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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노래 Jan 20. 2025

상처는 카지노 게임 추천 치유는 아이에게

불행의 대물림을 피하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이혼 관련 프로그램에서 역할극 심리치료 전문가가 문제의 유책배우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어릴 적 카지노 게임 추천로부터 상처받은 경험이 있나요?"


그때 든 생각은 아니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나?

그리고 다 큰 성인이 어릴 때의 트라우마 운운하며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이유를 카지노 게임 추천로부터 찾는 것은 너무 비겁한 것 아닌가? 20대 까지는 그래 어릴 적의 영향이 삶의 곳곳에 아직 크게 남아 있겠지만 10년간의 깨달음, 가치관 적립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자기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로부터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한 후에는 자다가 악몽을 꾼다든지 가끔가다 어릴 적 카지노 게임 추천와 관련된 안 좋았던 기억이 나서 기분이 가라앉거나 눈물이 흐르거나 하는 정도면 몰라도 일상에서 삶의 전반에서의 영향을 운운하려면 엄청난 학대 정도가 아닌 이상 카지노 게임 추천탓을 하는 건 정말 비겁한 거 아닌가?

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과하리 만큼 차가운 의견이 싹텄다.

그렇지만 그 유책배우자가 울면서 (아무리 상처받은 영혼이고 울면서 얘기해도 참 별로긴 하더라...) 어릴 적 경험을 아이처럼 말하는데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은 어쩌면 평생을 노력해도 흉터처럼 마음에 온 피부에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실 지난 한 주 동안은 내가 많이 아팠다. 응급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고 해외에서 남편과 시카지노 게임 추천님의 주 1-2회의 도움 그리고 2주에 한번 청소도우미분의 도움 외에는 정말 이가 없어 잇몸으로 몸조리를 하고 육아를 하며 버텨오고 있었다. 한국식 조리원, 친정 카지노 게임 추천님 찬스, 육아와 살림 무엇보다 식사를 도와주는 산후도우미, 상대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도 바로바로 배달이 가능한 주문시스템 등등 한국에서 출산 후 보통 이 네 가지 중 최소 두 개는 도움을 받으면서 육아를 해 나갈 건데 독일에서 나의 경우에는 참 돌이켜보면 스스로 독하고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남편과 둘이 10개월 넘게 버텨왔다.


출산 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했던 탓일까 육아를 하며 몸이 약한 초반에 도움을 많이 못 받았어서일까 면역력은 계속 떨어지고 몸이 계속 아팠었는데 지난주에는 몸에 염증수치가 높아서 항생제 처방을 웬만하면 거의 안 해주는 독일에서 병원에 가자마자 의사가 항생제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세 번 말하며 수유가능한 항생제를 처방해 줬다.


아이를 키울 때 부부 중 한 명이 아프면 나머지 한 명은 정말 고생이다. 아기를 낳고 안 그래도 최소 1.5인분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한 명이 아파서 아이케어와 집안일 등 본인의 몫을 못하면 상대방은 아무리 기준치를 낮추고 최소한의 육아와 집안일만 하려고 해도 2.5인분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남편은 지난 한 주 동안 정말 고생을 했다. 지금도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이러다 남편도 병이 날 것 같아 주말 중 하루 오후를 통째로 시댁으로 함께 가서 아이를 시카지노 게임 추천님께 맡기고 남편도 좀 쉬고 나는 요양만 하고 왔다. 쉬는 동안 한국에 계신 아빠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는데 아빠 얼굴이 휴대전화에 비추자마자 평소의 나답지 않게 아이같이 아팠던 지난날들을 풀어내며 투정을 했다.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그때 들려왔던 아빠의 말

"네가 게을러서 그래" "언제부턴가 네가 되게 게을러졌더라니까?"

