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만 보고 달려왔던 나에게도
전역하고 민간인 대학생 신분을 획득했다. 대학생으로 선택한 학사 학위는 호텔경영학이었지만 사실 뜻은 없었다. 23년 인생 최초로 생긴 목표가 더 중요했다. 에디터가 되는 방법은 여전히 아리송했지만 매거진이라는 미디어 산업에 그저 관심을 기울였다. 매달 출간된 잡지 4~5종을 두세 번씩 골몰해 읽으며 세상의 온갖 분야에 안테나를 세웠다. 대학생의 시선에서 잡지의 본질이 잡다한 카지노 가입 쿠폰기를 재미있게 다루는 데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들보다 다방면으로 더 많이 아는 게 첫 번째라고, 그때는 생각했다.빈약하게 세운 야심 찬 계획이었다. 더위가 꺾인 2011년이었다.
두꺼운 잡지를 가방에 매일 챙겨 다녔다. 그만큼 잡지가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인 의지의 표현이기도 카지노 가입 쿠폰.학교에 갈 때도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심지어 명절에 큰집에 갈 때도 가지고 다니며 읽었다. 지금과 달리 잡지도 제법 두꺼웠다. LTE 도입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가속화되던 시점이었지만, 아직 매거진이 브랜드와 대등하거나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였다. 당시 잡지는 과장을 조금 보태 두 권만 포개면 베개로 써도 문제없었다. 크로스백이나 토트백을 즐겨 맸던 한쪽 어깨가 늘 결렸던 이유였다.
작정하고 잡지 속 영화 칼럼에 소개된 영화를 챙겨봤다. 인터뷰한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도 찾아봤다. 인터뷰한 인물이 출간한 책이 있다면 구입해 읽었고 주목해야 할 새로운 식당으로 소개된 곳은 방문해서 메뉴를 주문했다. 또 건축 칼럼에서 다룬 건축물을 직접 보러 서울을 쏘다녔다. 비평의 대상이 된 전시를 보러 미술관 티켓을 끊었다. 관심있던 몇몇 테크 화보 속 제품들은 여건이 되는 선에서 직접 구입해 사용하기도 했다. 경험한 뒤엔 항상 여러 번 곱씹으며 에디터들의 주장과 비교했다. 무릎을 칠 때도, 한숨을 쉴 때도 있었지만반복할수록 꼬리를 물며 관심 분야가 넓어졌다. 내 방식대로 마인드맵을 그려 나갔다.
피처 칼럼의 재미에는 갈수록 깊게 빠져들었는데 은유와 비유, 인용에서 스토리텔링을 제외한 피처 칼럼의 또 다른 재미를 발견카지노 가입 쿠폰. 은유와 비유 없이 선명한 글이란 건 성립할 수 없는 명제이며 일체의 인용 없이 명쾌한 주장을 펼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글에 사용된 은유와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서 글쓴이가 보조관념을 끌어온 사유를 유추하려 부단히도 노력카지노 가입 쿠폰. 노력의 과정이 곧 ‘읽는’ 행위가 주는 재미였다. 인용된 책이나 자료는 한 번씩은 검색해 봤고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내용인지 꼭 확인카지노 가입 쿠폰. 관심 가는 책은 항상 구입해 읽었다. 방안에 책이 쌓여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지는 걸 느꼈다.좁디좁았던 신도시 사람의 이해의 폭은 그렇게 확장되기 시작카지노 가입 쿠폰.
2013년부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떤 잡지가 가장 재미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에스콰이어라고 답했다.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종종 이름을 올렸던 신기주 에디터가 <에스콰이어에 합류했고 급속도로 배당 점유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 경영, 경제, 시사, 정치 그리고 섹스 칼럼까지. 고정 피처 칼럼 바이라인Byline 대부분에 신기주 에디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획안을 내고 편집장으로부터 배당을 받아본 경험이 전무했던 당시의 나로서도 매달 그 많은 기사를 혼자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꼭지’가 많아도 정말 많았다. 이걸 다 혼자 작성했는지 괜히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주제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평가해서 자기 관점을 독자에게 관철시키기 위한 신기주 에디터의 논리 전개 방식과 속도는 가히 압도적이었다.다방면에 어찌 그리 통달했는지 부러웠다. 사실보다 사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핵심이고 사실과 사실 사이의 행간에 깃든 맥락이 더 중요하다.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왜’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 신기주 에디터의 칼럼을 통해 깨달았던 피처 콘텐츠 제작의 금과옥조다.
