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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Feb 21. 2025

쉼표를 찍으며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이렇게 제목을 쓰고보니, 정말 나를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으네. 나는 너(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을 이 편지에서 찾았으면 해.



너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이주를 당해버렸지? 그러고보니 그것이 한번이 아니라 두번이네.


한번은 초등학교 때였어. 시골에서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며 잘 지냈는데, 어느날 서울에 공부하러 가야 한다고 부모님이 이야기했지. 서울에 왜 가야하는지, 잘 모르고 그냥 갔던 거야. 초등 5학년때 유학을 갔던 건데, 그게 네 인생에서 꽤 큰 사건이었던 것 같애.


준비되지 않은 네가 너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카지노 게임에게 삶을 의탁하게 된 것이었어. 카지노 게임는 미장원을 경영하고 있었지. 카지노 게임는 신혼이어서 미장원과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살고, 너는 미장원에 붙어있는 방에 미용사 카지노 게임와 함께 살았지.


살림집이 없고 가게와 방이 하나 있는 그곳에서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기억나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아이가 있기에 적당한 환경은 아니었겠지.첫번째 미장원은 가게와 방이 커튼으로 구분되어 있었어. 좀 무서웠던 것 같아. 두번째 미장원은 그래도 방문이 있었어. 매일 한끼는 미장원에 있는 난로에 칼국수를 끓여먹었던 기억이 나. 동네에 있는 방앗간에서 금방 뽑은 국수를 사오는 일은 너의 담당이었어. 때로는 카지노 게임가 때로는 미장원 카지노 게임들이 만들어주었지. 미장원 바깥쪽, 아마도 주인집 마당에 김칫독이 있었는데, 그곳의 김치를 떠서 그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을 너는 좋아했어. 그러나 그런 모습을 들키면 카지노 게임에게 혼났지.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을 먹느냐고. 너는 지금도 새콤했던 감칠맛을 기억하지.중학교에 들어갔을때 카지노 게임에게 말하지 못해서체육복비를 납부하지 못해서 운동복없이 체육시간에 힘들었던 기억이 나. 나중에 그런 걸 말하지 못했다고 또 카지노 게임에게 말을 듣기도 하고. 어느날 내 생일에 나를 데리고 외출했던 카지노 게임가 소매치기를 당했었어. 그날 외출하고 나서, 얼마나 카지노 게임가 서럽게 울던지,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 내 존재 자체 때문에 미안했던 것 같네. 내 필요를 말하지 못하는 습성이 그때 깊이 박힌 것같애. 나의 욕구를 줄이면 그럭저럭 살아갈만 하다는 것도 파악했던 것같고.


미장원 카지노 게임 한명은 여호와의 증인이었어. 세상이 몇년후면 끝난다며 종말론을 이야기했어. 어린 내가 듣기에도 이상한 논리였어. 그 카지노 게임는 꽤 열성이 있는 신도여서, 내게도 파수대란 책을 보여주곤 했지. 나를 데리고 있던 친카지노 게임는 그 카지노 게임를 마음에 들어했어. 누구보다도 그 카지노 게임를 신뢰했던 기억이 나. 그 카지노 게임의 조카를 이뻐했었고. 그것이 주변에는 이상하게 비쳤나봐, 함께 있는 애는친동생이 아니라는 소문도 났었던 거 같애.


너는 카지노 게임에겐 버거운 짐이었어. 카지노 게임의 신혼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고, 언제나 집에 불화가 있었지. 그런 걸 동생에게 보여줘야 했으니 민망했던 것 같아. 다혈질에 가까운 카지노 게임와 말없고 조용한 편이었던 너는 잘 어울리는 쌍은 아니었어. 카지노 게임는 너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 지천을 들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방학이면 시골 집으로 내려오는데, 너는 서울로 돌아가고싶지 않았어. 부모님께 맞서서 그런 말을 할 용기는 없었던 것 같아. 어느해는 갈 시간이 되니, 자꾸 눈물이 나고 무력증에 시달리게 되었어. 그렇게 시름시름 앓기도 했던 것 같애. 그래도 시간이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지. 그때 네가 보던 교과서에 집에 가고싶다고 페이지마다 적었지. 누군가 그걸 보고 너를 구해줬으면 했어.


