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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an 09. 2024

17화 늙은이들의 술판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폭설이었다. 산자락을 따라 비스듬히 늘어선 나무들은 제 모습이나 제 색깔을 모두 잃어버렸다. 오직 하얀 세상 속에 온몸을 묻고 있다. 그 위에 한풀이라도 하듯이 눈은 쏟아지고 있다. 겨울의 오후는 말 그대로 설국雪國이었다. 눈꽃 세상을 살고 있는 요정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는 산등성이와 골짜기가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멈춰 세우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꽁지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 끝에서 가라앉아 있던 적막이 담상담상 부서졌다. 마음은 갈쌍했지만 꽁지머리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발자국이 난삽해지는 것이 싫은 까닭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지만,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눈길 위에 실실스럽게 펼쳐있는 겨울산의 오후를 흩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날이 그대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내는 눈길을 걷고 싶어 했다.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하면서도 아내는 몸을 곧추 세웠다. 들숨에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날숨에 가늘어져 가는 자신의 삶을 붙들었다.

"걸음이 무너지는 것은 싫어. 우리가 그렇게 걸어왔잖아. 목련처럼 뚝하고 떨어져 당신 소설 속에 남고 싶어."

아내는 얼굴의 핏기가 묽어져 가고 있었지만, 눈 덮인 산자락에 서서 흐릿한 하늘을 담담하게 끌어안았다. 아내는 울지 않았고, 꽁지머리는 울었다. 그날, 그들이 소나무 밑에서 소풍을 즐겼던 세상을 향해 나란히 서 있던 그날 눈은 참 많이도 내렸다.

"여보, 나 여기에서 바람이 되고 싶어."

아내는 핼쑥한 웃음을 소나무 아래 개켜 놓았다.


꽁지머리는 소나무 아래에서 초록색의 머플러를 풀었다.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감아왔다. 그러나 머플러에 남아있는 아내의 시간은 그 부피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내가 남겨 놓았던 그 핼쑥한 웃음도 온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따뜻했다. 꽁지머리의 마음도 따뜻했다. 산자락까지 내려온 겨울도, 도란거리는 소나무도, 눈발을 타고 소나무 아래를 감돌아 내리는 바람도 따뜻했다. 그렇게 아내는 울지 않는 바람이 되어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눈길을 밟아 걸어 올 당신을 기다렸지."

아내는 외롭지 않았다며, 바람으로 남아 꽁지머리의 소설 속에서 노글노글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며 암암한 얼굴을 보였다.


산골짜기에 쌓였던 눈이 녹아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던 아내는 세상의 꽃들이 하무못한 모습으로 피어날 때, 목련이 웃음을 쏟뜨리고 있던 봄날, 바닷물처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맑은 눈물을 한 방울 남겼다. 꽁지머리는 아내 황은지의 눈물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아내를 바람에 훨훨 날려 보냈다.


"꽁지머리야, 제수씨가 좋아했을 거야. 눈 내리는 날을 좋아했었으니까. 한 잔 마시자."

찰랑머리가 술잔을 채웠다.

"바람으로 남은 제수씨는 늘 네 곁에 있잖아. 억지로 금을 긋고 돌아서버린 나는 마음속에 애성이만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살고 있는 나도 있거든."

흰머리는 연거푸 술잔을 쏟아 넣었다. 짧은 인생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갈라서버린 아내가 찰나처럼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야, 안주도 먹으면서 마셔. 사람 사는 거 다 그게 그거지. 평생을 제 발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편을 보는 내 마음도 니들 못지않게 갈라지고 쪼개진다니까."

삼겹살 묵은지찜을 내오던 술집여자도 술잔을 들어 올린다.


"사람 살이는 끝부분이 왜 이렇게도 아픈 거냐. 남은 사람들은 미어지는 마음을 어떻게 쓰다듬어야 하는 거냐고."

찰랑머리는 걸핏하면 어지럽고 숨이 가쁘다고 드러눕는 아내를 떠올리고는 저어하는 마음이 들었다. 술이 더 깊은 괴로움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잔을 털어 넣었다.


"그 소나무 아래에서 아내를 만나 어깨를 겯고 넓은 하늘을 날아다닐 때까지는 아내가 남긴 눈물을 지니고 있어야지. 그게 아내가 바라는 것이니까."

꽁지머리는 얼른 잔을 비우고는

"괜히 나 때문에 오늘 술판이 어지러워졌네. 우리 즐겁게 먹고 마시자. 술집여자 너 요새 살맛 난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이야기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술집여자에게 돌렸다.


"살맛 나기만 하냐. 우리 신랑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 동물이더라고."


술집여자는 얼마 전에 미국으로 가서 10년이 다되도록 전화도 안 하던아들이 전화도 하고 남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차도 사주어 남편과 여행을 다녀온 것을 끄집어내며 말소리를 높였다. 아들의 전화를 받기 전에는 눈물로 살았다. 죽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가슴을 찧으며. 살았는데, 지금은 정말 오래오래 살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나 이제 장사 그만둘까 생각 중이야. 신랑도 아들 덕에 편히 살아보자고 하고."

술집여자는 내친김에 속에 있는 말을 날름 뱉어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야, 누구 맘대로 문을 닫아.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말아. 우리는 어디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라고. 절대 안 될 말이지. 그렇잖냐? 꽁지머리야."

흰머리는 꽁지머리를 불러 놓고는 찰랑머리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거 왜 이래. 내가 장사 그만 두면 니들 밥 안 먹여 줄까 봐? 걱정 말아 여기보다 더 좋은 우리 집으로 오면 되잖아."

술집여자는 흰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바라보며 웃음 섞인 말로 달랬다.


"거 좋은 생각이네. 그러면 형님도 심심하지 않고 좋겠네. 우리가 같이 놀아주면 말이야."

찰랑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목젖이 보일 정도로 너털웃음을 웃었다.


"야, 우리 같이 놀러 한 번 가자. 우리 신랑이 이번 여행하면서 한 말이야. 아들이 차 사줬다고, 전화해 주었다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는 거야. 어떠냐? 여행 경비는 우리가 다 책임질 게. 어때? 좋지?"

술집여자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식당에 가득 차 올랐다.


"너, 분명히 말했어. 내가 형님에게 전화할 거야."

흰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당장에라도 전화하겠다는 듯이 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담배 피우려는 꼼수였다.


"찰랑머리야, 내가 며칠 전에 흰머리 딸이 하는 치과에 갔었거든? 그런데 민정이가 지 엄마 얘기를 하는 거야. 어때? 우리 일을 한 번 벌여 볼까?"

"그런데 흰머리를 어떻게 설득하지? 쉽지 않을 걸. 제수씨도 그렇고."

늙은이들의 술판은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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