요즘과 다르게 예전 잡지에는 불필요한 접속사와 쉼표와 be 동사와 ‘하는 것’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늘어지는 칼럼이 의외로 많았다. 만연체 때문에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기주 에디터는 반대였다. 팩트를 수집한 뒤 각각의 팩트를 단문으로 이어 붙여 속도감을 부여했다.형용사나 부사와 같은 불필요한 주관적 요소를 극도로 절제해 흡입력이 강했고 이해 또한 한결 수월했다. 육하원칙의 스트레이트 신문 기사와 달리 서사를 강조해흥미로웠다. 남성지 안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단문을 먼저 다룰 수 있어야 문장을 자유자재로 늘이고 줄이면서 글 전체의 흐름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사실과, 접속사를 많이 쓰면 문장이 지저분해지고 문단이 구차해지며 결과적으로 글의 논점이 흐려진다는 사실을 이때 신기주 에디터의 글을 통해 배웠다.
매달 <에스콰이어를 읽으며 신기주 에디터는 왜 해당 주제를 선택했는지, 주제를 왜 그런 식으로 풀어냈는지, 어떤 방식으로 주장을 펼쳐 나가는지 뜯어보며 분석했다. 피처 에디터가 되고 싶었고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었다. 슈퍼맨과 배트맨을 보며 선망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철부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팬심을 넘어섰다. 그때부터 롤모델은 신기주 에디터였다.
우리는, 꿈을 착취당한다. 우리가 같은 꿈만 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화된 꿈만 꾸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꿈으로 삼는다는 건 산업 구조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그 기능을 배우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더 비극적인 건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그런 기능을 습득했는데도 사회가 그의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다. 꿈조차도 수요와 공급곡선을 따른다. 사회는 우리에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꿈을 심어주려고 든다. 그런 꿈을 꾸는 순간 노예가 된다. 모두가 같은 꿈만 꾼다. 하지만 진짜 꿈을 꿀 수는 없다. 이젠 자본주의적인 꿈에서 깨어날 때도 됐다. 노예가 될지 별종이 될지는 꿈에 달렸다.
신기주 사회비평 칼럼집 <우리는 왜?
- ‘우리는 왜 꿈을 착취당하는가’ 중에서
화보 역시 다른 의미로 재미있었다. 사진의 톤에도, 인물의 표정과 손짓에도, 제품의 배경과 조명 각도에도 의도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어려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카지노 가입 쿠폰. 한 잔은 리필이 되는 카페나라에서 매일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죽치고 앉아 사진을 전공하던 친구 용선이에게 물었다. “내가 생각한 화보의 의도는 이런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명쾌한 답이 나올 리 없는 질문을 열심히도 퍼부었다.모든 칼럼에 사진이나 일러스트나 그래픽이 필수로 삽입될 만큼 잡지에서 이미지는 필수적이다. 당시에는 이를 언어를 사용해 분명히 설명할 순 없었지만, 화보와 더불어 각각의 이미지에 담긴 의도를 고민해 보는 것 역시 잡지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래서 피처 에디터라면 글을 잘 쓰는 것도, 폭넓은 관심 분야로 다방면에 유식한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잡지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각인시키려 노력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카지노 가입 쿠폰기, 즉 콘텐츠가 될 만한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어떻게 해야 독자에게 들여다본 맥락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나아가 질문의 답을 실현할 다양하고 적절한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어떤 피처 콘텐츠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방구석 전문가로 혼자서 끙끙대던 중 희소식을 발견했다. 지금도 유일하게 어시스턴트 모집 글이 올라오는 '에디터스'라는 네이버 카페에 ‘가야 스쿨 오브 매거진’ 모집 글이 등장했다. 옳다구나, 3년 전 군대에서 사지방을 들락이며 찾아낸 바로 그 '에디터 스쿨' 커리큘럼이었다. 이번엔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에서, <에스콰이어 편집장님 주도로 매주 수요일 저녁 3시간씩 15주간 진행되는 여정이었다. 수강료가 한 학기에 90만 원이었지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가야미디어의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까지 부여된다’는 말에 부담은 사라졌다.1학기 수강 신청이 시작되던 2014년 2월 어느 월요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곧장 신촌으로 향카지노 가입 쿠폰.
