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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성 Aug 27. 2024

안녕, 급식실

8화 2024년 7월 9일 조연이라 얕보지 마라 하트뮤즐리 멸치볶음


유해진. 그는 조연임을 마다하지 않는 주연이다. 그가 1999년 작품 주유소습격사건에서 양아치로 나올 때만 해도 뭐 저리 볼품없이 생긴 사람이 있나 했다. 그러나 깐죽거리기도 하면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신라의 달밤에서 넙치, 그 외에 공공의 적, 광복절 특사, 무사, 왕의 남자 등등 굵직한 영화에서 주연 옆의 찰떡 조연 역으로 분하다가 어느 순간 주연의 자리를 꿰차는 데 십 년 정도 걸렸다. 그는 팔색조란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어디에든 있을 법한 인물이다.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TV 만 켜면 왜 그리 화려한 이목구비들이 많은지. 넘치는 호남형들에 비하면 유해진이란 인물은 참 귀한 사람이다. 차승원과 삼시세끼 어촌 편에 나올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주연이다.


오늘의 메뉴를 말하자면 국은 바지락순두부찌개요 주찬은 유린기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김치 국의 중간 즈음의 맵기와 농도, 그리고 고추기름 뜬 국물 위로 순두부가 몽글몽글 자리 잡은 것이 먹음직스러웠다. 현주 선생님께서 담당하셨는데 순두부가 솥단지에 눌어붙거나 으스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많은 순두부를 대형 스텐레이스 대야에 담아 중탕을 하시고 나서는 끓고 있는 바지락 찌개에 그대로 순두부를 부어 완성하셨다고 했다.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급식실이라 얕보면 오산이다.미슐렝에서 별 다섯 개 받은 주방과 맘먹는 요리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에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탄생한 오늘의 국은 우리 학교 가장 까탈스러운 입맛의 입 짧은 손님이신 3학년 아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참으로 기쁜 날이 아닌가.주찬은 어떠하리. 이름도 낯선 고급 음식 유린기.


“유린기가 뭐야? 난 담당인데도 그게 뭔지 모르겠어.”


세라 카지노 쿠폰가 안경 너머로 눈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가 닭 유자 아니야? 닭튀김이지 뭐.”


혜진 카지노 쿠폰가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거 있잖아. 중국집 가면 고급 요리. 비싼 거. 근데 깐풍기랑 유린기랑 뭐가 달라? 다 탕수육 하고 비슷한 거 아니야?”


명자 카지노 쿠폰의 능글맞은 받아쳐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넌 뭘 웃어? 내 말이 웃겨?”


카지노 쿠폰만 모르나 보다. 카지노 쿠폰 말이 웃긴 것을. 그건 닭 유자가 아니고요 닭 계자고 기로 끝나는 요리는 닭 요리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들의 웃픈 논쟁에 찬물을 뿌리고 싶지 않았다. 더 웃긴 것은 유린기가 뭔지 그렇게 논쟁을 해도 핸드폰으로 그걸 한 번 찾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소스는 그저 달콤 새콤하면 되니 당연히 걸쭉한 탕수육 소스를 만들었다. 더위가 삼켜버려 온 데 간데없는 프로 정신. 만사 귀찮아진 카지노 쿠폰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7월 방학식이 오길 기다렸다.


“유린기인지 뭔지 대에충 오븐에 넣고 소스도 대에충 새콤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맞아. 맞아. 맞아. 대충 하자.”


카지노 쿠폰들은 대충 하자고 결론을 냈지만, 오늘도 역시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바삭하지가 않아.”

“소스가 너무 걸쭉한걸.”


그들은 대충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가끔 이런 허탈한 대화가 소화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어 또 이 일의 고됨을 잊어버리게 된다. 유린기가 무엇이든 튀긴 것이라면 신발도 맛있다는 강호동의 어록처럼 아이들도 그저 고기 주세요 고기 주세요 하며 돼지든 닭이든 달콤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그게 무엇이든 전부 탕수육인 줄 알고 먹었더랬다. 집에 와서 유린기를 찾아본 즉, 유린기란 기름을 뿌린 닭고기라는 뜻으로 양상추, 양파 따위의 아삭한 식감을 가진 채소 위에 튀긴 닭고기를 얹어 청고추, 홍고추등으로 고명을 얹고 새콤한 맛이 강한 간장소스를 곁들여 먹는 중국 남방지역의 광동 요리를 기원으로 하는 음식이라고 했다.고명이 다 무엇인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간장소스를 베이스로 한 음식이었으나, 냉철하게 잔반통의 무게를 보면 그날 음식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는결과 중심적인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잘 먹었으니 가타부타 말할 게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단연코 1등은 멸치볶음이었다. 미현이와 혜진언니가 한 팀을 이뤄 합작하여 주찬을 능가하는 부찬으로 등극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추가 배식 때, 멸치 볶음을 더 먹으려던 아이들이 유린기를 탕수육이라 오인하여 수차례 더 먹으려는 아이들의 무리와 비등할 정도로 인기 만점이었다.


