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빛과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도 닿아있다
② 친구의 욕
D +9, 23:23
“야, 이 개새끼야. 그걸 이유라고 대?”
“뭔 욕까지 하고 난리인데?”
“네가 하는 얘기 들으면 욕 안 나오게 생겼니?”
“네 생각물어본 거잖아? 진정해.”
“진정? 니얘기를 남 얘기처럼 한다고 내가 속을 줄 알았어?”
“야! 내가 언제 내 얘기라고 했어? 넌, 항상이렇게답부터내려.”
내 생각이 들켜 당황한 나머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훈이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진짜 어이가 없네. 제수씨 빚을 줄여준다고 도박을 하겠다고? 미쳤구나. 지금 너 모습보면, 제수씨가 정신 못 차리는 너 뒷바라지하느라,조금 있던 빚마저많아진거 같은데. 왜? 돈 따면 니 무너진 자존감 회복될 거 같니?"
“야! 말이 좀 심하잖아."
"넌 그냥 도박이 시작하고 싶은 거야.현실을 감당할 수 없고, 삶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어서 합리화하는 거야. 도중아! 정신 차려!"
"이게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니? 내가 돈을 한 푼도 못벌었어도 생길 수 없는 빚이야. 매달 200만 원씩 6년을 빚져야 가능한 원금이야. 결국 그동안 이자만 갚느라 허덕였던 거고. 그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이런 사실을 6년 만에 알게 된 거야."
"아니. 도중아 착각하지 마. 너한테 중요한 건 돈 같아 보여."
"맞벌이를하면서가게가 안 피는데,양가에서 이해하겠어? 그런데 나는 늘'다 내 탓이다'라고 생각했어. 또 모두가 나를 그렇게 봤고. 그때마다 내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시어머니 앞에서는 ‘이 사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잘할 거예요’라고 하던 게 지안 엄마야. 2년 전쯤이지. 나도 가게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가계부를 써보겠다고 했는데절대 안 주더라. 그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때도 벌써 빚에 허덕이고 있던 거였어."
"다 너 추측이잖아. 물어는봤니?"
"빚이 2천만 원 있고, 혼인 사실도 있다는 걸 결혼 준비 중에 말한 사람이야.연애까지 7, 8년을숨겼던 사람이야. 지안이한테빚 없는 엄마 되기 위해서, 이제 와서밝혔어. 그런데 이유는 아직도 먼저 말하지 않아. 사실을 말하겠니?난 절대 알 수 없어. 자훈아, 2천만 원이 이렇게 될 수는 없어. 나 사기 결혼으로 이혼까지 생각했었어. 막말하지 마.”
아무한테도 말 한 적 없이 눌러놓았던 말들을 잔뜩 쏟아냈다. 자훈이한테만은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날 위로하기는커녕 화를 내고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급기야 양손을 테이블에 넓게 뻗어잡더니,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있었다. 숨을 가쁘게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입을 떼며 서서히 고개를 드는데 눈빛이 분노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근데...? 그게 뭐 어쩌라는 거야? 그건 제수씨와 니 문제잖아. 이 문제를 뚫고 헤쳐 나가야 되는데, 넌 제수씨 탓, 처가댁 탓, 세상 탓만 하고, 뭐? 네가 다 니 탓이라고 지냈다고?내가 볼 때, 넌 합리화하면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있어. 제발 너 탓이나 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전보다 더 화를 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감정이 격해졌다.
"뭘내 탓을 해야 하는데? 이게 내 탓이냐고!"
"니 문제가 뭔지 알아? 이렇게 지껄여대면서, 대화 중에 지안이가 없다는 거야. 너랑 제수씨 문제로왜? 왜? 죄 없는 지안이가 도박꾼 아빠의 딸이 돼야 하는데? 네가 제정신이니? 싸우든, 이혼을 하든 둘이 알아서 해.'지안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 단 한 번이 없어. 그런 너부터 탓하라고!”
“그만하자.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하겠니? 너무나 답답해서 말한 건데, 어떻게 넌 내 편에서 한 번도 얘기 안 해주지?”
“동정심 유발하며 지랄하지 말고, 잘 들어. 네가 든 짐들,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야. 힘들어도 절대 놓지 않아야 되는 거야. 그게 설사 죽는 날까지, 안 가벼워져도 버리는 게 아니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뭐? 도박? 이 무슨 개소리야! 그리고 네가 무엇을 버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 두렵고 무서워서 내빼는 새끼가.”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어떻게 해야 하는데? 너라면.... 흐~음, 아니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할게.”
“네가 알아서 하긴 뭘 해? 야! 이 새끼야! 마저 들어.‘어떻게 해야 하는데?’이질문은 지금 하는 게 아냐. 만약 네가 죽도록 열심히 살다가, 니 허리가 끊어지고, 근육이 다 찢어지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을 때, 그때 하는 거야. 몸뚱이 멀쩡해가지고 편하게 돈 갖고 싶어서 도박을 하려 하면서, 뭐? 빚을 줄여주기 위해 한다고?세상 힘든 짐 다 떠안은 척, 착한 척하지마. 역겨우니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말들이 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르기 시작했다.