잡지를 좋아하고 에디터가 되고 싶은 친구들 50명이 3월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신촌에 모였다. 지금도 5명이 넘어가는 정신없는 자리는 되도록 피하지만 그때는 오히려 좋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한데 모일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했다. 쉬는 시간에 담배도 같이 태우고 강의 시작 전에 미리 도착한 친구들과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때 나눈 대화의 주제는 오직 잡지와 에디터와 콘텐츠였다.
한 번은 <GQ 장우철 피처 디렉터가 쓴 ‘나는 왜 라이언 맥긴리 전시에 가지 않은가’라는 칼럼이 화두였다. 대림미술관에서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란 이름으로 열린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이 대중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도배하던 때였다. 전시를 관람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행위가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말이지만) ‘힙스터’임을 증명하고 ‘청춘’임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의례처럼 여겨졌다. 장우철 디렉터는 칼럼을 통해 그런 식으로 작품이 소비되는 세태를 비판적이지만 우아하게 직격했다. 더 재미있었던 건 다음 달 2월 호다. 경쟁지인 <아레나에 ‘나는 왜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에 갔는가’라는 이우성 에디터의 반박 칼럼이 실렸다. 이우성 에디터는 장우철 디렉터가 대중을 정의하는 견해를 논리로 비판했다.
글로, 주장과 논리를 무기로 싸우는 무협지였다. 지금으로 치면 마치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의 디스전을 보는 듯카지노 가입 쿠폰. 슈퍼볼 하프타임쇼로 장례식을 치르게 해 준 ‘낫 라이크 어스Not like us’가 발매되기 직전 상황이었다. 장우철 디렉터의 재반박은 없었지만 적어도 당시의 우리에겐 그랬다. 에디터 스쿨 친구들과 누구의 주장에 더 공감했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토론 아닌 토론도 했다. 개인적으론 이우성 에디터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장우철 디렉터에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GQ의 에디터라면 일견 엘리트주의도 내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수요일이면 도파민이 뿜어져 나왔다.고등학생 때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해 주며 공연을 보러 홍대에 다니던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에디터 스쿨 4기 커리큘럼은 가야미디어 김영철 회장님과 민희식 편집장님의 인사와 함께 국제언론통신사IPA 소속이던 김성희 기자님 강의로 포문을 열었다. 신문 방송 저널리즘과 매거진 저널리즘의 차이에 대한 이해부터,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실장님이 들려주는 업계 카지노 가입 쿠폰기와 포토그래퍼 오중석 실장님이 들려주는 모델 한혜진과의 화보 촬영 카지노 가입 쿠폰기, 지금은 소설가로도 활동 중인 브랜드 전문가 황의건 이사님이 들려주는 제이에스티나 브랜딩 카지노 가입 쿠폰기는 한마디도 놓칠 수 없었다. 고대하던 신기주 에디터의 강의도 커리큘럼에 있었다.
신기주 에디터는 미래교육원에 올 때 빨간색 미니 '쿠페'를 타고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옅은 노란색 렌즈로 된 안경을 착용했다. 페라리나 롤스로이스도, 징이 박힌 가죽 재킷도, 까맣게 ‘번떡’이는 레이벤 선글라스도 아니었지만 당시 내겐 록스타와 다름없었다.매거진 에디터라면 ‘ㅠ’자형 인간이어야 한다는 신기주 에디터의 카지노 가입 쿠폰기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ㅠ’ 모양에서 가로획은 다방면으로 많이 알아야 함을, 아래로 두 번 그어지는 세로획은 그중 최소 두 가지 정도는 자신만의 전문 분야로 더 깊게 알아야 함을 의미했다. 여전히 유효하다. 꼭 매거진 에디터가 아니어도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갖춰야 할 자질이다.
1학기 강의가 끝나갈 즈음 신기주 에디터가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칼럼을 써오라며 내준 과제에선 비록 ‘B-‘를 받았지만 아무렴 좋았다. 에디터 스쿨 강의를 들으며 존재만 알았던 에디터라는 직업의 첫 페이지를 열어 본 기분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1학기 강의를 듣는 석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 기분을 많이도 떠벌리고 다녔다. 최근에서야 친한 동생 세기가 술자리에서 해준 카지노 가입 쿠폰기로 처음 알게 됐다.
“나 형 때문에 3년 다닌 학교 때려치우고 서울예대 갔잖아.”
“그게 왜 나 때문카지노 가입 쿠폰. 네가 갑자기 연기하고 싶다고 간 거잖아.”
