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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쿠루 Jan 05. 2025

넷플릭스 외교관 TMI-2

카지노 게임 룰

이번에는 시즌 1 마지막 에피소드, '카지노 게임 룰'에 관한 TMI.


주인공의 배우자인 할이 주인공을 대신해서 하는 채텀하우스 연설은 시즌 1과 2를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다.


채텀하우스는 영국의 주요 싱크탱크 중 하나로, 공식 명칭은 '왕립 국제문제 연구소(The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다.


카지노 게임채텀하우스 입구 - 영국의 많은 기관처럼 겉으로는 딱히 '연구소' 같아 보이진 않는다. (출처: 채텀하우스 Linkedin)


'왕립'이라고는 썼지만, 왕실에서 직접 세운 것은 아니다.


채텀하우스는 1차 대전(1914-1919) 이후 국제문제 연구의 중요성에 공감한 영국 정부 안팎의 인사들에 의해 1920년 설립되었다. 채텀이라는 명칭은 영국 제10대 총리(1766-1768)인 윌리엄 피트(大 피트)의 백작령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후 1926년 당시 영국 국왕인 조지 5세가 채텀하우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한국어로는 '왕립'이라고 밖에는 달리 번역하기 애매한 'Royal'을 포함한 공식 명칭을 갖게 되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학회, 연구소, 기관 등의 명칭에는 'Royal'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튼 채텀하우스는 관련 업계(?)에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기관이지만, '카지노 게임 룰'이라는 것은 특정 업계를 넘어서 알려져 있고, 또 사용된다.


드라마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만, 한마디로 미팅 내에서 언급된 내용을 미팅 밖에서도 인용은 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특정할 수 없다는 규칙이다. 비판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해 보자는 취지다.


조금 어색했던 것은 공관 차석이 대사인 주인공에게 “Are you familiar with the Chatham House rule?"이라고 물으며 설명하는 장면이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 룰이 뭔지 아냐고?


카지노 게임 룰에 익숙하지 않을 상당수의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겠지만, 직업외교관으로서 미국 국무부에서 수십 년을 근무한 것으로 설정된 업계 베테랑인 주인공이 모를 수가 없는 부분이다.


또 어색했던 것은 할이 카지노 게임 룰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연설문 초안을 직원들에게 맡긴 것에 대한 공관 차석의 반응이다.


카지노 게임연설문 초안을 감히 직원들에게 보이다니,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표정. 이봐, Relax~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카지노 게임 룰은 그 성격상 보다 비공개된 세미나 또는 회의에 사용되는데, 실제 드라마에서 할이 하려는 것은 '연설(speech)'로 설정되어 있으며, 연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관점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에 뭔가 카지노 게임 룰과 썩 잘 어울리지는 않는 느낌이다. 할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드라마적 세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할의 연설장면, 실제 촬영 장소는 채텀하우스가 아닌 왕립예술학회 (RSA) 건물이라고 한다


드라마적 설정과는 별개로 어쨌든 영국에 살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는 영국이 여러 국제문제에 대해 갖는 관심의 범위가 참으로 넓다는 것이다.


채텀하우스 스피치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 배경 (출처: 채텀하우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이는 세계를 경영해 본 경험 때문일 것이다. 패권국에게는 관심 사항이 아닌 일이 있을 수 없다.


과도하게 넓은 관심이 제국의 쇠망을 가져오는 과잉 팽창(overstretch)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채텀하우스가 설립된 때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세계를 경영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영국의 역할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사안에 대한 보다 넓은 시야와 카지노 게임 룰이라는 일종의 국제표준을 만들어 낸 것에서도 드러나는 영국의 오랜 자유주의적 지적 전통은 여전히 영국이 자신의 체급을 넘어서는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큰 자산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드라마의 맥락에서는 주영국대사직을 실질적 내용보다는 의전에 치중된(ceremonial) 보직으로 다소 폄하하여(?) 묘사한 '미드' 제작진의 시각에서조차, 국무장관직을 꿈꾸는 할의 야망(ambition)을 보여줄 수 있는 장치의 하나로서 다름 아닌 영국의 연구소가 고려되었다는 점이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자산이 무엇인지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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