교회를 가는게 좋았어. 언니는 그런 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지. 언니의 기분이 저기압이면 눈치를 보게 되는데, 하나님께 교회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지. 그렇게 집을 빠져나와 교회를 갔던 것이 기억에 남아.


그런 카지노 게임를 캐나다로 떠나보내지. 카지노 게임의 시집 가족들이 캐나다에 있어서 카지노 게임는 어린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캐나다 이민을 떠난 거야. 카지노 게임와는 길고 긴 인연으로 이어지네.


너의 두번째 강제 이주는 캐나다 이민이었거든. 그때는 용기있게 캐나다를 가지 않겠다고 말했어. 20대 후반이었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조국을 배반하고 갈수는 없다고 생각했었지. 이민을 추진할 때는명단에서 빠져있기도 했기에 네가 캐나다를 오게 될거라는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지. 엄마가 캐나다 이민관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 이민관이 “한국에 남게 되는 미혼자녀들이 있는데, 혹시 데리고 가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 이민법이 그새 바뀌어서 미성년 자녀 동반에서 미혼자녀 동반이 가능해졌다”는 거야. 엄마는 그자리에서 그러고 싶다고 말하셨고, 그렇게 3명의 자매들의 이름이 올려진 거지.


너는 앞날을 생각하고 사는 스타일은 아닌 사람이야. 하루하루 산다고 보면 되지. 외국에 나가서 살 생각은 단한순간도 해본적이 없잖아. 그런데 너의 이름이 올려지고, 엄마와 미혼자녀들 5명이 같이 가는 계획이 현실화되기 시작했어. 그래도 많이 저항했던 것 같애. 너는 충분히 혼자서 한국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 생각을 내려놓게 된 것은 오빠였지. 우리집에 하나뿐인 아들인 큰오빠가, 너를 불러서 “네가 가족과 함께 이민가지 않고 남아서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나는 너를 책임질 수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어. 그때, 네가 남는 것이 오빠에게 부담이 되는구나, 이런 생각에 가겠다고 했지. 마음속으로 갔다가 다시 나오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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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보니, 너는 부모님, 큰카지노 게임, 큰오빠에게 네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 처하게 된책임을 묻고 있는 것 같네. 이렇게 누구 때문에, 라는 식으로사태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습성이 네게 생긴 것도 같아.


지금와서 보니, 그렇게 살게 되었던 것은 그 자리에 그들이 있었을 뿐이지, 네가 거쳐야 했던 길이었을 거야. 그러나 지금도 너의 진정한 결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 “나의 진정한 결정”이란 무엇일까?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결정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어쩌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런 찬란한 결정이 있게 되지 않을까?


너를 볼때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어. 너를 표현하는 방법과 네가 좋아하는 것을 네가 잘 모른다는 점이야. 까다롭지 않은 네 성격에 대해서 많은 칭찬을 듣기도 하지. 그리고 살기에 편리하긴 해. 많은 시간, 타인의 결정에 너를 맡기지. 아주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맞춰주는 것이 어렵게 생각되지 않으니 말이야. 남의 입장을 미리 생각할 때도 많아. 그건 다시 생각해보면, 네가 대접받고 싶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지. 그들의 입장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들은 그들의 입장이 있고, 너는 네 입장을 가져야 합일점이 찾아지는 것일텐데 말이지. 네가 미리 설정한 그들의 입장이란 것에 분명한 오류가 있을 것이고.


이곳에 등장한 큰카지노 게임는 우리가 캐나다로 왔을때 우리에게 엄청난 사랑을 주었어. 온 자매와 엄마가 카지노 게임집에서 6개월간 부대끼며 살았지. 카지노 게임는 특별히 너를 너무 사랑해주었어. 어려서 너를 구박해서 미안하다, 시간이 날때마다 말해줬지. 카지노 게임도 어렸고, 나도 어렸고 누구나 실수하면서 크는 것 같애. 자매가 많아서 내가 실수한 이야기는 다른 동생, 카지노 게임들이 다 알고 있고, 상처도 받았을 거야.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함께 상처를 주면서, 치료를 하면서 성장해온 것이지.


