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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뽕 Apr 07. 2025

카지노 게임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 감독님, 그땐 맞고 카지노 게임이 틀린 게 아니고요?

콘텐츠를 만든 지 햇수로 10년. 2015년 라이선스 자동차 매거진 <모터트렌드 인턴 에디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14년에 창간 준비 중이던 매거진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이 짧게 있지만) 2025년인 지금까지도 ‘에디터’, ‘자동차 매거진 에디터’, ‘브랜드 콘텐츠 에디터’, ‘디지털 콘텐츠 마케터’, ‘프로젝트 매니저’, ‘콘텐츠 마케터’로 명함에 적힌 직무는 변화해 왔어도 본질에는 변함이 없었다.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로 소통해 왔다는 사실 말이다.


2015년이면 길과 노홍철의 하차로 위기설이 돌았어도 <무한도전이 여전히 감이 살아 있던 현역이었으며 <1박 2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나영석 PD가 KBS를 떠나 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내놓은 지도 2년이 지난 시점이다. 브루노 마스가 피처링한 마크 론슨의 ‘업타운 펑크Uptown funk’가 같은 해 봄까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라 있었다. 이적이 커버한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시리즈의 마지막 <응답하라 1988 방영이 같은 해 겨울 시작됐다.


매거진 에디터로 콘텐츠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5년이지만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든 시기는 5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까까머리를 하고 아직도 눈앞이 깜깜한 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던 시절. 군대에서 일병이 되기만을 고대하던 2010년 초였다. 당시의 장면을 떠올리면 칙칙하고 흐릿하기만 한데 카지노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장면만큼은 컬러풀하고 또렷하다.


내가 속한 2소대 1분대 생활관은 8명이 침대에서 생활했다. 분대의 최고참이자 ‘말년 모드’ 돌입을 앞둔 이민호 병장은 늘 카지노 게임를 들고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다. 화장실에서 몰래 야한 사진을 봤던 건 아니다. (물론 그랬던 적도 한두 번 있겠지만) 어떻게 확신하느냐면 매번 들고 가는 카지노 게임의 종류가 달랐기 때문이다. 배설하는 잠깐의 순간에도 심심함을 참기 힘든 말년의 고통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카지노 게임요즘보다 여성의 신체가 주는 자극은 덜했지만, 피식 웃게 만드는 '병맛'은 그때도 일품이었다.


어떤 땐 <자동차생활, 어떤 땐 <GQ, 어떤 땐 <씨네 21, 어떤 땐 <맨즈헬스를 들고 갔다. 가끔은 당시 군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던 <맥심을 들고 갈 때도 있었다. 정가은이 표지 모델인 <맥심을 들고 가던 이민호 병장의 모습이 생생하다. ‘애완남’을 키우는 콘셉트의 케이블 예능 <나는 펫에 정가은이 출연한 걸 알고 있었다. 훨씬 더 노골적인 <스파크를 들고 가는 건 결코 본 적이 없다.


이민호 병장은 ‘왕고’인데도 꽤나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본인 침상 옆 TV 장 문을 열고 카지노 게임를 꺼내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카지노 게임를 넣어 놓기를 같은 시간에 반복했다. 보고 난 카지노 게임를 본인 관물대에 넣거나 침상에 던져 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민호 병장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힐끗 보이는 TV 장 안에는, 위아래 두 단으로 나뉜 칸에 앞뒤로 두 줄씩이나 카지노 게임가 가득했다. 남성 패션지와 여성지도 몇 권, 자동차 카지노 게임, 영화 카지노 게임, 테크 카지노 게임 등 다양한 카지노 게임가 빼곡히도 꽂혀 있었다.이민호 병장은 매번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단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나는 일과가 끝난 시간이나 주말에 짬이 생겼을 때 여간 심심한 게 아니었다. 군필자라면 이등병, 일병 때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들 하겠지만 우리 부대는 실탄을 들고 DMZ로 작전을 나가는 부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할 일만 제때 끝내면 계급이 낮아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우리 중대만큼은 당구를 쳐도 됐고 막사 뒤편의 낡은 건물에 마련된 노래방에 갈 수도 있었다. 문득 주말의 남는 시간에 뭘 할지 고민하다 TV 장 안의 카지노 게임가 떠올랐다.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던 이민호 병장에게 물었다.


“이민호 병장님. 혹시 TV 다이(장) 안에 있는 카지노 게임, 저도 좀 봐도 되겠습니까.”

