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먹었다. 개불, 산낙지, 곱창집에서 주는 생천엽, 알이 가득한 알탕... 20대, 30대 때 환장하고 먹은 것들인데 어느 때부터인가 안 먹게 되었다. 아마도 사람들을 자주 안 만나면서 이런 ‘회식’스러운 음식을 멀리 하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생각의 변화가 크다. 일단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어릴 때는 이런저런 음식을 먹어보고 싶기도 했고, 그리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과메기를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며 입에 쑤셔 넣어주면 맛있다고 끄덕였지만 솔직히 맛이 하나도 없고 비리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인 건 나에게 굳이 그걸 먹여준 그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 전반적으로 덜 익힌 음식들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을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아서. 회를 처음 먹었을 때의 쇼킹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비싸다는 돔이나 방어 이런 것들의 맛은 잘 모른다. 그저 광어나 우럭이면 된다. 그러면 옆에서 핀잔을 준다 이런 거 먹지 말고 비싼 거 먼저 먹으라고. 늘 내가 익숙한 음식에 젓가락이 먼저 가는데 그걸 옆에서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렴한 내 입맛이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은 건 잘못된 입맛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먹으면 되는데 왜 내가 먹는걸 상대방이 안 먹냐고, 혹은 비싼 음식 대신 왜 싼걸 먼저 먹냐고 핀잔을 주는 이상한 문화가 있던 것이다.
나는 원래 자연을 좋아했다. 도시보다는 시골이 좋고,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사람이 적은 것이 좋고, 고층 빌딩보다는 낮은 담과 옛스러운 건물의 정취를 더 좋아한다. 이 취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졌다. 그리고 이것이 여기서 발전된 생각일 수도 있으나 동물과 식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동식물과 내가 먹는 먹거리를 완전히 구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점점 그것이 연결되어 보이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바다에서 낚시해서 자급자족하는 예능을 본다. 자급자족 하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낚싯대에 입이 걸려 파닥파닥 죽어가는 물고기를 보는 게 점점 마음이 아프다. 저 물고기의 어생에서 들여다본다면, 이 예능을 보는 우리 같은 사람 때문에 저런 예능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저 시점에 안잡혀도 될 것이 지금 잡혀와서 죽어가는 것까지 우리가 보게 된 것 아닌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은 그래도 왠지 모를 인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다른 자급자족 예능은 인원수도 많고 야생동물들을 소탕하듯 잡아먹어 버린다. 어느 섬에 사는 원시부족이 물고기를 잡아서 구워 먹는 거랑, 방송사 예능에서 그들을 흉내 내며 쇼하면서 구워 먹는 건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도살장에 실려가는 소나 돼지 트럭을 가끔 본다. 그들과 눈을 마주칠 때, 그날 그 동물의 마음이 생각나며 하루 종일 우울하다.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레이저로 쏘는 느낌이다. 그 이후로는 빈 트럭만 봐도 마음이 안 좋다. 실으러 가는 것일까, 죽이고 오는 길일까... 그래서 그런 트럭이 앞에 있을 것 같으면 얼른 추월해 버린다. 나도 삼겹살을 좋아하는 소비자로서 마음 편하게 그들을 바라만 볼 수 없기 때문에 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겠지.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없겠지만 굳이 먹어야 하나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송아지고기, 샷스핀, 모든 종류의 생선알, 고래고기, 모든 종류의 특수부위(한 마리에서 조금만 있는 맛있다는 부분), 개구리즙 같은 건강식품이라고 동물에서 빼는 액체, 게장(산 채로 간장에 절여지는 그 과정이... ㅠㅠ) 같은 것들.
가장 흔한 재료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에겐 가장 좋다.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내가 먹는 모든 음식은 내 손으로만 준비해야 하는 법이라도 있으면 이 음식문화가 조금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일으키는 전쟁에서는 내가 가장 선봉에 선다는 규칙이 있으면 전쟁이 없을 거라고들 하듯이.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산해진미를 찾아다니며 피곤하게 살지 맙시다. 동물들도 좀 덜 죽이고 삽시다. 그리고 좀 덜 먹읍시다. 어차피 대부분의 우리는 과체중이거나 복부비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