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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r 16. 2025

카지노 쿠폰를 꿈꾸게 하는 남자

카지노 쿠폰에서 글 쓰는 삶이라면

2007년 신혼 여행지는 카지노 쿠폰였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축가로 듣고 떠나는 가을의 카지노 쿠폰라니 생각만 해도 설렜다. 당연하게도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갔다. 사실 카지노 쿠폰는 온통 내가 걷고 싶고 닿고 싶은 곳 천지였다. 남편은 별다른 취향이랄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 무난함 덕분에 연애 내내 어딜 가자, 뭘 하자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우리가 닿은 곳은 미술관으로는 오르세, 오랑주리, 퐁퓌두였고 성당에는 노트르담 대성당, 생트 샤펠, 생제르맹 데프레에 있는 생 쉴피스도 있었다. 소설 속 공간 -<다빈치 코드 아시죠?-이니까. 5박 7일짜리 신혼여행을 알차게 다녔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늘어선 센 강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다. 생트 샤펠 성당의 보석 같은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나오는데 건물 바깥에 방명록이 눈에 띄었다. 남편이 쓴 문장은 이렇다.

“10년 뒤에 또 오자.”

나는 눈을 흘기며 정말이지? 그 약속 지키나 본다 등등을 신나서 쏟아냈다. 그런데 남편이 그 약속을 지켜낼 줄이야!

결혼 10주년인 2017년, 해외에 기술연구를 가겠다던 남편의 목적지가 카지노 쿠폰로 정해진 것이다. 당연하게 영어권 국가를 생각해 왔고 미국보다는 유럽이 좋다고 생각하던 우리 앞에 영국이 날아가고 프랑스 어드메도 아닌, 카지노 쿠폰가 찾아왔다.


“Bonjour, Paris!”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 살기도 아닌 일 년의 카지노 쿠폰가 펼쳐졌다. -남편의 아름다움, 이쯤 되면 벌써 끝난 거 아닌가요?- 카지노 쿠폰 6 대학에서 연구하기로 한 남편 덕분에 우리 네 식구는 카지노 쿠폰 13구에 살 곳을 찾고,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10살, 7살인 아들들은 처음 듣는 언어와 다양성이 가득한 학교에서 혼란을 겪었고, 남편도 그 나름대로 새로운 기관에서 지내느라고 힘들었을 거다. 다만 나는 매일 볼 수 있는 카지노 쿠폰의 풍경과 개성 가득한 사람들, 매혹 넘치는 상점들에 푹 빠졌다. 식구들 먹이고 기를 살리고 하느라 애쓴 점도 많았지만 나는 나대로 일 년을 잘 살아내고 싶어서 발발거렸다. 펑펑 나가는 집세와 넉넉지 않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어학원엘 다녀보겠다고 아이들이 학교 간 오전엔 두 시간씩 불어를 배웠다. 카지노 쿠폰에서 사는 한국인 마담들과 교류했고, 꽃 수업도 들었고, 아이쇼핑도 실컷 했다. 난생처음 나 홀로 2박 3일 여행도 다녀왔다. 이 모든 게 남편의 너그러운 마음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족에게는 우리 넷이 똘똘 뭉칠 수 있는 때였고, 프랑스 안에서 또는 가까운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이슬란드 같은 북유럽엘 못 가본 점이었고, 더더욱 아쉬운 것은 우리 두 아들에게 이 일 년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프랑스에서 학교 다닌 게 지옥 같았다고 했으며, 첫째가 등교한 첫날 저녁, 침대 위에 엎드려 소리 없이 울었던 걸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형제는 이 시기에 다툼 없이 다정했고 서로를 위했으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많이 웃었다. 그리고 카지노 쿠폰는 종종 우리의 대화 소재가 된다. 특히 남편은 또 십 년 후에 카지노 쿠폰에 가자고 해왔다. 이제 곧 그 2027년이 온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설레고 들뜨고 싶은데 가정 경제 상황이 발목을 잡는다. 남편의 아름다움이 퇴색될 참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운명 공동체로서 남편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을 나도 나눠지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그러다 보면 마음 넓은 남편이 ‘당신만이라도 카지노 쿠폰에 다녀와‘ 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고양이도 있으니 누구는 고양이를 돌봐야 한다.


카지노 쿠폰로 떠날 때 내가 챙긴 것은 핸드폰 거치대와 무선 키보드 세트였다. 브런치 작가 신청도 그때 해두었다. 카지노 쿠폰에 가면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떠났더랬다. 작가 신청은 바로 되지 않았고, 신청이 되었을 때엔 카지노 쿠폰 생활의 한시라도 놓칠세라 글을 쓸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일 년은 나를 사유하며 걷도록 했다. 카지노 쿠폰의 골목을 일없이 걷는 내내, 나는 누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직업적인 정체성도 없고 그저 소비만 하는 내가 싫었으며 내 마음에 드는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 사유 덕분일까. 카지노 쿠폰에서 돌아와서는 읽기만 하던 삶에서 쓰기도 하는 삶을 향해 나아갔다.

남편을 만나서 가장 고마운 점은 나를 나로 살게 한다는 점이다. 신혼여행 때에도 내 가고 싶은 데를 다녔고, 하고 싶은 일은 -큰돈이 들지 않는 한- 다 하게 해 준다. 남편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그의 너른 마음 덕분이다.

2027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프랑스에서의 한때를 말하곤 한다.

"노후를 프랑스에서 보내면 어떨까?"

"그건 힘들더라도 애들 크면 방학마다 지내보자."

"오래 머무르다 오자."

그럼 나는 또 꿈꾸는 것이다. 카지노 쿠폰나 프랑스 남부의 한가로운 골목과 강가를 거닐고 카페나 집에서 글을 쓰는 생활을. 프랑스어 공부가 하고 싶어지고 머리가 히끗해진 남편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언젠가는 추리소설 같은 걸 써보고 싶다 말하는 남편, 우리 같이 카지노 쿠폰에 가서 집필 생활을 해보자. 그게 딱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야. 나를 나로 살게 하는 남편. 카지노 쿠폰를 꿈꾸게 하는 이 남자랑 더 살아봐야 할 이유다.

카지노 쿠폰2018년 3월의 프티 팔레, 이런 사진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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