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주(酒)저리주(酒)저리-191
<본 글은 '한국술 고문헌 DB(한국술문헌연구소 제작)'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도움을 주신 @김재형님께 감사드립니다. http://koreansool.kr/ktw/php/home.php
『계원필경(桂苑筆耕)』은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집(詩文集)이다. 최치원은 당 고변(高騈, 중국 당(唐) 카지노 게임 희종(僖宗) 때의 무신)의 휘하에 4년여 동안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있을 때 1만여 수의 시문을 지었다. 이후 신라로 귀국한 뒤 그가 전쟁 당시의 시문을 선별하여 20권으로 편찬하여 50수의 시와 320편의 문을 수록하였다. 『계원필경』은 현존하는 우리카지노 게임 최초의 개인 문집인 것이다. 『계원필경』은 고변의 대필과 공식 문서가 대부분으로 우리카지노 게임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시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시 당과 신라와의 관계 등을 보면 여기에서 언급된 술 등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계원필경』에는 술을 제조하는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술 이름은 언급되어 있다. 우선 계원필경집 제19권에 금부낭중(金部郎中, 국가 재정 부서 중 금전과 베 등의 출납을 담당하는 관원)에게 보낸 별지에 계주(桂酒)라는 술이 언급된다.1)
별지 본문에는작계(酌桂)로 되어 있으나 해석에서는계주(桂酒)로 해석을 하고 있다.
--------------------------------------
‘況屬遲日載陽,光風遍煦。燕歌鶯舞,深資酌桂之歡(황속지일재양,광풍편후。연가앵무,심자작계지환)’
더구나 지금 따뜻한 봄날이 점점 길어지고, 온화한 바람이 두루 불어오는 시절을 만났음이겠습니까. 제비는 노래하고 꾀꼬리는 춤을 추어 '계주(桂酒)' 마시는 환락을 더 도와줄 것입니다.
-----------------------------------------
여기에서 언급하는 계주(桂酒)는 어떤 술을 이야기하는 걸까?
계주(桂酒)를 중국의 검색엔진 baidu(바이두)에서 찾아보면 ‘계피를 첨가한 술’로 이야기된다. 당나라 시대에 계주는 꽤 많이 소비되던 술이었던 것 같다. 계주를 언급한 바이두의 출처를 보면 여러 번 당나라 시들이 언급이 된다. (쳇 GPT 이용 한 번역으로 정확하지 않은 문장이 있음).2)
- 당나라 백거역(白居易)의 <연주호대부광복택, 宴周皓大夫光福宅는 “푸른 난초는 향기로 계피술에 미치지 못하고, 붉은 앵두는 색깔로 꽃장식에 양보한다. 绿蕙不香饶桂酒,红樱无色让花钿”
- 당나라 권덕여(权德舆)의 <육부시, 六府诗는 “금잔은 옥 접시에 반짝이고, 손님들과 친구들은 모여서 잔치를 즐겁게 한다. 목란이 네모난 연못 위에 떠 있고, 계피술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게 한다. 金罍映玉俎,宾友纷宴喜。木兰泛方塘,桂酒启皓齿”
- 당나라 안진경(颜真卿)의 <오언야연영등연구, 五十夜幕燈燈는 “계피술은 시흥을 끌어내고, 난초 등불은 손님들의 정을 비춘다. 桂酒牵诗兴,兰釭照客情”
이런 것으로 보아 당나라 때에는 계피를 이용한 술들이 꽤 유행을 했고 고급술로 사용이 된 듯하다.
물론 계(桂, 계수나무 계)라는 한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전적으로 계수나무나 월계수를 이야기한다. 특히, 계(桂)라는 한자가 계수(桂樹), 계화(桂花)로 쓰일 때는 목서(木犀, '만리향'으로 묶여 불리는 미나리목 돈나무과의 나무)를 가리킨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약초서인 신농본초경(중국 후한에서 삼국 시대 사이에 성립된 본초서)에서 '계(桂)'는 육계 또는 계피를 가리키는 걸로 보인다. 목서(木犀)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계화(桂花)'라는 다른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이며 당나라 시대 문서에서는 계(桂)라는 한자는 계피를 가리킬 확률이 높아 보인다.3)물론 계주(桂酒)가 '계화(桂花)'를 넣은 술일 수도 있다. 그 당시에 자료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계(桂)라는 한자 하나만을 해석해서 계주가 계피술인지 목서(木犀)를 넣은 술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본 글에서는 계(桂)를 계피를 넣은 술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처럼 최치원이 활동하던 당나라에서는 계피가 들어간 술이 유행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에는 계피술이 없었을까? 현재 문헌상에는 계피와 관련된 술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당시 당나라와의 교역이나 교류 상황을 보았을 때 충분히 만들어 마셨을 거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당나라는 선진국이라 할 수 있기에 선진국의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계원필경』의 시에는 박주(薄酒) ‘맛이 좋지 않은 술’, 앵무배(鸚鵡) ‘바닷속의 앵무라(鸚鵡螺, 앵무조개)로 만든 술잔’, 현주(玄酒) ‘제사 때 술 대신 쓰는 냉수’와 같은 술과 관련된 단어나 이야기 들이 나온다.4)
최치원의 『계원필경』에는 우리나라의 술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언급된 당나라 계주(桂酒)는 당시의 교류 상황을 보면 한반도에서도 만들어 마셨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당시의 계주 제조법을 알 수는 없지만 이후에 우리나라 고문헌에는 다양한 계피를 넣은 술들이 언급이 된다. 이러한 고문헌에 있는 계피술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술의 하나로 계주(桂酒)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계원필경 #최치원 #계피 #약주 #계주 #전통주 #고문헌 #한국술고문헌DB
1)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001A_0200_010_0090&viewSync2=KP
2)https://baike.baidu.com/item/%E6%A1%82%E9%85%92/4934375
3) https://namu.wiki/w/%EA%B3%84%EC%88%98%EB%82%98%EB%AC%B4
4)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00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