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추에이션이 좋은 김 선생처럼 콘텐츠 기획에 도가 트이는 중
불명예라는 단어로 마음에 생채기가 남았다. <모터매거진 퇴사는 권고사직 형태를 띠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비자발적이지도 않았다.회복이 필요한 컨디션 탓에 몸도 적잖이 지친 상태였다. 아직 해가 바뀌기 전이라 스물여덟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환자’라는 명찰 뒤에 숨어 조금은 휴식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사고로 다친 발목에 필요한 재활과 눈을 뜰 때마다 느껴지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상에 죽치고 앉아 채용 사이트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었다.
잡코리아에서 ‘에디터’, ‘콘텐츠, ‘기획자’라는 세 키워드로 검색하던 중이었다. ‘현대자동차’라는 단어가 스크롤을 멈춰 세웠다. 사보 콘텐츠 에디터 공고였는데, 회사 소개란에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대상그룹 등 내로라하는 기업의 콘텐츠로 포트폴리오를 쌓아왔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채용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여타 사보 제작 회사들과는 차별화를 갖춘 듯 보였다.
사보 에디터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직군이지만 마음이 또 조급했다.현대자동차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면 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동차 회사라면 자동차 콘텐츠를 만들지 않을까? 단순하게 추측했다. 퇴사하기 직전까지 만든 콘텐츠 중에서도 내세울 만한 페이지로 다시 한번 포트폴리오를 다듬었다. 잡코리아 양식에 맞춰 이력서를 새롭게 작성한 다음 ‘즉시지원’ 버튼을 눌렀다. 집에서 뒹굴며 이틀쯤 지났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의 중년 남성은 디자인 21이라며 가능한 면접 일정을 내게 물었다. 2017년 새해에 맞은 첫 번째 화요일, 신사동 가로수길을 찾았다. 디자인 21이 위치한 청암빌딩은 가로수길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메인 골목카지노 게임 사이트 벗어난 위치였고 단독 건물도 아니었으며 어김없이 주변에는 빌라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이제는, 회사의 규모나 위치에 당황할 시기는 지나 있었다.건물 1층카지노 게임 사이트 덤덤하게 지난주 걸려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면접 일정을 조율했던 중년 남성은 예상대로 디자인 21의 대표님이었다. 대표님은 사무실에 들어선 나를 본인 방으로 안내하고는 기획팀과 디자인팀을 총괄하는 박 실장님을 불러왔다. 면접 내용은 다소 평이했다. 이전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디자인 21에서 정기적으로 만드는 사보의 종류와 각종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대표님과 박 실장님은 앉은자리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마음에 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달리는 차 안카지노 게임 사이트 면접을 봤던 이전 경험과 비교하면 ‘나이스’했다. 대뜸 술을 좋아하느냐는 대표님의 질문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이전 직장카지노 게임 사이트 연봉은 얼마나 받았어요?”
“2,500만 원이었습니다.”
“희망하는 연봉은요?”
“2,600만 원 이상만 주시면 됩니다(웃음).”
잡지라는 책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 컸다. 생각도 짧았는데, 연봉이 단순히 통장에 꽂히는 금액을 넘어 본인을 증명하는 가치라는 중요한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다음 주 월요일로 출근 날짜가 정해졌다. 대표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내 직급을 ‘대리’로 지정했다. 직무는 에디터였지만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매출을 일으키는 만큼 디자인 21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구시대적인 호칭을 사용했다. 면접이 끝나고 자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어났다. 사무실 입구카지노 게임 사이트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는 데 반대쪽 공간카지노 게임 사이트 일하고 있는 디자인팀과 기획팀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합해서 족히 열 명은 돼 보였다. 흡족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모터매거진보다는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회사겠구나.”
디자인 21은 사보와 기업 홍보물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디자인 회사다. 정기간행물로는 현대자동차그룹 사외보 <모터스라인을 필두로 기아자동차 <기아월드, 현대제철 <푸른 연금술사, 현대글로비스 <GLOVIS+, 현대자동차 상용차 <Blue Partners, 대상그룹 <기분 좋은 만남등을 제작했다. 또 비정기간행물로는 현대자동차그룹 연구개발본부(남양연구소)에서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만든 차종별 <R&D 스토리를 제작했으며 기업 사사社史와 브로슈어, 애뉴얼 리포트와 같은 단발성 프로젝트와 인쇄물 제작도 많았다. 기획과 디자인이 필요한 기업의 모든 인쇄물을 제작한다는 사실에 디자인 21의 기치가 담겨있었다.
