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세경의 엄마는 언제 왔는지 잠들어 있었다.
승환 일행은 간단한 채비를 마치고 어젯밤 그 집으로 향했다. 낮의 풍경은 어젯밤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달랐다.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던 밤길은 맥반석처럼 열기를 내뿜었고, 광란의 가로등 날벌레 클럽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대신 길 좌우 가득한 하얀 들꽃들과 진록의 풀들이 뜨뜻한 바람에 어울려 미동하고 있었다.
일행은 이십여 분을 걸어 그 집에 도착했다. 밤에 봤던 볼품 없던 마당은 태양 아래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 초록색 실 같은 물풀 가득한 미지근한 연못. 비릿한 냄새. 그 모든 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우뚝 서 있는 현대식 대형 주택. 모든 것이 승환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현관문 앞에 이른 일행은 잠시 멈춰 서로를 마주 봤다. 노돈이 ‘알지?’ 하는 눈빛을 보냈다. 세경이 끄덕였다. 승환은 다시 한번 물건들이 잘 있나 확인했다. 여차하면 사용할 제압용 청테이프 두 개, 만능 칼. 모두 이상 없었다.
우선 자연스럽게 들어가 노돈이 말로 설득한다. 그러다 안되면 승환이 제압한다. 그 뒤 협박을 하든 어떻게 하든 해결한다는 단순한 계획이었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세경이 현관 벨을 눌렀다. 승환은 주머니 속 만능 칼을 꽉 쥐었다.
“누구세요?” 한참 뒤 인터폰으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박경숙 씨 딸인데요, 엄마가 핸드폰 여기 놓고 온 것 같다고 하셔서요.”
“박경숙? 아, 청소 아줌만가?”
원격으로 현관문 도어록이 해제됐다. 승환 일행은 현관문을 열고 조심히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한낮인데도 먹구름 낀 것처럼 어두웠다.
“안녕하세요.” 세경이 현관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현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아줌마 칠칠치 못하게... 근데, 누가 같이 오셨나?”
안쪽 거실로부터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저희 사촌 오빠들이 근처에 왔다가 같이 왔어요. 보시다시피 군인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승환 일행은 어두운 거실로 들어섰다. 소파 중앙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마른 남자가 선글라스를 낀 채 앉아 있었다. 남색 카라티, 베이지색 바지 차림의 그는 집안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찬 고급 손목시계가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승환은 집안을 스윽 훑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진열장이었다. 거기에는 국내외 수많은 명사와 찍은 사진들은 물론 각종 트로피, 감사패, 심지어 대통령 표창장까지,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이하게도 누렇게 바랜 코팅된 종이 하나가 화려한 진열장 정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시한 가훈 적힌 종이가 빛나는 트로피와 상패들 사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허호진. 상패와 감사패에 새겨진 이름이었다. 승환은 휴대폰을 꺼내 이름을 검색했다.
‘허호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 A그룹 전략비서실. 어? A그룹? 역시 그 나무 기억이...’
“휴대폰 하나 찾겠다고 우르르 와가지고... 빨리 찾아서들 가!”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경계하는 말투로 승환 일행을 재촉했다. 승환 일행은 휴대폰 찾는 체를 했다. 소파에 앉은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선글라스를 낀 채 소리를 따라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렸다. 게다가 왼손의 손목시계. 승환은 그가 혹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는 괜찮은가 보네.” 노돈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들으라는 듯 승환에게 말했다.
“뭐?” 허 상무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노돈 쪽으로 홱 돌아봤다.
“아니, 마을 사람들 다 잠들어 있는데 아저씨만 깨어 있어서요.”
노돈의 말에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승환 일행도 따라 숨을 멈췄다.
“잔다고? 무슨... 지금 낮 아니야?”
“와, 이 아저씨 봐! 설마, 아저씨 몰라요? 그 전염병이요!”
“...뉴스에서 나오는 그거?”
“네, 그거 걸리면 아침에 자고 밤에 일어나잖아요.”
“그런 게 여기까지 퍼졌어?”
노돈은 순간 당황한 듯 보였다. 모른 체를 하는 건가? 나를 떠보는 건가? 하는 표정이 노돈의 얼굴에 스쳤다. 노돈은 똑같이 시치미를 뗐다.
“와, 맙소사! 이 아저씨,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봐! 뉴스 본다매요. 그것도 몰라요?”
“뉴스에서 그런 얘기는...”
“느긋한 아저씨네. 여기뿐 아니라 전국에 다 난리에요! 이 아저씨 혼자 딴 세상에 사나.”
“......”
“근데, 아저씨! 아저씨도 ‘그 꿈’은 꿨죠? 맞죠?”
노돈의 계속되는 깐죽에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발끈했다.
“야! 너 아까부터 자꾸 아저씨, 아저씨 하는데, 내가 누군지 알아?”
“네? 누구신 데요?”
“나 A그룹 전략실에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야, 허호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누구를 자꾸 아저씨래! 군바리 새끼들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라고 불러!”
아저씨라는 호칭이 불편했던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황한 승환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 뒤로 가 청테이프를 꺼내 들었지만, 노돈이 손짓으로 승환을 제지했다.
