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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k Back of Time Apr 13. 2025

플레이아데스의 카지노 게임 (1)

문예지 <창작촌 2014 Vol 2

플레이아데스의 카지노 게임 (1)



일 분 사이에 두 번이나 벼락을 맞은 사람에 대한 동영상을 본 날 나는 로또 복권을 사러 동네 편의점에 갔다. 세상에는 별난 운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순간에 횡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뉴스를 보았기에 로또를 사러 간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간 편의점은 로또 판매로 대박이 난 가게였다. 전국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스물두 번이나 일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편의점 입구에 찬란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로또 복권 용지를 들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일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이었다. 아내의 계산에 따르면 벼락 맞을 확률은 180만 분의 1이었다. 아내는 로또 일등 당첨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훨씬 더 작다고 했다. 그러니 로또 복권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번 서너 명 이상 일등에 당첨되는 사람이 나왔다. 지난주에는 다섯 명이었다. 일 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벼락을 두 번 잇달아 맞은 불행한 사람이 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처럼 희박한 사건을 동영상으로 잡아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서는 그처럼 낯선 일들이 항상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로또에 당첨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싶었다.


네 게임을 '자동'으로 선택하고, 마지막 게임만 내 손으로 직접 번호를 고르기 위해 망설였다. 여섯 개 숫자 가운데 다섯 개는 이미 골랐다. 1, 4, 5, 13, 24. 이 숫자들은 나와 카지노 게임와 딸의 생일을 조합한 것이었다. 카지노 게임의 생일은 1월 24일, 내 생일은 4월 5일, 딸의 생일은 5월 13일이었다. 그런데 교집합처럼 5가 겹쳤다. 남은 숫자 하나를 더 골라야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숫자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딸을 6월에 낳았다면 6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을 텐데. 신혼 시절 카지노 게임가 꽃피는 오월에 아이를 낳자고 했을 때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 당시 카지노 게임는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수학자처럼 자주 정밀한 계산을 했다.


5월보다 빠르면 춥고, 5월을 넘기면 덥지 않겠어? 문제는 5월 중 하루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야. 중간 지점인 5월 15일이 가장 좋겠다.


카지노 게임는 종이를 꺼내어, 5월 15일에 아이를 낳으려면 언제 부부관계를 해야 하는지 추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없는 짓이라고 여겼지만, 만사에 철저한 계획주의자인 카지노 게임에게 이미 익숙해졌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5월 15일에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 해야 해. 물론 하루나 이틀 정도 오차가 발생할 수는 있어.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무척 황당했다. 하지만 속마음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이며 벽시계를 보았다. 카지노 게임의 시선도 벽시계로 향했다. 카지노 게임가 진지하게 말하는 ‘내일’까지는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석 달을 참고 기다렸는데 겨우 두 시간을 더 못 참을 건 없었다. 나는 카지노 게임를 향해 빙긋 웃었다. “그러지 뭐.”


나는 카지노 게임의 계획에 따라 석 달 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고 요가와 체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유지하던 참이었다. 되도록 야근도 하지 않았다. 술과 담배, 피로에 찌든 몸에서 건강한 아이가 나올 수 없다는 게 카지노 게임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치밀한 계획과 실천 과정을 거친 뒤에 딸을 얻었다. 카지노 게임는 예정일인 5월 15일보다 이른 날짜에 아이를 출산했지만 자신이 계산했던 이틀이라는 오차 범위를 넘진 않았다.


편의점 매대에서 다시 로또 용지를 만지작거렸다. 아내가 당장 내 곁에 있다면 마지막 번호 하나쯤은 쉽게 골라 줄 수 있을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딸은 반년 전부터 호주에 머물고 있었다. 딸이 호주의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거기서 딸을 돌보고 있었다. 사실 로또 번호를 고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주말에 혼자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지겨웠다. 로이 오비슨의 온리 더 론리(Only The Lonely)라는 노래를 들어도 무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주말마다 산책을 나와 여기저기 주변을 돌아다녔다.


나는 매대 위의 로또 용지를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뭔가 의미 있는 숫자가 떠오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남은 숫자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숫자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수락산이 눈에 들어왔다. 흰 구름이 산등성이 너머로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초겨울 오후의 하늘이 제법 맑았다.


아저씨. 나, 배고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열다섯 살 정도의 앳된 카지노 게임가 곁에 있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단발머리가 단정했다. 눈망울이 제법 컸다. 카지노 게임는 두툼한 청록색 무스탕 코트를 입고 있었다. 솜털이 달린 노란색 부츠도 눈길을 끌었다. 어깨에는 검정 숄더백 하나가 걸쳐 있었다. 카지노 게임의 안색은 무척 창백했다. 핏기 없는 얼굴은 의류 매장에서 막 걸어 나온 마네킹을 닮았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계속)




2014년 문예지 [창작촌] vol2에 수록한 작품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과는 먼 곳에 청탁이 와서 깜짝 놀라고 기뻐한 기억이 납니다. 소설가 활동을 막시작할 무렵이라서 나름 끙끙대며 열심히 썼답니다.브런치에 올리기 위해 오늘 다시 꺼내어 작품을 읽어보았는데,별로 재미가 없고 결말이 싱거운 편입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무척 즐겁게 몰두한 작품입니다. 요즘 제가 너무 바쁘고하여 우선 이 작품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당시저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저의 필명을 [이수오]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 필명으로 몇 개 소설을 발표했었습니다. 그러다가몇년 후다른 어느작가님동일한 이름으로 시인과 수필가로 저보다 먼저활동하고계신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저의필명을 원래 제가 쓰던 것으로 변경하였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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