매체별 중요도를 따지자면 <모터스라인이 으뜸이었다. <모터스라인은 매달 정직하게 10만 부가 찍혀 현대자동차그룹 직원 가정에 발송되는 잡지였다. 디자인 21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밥줄’이자 사업의 근간이었다. 기획팀과 디자인팀 할 것 없이 <모터스라인에 모든 인원이 참여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디자인 21에서는 매체에 배당된 인원수가 곧 매체별 중요성을 나타냈다. 나 역시 매달 <모터스라인 제작에 달라붙었다. 대상그룹 격월간 사외보 <기분 좋은 만남도 병행해 도맡았다. 도맡았다고 표현한 건 단순히 콘텐츠 만드는 일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에서 이뤄지는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디자인 기획과 인쇄 전반을 넘어 발송까지, 매체 한 권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담당했다. 요즘 말로 PM 역할도 한 셈이었다.
<모터스라인은 디자인 21에서 일하는 모두가 애증하는 매체였다. 기업이 내세우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보에 그치지 않았다. 매달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트렌디한 주제를 선정하고, 해당 주제로 전체 콘텐츠를 풀어냈다. 100페이지짜리 ‘무크Mook 지’ 그 자체였다.모기업이 자동차 회사인 그룹의 책이기에 앞쪽에 실렸던 신차 소개 콘텐츠를 포함해 모든 페이지에 기획이 들어가야 했다. 2017년 <모터스라인은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고, 각각의 섹션마다 세부 주제가 있었다. 매달 초 기획회의에 앞서 진행되는 주제 선정 논의 과정부터가 고역이었다. 하나의 대주제가 결정되면, 해당 주제로 파생되는 세 가지 소주제를 선정하고 섹션별로 적합한 콘텐츠를 구상해야 했다. 한 꼭지도 허투루 기획되는 법이 없었다.
“봉 대리, 그건 지난달이랑 너무 겹치는 주제야.”
“서 팀장? 5일인데 1차 기획안도 완성 못하면 어떡해!”
“임 차장님, 너무 올드한 기획만 가져오신다~”
“미정 대리 아니 미정 과장. 까먹지 말고 그룹사 참여 칼럼 챙겨야 해.”
“소현 대리, 이따 회의할 땐 북마크 섹션에 들어갈 내용 다 채워올 거죠?”
박 실장님의 진두지휘 아래 기획팀은 말 그대로 기획안을 쥐어짜냈다. ‘비움의 미학’이 주제인 달에는 비움으로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법정 스님과 르코르뷔지에, 곤도 마리에 소개 칼럼을 기획하고, ‘초록빛 생기’가 주제인 달에는 슬로우파마씨 이구름·정우성 대표와 초록색 식물이 삶에 선사하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칼럼을 기획하는 식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디자인 21 내부에서 기획안을 완성하면 현대자동차 폰트를 사용해 PPT로 정리한 다음, 그룹사 홍보 담당자들과 한데 모인 자리에서 기획안을 발표했다. 편집 회의는 주로 디자인 21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기획팀은 싫었지만 담당자들은 <모터스라인 회의가 있는 날을 의외로 좋아했다. 디자인 21이 아직 ‘핫플레이스’로 기능하던 가로수길에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도 디자인 21에서 대접했다.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등 그룹사 담당자들이 들고 온 소식 중 해당 호 주제와 엮을 만한 아이템이 있으면 반영해 기획안을 보강했다. 단, 모든 아이템을 반영하진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됐다. <모터스라인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외보인 만큼 아이템은 철저하게 그룹사 서열별 중요도를 가름해 선별적으로 반영했다. 그룹사 서열에 따라 책 제작에 부담하는 비용도 달랐다. 의욕이 넘치는 현대로템 담당자가 자사 뉴스를 싣고 싶은데 현대모비스 담당자도 마찬가지이고 지면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그룹사 서열이 월등히 높은 현대모비스가 우선순위를 가졌다. <모터스라인 편집 회의의 묘미는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그룹사 담당자들 간의 알력을 살피는 재미에 있었다.
