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아니, 앞쪽의 땅만 보고 걸었다.
곁눈질로 옆을 보면,
내 안에 무언가가 새어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내겐 그럴 찰나의 시간조차 없다는 듯,
그렇게 잰걸음으로 종종 거리며 다녔다.
학교가 신촌이었는데,
지금도 신촌을 잘 모른다.
항상 가던 길로만 다녔고,
친구들과 밤새 논 적이 없으니
골목들에 즐비한 맛집, 술집들을 알 리 만무했다.
오죽하면
잘 노는 내 친구가,
"야, 학교가 신촌이 아닌 내가,
너보다 여길 더 많이 안다!!" 하고 면박을 줬으며,
교회 동생이 신촌에 왔다며
맛집 추천을 해달라는데,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어서
멋쩍게 웃었겠는가.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앞쪽 땅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수업을 들으러
백양로를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바람은 살짝 차가운 듯했지만,
등 뒤에 내리쬐는 햇살이 참 따스했던 날.
그래서 그랬나..
그날따라 백양로에 사람이 많았다.
늘 가던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살짝 피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순간
가슴이 찡.
머리가 멍.
눈앞이 흐려졌다.
언제 이렇게 벚꽃이 피었지.
목련은벌써 다 졌네.
우리 학교 본관에 담쟁이가 저렇게 많았었나.
나만 흑백이고,
내 주변은 팔레트 위 색색의 물감이다.
왜 나는 몰랐을까.
다들 저렇게 봄을 만끽하고 있는데...
그 시절
백양로 오른쪽 갈랫길 초입에
우두커니 서서
시린 가슴을 꾹꾹 누르던 내가
아직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