“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셨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빠르게 태세전환을 한 노돈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하며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 비위를 맞췄다. 처음부터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아저씨’라 부른 것은 노돈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그는 자기 과시적인 진열장을 보며 의도적으로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범부로 대했다. 자존심을 건드려 갈등을 유발하고 또, 사과를 통해 경계심을 허물 계획이었다. 노돈의 경박한 말투 역시 자신을 위협적이지 않게 보이려는 계산이었다.
“으흠, 미안해요. 내가 좀 흥분을... 아까 어디까지 했더라?” 노돈의 태세전환에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꿈 얘기하고 있었는데... 근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어둡지 않으세요? 왜 선글라스를...”
“......”
노돈의 두 번째 계획이었다. 그는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다시 자존심 강한 그의 약점을 공격했다. 갈등과 사과로 경계를 허물고, 이어 약점을 공격해 심리적 상위를 차지하는 노돈을 보며 승환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혹시 눈이...?” 노돈이 능청스레 물었다.
“...... 망막동맥폐쇄야. 니미, 이것만 아니었어도 회장님 곁에서 곧...”
“네? 설마 회장님 측근이셨습니까? 어쩐지 진열장 보고 보통 분은 아니실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어느 회장님 모셨는지?”
“A그룹이라고 들어봤나? 000 만드는...”
“알죠, 알죠. 한국 아니 전 세계에서 A그룹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흠흠... 거기서 VIP를 좀 오랫동안 모셨지.”
노돈의 혓바닥 가마에 올라 우쭐해진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제 완전히 경계가 풀려있었다.
“그런데 눈은 언제쯤부터...?”
“일 년 전부터 갑자기 왼쪽 눈이 잘 안 보이더라고. 그래도 회장님 모시는 사람이 건강 그런 거 챙길 시간이 어디 있나. 그냥 오른눈으로 버텼지. 근데 오른눈에도 곧 문제가 생기더라고. 오른 눈마저 거의 안 보이게 되고 병원에 갔더니 너무 늦었대. 곧 실명될 거라데. 그래서 회장님께 허락받고 내려왔지, 여기, 아버지 고향으로. 그래도 조금은 보였는데 며칠 전부터는 완전히...... 뭐, 여기도 좋겠지. 조용하잖아. 편안하게 말년이나 보내면 되겠지. 벌어놓은 것도 좀 있겠다.”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회장님 모시던 때를 꿈처럼, 자신의 실명은 남 얘기처럼 말했다. 두 이야기 모두 진짜 자신을 담고 있지 않았다.
“힘드시겠습니다.” 노돈이 말했다.
“괜찮아... 살만해.”
대답과 달리 승환은 그가 힘겹게 버티고 있음을 느꼈다.
“근데 아까 꿈 얘기, 그거 뭐야?”
어둠 속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린 채 물었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는 표정. 노돈이 그 표정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떠볼 양, 뜸을 들이며 천천히 말했다.
“아, 역시.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도 그 꿈 꾸셨군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계속 같은 꿈이라니.”
“그러게. 평생 이런 적은 없었는데.”
“요새 사람들 다 그 꿈 꿉니다. 하얀 나무 나오는 꿈이요.”
“뭐? 하얀 나무?”
“네! 커다란 하얀 나무요!”
“글쎄... 그런 건 못 봤는데.”
승환 일행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제 와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설마... 진짜 모르십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모를 수가 없는데.”
노돈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자극하듯 물었다.
“요 며칠, 같은 꿈이긴 한데 그런 나무 나오는 꿈은 아니야.”
“그럼 어떤 꿈을?”
“조그만 석상들이 내려다보이는 꿈.”
“모래섬이고요? 바다는 빨갛고요?” 승환이 끼어들며 물었다.
“그래. 맞아. 너 어떻게?”
“결국, 같은 꿈이잖아요. 누굴 속이려고.” 노돈이 말했다.
“속이긴 누가 속인다고 그래!! 저 새끼가 또...”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 그 나무라서 그런가 봅니다.” 승환이 말했다.
나무의 기억,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진열장, 노돈과의 대화. 모든 것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거대한 흰 나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작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본인이 나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럼 이 상황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때문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시는군요.” 노돈이 말했다.
“이게 왜 내 탓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승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해결책을 알 리 없었다.
“꿈 섬 중앙에 커다란 흰 나무가 있습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죠. 요새 일어난 전염병의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다 나무만 바라보고 있고요. 그 사람들은 다 나무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그 나무뿌리를 추적해서 여기까지 온 거고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정말 모르시는 거죠? 바깥이... 너무 심각합니다. 정말입니다.” 승환이 말했다.
“몰라. 모른다고! 그리고 왜 자꾸 내 탓처럼 말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장님일 뿐이었다. 만능 칼을 쥐고 있던 승환의 손에서 힘이 풀려갔다. 노돈이 다가와 그의 등을 툭툭 쳤다.
“승환아, 진짜 모르시나 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몇 시에 자서 몇 시에 일어나십니까?” 노돈이 물었다.
“그건 왜?”
“중요한 겁니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지! 당연한 거 아냐?”
