분에 세 장째 쓰고 있다. 의원면직 하기가 이렇게 번잡스러울 줄이야. 간신히 카지노 게임를 힘주어 적어내면 자필로 제출하는문서가 하나 더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서약서. 직무상 알게 된 비밀에 대해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는 서약서 역시 손으로 직접 써야 한다. 그런데 비밀? 내가 교직에 16년째 있지만 여기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애들 하교시키고 배고파서 몰래 초코파이 먹은 것도 비밀이 될까. 6학년 학생이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 도와달라 가지고 왔는데 나도 못 풀어서 ‘학원 숙제는 집에서 해라’라고 물린 것도 비밀일까. 급식 시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육 한 점을 식탁에 흘렸는데 애들 안 볼 때 3초 안에 주워 먹은 것도 비밀이라 할 수 있을까. 어머, 여기에 다 발설해 버렸네!


어렵게 쓴 카지노 게임를 밑에 두고서약서까지 휘리릭 이어 썼다. 남은 것은 사직동의서. 내가 내 직장을 그만두는데 다른 사람의 동의가 필요한 거야? 나 성인인데? 마흔이 넘었는데? 의아해서 교감선생님께 여쭈어보니 민원 때문이라고 하신다. 앞뒤 재지 않고 가족과 상의 없이 카지노 게임를 쓴 경우 그 가족들이 불만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그만둘 수가 있냐며. 따라서 나는 나의 최측근인 남편의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남편 앞에서 몸을 배배 꼬며 사직동의서를 내밀었다. 이게 있어야만 사직 수리가 된대. 왜냐하면...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카지노 게임 다시금 나의 의원면직 이야기를그 어느 때보다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사업계획서 설명하듯 진중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남편은 나를 한 번 더 붙잡았다.


“안식년을 내보거나 휴직을 1년 쓰고 더 생각해 보면 안 될까?”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 위에 서있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심연의 바닷속으로 가볍게 추락할 수 있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아가미로 숨 쉬고 싶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자꾸만 절벽에서 나를 잡아챈다. 떨어지지 않도록. 그곳은 위험하니까. 안전한 이곳으로 들어오라며 회유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지만 나는 결국 뛰어내리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쉬어도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발목이 잡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안 되겠어요.”


남편은 내 굳은 표정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동의서에 싸인을 해주었다. 후회할 텐데, 하면서.

알아요. 바다로 무의미하게 뛰어들었지만 난 수영을 못하거든요. 분명 후회할 날이 올 거예요. 그때가 되면 분에 넘치도록 후회할게요. 충분히 후회하며 괴로워카지노 게임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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