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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k Back of Time Apr 20. 2025

플레이아데스의 카지노 게임 (2)

단편소설

플레이아데스의 카지노 게임 (2)



카지노 게임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귓불에 달린 별 모양 귀걸이가 가늘게 흔들렸다. 뭐지? 나는 당황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로또 용지와 사인펜과 연필이 뒹구는 매대 주변에는 나와 카지노 게임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편의점 바깥쪽으로 늘어선 구매 대열에 속해 있었다. 카지노 게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배고프다고? 나한테 한 말이니? 조용히 묻자, 카지노 게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지노 게임의 마른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에 온 지 삼일이나 지났어.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어. 이제 배고파. 저기 있는 삼각김밥 먹고 싶어. 아저씨가 사줘. 카지노 게임가 가리킨 곳에는 과연 삼각김밥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무엇보다 카지노 게임의 말투가 황당했다. 외모는 중학생으로 보이는데 말투는 그보다 훨씬 어린 유치원생이었다.나를 아는 아이인가? 어쩌면 우리 아파트에 사는 이웃집 아이일지도 몰랐다. 아내는 평소 내가 이웃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힐책하곤 했다. 내 딸의 친구 또는 그들의 부모를 보고도 내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아내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이웃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이웃 불감증 환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나의 이웃 불감증은 아내의 부재로 예전에 비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이따금 모르는 사람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어느 여자는 딸과 아내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모르는 척하기도 무안하고 아는 척하기도 어색했다. 결국 점잖게 고개를 숙여 인사만 했다. 그런 다음 바쁜 일이 있다는 듯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간혹 말을 건넨 사람이 딸의 친구 가운데 누구의 부모인지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생각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카지노 게임는 초등학교 오 학년인 내 딸의 친구 같지는 않았다. 딸보다는 서너 살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지노 게임는 여전히 곁에서 물러서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카지노 게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 나를 아니? 그러자 카지노 게임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는 표정이 지었다. 그러면 이 동네 사니? 카지노 게임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문득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십 대 카지노 게임의 가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이었다. 가출 카지노 게임가 중년 남자에게 접근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카지노 게임가 조금 전 내게 건넨 말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대사와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졌다. 갈 곳 없고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며 재워달라고 접근하는 아이들. 혼자 사는 어느 중년 남자는 가출 카지노 게임 세 명과 한집에서 지내다 그들의 부모에게 고소당했다. 중년 남자는 억울하다며 변명했다. 자기는 혼자 지내는 게 외로워 '팸 멤버'를 구했을 뿐이고 아빠처럼 베푸는 역할만 했으며 성관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팸은 가족이란 뜻의 ‘패밀리’를 줄인 은어였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가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장면을 떠올린 순간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나를 아는 이웃이 나와 카지노 게임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세태 고발 프로그램을 떠올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의도를 느낄 수 없는 눈빛이었다.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로또 용지 위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 번호는 22번을 골랐다. 숫자 22가 있는 칸을 연필로 칠했다. 카지노 게임는 연필을 쥔 내 손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마치 잘 아는 사람 곁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이치곤 태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연필을 내려놓고 로또 용지를 집었다.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비켜서지 않았다. 나는 흠칫 멈췄다. 괜히 한숨이 나왔다. 나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카지노 게임에게 갈 곳이 없냐고 물었다. 카지노 게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 갈 곳 있어. 집에 가야 해. 의외의 답변이었다. 가출 카지노 게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가출 카지노 게임라고 해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것처럼 들렸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난처한 기분은 여전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카지노 게임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카지노 게임는 내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나를 채근하듯 말했다. 집에 가야 해. 그런데 너무 멀어. 고향 사람들이 날 데리러 올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려야 해. 나 배고파. 저기 저거 사줘.


지능이 모자란 아이가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로또 용지를 접어 슬그머니 외투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카지노 게임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삼각김밥 하나를 먹기 위해 이처럼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카지노 게임는 내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또 명당은 외관상 편의점이었지만, 사실은 더 이상 편의점이라고 부르기에 어려웠다. 로또를 제외한 상품 진열대의 다른 상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리 대상이 아닌 듯했고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물품들이 절반쯤 빈 곳이 많았다.


카지노 게임는 나를 따라왔다. 별말 없이 곁에 바싹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그런 카지노 게임의 모습에 나는 다시 놀랐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나를 알 만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걸음이 자꾸 빨라졌다. 나는 카지노 게임보다 서너 발 앞서 나갔다. 카지노 게임는 이내 바짝 다가와 걸었다. 내가 자기를 버리고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카지노 게임에게 조금 떨어져서 오라고 말했다. 카지노 게임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 노원역을 향해 걸었다. 도로와 인접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갓길로 들어섰다. 카지노 게임가 터벅터벅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삼십 대 중반의 여자가 정면에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나를 익히 아는 이웃일 것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나와 같은 단지에 사는 이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웃일지도 모르는 여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애썼다. 여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신경이 곤두섰다.


길바닥을 흘낏거리며 뭔가 찾는 척했다. 문득 전단지 하나가 길바닥에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전단지를 집어 들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카지노 게임가 걸음을 멈췄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전단지 상단에 있는 조야한 사진을 보았다. 커다란 머리를 지닌 이국적인 남자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남자 얼굴이 희한했다. 눈썹은 없고 검고 둥근 눈 가운데에 하얀 점이 유난히 컸다. 사진 아래에 투박한 글자체로 제법 긴 글이 인쇄되어 있었다. 삼십 대 중반의 여자는 어느새 나와 카지노 게임를 지나쳐 멀어져 갔다. 나는 호기심에 끌려 전단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상한 내용이었다. 신흥종교단체에서 만든 메시지 같았다.


지구에 사는 형제들이여. 사랑과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본인은 우주의 퀴트라 지역을 담당하는 사령관 아시타입니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동향과긴급 상황을 정찰하는스체어 우주 정거장의 책임자입니다. 우리 빛의 형제단은여러분에게 내면의 빛을 찾아주기 위해셈야제의 명령으로 이곳 지구에 파견되었습니다.여러분의 운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여러분의 정신적 갈등과 영혼의 공황이 머지않아 지구를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네 행성을 정찰하였습니다.이제 영적인 힘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고자 합니다.지구의 모든 정부와 사람들은 나의 경고를 하나의 은총으로 수용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아시타입니다.


아내와 딸이 떠난 뒤 나 혼자서 주말 저녁에 외식을 하곤 했다. 저녁상 차리기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집안이 더욱 적막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도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얼마 전 두어 번 갔던 식당이 노원역 근처에 있었다. 아담한 분식점이었다. <퓨전푸드 펭귄이란 간판도 귀엽지만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했다. 그곳의 만두는 내 입맛에 맞았다. 물론 김밥도 있었다. 삼각김밥은 없었지만 카지노 게임는 개의치 않고 야채김밥을 먹겠다고 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정말로 며칠 굶은 아이처럼 보였다.




(계속)4/27(일) 0:00시에 다음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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