하트 뮤즐리는 통곡물을 그대로 압착 한 시리얼 대용으로 색색의 하트 곡물이 있어 아이들의 식욕, 시각, 미각을 모두 만족시킬만하였다. 번지르르한 윤기가 흘러 달콤 짭짤한 양념에 잘 볶아진 멸치와 그 이름도 아름다운 뮤즐리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오늘 나는 그럼 무엇을 했는가. 나는 조리실에 없었다. 들어는 봤나. 도우미 넘버 쓰리. 이틀 동안 주찬 넘버 쓰리였는데 오늘부터 이틀간 도우미 넘버 쓰리다. 담당도 아니고 담당조의 원탑 투탑도 아닌 조연 중의 조연. 넘버 쓰리라고 해서 얕보면 큰코다친다. 어제 한우 불고기 하다가 주찬조의 넘버 쓰리로 많은 업무량에정신 줄을 잔반통에 버린 줄 알았다. 즉, 업무량의 큰 맥락은 있으나 쓰리이기때문에 직책이 낮아 심부름하는 존재정도로 직무에 대한 부담이 적기는 하다. 월차를 내려면 주찬쓰리든 도우미쓰리든 쓰리일때 쉬라고 격하게 직무량을 낮추어 급하게 만든 보직이지만 그마저도 할 일이 적지 않다. 어쨌든 소속이 있는 만큼 그 소속을 최선을 다해 받쳐 주어야 하는 게 넘버 쓰리의 의무이지만 그 날 메뉴와 상황에 따라 넘버 원 투와 맞먹게 됨에는 틀림없다.


오늘 내 몸은 기계처럼 도우미 원, 투를 능가하게 움직였다. 쓰리란 보직의 탄생 기원에 대해 설명하자면, 급식실의 일 중에서 가장 악명높은 곳이 세척실 일이다. 아무리 11명이 일해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세척실일을 담당해야 한다. 마지막 식판 세척과 마무리의 일은 여간 고된일이 아닐 수 없기때문에 아이들 배식 중에 미리 미리 식판 세척을 해야 마지막 3차 때 몰리는 업무량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배식하는 동안에 두세명이 세척실에 남아 일을 많이 해놓을 수 있도록하기 위함이 첫번째이고,잡다한 일의 양이 점점 늘어나는 도우미의 과중한 업무를 경감시키는 효과도 있어서가 두번째로주찬 쓰리, 도우미 쓰리란 이름만 들어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듯한 보직을 2주 전 급하게 만들게 되었다.휴게실을 청소하고 나서 신발장, 우유냉장고, 장화소독기 등을 닦고 창틀까지 청소하면서 홀에 필요한 물품을 채우는 것 정도가 도우미쓰리의 일이고, 주찬 쓰리는 주찬 담당 원투가 주찬을 조리하는 동안에 나오는 설거지며 양념을 갖다주는 등의 부수적인 일을 하면 된다.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보조의 출연으로 급식실 일은 조금 수월해 지게 되었다.


사실, 모든 담당이 100퍼센트의 빈틈이 없는 업무량이다. 그렇기에 휴가도 낼 수가 없었고 혹이 월차라도 쓰면 누군가는 두 배의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다. 처음으로 이 학교에 실무사 12명이 채워져 주찬 넘버 쓰리와 도우미 넘버 쓰리라는 보직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그나마없어도 티가 그렇게 나지 않는보직의 차례가 되면월차라도 눈치 안 보고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고무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잡다한 여러 일을 넘버 원이랑 넘버 투가 해야 한다 딱 선을 그을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지나가다 놓치는 부분의 일에 대해서 그 일을 누군가는 하겠지 했을 때 그 누군가도 잊어버린다면 결국 이행하지 못한 의무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내 발바닥은 열 일을 했다. 지나가던 카지노 쿠폰들 왜 그걸 네가 하고 있냐며 놔두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사실,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인 것을 알고 있고 카지노 쿠폰들도 나처럼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것도 안다.


