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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pr 28. 2025

카지노 쿠폰

모두 오늘부로 카지노 쿠폰이다

딸의 초등학교 카지노 쿠폰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지노 쿠폰에 가기 위해 병원에서 처음 잡아줬던 수술 날짜도 미뤘다. 얼마 전 졸업 축하 영상을 찍던 날 가족들과 한참을 웃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니 무언가 나를 슬프게 할 일이 생길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상하게 어린 시절부터 행복한 일이 생기면, 언젠가 이만큼 슬픈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왜 생기는지 모르게 늘 그랬다. 선물을 받거나 축하를 받으면, 언젠가 이걸 그대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편히 즐거워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마음이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때마다 내가 울면 엄마는 곧 이제 웃을 일이 있을 거라고 했었다. 또 내가 웃으면 울 일이 있을 거라고도 했다. 생일날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에 가서 자랑하면, 그게 다 빚인데 언제 갚을 거냐고도 했다. 엄마의 그런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엄마에게 들은 이 이야기가 나를 실컷 웃는 것도, 기쁜 마음을 마냥 즐기게도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웃으면 앞으로도 웃을 일이 많을 거라고 말해줬다.


학교는 이제 교과서 진도가 끝나가는 학기말이 되었다. 내가 들어가는 수업 시간에 학기말을 맞아 과자 파티가 있었는데, 내 옆자리 아이가 비스킷을 세 개 주며 먹어보라고 하길래 마스크를 벗고 과자를 먹었다. 그리고 그 이틀 후 학교에 갔더니 글쎄 그 반에 코로나에 걸린 학생이 다섯 명이나 된다고 한다. 난 아직까지 아무 증상이 없다. 겁이 벌컥 났다. 이제 곧 딸아이의 카지노 쿠폰이고, 카지노 쿠폰이 끝나면 난 수술도 해야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던 몸이 갑자기 좀 아픈 것 같다. 보건실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잠깐의 안도도 잠시, 퇴근 후 남편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래 맘 편히 병원에 가서 음성 판정받고, 카지노 쿠폰도 가고 수술도 해야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갑자기 양성이라고 한다. 의사 선생님께 오전에 검사했을 때 분명히 음성이었다고 했더니, 오전까지는 잠복 기였을 수도 있다고 한다.


카지노 쿠폰에 수술, 근무와 도서관 자원봉사 등 하고 있는 일들, 해야 하는 일들을 어쩌면 좋을까 마음이 답답하다. 딸아이가 카지노 쿠폰에 엄마와 같이 노란색 프리지어 꽃다발을 안고 함께 사진 찍을 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눈물이 흐른다. 일단은 꽃집에 전화를 걸어 딸아이에게 줄 꽃다발을 주문했다. 병원에도 전화를 걸어 상태를 얘기하고, 수술 날짜 조정을 요청했다. 학교와 도서관에도 순서대로 전화를 하고 나니 빨강머리 앤에 나왔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 하는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괜히 빨강머리 앤이 미워진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은 마스크를 쓰고 안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 엉엉 운다. 미안하단 소리만 연거푸 하면서 딸아이를 달래 보려 했지만 쉽사리 울음이 멈추질 않는다.


다행히도 가족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나만 카지노 쿠폰에 못 가는 거다. 엄마 대신에 이모가 갈 거고, 사촌 언니들도 축하해 주러 갈 거라며 딸아이를 계속 달랜다. 프리지어 꽃다발은 아들에게 들고 가달라고 부탁하며, 나는 며칠 째 혼자 안방에 머물고 있다.


딸아이의 카지노 쿠폰 날, 아들이 갑자기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카지노 쿠폰이 끝날 때까지 동생이 엄마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그러면 엄마도 카지노 쿠폰에 참석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딸아이가 단상으로 올라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니 또 눈물이 난다. 어쩌면 앞으로 난 아이들의 옆에 있지 못하고, 이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워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지랄 맞은 생각이 들어 한참을 울었다. 웃을 일이 있으면 그만큼 울 일도 있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나 많이 웃었나요. 내 남은 날들에는 이제 울 일이 더 많은 건가요? 아니 지금껏 실컷 웃었으니 웃을 일이 더 많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과일도 좋은 것은 남겨두고 제일 안 좋은 것부터 먹었던 내 성격. 밥도 새 밥을 지어 놓고는 남아 있었던 밥부터 먹고, 좋은 옷은 최대한 아껴가며 입고, 새 노트가 쓰고 싶어도 있던 노트를 다 쓸 때까지 남겨 뒀던 것.

아이들이 안아 달라고 할 때마다 ‘이것만 다 하고~’ 하며 기다리게 했던 것.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나중에 더 좋은 걸로 갚아주겠다고 마음만 먹었던 것. 이 모든 것을 이제 졸업시켜야겠다. 내 안 좋은 성격과 기억, 버릇, 징크스 모두 오늘부로 카지노 쿠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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