“응 봐, 내 거 아니야. 나같이 전역만 기다리던 양반들이 사다 놓은 건데 보고 싶음 봐. 보고 나서 정리만 잘해 놓고. 그런데 <맥심 같은 건 화장실에 들고 가다 걸리면 애들이 놀린다(웃음).”


처음엔 연예인 화보나 자동차 사진만 대충 넘겨봤지만 점점 관심이 가는 칼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에디터가 어떤 유의 칼럼을 담당하는지도 파악됐다. 흥미가 생기니 생활관에 있던 카지노 게임를 한 권도 빠짐없이 전부 봐버렸다. 더 이상 볼 카지노 게임가 없어졌다. 그래서 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모든 카지노 게임에 적힌 모든 글자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시 읽기 시작했다.판권, 목차, 광고에 적힌 글자까지 몽땅.


예를 들어 까르띠에 시계 광고가 카지노 게임에 실렸다면 지면 하단 귀퉁이에 지점 명과 연락처가 적혀있기 마련인데 그런 글자까지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는 얘기다. 다들 족구니 축구니 당구니 탁구니 노래방이니, 혹은 몸을 만들겠다며 체력 단련으로 열심히 땀 냄새 풍기던 시간에 나는 카지노 게임를 읽었다. 생활관에 있던 90권 정도 되는 카지노 게임를 짬이 날 때 다시 읽기 시작해 샅샅이 완독하는 데 5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카지노 게임는 잡다하다. 책의 성격에 따라 수집하고 기록해 놓은 잡다한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사전적 의미로도 ‘섞일 잡雜’과 ‘기록할 지誌’가 합쳐진 단어가 바로 카지노 게임다. 흙냄새, 소똥 냄새, 개고기 장수가 털을 태우는 지독한 냄새가 떠오르는 38선 근처의 연천 군생활에서 잡다한 이야기를 접하기로는 카지노 게임만 한 매체가 없었다.당시에는 사병이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도 없었다. 소지할 수 있었다고 한들 스마트폰도 이제 막 KT에서 아이폰 3GS 모델을 출시한 게 처음이었다. 2009년, 2010년, 전역하던 2011년까지도 카지노 게임과 같은 스마트폰의 무한한 앱 활용성이나 통신 속도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였다.


카지노 게임생활관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발간된 카지노 게임 중에서도 남성지가 유독 많았다.


군 생활에서 이야기를 접할 방법은 세 가지였다.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국방부에서 ‘피씨방’ 대신 공식 명칭으로 지정한 사이버지식정보방, 줄임말인 ‘사지방’에 가거나. 나는 카지노 게임 읽는 방법을 택했다. 다 함께 보는 TV와 달리 혼자 보며 생각하고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선택했지만, 공놀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아직 계급이 낮은 터라 TV 채널 선택권이 없기도 했다.


제대로 읽기 시작한 카지노 게임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정보의 바다였다. 구닥다리 표현이지만 당시의 카지노 게임는 내게 ‘바다’란 말이 아니고는 표현될 수 없는 세계였다.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났고 그 ‘거리’들은 단단히 벼린 날 선 시선과 관점으로 무장하고 있었다.카지노 게임는 무색무취의 신도시에서 자란 사람에게 형형색색의 대도시에 처음 들어선 듯한 감동을 선물했다.


한 예로 당시 또래의 남자들은 으레 자동차를 좋아했지만 이유를 들어보면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빨라서’, ‘멋져서’, ‘출력이 높아서’, ‘비싸서’, ‘수입차라서’와 같은 0차원적인 이유가 전부였지만 카지노 게임는 달랐다. 해당 모델의 세대별 헤리티지를 소개하기도 하고 출력이 왜 200마력이면 충분한지도, 어떤 모델과 비교해 우위와 열위를 차지하는지도 차의 성격에 근거해 독자를 설득했다. 칼럼의 중심을 잡는 명확한 관점은 독자를 이해시킬 만큼 타당했다.모든 이미지 역시 포토 저널리즘이나 화보에 문외한인 그때의 내가 봐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해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치열히 고민한 결과였다.