처음엔 어이가 없었고 내가 이런저런 이유들을 더 설명하자 같은 내용의 말이 서너 번 반복되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타지에서 출산하고 아직 돌도 안된 아기를 육아하면서 몸도 많이 상하고 면역도 떨어진 딸이 몸에 염증수치가 높아서 응급실 갈 뻔한 걸 참고 참다 당일 아침에 병원 가서 사정하며 진료받고 와서 항생제 받고 누워있다는데 어떻게 게을러서 그렇다는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하고는 울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바로 사과의 카톡이 왔고 내가 답장을 안하고 전화를 안받자 몇 분 뒤에는 뭘 그까짓 걸로 감정조절 못하고 전화를 끊냐, 카지노 게임 추천에 대한 예의가 없다 등 비난의 장문의 카톡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를 카톡에서 차단했다.


남편 품에 안겨 하소연하며 엉엉 아이처럼 울다 진정이 됐을 무렵 갑자기 위에서 말했던 티비프로그램에서의 내용을 말하며 남편에게 어릴 적 부모님께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느냐고 물어봤다.나는 누가 물어보면 숨도 안 쉬고 당장 떠오르는 것만 엄마 아빠 각각 열개 넘게 말할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남편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가능한 거야? 너는 뭐 디즈니랜드에서 자란 거야?


실제로 남편은 어릴 적 부모님이 소리 내어 싸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부모님이 자기에게 소리 지르거나 아주 크게 화를 낸 기억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잔소리가 없다는 건 아니다). 부모님으로 인해 가슴 깊이 박힌 상처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남편의 얘기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너는 그래서 너이고 나는 그래서 나이구나.


너는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고 내가 너에게 소리를 지르고 모욕을 해도 나에게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고, 나는 내 기분이 늘 태도가 되어 내가 그리도 싫어했던 내 아버지처럼 일이, 네가 단순히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내가 그리도 미워했던 엄마의 우울함까지 닮아가고 있구나.


그렇게 울다 지쳐 한숨을 자곤 시부모님이 차려주신 따듯한 밥상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시아버님과 단 둘이 잠깐 있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다짜고짜 시아버지께 남편이랑 위의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데 남편이 아무리 고민을 해도 부모님께 상처받은 기억이 없대서 정말 신기했다고 말씀드렸다. 시아버지는 잠시 생각해 보시더니 "음 아마 없을 거야, 근데 나만해도 60이 넘은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있어.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했다 싶은, 왜 그랬을까 싶은 부모의 언행들.." 그래서 시아버지께 본인이 겪으셨던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남편과 시동생에게일부로 의식적으로 다르게 대하시고 상처 주지 않으시려고 노력하셨냐고 여쭸더니 그랬던 것 같다고 하셨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를 재우며 나는 반쯤 잠이 든 아이를 안고 내가 그때 아빠와 통화하며 아프다고 투정했을 때 아빠로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나오는 것 처럼 줄줄 말했다.


"ㅇㅇ아, 네가 나중에 엄마 나이가 되어서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다 몸이 아파 엄마에게 투정을 하고 싶어 전화를 한다면 엄마는 너에게 먼저 지금 몸은 어떠냐고 괜찮냐고 물어봐줄 거야. 엄마가 당장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네가 엄마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당장 달려갈 수 있다고, 만약 상황이 여의치 못해 너의 곁으로 바로 못 가게 된다면 좋은 음식을 보내든 아님 대신 돈을 보내든 뭐라고 해주고 싶을 거고 할거라고, 만약 현실이 여의치 못해 그것마저 못해준다면 엄마가 뭘 하고 있는 언제든 네가 전화하면 바로 받을 거고 네가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오래 해도 엄마가 다 들어줄 테니 엄마 앞에선 투정도 해도 되고 몫놓아 울어도 된다고. 네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엄마는 우리 아가를 항상 믿고 응원한다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다고 약 먹었으니 곧 좋아질 거라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내 아이에게 해주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치유의 눈물이었다. 내 수면교육의 방향과 맞지 않게 아이가 내 품에서 잠들어버린 예외의 수면의식이 되어버렸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품에 안겨있는 이 아이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했을 뿐인데 나는 치유받은 기분이었다. 아이는 내가 혼자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눈을 바라보기도 했고 웃기도 했고 내가 울 때는 웃음을 멈추고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새근새근 내 품에서 잠들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치유받았다.


부모에게 상처받았으나 자식에게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은 나의 시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잠든 아이를 한번 더 꼭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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