그렇게 한 차례 더 기획안을 보강한 다음 <모터스라인을 책임지는 현대기아차 담당자가 내부에서 임원에게 보고했다. 컨펌을 마치고 디자인 21에 도착한 기획안이 ‘최최최종’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콘텐츠 제작이 시작됐다. <모터스라인 기획이 완성되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은 마치 특수부대 훈련 과정에 포함되는 ‘지옥 주’와 다름없었다.기획팀에서는 이 기간에도 각자 담당하는 매체별 콘텐츠를 제작해야 했으니까. 박 실장님은 현대제철 사보를, 서 팀장님은 현대글로비스 사보를, 소현 대리는 기아자동차 사보를, 나는 대상그룹 사외보를 <모터스라인과 함께 만들었다. 디자인 21에 처음 출근했던 한 주를 제외하고는 야근하지 않은 날이 손에 꼽혔다.
모든 선배가 퇴사한 <모터매거진에서 매달 20 꼭지의 기사를 몇 달간 쳐냈을 때의 모습을 발견했다. 디자인 21에서도 넉 달쯤 지나고 보니 콘텐츠 기획 실력이 월등히 향상됐음을 느꼈다. 처음엔 부담스럽기만 하던 <모터스라인 기획 회의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매체의 수많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했으며, 서너 명의 클라이언트와 논의하고 발행 전반의 과정을 기계처럼 챙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콘텐츠 기획을 넘어 책 한 권의 주제를 설정하고 주제에 맞춰 제작해야 할 콘텐츠별 균형까지 조절하는 역량을 디자인 21에서 쌓았다.
빠르게 기획 실력을 키울 수 있었던 데는 박 실장님의 지분도 컸다. 책상은 기획팀에 두고 있었지만 박 실장님은 최종 승인자로서 매체별 모든 콘텐츠의 기획과 진행 과정과 디자인 디렉팅을 책임졌다. 남자처럼 매일 손질이 필요한 ‘숏컷’을 택한 헤어 스타일 만큼이나 기획에도 좀처럼 깐깐한 게 아니었다. 고집스럽고 디테일하며 집요했다. 디자인 21에서 제작된 콘텐츠의 수준이 높았던 건 모두가 박 실장님 기준에 따르는 어려움을 견뎌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실장님 등쌀에 못 이겨 울면서 퇴사한 직원이 기획팀과 디자인팀을 구분할 것 없이 ‘한 트럭’이란 것도 문제라면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봉 대리, 그랜저 촬영해 온 컷 중카지노 게임 사이트 벚꽃 앞카지노 게임 사이트 찍은 건 메인으로 쓰지 마.”
“디자인팀카지노 게임 사이트 벌써 메인으로 디자인 잡았던데요?”
“5월 호에 벚꽃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 컷이 가장 이쁘긴 합니다.”
“디자인 다시 잡으라고 해.”
“네...”
“아니다 내가 디자인팀에 가서 직접 보면서 얘기할게.”
“봉 대리, 청년 전통시장 리스트업 끝났어?”
“구로 시장 영프라자, 연남동 동진시장, 신당동 중앙시장 이렇게 세 곳입니다.”
“광주 송정역 시장도 넣어주세요.”
“거긴 서울이 아니라 광주인데요?”
“작년에 현대카드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니까 작게 박스로라도 넣자.”
“봉 대리, 이번 <기분 좋은 만남 여행 칼럼 작가 섭외는 끝났지?
“최승하 작가 원고는 이번 주말까지 전달받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작가가 일러스트도 그릴 수 있다고 했었지?”
“인스타그램에 본인이 그린 일러스트를 올려놓긴 했습니다. 전문적으로 그리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자전거 타면서 여행하는 작가니까, 연락해서 혹시 이미지 위에 자전거 일러스트를 그려줄 수 있는지 물어봐봐. 비용 얘기하면 나한테 다시 말하고.”
기아자동차 특수마케팅팀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던 군사용 차세대 소형전술차 매거진,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의뢰를 받아 제작했던 <R&D 스토리, 분기별로 발행했던 현대자동차 상용차 사업부의 <Blue Parters도 내가 담당한 업무였다. 모든 매체가 그랬지만 <R&D 스토리 제작은 난도가 유독 높았다. 한 권짜리 단발성 매체였지만 분량이 많았고 새로 출시된 신차에 적용된 기술을 비전문가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내야 했다. 나름대로 자동차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전문지 출신이라는 근거에 기대 쉽게 생각하고 덤볐다가 큰코다쳤다. ‘진짜 전문가’인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자동차 기술’은 그때까지 내가 알고 지냈던 자동차 기술과는 결이 달랐다.