버버리, 폴스미스, 루이 비통, 프라다가 소위 명품 패션 브랜드의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려주었다. 슈트용 셔츠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의복의 TPO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과외처럼 수업해 주었고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면 착장을 고민할 때 신발부터 고른다는 색다른 관점의 ‘썰’도 풀어주었다. 또 수많은 인터뷰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를, 시의성을 반영한 피처 칼럼들은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어떤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책과 음반으로는 무엇이 있으며 그 근거가 무엇인지도. 그때 카지노 게임를 통해 새롭게 얻은 상식과 정보와 이야기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누군가 카지노 게임가 뭐가 그렇게 좋았으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물을 때면 2017년에 이력서를 새롭게 만들며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내용을 떠올린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에디터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카지노 게임가 좋았던 이유를 들어 설명해 놓았다.


… 카지노 게임엔 즐거움부터 효용성까지 두루 담겨 있었습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은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알아두면 좋을 인사이트부터 개인의 취향과 관점을 다채롭게 채워 줄 이야기가 가득했으니까요. 어떤 매체에서 정치인을 꿈꾸는 안철수 박사, 진실에 목숨을 거는 주진우 기자, 자본주의의 본질적 성장을 바라는 장하성 교수, 복수심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천명관 작가를 연달아 인터뷰할 수 있을까. 에르메스와 샤넬이 지닌 헤리티지를 논하고, 배우 하정우에게 해밀턴 시계를 채우면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젊은 세대가 느끼는 무력감을 공유할 수 있을까. 또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의 섹스 이야기와 이번 달 출시된 가장 핫한 테크 제품과 뷰티 제품은 물론 포르쉐의 새로운 911 모델의 세세한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잡다한 이야기를 당위 있게 기록한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싶었습니다. 카지노 게임 속 글에는 깊은 생각이, 이미지에는 주제를 표현하고 시선을 사로잡을 기술이, 편집에는 글과 이미지를 오롯이 전달하고픈 고민이 녹아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


대체로 20대 초반의 장병들은 경험의 폭이 넓지 않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대학교에 입학해 1년 남짓한 시절을 보낸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성인이 되고 입대하기까지 술이나 마실 줄만 알았지 다채로운 경험을 해본 이들이 많을 리 없다. 그럴 시간과 돈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취향은 돈과 시간과 노력 혹은 정성의 합으로만 완성된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자신만의 온전한 취향이라 결코 말할 수 없다.카지노 게임는 그런 남자 중 하나였던 내게 좋은 취향이란 무엇이며 어떤 걸 좋은 취향이라 부를 수 있는지, 자신만의 취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어렴풋이 일깨워 주었다. 마치 외국에서 잠시 귀국한 삼촌이나 이모에게서 풍기는 아우라가 속삭이듯이.


카지노 게임에 실린 패션⋅가구⋅자동차⋅시계⋅테크 화보와 시사⋅정치⋅인문⋅건축⋅공간과 관련된 피처 칼럼 그리고 인터뷰 대화에는 좋은 취향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도록 훈련된 에디터들 고유의 안목이 녹아 있었다. 그 안목들로 편집된 칼럼을 보고 읽으며 얕은 지식으로 공감도 하고 비판도 했다.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게 어떤 건지 셈을 했고 나름대로 얻어낸 결과 값은 카지노 게임의 커리어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아무래도 내 취향의 읽을 거리는 남성지에 많았다. 3대 남성지로 불리던 <에스콰이어, <GQ, <아레나를 전역할 때까지 매달 구입해서 읽었다. 20일쯤이면 사지방으로 달려갔다. 인터파크 도서 사이트에서 무통장 입금 방식으로 주문한 뒤 콜렉트콜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기구독이 나았을 것 같지만) 대신 입금해 달라고. PX에서 군것질만 하기에도 당시 병사 월급은 짜디짜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선의 묘책이었다.


매달 말일이면 그렇게 주문한 세 권의 카지노 게임가 부대로 배송 오기만을 기다렸다. 카지노 게임뿐만 아니라 단행본도 주문해 읽었다. 지금도 방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모중석 미스터리클럽 25번째 작품인 짐 브라운 ≪24시간 7일≫, 맷 데이먼 주연 영화의 원작인 존 그리샴 ≪레인메이커≫,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처≫ 모두 에디터 추천을 보고 구입해 읽은 책들이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내겐,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삶의 연료이자 땔감이었다.


카지노 게임왜 시답잖은 책이라고, 그 시절 고등학교 선생님은 평가 절하하며 핀잔을 줬을까?


