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재고 관리의 일인자
실물을 보고 물건을 사는 편이다. 쿠팡이나 마켓컬리를 이용할 때도 있지만 즐겨하지 않는다. 다 나를 못 믿는 탓이다. 아침으로 먹으려고 맛있어 보이는 식빵을 주문해 놓았는데 배송된 빵을 보고 놀랐다. 너무 작아서. 나 혼자만 먹으려고 산 두유 요거트는 생각보다 커서 혼자 먹느라 힘들었다. 대체로는 너무 작은 걸 사놓고 민망해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이때를 놓칠세라 나를 놀린다.
"또 숫자 안 보고 샀지?"
뜨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랑 둘이 마트에 가면,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내가 담기도 하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담기도 하면서 사이좋게 장을 본다. 여기서도 나는 숫자를 무시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손님, 이거 원 플러스 원이에요. 하나 더 가져오세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철저하게 다 보고 물건을 고르기 때문에
"그걸 못 봤어?"
하고 나를 탓한다. 그럼 내가 잽싸게 지하에서 그 물건을 가져오는데 때로는 낭패를 겪을 때도 있다. 뭘 샀었는지 잘 모르겠어서다. 대체로는 계산대에서 흘깃 본 그 상표를 계속 되뇌면서 간다. 그런데 한 번은 스파게티면의 용량이 몇 그램짜리였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다. 결국 1kg짜리와 500g짜리 두 개를 가지고 와서 하나를 계산대에 두었다. 그 후로는 사진으로 찍어놓고 가서 가져온다. 참 피곤하다. 이러니 마트 가는 일을 점점 더 안 좋아하게 된다.
반면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점점 더 살림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마트 세제 코너 앞에서 망설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물었다.
"왜? 사야 돼?"
"아니, 있는데 1+1이라 사둬야 되나 하고."
알뜰해서 기특하나 무거우니 사지 말자고 내가 정해주었다.
나는 쌀이 떨어졌다거나 계란을 사야 한다거나 이런 걸 챙기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세탁 세제, 물티슈, 키친타월, 물걸레 청소포 등이 집에 얼마나 남았나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속도 모르는 채로 고양이 모래 바꿔야 한다고 갑작스럽게 주장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그런다.
"지금 있는 모래로는 모자라."
양에 대한 관념이 내게는 없나 보다, 없....다. 이쯤 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재고관리 담당자라 칭해도 되겠다. 집으로 배달되는 모든 물건에 대해서 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재고를 파악해 주문한다. 캡슐커피에서 시작해 고양이 건식사료, 습식사료, 모래도 떨어질세라 간간이 주문한다. 작년 초 같이 피부과에서 사마귀 및 기미를 제거한 후로 화장품도 같은 걸 쓰게 되면서 기초화장품과 선크림마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다 주문해 준다. 나는 뭐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런 건 모르는 채로 배달되는 물건들을 이용한다.
이게 다 내가 숫자에 약한 탓이다. 물건의 수라든가 크기라든가 부피, 용량 등이 내 눈에는 안 들어온다. 학교 선생님들과 종종 하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일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편한 일만 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은 자꾸 힘든 일만 한다는.…… 갑자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미안해지네. 그런데 물건이 떨어질 걸 예상하고 미리 주문하는 일도 내게는 너무 먼 일이고, 어떤 물건을 얼마만큼 사야 하는지도 내게는 어렵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수에 강하고, 파워 J로서 확실한 계획형 인간이다. 반면에 나는 숫자는 무섭고, J의 가면을 쓰고 있으나 속으로는 P성향이 강한, 문학 안에서 사는 사람인 걸 어떡하나.
이번 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아름다움'은 살림꾼 안사람(안사람, 바깥사람, 집사람 웃기지 않습니까? 집안일하는 사람이라면 다 안사람, 집사람 아니겠어요?)에 대해 쓰겠다고 선언했더니 당사자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되겠어? 쓰지 마?"
"아니, 아름다움이라고 할 게, 그런 것밖에 없나 하고..."
목소리가 작아진다. 나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뭐, 외모에 대해 쓸까?"
우리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잘생겼다. 그러나 내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아름다움이란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하는 그의 능력이다. 숫자를 꼼꼼히 보고 크기나 용량을 인지하는 일, 필요한 수량만큼 대비하는 일. 이런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런 걸 잘 해내는 당신, 살림꾼이라 칭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랑 살아서 참 좋다. 시간 관리도 해주시고, 재고 관리도 해주시고. 노화 연구하는 분으로서 이제 내 노화 관리만 해주면 되는데. 나는 그냥 이런 글이나 쓰면서 찬양하고 고마워할게. 가스라이팅 아닙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보다 내가 잘하는 게 있다면 관찰력? 아마 온라인 카지노 게임 눈에는 안 보일 것이다. 저어기 비행기 하나. 식물에 난 새 잎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못 본다. 그러니까 숫자를 제외한 다른 것에 대한 관찰력은 내가 더 낫다. 그러니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 우린 쭉 이렇게 다르게 살자. 나는 재고 관리의 일인자 덕분에 편하게 사는데, 내 능력이 별로 유용해 보이지는 않는다. 원래 아름다움이란 그런 거 아니겠어? 이렇게 아름다움의 잣대를 멋대로 바꾼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는 유용한 아름다움을, 내 경우에는 반대로.
앗, 그런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혹시 저 그림을 보고 나뭇잎 개수를 대략적으로 알아맞힌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응? 그런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