내가 어느 직장에 간들 이만큼의 책임감으로 이토록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동료를 만날 수 있을까. 결국, 인내심과 책임감 그리고 정신력이 갑인 사람들만 여기 남았다. 3개월이란 짧은 시간 안에 동료애 그 이상을 느꼈다. 전쟁터에서 남아 있는 전우를 두고 갈 수 없어 같이 유명을 달리한 6.25 전쟁 참전 외국인 용사들의 이야기를 얼마 전 들었는데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거창하게 포장하자면 감히 그렇고 뭐 소소하게 말하자면 의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퇴직을 얼마 앞둔 마음이 매일 무겁다.


“혜성 씨! 같이 바람 쐬러 갔다가 올래요?”

“네?”

“쓰레기 버리러 같이 갔다가 오자.”

“네.”


오늘 홀을 정리하고 있는데 처음 짝을 해 본 은주 카지노 쿠폰와 진선 카지노 쿠폰가 바람 쐬러 가자면서 불렀다. 나는 그 말을 해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드디어 만났네. 혜성 씨를 이렇게 도우미 돼서야 만났네. 비는 맞을 만하죠?”

“네. 전 좋아요.”

“혜성 씨는 운동 좋아해요?”

“저는 뛰는 거 좋아해요.”

“그렇구나. 잘할 것 같아.”


은주 카지노 쿠폰와는 처음 같은 담당을 하게 되었다. 카지노 쿠폰는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카지노 쿠폰는 최강 아들 군단을 두었다. 명문대생에 명문고생까지. 1년에 영어 한 문제 정도 틀린다는 명문고생 아들. 카지노 쿠폰가 조리 실무사로 일한 지 1년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우스개 소리를 자주 하셨다. 내가 대체 인력으로 오게 된 이유는 은주 카지노 쿠폰가 일을 하다가 칼에 베어 인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병가를 냈기 때문이었다. 은주 카지노 쿠폰를 아주 가끔 출근길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그때마다 내게 견딜만하냐고 물어 봐 주셨다. 카지노 쿠폰의 손가락은 아직 100퍼센트 회복하지 못했다. 신경이 죽어 검은색을 띤 손가락으로라도 급식실에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카지노 쿠폰한테 여기는 지루하지 않은 삶의 놀이터 같은 곳인 것 같았다. 사람이 좋아 일을 나온다는 카지노 쿠폰의 말에 나는 뒤늦게 공감할 수 있었다. 웃고 떠들고 싸우고 다시 웃고. 뒤끝이 없는 이 동네만의 특별함. 누가 누구를 싫어하기도 하는 날 것의 표현들도 샤워 한 번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간식을 먹고 어깨 주무르라 파스 붙여달라 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일이 힘들었는지 감정이 얽혀 싸운 것도 전부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웃는다.


가끔 그렇게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 물론, 일의 연장선이기는 해도 급식실 밖의 공기는 잠깐이지만 신선했다. 날은 끈덕지고 장마전선의 영향을 대단히 받고 있는 학교 주변의 공기는 온몸을 휘감아대는 냉감 바지의 질척거림보다 습했다. 비는 주적주적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또는 쪼금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만 내리고 있었다.

급식실은 같은 담당팀으로 만나지 못하면 거의 이야기할 겨를이 없다. 그렇기에 카지노 쿠폰들이랑 처음으로 나누어 본 대화는 신선했다. 낯설어하는 내게 본인도 어색하겠지만 말을 걸어준 배려를 잘 안다. 사실, 전처리실이나 세척실에서 가끔 지나가다 만나며 나눈 대화가 어디 대화일 수 있겠는가. 아무튼 두 분의 카지노 쿠폰들 모두 따뜻했다.

호탕하게 웃는 조리장님과 급식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아이언 우먼 혜진카지노 쿠폰, 궂은일은 다하는데 욕을 많이 먹는 딱한 은숙 카지노 쿠폰, 세상 서두르는 것이 없는 진선카지노 쿠폰와 최강아들 군단을 둔 부러움의 대상 은주 카지노 쿠폰, 만능재주꾼에 유머스러운 명자카지노 쿠폰, 명자카지노 쿠폰의 단짝인 성격 아주 좋은 능력자 미현이, 사람 참 좋고 진짜 깐깐한 선미카지노 쿠폰, 사람을 길들이는 마력이 있는 세라카지노 쿠폰, 독보적인 요리솜씨에 예순의 49킬로그램 아가씨 뒤태 현주 선생님까지 이 사람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 남았다. 몇 달 밖에 안 되는데 마음에 남다니. 이 일의 트라우마가 강력한 모양이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내 인생의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


“혜성아, 가지 말아라. 응?”

현주 선생님께서 퇴근하는 나를 안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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