흥미를 가지면 갈구한다는 특성은 나란 사람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편이다.16살이던 2005년 아이팟 나노를 구입하며 소위 ‘앱등이’가 됐다. MP3 플레이어라고는 삼각형 모양의 아이리버 제품과 삼성에서 출시한 옙YEPP이라는 제품만 봐왔던 내게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동전 주머니에서 마술처럼 꺼낸 아이팟 나노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의 만듦새가 어떻게,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매일 같이 들고 다녔다. 감탄하며 사용하다 궁금해졌다. 이걸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으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 그런 생각을 갖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가 나오기 전까지 잡스의 일대기를 다룬 대표적인 책 ≪iCon 스티브 잡스와≫ ‘그는 어떻게 청중을 설득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학교에 들고 다니며 읽었다. 사회과목 선생님이 “넌 무슨 이런 시답잖은 책을 읽냐?”라며 핀잔을 줬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만큼 인물과 사물과 현상의 이면에 담긴 맥락을 좋아했기에 카지노 게임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자연스럽게 에디터들을 향한 팬심도 생겼다. <GQ에선 이충걸 편집장과 장우철 피처 디렉터와 손기은 에디터를 흠모했다. 이충걸 편집장은 아직 삶의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알 듯 말 듯한 비유와 은유로 무장한 에디터스 레터를 통해 삶의 이상향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장우철 디렉터는 멜랑꼴리하면서도 순수한 시선을 빌려주었고 손기은 에디터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은 삶의 요소인지를 ‘자근자근’ 설명해 주었다.


<에스콰이어에선 카지노 게임 ‘박스까남’이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신동헌 에디터<스타일 나라에서 온 엘리스를 출간했을 정도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던져냈던 심정희 패션 디렉터가 좋았다. 신동헌 에디터는 남자라면 한 번쯤 가져야만 할 것 같은 물건들을 매일 밤 군인 머릿속에 아른거리게 만들었다. 심정희 디렉터는 지금은 브랜드 눈치 때문에 찾아보기 힘든 패션 비평도 거침없이 썼고, 어떤 스타일의 남성이 매력적인지 직선적으로 충고해 주는 사촌 누나 같았다. <아레나에선 다분히 반항적이지만 오그라드는 이야기도 매력적으로 펼쳐 놓는 이우성 에디터가 좋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찌질해’ 보이는 이야기도 당당하게 써내려 가는 걸 보면 한편으로 비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역사 과목 선생님이 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잠깐 했었다. <반항하지마 영길이와 같은.


그들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걸 넘어 그들과 같은 일, 매거진 에디터로 직접 일을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꿈틀댔다.어떤 칼럼은 감탄하며 읽기도, 어떤 칼럼은 ‘내가 써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또 어떤 칼럼은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도대체 신박해서 직접 그 과정을 들여다보고, 참여해보고 싶었다. 일본 만화책 ≪반항하지마(GTO)≫주인공 영길이처럼 자유분방한 선생님이 되는 막연한 상상 이후 처음 든 생각이었다. 무언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사지방을 들락이며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해 찾아봤다. 어떻게 해야, 어떤 과정을 거쳐야 매거진 에디터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에스콰이어와 <하퍼스 바자 한국판을 발행하던 가야미디어에서 ‘에디터 스쿨’을 진행한다는 걸 그때 알았고 매거진 에디터 지망생들을 위한 몇몇 소규모 클래스가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에디터는 어시스턴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면접 후기글도 읽었다. 다만 서점에 깔리는 카지노 게임는 많은 반면 카지노 게임사 홈페이지선 채용 공고를 단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어떻게든 방법은 생기겠지 싶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꿈이 생긴 사람은, 어디론가 달려갈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걸.전역할 때까지 만화처럼 머리 위에 노란 전구가 톡, 하고 켜져 있는 것만 같았다. 직접 경험하진 못했어도 흑백 TV 시절을 지나 컬러 TV 시절을 마주한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군 생활을 마치며 집으로 가져간 카지노 게임와 책만 사과 박스로 6개다. 양이 너무 많아 일부는 생활관에 두고 올 수밖에 없어 아쉬워했다.


가끔씩 힘든 순간마다 다른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때 꿨던 꿈을 부대에 남겨둔 채 사회로 나와 새로운 꿈을 꾸었다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한 생각.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누가 뭐래도 미키 7은 미키 1, 미키 반스의 선택으로부터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카지노 게임이 맞고 그때가 틀린지, 그때가 맞고 카지노 게임이 틀린지는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언제나낙장불입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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