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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Apr 11. 2025

'무료 카지노 게임'의 정의

엄마, 무료 카지노 게임는 말야...


"무료 카지노 게임가 뭘까?"

"무료 카지노 게임? 무료 카지노 게임는 말야...내 과자를 나눠 먹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 그럼 무료 카지노 게임지."



뻔하면서도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질 때 툭 나오는 아이의 답변을 사랑한다.


나는 수시로 아이에게 특정 단어의 정의를 묻는다. 아이의 어휘력이나 문해력 따위의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기보다 정말 그의 이야기가 좋아서. 나와 다른 그의 생각과 정의를 듣는 일이 꽤나 재미나서. 어느정도냐면…알쓸 시리즈 전문가들의 대화만큼이나 흥미롭다.



쫑알거리는 게 현생 최대의 업인 듯 쉬지 않고 하루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대는 꼬맹이가 꽂혀있는 존재가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

"오늘 지율이랑 무료 카지노 게임 하기로 했어.", "무료 카지노 게임들이 날 좋아하는 거 같아." 뭐 이런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니 이 아이가 생각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뭔지 궁금해졌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뭐라고 생각해?"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뭐냐니. 모두가 당연스레 알고 있는 것에는 피해 갈 수 없는 함정이 있는데 그것의 의미나 정의가 모두에게 다 같지 않다는 거다. 그런 ‘틀림’아닌 ‘다름’에 대해 논하는 걸 좋아하는 나다. 나름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고 뿌듯해하는 찰나, 생각보다 너무나 빠르게 답변이 돌아왔다. 깊은 생각은커녕 고민조차 하지 않은 듯도 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 무료 카지노 게임는 말야...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나눠 먹어도 아깝지 않으면? 그게 무료 카지노 게임지."

얼마 전 하진이에게 마이쮸를 나눠줬는데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마이쮸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며, 그러니 우린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맛있는 과자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라니. 이보다 투명하고 정직한 표현이 또 있을까. 내가 아끼는 걸 주고 그가 기뻐하고 행복하면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존재. 그래, 그게 무료 카지노 게임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




함께일 때 즐겁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괜히 뒷통수가 따갑고 가슴 어디께가 찜찜한 사람이 있다. 웃으며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가 나에게 '마이쮸' 하나조차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아프고 슬플 때보다 기쁘고 행복할 때 더욱 그렇다. 어렵고 속상한 사람을 위로하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사람이란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깔려 있는 존재이니 나보다 못한 남을 구제해 주고 토닥이고 안아주는 일은 꼭 성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다. '나보다 못한 남'일 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 말이다.


슬픈 일에 위로해 주는 것보다 기쁜 일에 제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나보다 잘 된 '타인'을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한다는 건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횡재에 같이 기뻐해주고 응원해 주는 이들에게 더없이 감사한 이유다. 그 웃음과 기쁨이 걱정과 위로보다 훨씬 더 맑고 청량하다.



마이쮸를 나눠주고는 좋아하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 내가 다 기쁜 것.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마이쮸를 더 주고 싶은 것. 그래, 내가 생각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정의와 아이가 깨달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정의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내가 40년이나 걸려서야 어렴풋이 알듯말듯 하는 걸 이 무료 카지노 게임는 그 반의 반도 살지 않고 깨달은 모양이다. 역시 아이의 철학은 어떤 전문가의 철학 못지않다. 부디 아이의 삶 곳곳에서 그런이들을 만나는 행운이 함께하길. 아이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이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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