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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한 Apr 08. 2025

한번이면 중요카지노 게임 추천 않다
einmalist keinmal

북 에세이 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한번이면 중요카지노 게임 추천 않다(einmalist keinmal )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카지노 게임 추천 실존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잉태되었다. 쿤데라 개인이 겪은 조국의 처참한 시대적 경험에서 야기된 실존적 고뇌를 소설의 등장인물 들을 통해 매우 난해하지만 밀도 있게 풀어낸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체코의 혼란스런 정치,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체코인들은 ‘민주화의 봄’을 좌절시키기 위해소련의 탱크가 프라하로 진격해 들어오는 것을 목도한다. 곧 체코는 소련에 의해 물리적 정신적으로 지배당한다. 그때까지 민주화의 기대로 들떠있던 이들은 극심한 혼란과 좌절을 겪게 된다. 모든 국가 권력은 소련 정부의 손에 넘어가며 그들에 의해 살벌한 공포정치가 자행된다. 쿤데라 자신 또한 그 시절을 생생히 경험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는 당시의 비카지노 게임 추천적 사회 속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적 삶을 살아내야 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 존재로서의 고민과 성찰을 해야 했을 것이다. 조국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둘은 분리 될 수 있는 것인가? 개인은 무거운 가치를 지향해야 하나? 반대로 실낱처럼 의미 없는 가벼운 삶은 무익한가? 카지노 게임 추천은 육체적 본능보다 영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하나? 그렇다면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카지노 게임 추천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산다는 것, 삶은 무엇인가?


사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삶은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잔인하고 아름다워도 삶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것이 된다. 한 낱 그림자와 같다. (이 지점이 플라톤 선생이 이데아의 존재를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철학이 내세를 중시하는 기독교 등 여타 종교를 탄생시킨 근원이라 할 말은 많지만 차치하자..) 결국 카지노 게임 추천은 삶의 찬란함이나 허무함이라는 가치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떨까? 우리의 삶이 영원하면 그것이 좀 더 무게감있고 더 의미있는 것이 될까? 사실 유한한 카지노 게임 추천의 궁극적 욕망, 즉 카지노 게임 추천 욕망의 끝판 왕은 언제나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이다. 하지만 쿤데라는영원한 삶이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더 유리한지 의문을 던진다. 영원회귀의 삶을 산다면 카지노 게임 추천은 끝없이 반복되는 각각 삶 마다 영혼 하나하나의 무게를 모두 짊어져야 한다. 게다가 우리의 삶은 덧없음과 가벼움의 영원성이라는 묵직한 공간에 이중으로 갇힌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한 차례의 삶에서 가벼움의 무게만을 겨우 버텨낼 정도의 연약한 존재일지 모른다. 사실 종잇장 같이 가벼운 한차례의 삶조차도 카지노 게임 추천에겐 버겁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움 짐(das schwerste Gewicht)이라고 말 했던 것이다.영원한 회귀가 짐이라면,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p.12


한 번 뿐인 삶을 사는 카지노 게임 추천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것일까?

어쩌면, 이 의문의 해답을 위해 쿤데라는 니체의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삶을 끌어와 한번 뿐인 우리의 삶과 대질한 것 인지도 모른다. 그의 심중을 추측해보면 영원회귀가 우리 삶의 대안이 되질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쿤데라가 니체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 중간 중간 쿤데라는 니체의 사상에 심취한 듯 보이는 지점들이 있으니 말이다. 단지 삶이 한번이든 여러 번이든 영원하든 그것은 별 의미 없다. 삶이 한번이면 가볍고 의미 없는 것이고 영원하면 무겁고 의미 있다고 볼 수 도없다는 것이다. 즉, 삶의 진중함, 묵직함을 긍정적으로, 가벼운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삶이 무한성을 얻는다 해도 반복되는 삶의 무거움으로 인해 한번 사는 삶 ,리허설이 없이 끝나는 삶의 가벼움이 오히려 더 돋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삶이 한번이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einmalist keinmal). 하지만 그러하기에 삶이 더 없이 소중하고 찬란할 지도...




2. 바위 굴리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시지포스의 바위 굴리기 형벌을 떠올린다. 시지포스의 극악하고 고통스런 형벌을 카지노 게임 추천의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 어릴 적 『시지포스의 신화』를 접했을 때 장난끼 어린 의문이 들곤 했다. 그냥 시지포스는 바위를 안 굴리면 안 되나? 그 무거운 걸 왜 매 번 산 위로 가져가지? 바위를 팽개치고 도망가지... 어린 마음에 매번 반복되는 시지포스의 형벌은 생각만으로도 매우 갑갑하고 답이 없어보였다.

바위 굴리기 형벌은 시시포스가 삶의 유한성, 즉 죽음에 저항했기에 내려진 것이다. 그는 신에 저항하며 더 이상 카지노 게임 추천이 죽을 필요가 없도록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다. 그 후 죽음의 신이 풀려나 시지포스 자신이 죽게 되었을 때, 시지포스는 속임수를 써서 지하세계로부터 탈출한다. 하지만 그는 곧 붙잡힌다. 신들은 그에게 영원한 형벌을 부과한다. 그것이 바위굴리기다. 그는 매일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그것이 산꼭대기에 닿자마자, 곧 바위는 아래로 굴러간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원하는 영생의 삶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그는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일을 매일 똑같이 반복한다.


어릴 땐 시지포스의 바위 굴리기 삶은 헤어나 올 수 없는 미로 같았다.영원히 고통스럽게 살기보다 그 삶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나아 보였다.

하지만현실을 사는 나의 삶이 어째 시지포스의 삶과 닮아 보인다고 하면 허풍일까?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바위를 이고 지고 언덕을 반복적으로 올라가서 굴리던 시지포스의 삶과 그닥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느낄 때 마다 소름이 돋는다. 이러한 각성은 시지포스가 왜 바위를 팽개치고 도망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한다.일상의 반복과 무의미한 삶, 가볍던 무겁던지 간에 카지노 게임 추천이 견뎌야하는 삶을 극적으로 은유한 신화였다. 그것이 시지포스의 신화이자, 곧 우리의 신화인 것이다.

그렇다. 바위 굴리기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한다는 의미이다.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죽음, 유한성, 카지노 게임 추천의 좌절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시지포스는 형벌에 처해져 수동적으로 벌 받는 죄인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용감하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형벌마져 충만한 삶으로 받아들였다. 비극과 고통조차도 온전히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 안엔 희망도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삶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의미가 있던 의미가 없던, 가볍던 무겁던 간에 그 삶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어쩌면 니체 선생이 말하는 위버맨쉬(초인)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025년을 살아내는 나 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는 초인이 될 자격이 있다. 정신승리라고? 칭찬 좀 하고 살자, 좀!!!!!


참고 문헌: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by 밀란쿤데라), 역,이재룡, 민음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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