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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꿈샘 Mar 14. 2025

04 온라인 카지노 게임 분다, 가라-한강/문학과지성사

삶과 죽음의 이중주


이 책을 읽으니 제목이 비슷해서인지 자꾸만 이소라의 노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분다'가 생각이 난다.

노래를 듣다 보니 곡이 풍기는 분위기와 가사들이 마치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툭 튀어나온 듯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의 글과 이소라의 노래는 스산한 가을, 매서운 겨울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서로 결이 닮았다.

어디선가 소설 속 정희가 인주를 추억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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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분다, 가라는 2007년 가을부터 일 년 반 동안 '문학과사회' 계간지에 연재하다가 처음부터 새로 고쳐서 완성하기까지 무려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 만큼 서사가 탄탄하고 한강 작가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가 엿보이는 책이다.

중간중간 한강 작가의 탐미적인 문장들에 현혹되어 저절로 밑줄을 긋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도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정상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알코올중독자인 어머니, 아버지의 부재, 이혼, 자살, 죽음, 상실, 병, 아픈 부양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상황, 가난, 불안한 남녀 관계 등 이전에 읽었던 한강 작가의 다른 소설 <여수의 사랑 속에서 만났던 인물들이 그대로 재현된다.






이 책은 죽음과 어울리지 않았던 친구 인주의 죽음을 파헤쳐 나가는 정희의 이야기다.

인주와 정희는 영혼의 단짝이며, 우정과 사랑 어느 중간 지점에 있는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정희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인주와,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삼촌 동주를 회상하며 극의 중심을 이끌어 나간다.



동주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어머니와 동선(인주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학창 시절 인주의 집에 정희가 초대받아 가게 되는데 별과 우주, 천체 등에 관심이 많고 먹그림을 그리는 동주 삼촌에게 매료되면서 그에게 그림을 배우며 사랑도 키워나간다.

하지만 지병이 있었던 삼촌은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출혈로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영향 때문일까. 그 후 정희는 동주를 닮은 K를 만나지만 아이를 세 번 지우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굴곡진 삶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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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는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고 촉망받는 화가였던 인주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급히 달려갔지만 결국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다.



내가 그 일을 할 겁니다.

서인주라는 이름을 불멸하게 할 겁니다.

서인주가 가진 건 단순한 미술적 재능만이 아니었습니다.

신화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그 여자는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 아름다움, 압도하는 그림, 불행한 개인사, 자동차 자살이라는극적인 최후까지......

그 여자를 신화로 만들 겁니다. 그걸 위해 내 전 재산을 바쳤습니다.

재산 이상의 것을 바쳤습니다. 앞으로도 바칠 겁니다.

-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분다, 가라 / 136p. 강석원의 말 -


정희는 인주의 죽음을 자살이었다고 말하며 그녀의 삶을 신비롭고 극적으로 포장해 평전을 출간하려는 인주의 연인 강석원에 반감을 갖게 되는데, 인주의 과거를 추적하며 자살을 둘러싼 죽음의 진실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구조는 마치 미스터리 장르물 같기도 하다.



이해하기 위해 나는 거기 서 있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할 때 나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그 대상을 보고, 들여다보고, 또 본다.

대체 이것들은 뭘 의미하는 건가.

이 작업들에 바쳐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일 년은.

마지막이 되어버린 일 년은.

- 온라인 카지노 게임 분다, 가라 / 30p. 정희의 말 -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는 과정에서 인주의 그림을 전시했던 화랑과 갤러리의 소장, 미술학원 원장, 조각가 김영신 등을 만나며 인주의 행적을 좇게 된다.

그녀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새로운 면면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면서 정희는 이전에 알았던 인주에게도 달의 뒷면과 같이 다른 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달의 뒷면은 누구에게도, 당신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피 흘리는 곳, 아무는 곳,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이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인주는 이런 사람이었다.