<R&D 스토리 i30 N 편을 만들면서 콘텐츠 에디터로 갖춰야 할 기본을 터득했다. i30 N은 현대자동차 고성능 브랜드의 출범을 알린 첫 번째 차종이다. 새롭게 적용된 특화 기술이 많았고 개발 배경도 남달랐다. 당시 남양연구소에서 기술 홍보를 담당했던 전은혜 책임 매니저와 함께 i30 N 개발 전반을 책임진 PM과 엔진, 섀시, 조향, 디자인, 배기라는 특화 성능을 설명해 줄 각각의 담당 연구원을 인터뷰했다. 인터뷰가 곧 콘텐츠의 토대였는데, 인터뷰 녹취 파일을 텍스트로 옮겨 적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연구원들은 사용하는 언어부터 일반인과 달랐기 때문이다.처음 듣는 공학 용어부터 업계 안카지노 게임 사이트만 통용되는 표현 방식까지 문과생으로서는 처음 들어본 ‘외계어’가 즐비했다.
대충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연구원들이 설명한 모든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로 원고를 작성하고 싶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콘텐츠를 만들면 독자 역시 이해시킬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공학 자료와 논문을 검색하고 몇 날 며칠 동안 유튜브를 뒤졌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인터뷰한 연구원에게 현대자동차그룹 메신저로 질문을 퍼부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지, 작동 원리가 이게 맞는지 묻고 또 물었다. 편집 디자인 작업 전에 직접 작성한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판단되는 이미지만 고심해서 디자인팀에 전달했고, 부족한 이미지는 현대자동차 유럽연구소 촬영본을 직접 찾아 사용했다. 내지 레이아웃부터 커버 디자인까지 모든 페이지를 일일이 챙겼다. 디자인을 담당했던 팀장님이 귀찮아했을 정도로.
“대리님, 정말 고생하셨어요”
“책임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반응은 좀 괜찮나요?”
“인터뷰해 주신 연구원분들도 그렇고 다른 연구원분들도 ‘이거 누가 작성했냐며’ 물어보시더라고요. 유럽 연구소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영어와 다른 유럽 언어로도 번역해서 보내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고요.”
“그런데 따로 제작한 실물 책은 진짜로 정의선 부회장님 책상에 올라간 거예요?”
“그럼요. 정 부회장님이 N 브랜드에 관심이 많으신데 아직 아무런 얘기도 안 나온 거 보면 만족하셨나 봐요(웃음).”
<R&D 스토리 i30 N 편 제작에는 무려 네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 시작할 땐 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각각의 특화 기술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반성할 부분이지만, 이 지점에 중요한 가치가 숨어 있었다.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자신 있게 꺼내 놓을 콘텐츠를 완성하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다. 유야무야 만든 콘텐츠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어떤 인물을 인터뷰하든, 어떤 물건을 소개하든, 어떤 문화와 현상을 들여다보든 피처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 가장 먼저, 충분히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토대로 디자인 21에서 제작하지만 판매되지는 않는, 오프라인 지면 콘텐츠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디자인 21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행한 모든 업무는 대행 업무였다. 클라이언트마다 요구하는 사항과 애티튜드도 천차만별이었다. "권 과장님, 지금 저희 거 말고 다른 업무 보시는 거예요? 저희가 그러라고 돈주도 맡기는 게 아니잖아요!"라며 가감없이 무례함을 드러내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 어떨 땐 대행이라는 두 글자에 뒤따르는 지난함 때문에 업무를 끝내고서 만족감보다 해방감을 더 강하게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기계가 되는 건 그래서 늘 경계해야 했다.원하는 코스만 선택하면 깨끗한 빨래를 내어 놓는 세탁기처럼, 어떤 클라이언트가 어떤 콘텐츠 제작을 원하든 그 입맛에 맞춰 기계처럼 콘텐츠를 내어놓는 건 의식하며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매체가 많은 만큼 서로 다른 마감이 연달아 이어지다 보면 기계처럼 일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은 <모터스라인과 격월간 <기분 좋은 만남의 마감 일정이 겹쳤고, <R&D 스토리나 소형 전술차 매거진 같은 불규칙한 콘텐츠 제작도 수시로 진행했다. 디자인 21에서는 윤문이나 교정·교열을 담당해주는 분도 따로 쓰지 않았다. <모터스라인만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최소 대여섯번이나 돌려 봤는데, 여기에 각자 담당하는 매체의 교정·교열까지 서로 돌려보기 시작하면 텍스트에 파묻히기 일쑤였다.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고 머리카락이 ‘떡’이 져야만 집에 가는 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뭐랄까, 콘텐츠 기획에 도가 트이긴 트였는데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도 트이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