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단편선
3.
일요일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있던 태윤은 호빵 하나를 데워 먹고 구립 도서관에 갔다. 태윤이 집을 나서는 소리에 세윤과 카지노 게임도 잠에서 깼다. 세윤은 물 한 컵을 마시고 습관처럼 낡은 컴퓨터를 켰다. 곧이어 카지노 게임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올 것을 예감하면서, 세윤은 카지노 게임에게 조금의 관심도 드러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세윤의 뒤통수가 조용했다. 조용할 뿐 아니라 따가운 시선도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카지노 게임는 전례 없이 또렷한 눈빛으로 세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기라기엔 어딘가 비이성적이었고, 살기라기엔 꽤 연약한 눈빛이었다. 귀퉁이가 깨진 유리구슬 같달까. 분명한 것은 어떤 다짐이 서려 있는 눈빛이었다. 기어코 파편으로 산산조각 날 것을 알면서도 추락해보겠다는 유리구슬의 다짐.
세윤은 카지노 게임에게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움’이라고 말하기에는 감정의 외연이 일치하지 않았으나, 그 중심에는 두려움이 박혀있었다. 그것은 유년기의 세윤이 만취한 카지노 게임의 칼부림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두려움과 비슷했다. 어쩌면 저 인간이 정말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카지노 게임를 죽이기 전에, 카지노 게임 손에 죽는 패배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세윤은 날로 쇠약해지는 카지노 게임를 보면서 그런 두려움을 잊은 지 오래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살려둔 것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기한 없는 복수, 언제든 가능한 복수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사자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눈앞에 사슴이 있어도 잠을 잔다. 고등학생이었던 세윤에게 당시의 카지노 게임는 사슴은커녕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다. 그런 카지노 게임가 갑자기 기운을 차려 몸을 일으킨 것이다.
“아들아, 세윤아, 산에 갈라카니까 옷 입어라.”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와 발음까지도 명료했다. 게다가 아들이라니, 세윤이라니. 세윤은 그 낯선 호명에 자기도 모르게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세윤이 기억하는 한 카지노 게임가 형 태윤과 자신을 부르는 말은 ‘썅노무 새끼들’, ‘좆같은 새끼들’, ‘버러지 같은 것들’ 정도였으니까. 옷을 입으면서도 세윤은 의아했다. 갑자기 지난날을 반성이라도 하려는 셈인가.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이라도 하려고? 앞으로는 아비 노릇이라도 해보겠다고?
“소주도 있는 대로 챙기가 비니루에 담고.”
이어진 카지노 게임의 부름에 세윤의 긴장도 탁, 풀렸다. 결국 또 술이었다. 세윤은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떠올린 상상에 수치심을 느꼈다. 저 쓰레기 같은 인간이, 몇 시간 전까지도 술을 처마시고 뒹굴던 인간이, 갑자기 개과천선할 리가 없지 않은가. 세윤은 냉장고에 든 소주 3병을 챙기면서, 습관처럼 길고양이 사냥 때 쓰던 쥐약을 챙겼다.
앞서는 카지노 게임를 따라 세윤은 묵묵히 산을 올랐다. 금세 숨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카지노 게임는 한 발, 한 발 땅을 꾹꾹 누르며 산을 올랐다. 일요일이라 등산객이 간간이 있었는데, 카지노 게임와 세윤을 힐끗 쳐다봤다. 술 냄새 풍기는 작고 까만 중년 남성과 (아마도 소주병인 듯한)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뒤따르는 희멀건 남자 고등학생. 그리 건강한 관계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등산에 어울리는 행색도 아니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는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산을 올랐다. 5분쯤 올랐을까. 등산로 왼쪽으로 산악회에서 매단 표식들이 달린 참나무를 등지고 카지노 게임는 길을 벗어나 비탈로 향했다. 그 길은 어릴 적 형 태윤과 함께 카지노 게임에게 맞았던, 정확히는 태윤은 도망가고 자신만 남아 맞아야 했던 바로 그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세윤은 짐작했다. 카지노 게임라는 작자는 아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권위를 확인시키려 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힘으로 어찌하기 어려워 보이는 형 태윤이 없는 시간에, 조금 더 수월해 보이는 자신만을 상대로. 세윤은 우습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라고, 과연 카지노 게임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윤은 다짐했다. 카지노 게임를 죽여야 하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다면 그건 바로 오늘이라고.
당시만 해도 벌목 전이라 키 큰 나무들이 서 있던 평지에 다다르자 카지노 게임는 낮은 바위에 걸터앉아 세윤에게 소주를 가져오라고 한 뒤,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했다. 평소였다면 무시했을 말이지만 세윤에게는 계획이 있었으므로 순순히 카지노 게임의 말을 따랐다. 소주 한 병을 5분도 채 되지 않아 비운 카지노 게임는 급격하게 총기를 잃었다. 내뱉은 말들이 뭉개지기 시작하고 세윤을 향해 던지는 흙이며 돌멩이의 정확도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분기를 못 이겨 몸을 일으키려다가도 비틀거리며 풀썩 주저앉았다.
잠자코 카지노 게임의 상태를 주시하던 세윤은 주변에 인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위에 앉은 카지노 게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발바닥으로 얼굴을 밀어 찼다. 쓰러진 카지노 게임의 몸 위로 올라탄 세윤은 카지노 게임의 신음이 이어지기 전에 왼손으로 양 볼을 있는 힘껏 눌렀다. 오른손으로 벌어진 입에 소주를 들이붓고 이어서 쥐약도 털어 넣었다. 카지노 게임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마다 열린 식도로 쥐약 섞인 소주가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세윤은 더빠르고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흙을 집어 카지노 게임의 벌어진 입을 메웠다. 카지노 게임의 호흡은 급격하게 가빠졌다가, 이내 간헐적으로 변해갔다. 버둥거리던 사지의 힘이 풀리고 눈동자는 세윤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초점을 잃었다. 차라리 숨을 거둔 뒤의 낯빛이 살아있을 때의 낯빛보다 밝아 보인다는 사실에 세윤은 코웃음을 쳤다.
일을 끝낸 뒤 세윤은 담담하고 신속하게 부드러운 땅을 찾았다. 근처 나뭇가지들을 꺾어 우선 카지노 게임의 시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땅을 파서 묻고, 흙으로 덮었다. 그로부터 실종신고를 하기까지 약 이틀 동안, 태윤에게는 카지노 게임를 찾으러 가보겠다고 하고서 집에 있던 낡은 삽으로 꽤 깊은 바닥을 파서 카지노 게임의 시체를 옮겼다. 그리고 매장지 바로 근처의 나무뿌리 근처에다가 자그맣게 X자 표시를 해두었다.
그날은 카지노 게임가 실종된 날이었고, 세윤이 카지노 게임를 밟고 일어선 날이었다. 카지노 게임가 그토록 자주 자신을 밟던 그 장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