- 차돌같이 야무진 사람

- 살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쳤던 사람

- 자신의 몸을 그득 채운 뒤 흘러넘친 빛을 누구에게든 흔쾌히 내밀었던 사람

- 사소한 일에 큰소리로 오래 웃었던 사람

- 선선히 타인을 받아들인 사람

-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여러 겹의 침착함과 강인함을 몸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지니고 다니는 사람



이런 인주가 자살을 했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상담소 소장 류인섭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그는 알코올 중독과 정신 분열 증세를 나타낸 끝에 생을 마감한 인주의 어머니 이동선이 대학 시절 만나 잠깐 동안 사랑했던 남자였다.

류인섭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액자 소설 같은 류인섭과 이동선의 이야기는 인주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데 큰 단서가 된다.




<류인섭&이동선의 이야기


류인섭과 이동선은 대학 시절 진수라는 고등학생 과외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이였는데 그들의 관계는 이동선이 레지던트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술에 취한 채 차를 몰고 인섭, 동선, 진수는 미시령 고개를 다녀오다가 동선의 약혼자인 레지던트가
근무하던 병원에 그녀를 내려주기 위해 왔는데 진수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레지던트가 그 자리에서 절명하게 된다.


동선을과외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좋아한 진수가 질투심에 불타 저지른 일일 수도 있고운전 미숙으로 인한 과실일 수도 있지만 짐작하건대 전자일 확률이 높다.

레지던트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빠였고 이 사고로 인주는

엄마 뱃속에서 아빠를 잃었다.


약혼자의 황당한 죽음 이후 본인을 '죽은 사람의 보상금으로 평생을 까먹는 쓰레기'라 여기며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인주 어머니 동선은 고인 물처럼, 충치처럼, 감염된 환부처럼 썩어가다 그렇게 죽어갔다.




'미시령'이라는 장소는 인주 모녀에게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인주 엄마 동선이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미시령 고개에서 버스가 추락한 적이 있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인주가 자동차 사고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레지던트였던 인주 아빠는 인섭, 동선, 진수가 술에 취한 채 미시령을 다녀온 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이 모녀의 운명은 기이하게도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일까.



우리는 닮은 데가 있어. 그렇지?

적당히 미쳤고 끈질기고 나약해.

네가 그 사람의 코트를 입고 있었을 때......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어.

아니, 귀신으로 돌아온 줄 알았지.

그때부터 너를 죽이고 싶었어.

-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분다, 가라 / 375~376p 강석원의 말 -


이 소설이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은 정희와 강석원이 인주의 죽음을 놓고 옥씬각씬하다가 육탄전을 벌인 끝에 '인주가 자신보다 정희를 더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강석원이 화재를 일으키는 대목이다.



후......후회하는 것은 한 가지뿐이야.

왜 내가 그때 따......따라 죽지 못했는지.

주, 주, 죽을 거다, 나도......

오, 오래 기, 기다리지 않을 거야......

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주, 죽기 전에 내가 해야

하......할 일이었을 뿐이야.

-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분다, 가라 / 375p. 강석원의 말 -


벼루로 정희의 온몸을 가격하며

"닮았어. 조금도 비슷한 데가 없는데...... 무언가가."

하며 외치는 강석원의 모습에서는 일종의 광기가 느껴졌다.

강석원은 정희의 모습에서 인주의 모습을 발견한다. 동시에 자신의 모습도 발견한다. 그들은 미쳤고 동시에 미치지 않았다. 그들은 끈질기고 나약하다.다른 듯 닮은 그들이었기에 인주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치밀한 묘사와 감정 표현은 두 사람의 격투신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너무나 생생하여, 가해를 당한 정희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통각을 느꼈다.

불길이 치솟고 있을 때 코와 입을 소맷자락으로 막은 왼팔 팔꿈치와 쓰라린 배만으로 화염 속에서 필사적으로 기어 나오며 정희는 이렇게 외친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쒜엑 쒜엑, 거친 숨이 허파를 찢으며 울린다.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는 정희. 이 부분에서는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가느다란 생명을 의존하고 있던 죽기 전 온라인 카지노 게임 모습이 오버랩된다. 평행이론인가.

과연 '살고 싶다'는 정희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이뤄질까.

부디 정희는 살아서, 포장되고 신격화된 강석원표 인주가 아닌, 정희가 알고 있는 인주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평전을 완성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불면 말이야.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내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 온라인 카지노 게임 분다, 가라 / 36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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