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침이면 혼자서도 잘 일어나 식사를 챙긴다며 식사를 하고 다 먹은 그릇을 사진으로 찍어 ‘잘했지?’라는 말과 함께 인증샷을 보내준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안도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젠 괜찮은가 보다’라는 생각이 방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그렇게 무난한 하루일 거라 믿으며 퇴근 후 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낯선 정적.거실에도, 부엌에도, 안방에도 아내는 없었다. ‘화장실에 있나?’ 하고 문을 열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순간, 심장이 서늘해졌다.
‘혹시… 밖에 혼자 나간 건 아닐까?’
‘아니면… 화장실에서 쓰러진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그러나 급하게 안방 화장실 문 쪽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며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머릿속으로는 가장 나쁜 상상이 스치듯 지나갔다. 손잡이를 잡고 조심히 문을 열었지만, 거기에도 아내는 없었다.
그 순간, 감정이 정점을 찍었다. “여보!”
나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집안을 부르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는 사이, 나는 손에 땀이 나고 있었다. 몇 초의 침묵이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러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나는 아주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의 경험 때문인지, 혹은 내 마음에 이미 굳은살이 박인 탓인지 예전 같았으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어디야, 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했을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조용하게,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어디야?” 하고 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아내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책 나왔어.”
그 말 한마디에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가슴 깊숙이 움켜쥐었던 불안이 조금씩 풀렸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걸까.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만나기로 했잖아. 혼자 나가면 어떡해.”
카지노 게임 추천 다소 천진한 말투로 되물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했었어?”
혼자 산책을 나갈 만큼 상태가 좋아진 건 사실 분명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건 우리가 나누었던 약속을 까맣게 잊은 채 혼자 나가버린 그 상황이 도무지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전화기를 두고 나갔더라면?
만약 길을 잃었거나 넘어졌다면?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매 순간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다. 조금만 늦게 반응해도, 조금만 평소와 달라도 내 안에는 여전히 불안이라는 단어가 카지노 게임 추천 잡고 있고 그 불안은 아주 쉽게 나를 잠식해 들어온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무게가 함께 따라왔다. 정말 괜찮아지고 있는 걸까?
혹은 카지노 게임 추천 괜찮은 척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6,000걸음을 걸었다며 힘들다고 투덜댄다. 수고했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단 전화는 꼭 하고 나가라고 말해주었다.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볼링 정기전에 참석했다. 오늘 아내는 조금 달라 보였다. 경기를 앞둔 긴장감을 숨기려 했지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긴장 안 했어"라고 말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과 가벼운 한숨이 진짜 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늘부터 볼링장에서 이벤트 경기가 시작됐다. 가볍게 참여하자고 말했지만 아내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욕심이 엿보였다. 첫 게임을 시작한 순간부터 아내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스트라이크를 연달아 여섯 번이나 쳐냈다. 몸 상태를 생각하면 놀랍기만 했다. 그 집중력과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은 모습을 보며 순간, ‘정말 얼마 전까지 병원에 있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아내는 첫 게임에서 당당히 1등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정말 잘 친다!"고 칭찬을 쏟아내자 아내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말했다.
"나 1등 한 여자예요!"
순간 너무 당당하고 뻔뻔하기 까지 한 큰 목소리의 아내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예전의 아내였다면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고 난 이후 아내는 남들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후유증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이런 말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이런 밝고 당당한 모습의 아내를 보는 것이 이제는 더 자연스럽다.
몸은 아직 회복 중이지만, 아내의 마음은 이미 예전의 밝고 건강했던 때로 돌아온 것 같았다. 주변의 응원과 따스한 말 한마디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정기전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가 이어졌고, 오랜 습관처럼 술자리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원래 술자리를 즐기는 부부였다. 예전 같으면 서로 잔을 주고받으며 대화꽃을 피우던 밤이 많았는데, 이제는 아내가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아내는 술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시는 나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이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도 별말 없이 함께 자리했고, 평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술자리를 갖기 전부터 아내는 유난히 한 가지를 반복해서 물었다.
“오늘도 술 마실 거야? 나 옆에 앉을 수 있어?”
처음엔 별생각 없이 웃으며 “그럼, 당연하지”라고 대답했지만, 계속되는 질문에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유를 물었다. 아내는 잠시 머뭇이다가 말했다. 며칠 전 한 술자리에서 내가 아내 곁이 아닌 다른 자리에 앉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 아내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야 했고, 혹시라도 무슨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긴장하며 온전히 편하지 못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찔했다. 그저 아내가 괜찮을 거라고,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는 그저 옆에서 웃고 있는 존재라고 나는 너무 쉽게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보호자라며 늘 아내를 챙기겠다고 말했던 내가 정작 아내가 가장 불안해했던 순간을 곁에서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마음 깊이 사과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아내는 “괜찮아, 이제 알았으니까 됐어”라며 웃어주었다. 가끔 나는 이 사람이 여전히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잊는다.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말해버릴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실수의 순간에도 아내는 그걸 지적하기보다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배려해준다.
나는 오늘 또 배웠다. 보호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늘 옆에 있는 것, 그 단순한 진심을 실천하는 것이란 걸. 그래서 다짐했다. 오늘처럼, 술자리에 앉을 때면 내 옆엔 반드시 아내의 자리를 비워두겠다고 아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그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 작은 배려 하나가 서로를 더 따뜻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마음속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