"누구나 힘들어. 누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그래도 그들은 몸이 부서져도 또 한 발자국 나아가. 설사 앞으로 가지 못해도 뒤로 절대 안 가려고 애쓰며 살아가. 그들이라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없을것 같아? 그래도 그들은 너처럼 등 돌리고 내빼지 않아. 그래서 그들의 등에서 빛이 나. 넌 지안이 눈 보면 부끄럽지도 않냐? 아빠라는 새끼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이안 보이는데 뭘 어쩌라는 거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소주를 갑자기 유리컵에 따랐다. 뭔가 큰 결정을 내린 사람 마냥 한숨에 마시고 말을 했다.
“작작 좀 해라. 넌 늘 생각만 그럴싸하지 행동은 쥐뿔도 안 해. 넌 지금도 그래 보여. 미래? 안 보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넌 생각으로 미래를 만드니? 도박 쪽은 잘 보이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깊은 한숨을 쉬고, 체념한 듯 말을 이어갔다.
"후~우. 사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서 너한테 힘 좀 받고 싶었어. 근데 이렇게 약해빠진 너한테 무슨 힘을 받을 수 있겠냐?그렇게 생각한 내가 병신이지.”
이 말에나는결국더 이상 찔리기 싫었다. 더는 듣기 싫어서참을 수가 없었다.
“아~씨발! 그만해! 제발 좀 그만하라고!.... 자훈아,그렇게 강한놈이 힘들 게 있어? 넌 나랑 다르게 강한 놈이니까 알아서 하면 되잖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깊은 안타까움, 실망감 그리고 나를 향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동안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깊은 한 숨을 내 쉬고는 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후~~~ 우.도중아, 너 진짜 사람 진빠지게 한다. 그래, 알았다.제발네 짐을다른 이에게 떠넘기려 하지 마. 그거 너 짐이야. 나 간다.”
나는 그렇게 나가는 자훈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훈이가 그렇게 먼저 갔고, 난 그의 남겨진 술잔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가 나에게 쏟아낸욕들이 술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욕들이 빛이 되어 술잔에 비치는 듯했다. 그 날카로웠던 욕에 진심 어린빛이 한 방울 담긴 듯했다.
그렇게 이 새벽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맞이했다.
D +10, 00:00
새벽하늘도오래 쳐다보다 보면 안 보이던 빛이 보일 때가 있는데, 내 삶은 아무리 생각해도 빛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저 하늘엔 어두운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빛이 분명히 공존하고 있다.
하루하루 나를 바라보던 지안이의 푸른 눈빛은 자연이 숨 쉬고 있는 이 지구의 빛이자, 이 땅에 굳세게 서라는 존재의빛이었다.
일과 육아에 모든 힘을 쥐어짜던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너무나도 소홀했던 나에게 지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남몰래 6년을 고독하게 살았을 아내의 등빛. 그건 힘겹게 애쓰며 살아가는 이들의 등을 바라보고 따라가라는 안내의 빛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던 자훈이의 욕빛은 부정적인 욕 속에도 빛이 있다는 걸, 이미 어두워진 내 마음에도 빛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빛이 욕을 뚫고 나오듯, 나도온라인 카지노 게임을뚫고힘내라는 간절한 응원과 희망의 빛이었다.
그래. 이 빛들이 내 인생에 떠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다. 그러나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이런나날들이 지긋지긋하다. 무엇 하나 앞으로 뚫고 나가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다.
눈을 감고 뜨는 사이의 경계
듣기 싫은 거친 욕과 그걸 뚫고 나온 진심 사이의경계
눈에보이는 누군가의 등과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인생의 경계
마치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밝음의 경계인 새벽을 닮아있다.
새벽은 빛과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도 닿아있었다. 그 방향의 한 끗 차이를 모르겠다. 난 한 동안 정처 없이 걸었다. 걷잡을수 없이 혼란스러운생각들이술 취한 내 걸음처럼 비틀거린다. 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이리저리 방황하며 걷고 있다.
'합리화하는 놈! 약해빠진 놈! 생각만 하는 놈!... 합리화하는 놈! 약해빠진 놈! 생각만 하는 놈!...'
자훈이가 했던 말들이 귓가를 뱅뱅 돌고 돈다.
'도중아! 정신 차려!...... 야! 정신 차리라고! 야! 도중아! 피하세요!'
어지럽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아, 대체 내가 뭘 피해야 하는 건데? 도박? 내 현실?'
순간, 빛이 번쩍였고, 고개를 돌렸다.
'빠아아아앙!'
경적음에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아저씨~!! 피하세요~!!!"
'끼이이이익!'
살고 싶다는 빛과 죽고 싶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실질적으로 나에게 닿아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