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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Feb 06. 2025

D-70

마그네틱, 연필깎이, 칠판

만나는 사람들 마다 의원면직 이야기를 물어보는 날이 지속되었다. 어떤 이는 이유를 궁금해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추후에 어떤 일을 해나갈지 궁금해카지노 게임. 둘 다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 그만두는 이유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교직을 떠나 무슨 일을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 웃음으로 무마하는 때가 많다. 말을 꺼낼수록 이상한 사람이 되어간다.


경기도 안 좋은 요즘 같은 때에 이만큼 안정적인 직장이 어디 있다고 나는 대책 없이 뛰쳐나온 걸까.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좀 더 가뿐하게 설명하기 위해 의원면직의 이유를 적어보았다. 당시 남편에게 ‘나 그만두어야겠어요’라고 말한 건 순전히 충동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내 인생에도 적용되지 않았을까(의원면직이 대형 사고인가!). 이유를 만들다 보니 떠올리기 개운찮은 기억들만 자꾸 생각났다. 관리자에게 부당한 갑질을 당했던 일, 각종 학부모 민원, 대하기 어려운 동료 교사, 날뛰는 카지노 게임, 해마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3월, 아침마다 후다닥 나가느라 카지노 게임을 못 챙겨준 것, 해도 해도 부족함을 느끼는 나 자신까지. 그만두려는 이유는 백 개쯤, 시간만 주면 그 이상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기억만으로 16년 이상을 지내왔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틈을 비집고 자리 잡은 보송한 추억과 느낌들은 비눗방울처럼 퐁퐁 솟아오른다. 교사들만 느낄 수 있는 보람과 성취감, 지금까지도 만나는 자애로운 동료 교사, 인간적인 관리자,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학부모, 나를 보고 웃어주던 카지노 게임. 잊고 싶은 일들과 소중한 기억들이 혼재되어 나타났다가 톡 하고 터져버린다. 하지만 왜 여태까지 생생하게 마음의 밑바닥에 담겨 있는지 모를 일도 있다.


늦은 5월, 봄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다. 장소는 중학년 아이들을 고려하여 멀지 않은 곳으로 잡았다. 초등에서는 차로 1시간이 걸리면 멀미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선정한 곳이 30~4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장소라 다행이었다. 모든 교사가 그러하듯 일주일 전부터 지역 날씨를 꼼꼼하게 살폈다. 3일, 2일, 하루가 남았지만 일기 예보에는 해가 떠 있었다. 외부 활동이 있어 너무 쌀쌀할까 봐 걱정했지만 낮 기온도 생각보다 따뜻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외부 체험학습을 접한 적 없는 아이들은 전날 도시락으로 무얼 싸가느냐부터 시끌시끌했다. 치킨을 싸 와도 되느냐, 피자는 어떠한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김밥, 볶음밥, 유부초밥 등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싸 들고 온 도시락을 품에 안고 아이들은 버스를 탔다.


체험학습 장소에 내려 짐을 풀고 현장의 보조 선생님을 따라 각종 활동이 시작되었다. 주된 활동은 다육식물 화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도 가두어진 물에서 꼬물거리는 올챙이를 관찰하기도 하고 자기들 볼처럼 통실하게 살이 오른 보리수 열매를 따서 먹어보기도 했다. 소규모의 동물원이 있어 토끼며 닭들을 관찰하고 나누어주신 당근을 집어 들어 동물들에게 먹여주었다. 그러다가 토끼에게 손가락이 물려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 이어졌다. 카지노 게임은 음료수 병을 여느라 낑낑거리다 결국 내게 가져온다. 힘주어 팍! 하고 열어내자 우와! 하며 감탄사를 던졌다. 너희가 다 자라면 나보다 더 힘이 세질 거야. 그때쯤이면 나는 바람 다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을걸.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가벼운 장기 자랑 시간을 가졌다. 꼬맹이들이지만 여자카지노 게임은 저마다 집에서 춤을 준비해 왔고 줄넘기를 가방에 챙겨 온 아이도 있었다. 채아는 예상했던 대로 춤을 추겠다고 얘기했다.


채아는 우리 반에서 춤을 가장 잘 추는 카지노 게임였다. 같은 동작이라도 이 카지노 게임가 하면 뭔가 달라 보였다. 손을 뻗는 힘찬 각도 하며 절도 있는 팔꿈치에 유려한 웨이브까지.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많은 시간 관심을 가지고 연습한 티가 났다. 동시에 채아는 내 속을 한참 썩이던 카지노 게임이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편 가르기를 하고 무리의 우두머리 행세를 했다. 사춘기 소맷자락도 스치지 않은 꼬맹이들이 조그만 일로 크게 다툴까 봐 채아에게 늘 신경을 쏟았다.


그런 채아는 아일릿의 ‘마그네틱’ 노래를 신청했다. 무대는 웃기지만 풀밭이었다. 생태학습장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반 카지노 게임도 풀밭 위에 서서 열심히 몸을 흔들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채아뿐이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햇살이 아이의 어깨 위에서 녹아버렸다. 아이가 입은 남방은 가볍게 나풀거린다. 표정까지 연습해 온 채아는 귀엽고 멋있는 표정을 동시에 보여주느라 이목구비가 몹시 바쁘다. 사뿐하게 뛰어오르고 앉았다가는 냉큼 일어선다. 노래가 채아의 몸에 착 들러붙어 있었다. 이 노래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른한 졸음이 쏟아졌다. 채아의 웃음이 음표처럼 새어 나온다. 나도 따라서 웃음이 난다.


이 기억이 왜 이렇게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있는지 모를 일이다. 담임으로서 채아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것은 아니다. 다른 카지노 게임보다 더 혼냈으면 혼냈지 도드라지게 예뻐한 아이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때때로 외로움이 느껴질 때면 채아가 춤추는 모습을 떠올린다. 아이의 얼굴과 그때의 햇살이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살아난다. 울고 싶을 때에도 나는 채아의 춤을 생각한다. 그러면 조금 참을만해지는 것이다.


그 카지노 게임가 그리운 건지 그때가 그리운 건지는 모르겠다. 사실 말하지 못했지만 많은 것들이 벌써부터 그립다. 해마다 가지고 다니는 은색 기차 모양 샤파 연필깎이도 그립고 잘 닦인 초록색 칠판의 매끈한 질감도 그립다. 그만둘 때가 되니 많은 것들이 미화되고 만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생기면 아일릿의 노래와 채아의 춤을 꺼내어 볼 생각이다. 이 기억들을 버리기에는 나의 16년이 지나치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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