“그러니까 몇 시요?”
“대충 밤 10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 왜?”
“혹시 최근에 사람들 만난 적 있으십니까?”
“당연하지, 청소 아줌마도 있고, 또...”
“직접 대화도 하셨고요?”
“그건... 아닌데...”
“감염된 사람들이랑 정확히 반대네요. 그 사람들은 밤 10시에 일어나고 아침 7시에 자거든요. 아무래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 잠들면 사람들이 깨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 깨면 사람들이 잠드는 것 같습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뭐?”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물론 승환, 세경 모두 노돈의 말에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승환은 곧 수긍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 때문에 사람들이 잔다고? 이것들이 누굴 갖고 놀려고. 그럼 너네는 뭔데? 이렇게 깨어 있잖아!”
“저희는 그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노돈이 답했다.
“어떻게? 무슨 수로 너네만 깨어났다는 거야?”
“이 친구가 깨웠습니다. 이 친구는 면역이 있거든요.” 노돈이 승환을 가리켰다.
“하, 진짜 미치겠네. 이놈들 믿어야 해 말아야 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선글라스를 벗더니 엄지와 검지로 감은 눈들을 꾹 눌렀다. 그 바람에 선글라스로 가려져 있던 그의 미간에 붉은 점이 드러났다. 그것은 승환의 것보다 조금 더 선명한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그들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 진짜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하루에도 수천 명씩 죽어 나가고 있어요.” 세경이 답답한 듯 물었다.
“아, 모른대도! 왜 다 나한테 난리야?!”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다시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조금 미안했는지 조금 진정된 톤으로 말을 이었다.
“그냥 며칠 전부터, 그래 눈이 완전히 안 보인 그날,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다 포기한 그날부터 그 꿈 꿀 뿐이라고. 근데 지금 사람들 다 자고 있다는 거 진짜야?”
“네. 저희 엄마도 포함해서요.” 세경이 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 아줌마도 그렇고, 회사 일 때문에 자주 통화하던 후배 놈들이랑도 통화도 안 되는 걸 보니...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래, 너희들 이름이나 듣자.”
“서노돈입니다.”
“그래, 깐죽이. 서노돈이라고? 계급은? 대위야? 소령? 중령?”
“군인 아닙니다.”
“뭐? 아까는 군인이라며?”
“그냥 위장용으로 전투복만 입고 있습니다.”
“허, 참 내.”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는 김세경이요.”
“허승환입니다. 꿈에서 돌아다닐 수 있고요. 꿈속 나무에서 기억을, 그러니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의 기억을 봤습니다.”
“그래? 좀 자세히 얘기해 봐.”
승환은 섬에 관해 설명했다. 모래섬, 희고 거대한 나무, 사람 모양 석상들, 붉은 바다, 그리고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기억까지.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석상들이 실제 사람이다?”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물었다.
“맞습니다.”
“그, 좀 전에 얘기한 친구. 자네 이름이 뭐라고?”
“허승환입니다.”
“같은 허 씨네. 이름 부르기는 뭣하고... 회사 다니나?
“네.”
“직급은?”
“대리입니다.”
“그래. 허 대리.”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한숨을 한번 쉬고 말을 이었다.
“찝찝한 꿈이야. 그냥 아래로 석상들이 보이는데,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있어.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많아. 그냥 그게 다야. 난 그냥 그것들 늘어나는 것만 보고 있는 거야. 허 대리는 꿈에서 돌아다닌댔지?”
“네.”
“그래. 봤어. 누가 돌아다니다가 사라졌다 하더군. 그럼 같이 온 사람들도? 근데 거기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허 대리랑 꼬맹이 한 명 말고는 없었는데?”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저랑 그 꼬마뿐입니다. 이유는 저희도 모르고요. 여기 두 사람은 제가 꿈에서 깨운 사람들입니다.”
“그래? 야, 그럼 니가 사람들 다 깨우고 다니면 되잖아!”
“그게... 깨우다가 잘못되면 그 사람이 미쳐버립니다.”
“뭐? 미쳐?”
“말 그대로 진짜 실성해버립니다.”
“......참 내, 미치겠네. 그래, 어쨌든 백번 양보해서 니네 말이 다 맞다 치자. 내가 원인이고 숙주야.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장님 아저씨 피라도 뽑아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승환이 고개를 돌려 노돈을 봤다. 노돈 역시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막다른 길이었다.
“그냥 대안도 뭣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거네?”
“네. 카지노 게임 사이트님이 뭔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돈은 자신감을 잃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막연히 이 꿈의 원인을 찾으면 해결책도 당연히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승환은 ‘혹시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죽는다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죽은 섬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신중해야 했다. 자칫하면 그들의 섬도 죽은 섬처럼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은 한 시간가량 더 대화를 나눴지만, 단서라 할만한 것은 없었다. 일행은 허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연락처를 교환한 후 집을 나섰다. 다들 말이 없었다. 승환은 공허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태양을 가리다 말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태양을 완전히 가렸다. 해가 조금 기울었지만, 여전히 습하고 더웠다. 일행은 다시 세경의 집으로 향했다. 대화는 없었다. 허무와 절망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