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했던 법률상담원은
채권채무, 상속, 친자소송 등
각종 법률상담뿐만 아니라,
가정법원에서
이혼 조정 단계를 거치고 있는 부부들이
이혼 결정 전,
정해진 횟수의 상담을 받는 곳이었다.
남편 따로, 아내 따로,
때로는 같이 상담을 받았고
회복의 여지가 있는 부부들은
따로 부부캠프도 진행해
집단상담, 사이코드라마 등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고시를 준비할 때도,
마치 내가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 마냥,
"난 고시 패스하면
가정법원 판사가 되어서
이혼 안 시키는 판사가 될 거야!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상처 주는 부모들을 혼내줄 거야!"
라는...
사심 가득하고
치기 어린 의협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일이
나의 이런 사명감(이라 믿었던 것)을
충족시켜 줄 거라
아주 호기롭게 생각했던 것 같다.
보수는 적지만,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며
스스로를 얼마나 추어올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난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 숭고한 일을 하기에,
내가 얼마나 유약하고 빈 껍데기였는지...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그릇이 좁았는지...
내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가 얼마나 바닥이었는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법률상담을 오셨다가,
이유도 없이 방에 처박혀 몇 년째 나오지 않는
아들의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
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러 갔더니,
아내가 결혼 전,
다른 남자와 혼인 신고를 한 이력이 있었고,
혼인 종료 후 300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태어난 무료 카지노 게임라
법적으로는
전 남편이 무료 카지노 게임의 아빠가 될 수밖에 없다는,
기가 막힌 사연을 들고 온 젊은 남자.
부모도 없이 동네에서 빌어먹던 무료 카지노 게임를 입양해,
남편도 없이 그 아들 하나 의지하면서
대학까지 보내고 장가보내 놨더니,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주소도 알리지 않은 채 이사 갔다며,
법적으로 그 아들이 있어
본인이 정부 지원금도 못 받는다고
원통해하는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
성폭력에 가까운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내가 찾아와
이혼시켜 달라고 애원하고,
부부 사이에 그게 무슨 죄가 되냐며
오히려 우리에게 가정파탄자들이라고
남편은 소리 지르고...
젊을 때는 두 집 살림을 하며
가슴에 대못을 박고,
돈 떨어지니 집에 들어와 살림을 부수더니,
자기 자식 잘 키워준 조강지처에게
손찌검을 밥 먹듯 하는 할아버지와
이혼하겠다고 찾아온 할머니,
그리고 절대 이혼은 못해주겠다는
막무가내 할아버지까지...
세상의 혹독함,
현실의 잔인함,
악한 인간 본성의 밑바닥,
인간 이기심의 향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난 하루하루
나 스스로가 소진되어 감을 느꼈다.
스스로를 지킬 껍데기도 없는 상태로,
포탄이 난무하는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하루하루 내 몸을 통과한
총알들의 자리를
두 손으로 겨우 막고 서 있었다.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내게 자기 보따리를 내놓으라니,
정말이지 따라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번은
내 앞에서 폭력 남편 이야기를 하다가
과호흡으로 쓰러진 아내를 보며,
아무런 조치도 못 하고
같이 과호흡이 와서
눈물 콧물 쏟으며 주저앉은 적도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4년제 대학 나와서
번듯한 직장 하나
못 구했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하루하루 겨우 버텼다.
꾸역꾸역
악으로
깡으로
버. 텼. 다.
그러다, 마주했다.
기억 저 편에
묻어두었던
어린 날의 기억.
그 기억의 조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