“형은 모르나? 형 4학년 때 잡지 배운다고 연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잡지 얘기 엄청 많이 했어. 나는 잡지도 안 보는데 만날 때마다 <에스콰이어가 어쩌고 잡지가 어쩌고, 기분 좋아서 떠들었잖아. 근데 그게 또 부럽더라고.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열중한다는 게. 그래서 나도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다니던 학교 때려치우고 서울예대에 1학년으로 다시 갔잖아. 군대까지 갔다 와서 어린애들이랑 어울리기 얼마나 힘들었다고.”
“지랄(웃음).”
가을에 시작된 2학기는 피처팀과 패션팀으로 나눠 매거진을 제작하는 실습이었다. 패션 에디터 지망생들이 꽤 빠져나가긴 했어도 여전히 스무 명 남짓한 친구들이 수강을 신청했다. 당연히 나는 피처팀을 택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계산적으로 머리를 굴려본 적도 드문데1학기 때는 일부러 강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갔다. 맨 앞자리에 앉아 눈에 띄어야 했고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질문해야 카지노 가입 쿠폰. <에스콰이어 편집장님께 얼굴과 이름을 새기려는 심산이었다.‘20대가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주제로 조별 과제를 진행할 때 앞장서 발표를 맡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강의도 강의지만 인턴으로 뽑히는 것 역시 에디터 스쿨에 참가한 중대한 목적이었다.
2학기 때는 팀장을 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습이지만 잡지를 직접 만들어야 했고, 잡지의 편집장은 <에스콰이어 민희식 편집장님이 맡았다. 그렇다면 편집장님께 팀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편집장님의 지시를 전달받아 팀원들과 소통할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팀장일 수밖에 없었다. 팀장은 편집장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대할 기회도 있을 거로 내심 예상했다. 이를 계산하는 데 5초도 채 안 걸렸고 피처팀에서 팀장을 하겠다고 가장 먼저 나섰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될 기회였다. 무조건 내가 피처팀 팀장이어야 카지노 가입 쿠폰.
피처팀은 6명이 한 팀이었다. 실습 잡지의 주제는 ‘세계화’로 정했다. <GLOBE라는 제호를 붙이고 특집 칼럼도 넣기로 했다. 각자 기획안을 작성해 편집장님께 배당을 받고 나서부턴 정신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섭외를 하고 취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라 기특하다며 섭외에 응해 주신 일문학 번역가 양억관 선생님을 포함해 세 건의 인터뷰 칼럼과 광주 특집 취재 칼럼, 1세대 애플워치에 대한 내 의견을 당시 시계 전문지 <크로노스 이기호 편집장님의 견해와 대조해 소개하는 칼럼, 여행 관련 책과 서울의 독립 상영관 소개 칼럼을 맡았다. 촬영은 서울예대 사진과에 다니던 용선이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사실 친구 좋은 게 뭐냐며 밥 한 끼로 강탈한 재능 기부였지만 스튜디오 촬영까지 공짜로 하는 호사를 누렸다.
예상대로 팀장이던 나는 중간중간 편집장님께 팀원들의 진행 상황을 취합해 보고카지노 가입 쿠폰. 보통 카톡을 이용했는데 편집장님이 보낸 카톡에 답장할 때마다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는지, 비문은 없는지 확인하느라 진땀 꽤나 흘렸다. 실습 과정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보고할 내용과 인쇄 때문에 의논할 내용도 많아졌다. <에스콰이어 편집팀으로 직접 찾아가야 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매번 긴장되면서도 벅찼다. 선릉역과 삼성역 사이, 포스코 건물 뒤에 위치했던 6층짜리 가야미디어 건물은 내게 롯데타워보다 더 큰 존재였다. 1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마다 갈망하던 세계로의 편입을 허락하는 통행권을 얻는 것만 같았다.
피처팀의 실습 잡지 <GLOBE는 인디고 인쇄를 마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00권이 채 안 되는 소량이었고 서점에 실제로 판매되는 책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제호가 있었고, 판권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제작에 도움을 준 사람들께 감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Thanks to’ 페이지도, 임의로 넣은 광고도 들어 있었다. 직접 기획하고 촬영하고 작성한 원고로 제작됐기에 우리에겐 버젓한 잡지와 다름없었다. 내 손으로 만든 유형의 무언가를 손에 들었을 때 느꼈던 첫 번째 감격. 뿌듯하고 홀가분하며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운, 오만 가지 감정을 남긴 2학기 커리큘럼은 그렇게 해를 넘겨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