네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너의 표현을 조금 더 하는 것일것 같아. 말없음에서 해방되는 노력을 해봐. 이 멍석이 탄탄한지 너무 재보지 말고.


어쩌다 표현했을때, 네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포기”가 너무 빠른게 아닐까싶어. 힘들게 네 의견을 표현했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합리화를 하면서 포기를 한다는 말이지. 오늘도 그랬잖아. 너는 오랫동안 소통하지 않았던 그녀를 방문해보고 싶었지.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을 무시하네. 너의 너됨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지. 안해도 되는 일이기에 너는 주저앉아서 지금 타자치기로 들어섰잖아. 그가 걱정하는 건, 드라이브웨이에 벽처럼 쌓인 얼음이 된 눈 사이를 통과해 차를 운전하는 것과, 무사히 얼음에 긁히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것, 게다가 눈길운전을 믿을 수 없다고 했어. 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 그의 걱정이지. 더 따지다가 "안 나가"로 종료가 되어버렸네. 그사람은 찾아간 집에서 내가 문전박대당할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지. 요즘은 눈 핑계로 출퇴근을 시켜주니, 그것이 좀 족쇄처럼 느껴지네. 어떤 사람은 호강에 겨워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가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언젠가는 할 거지, 그래서 포기에 또하나의 "합리화"를 주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다툼"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가봐.


“타인의 걱정을 줄여주는 것”을 꽤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애. 그건 나 역시 길게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어. “이래도 저래도 흥..” 이런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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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돌아보는 시간들을 몇주간 가졌었지. 가장 큰 발견은 네가 부정확하고, 세밀하지 않다는 것이었어. 네 가까운 사람, 네 남편에 대한 불만이 바로 그점이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너는 네가 그런면에서 “대마왕”이었다는 것을 잘 몰랐다는 것이야. 왜냐면 많은 일들을 남편이 해왔으니까. 실수할 일도 많고 했던 거였어. 하나님께서 너의 본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것에 너는 감사함을 느껴.


다른 사람을 향했던 화살을 네게 돌리니, 이제는 마음이 편한 것 같애. 너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실수도 아름답게 마무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또 보기도 했으니, 이 은혜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20대에도 그런 생각을 했지. 젊음이 충만한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젊음은 아직 피지 않은 것 같다는. 지금도 그런 느낌이야. 너의 봄은 어쩌면 아직 오지 않았는지도 몰라. 늦게 움트는 싹이라고 해야 하나. 용쓰고 싹을 트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당한 그릇으로 빚어져간다고 보면, 이렇게 늦된 나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밀려서 하는 결정이 아니고, 하나님에 이끌려서 하는 결정이 일어나기를 기도해. 감사함으로 느긋함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하네. 부족한 사람이 이만큼 걸어온 것도 너무 다행이야. 네게 다가오는 생각들, 일들을 성심껏 하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실 시간들을 숨죽이며 기다려 보는 게 어때.


이제는 누구도 네게 결정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만 해도, 혹은 그러더라도 나도 제법 나의 "타임 테이블"을 보여주며, 내 속도로 나가겠다고 버팅기기도 하고 말이야. 많이 발전한 것 아니겠어? 그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또한번의 "이주"를 이번에는 정말 잘하고싶어.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를 비판해야 할때 특별히 어려움을 느끼지 너는. 그래도 때때로 얻어졌던 분별력을 통해서 네가 떠났던 사람들을 생각할때, 그것이 인생에 은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해. 조금 느리지만 네 인생에서 보내야 할 것들을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할거야.


야 민디야


후회안할 자신이 있니? 네 삶의 순간순간 목표가 후회하지 않기, 잖아.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그 모든 순간이 지난 마지막날 후회안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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