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그곳을 방문하고 싶었다. 드라이브 웨이 양옆에 쌓인 스노우 벵크를 뚫고 운전하기 힘들거라며 남편은 굳이 날씨가 좋지않은 이날가야 하냐며 반대해서, 그핑계로 주저앉았던 그날 갔었어야 했다. 지난주 오랜만에 햇빛이 비추는 날, (어려움에 봉착한) 교회 예배를 끝내고 그쪽으로 달렸다. 남편에겐 알리지 않았다. 그 정도의 자유는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말고"식 나홀로 결정한 방문이었는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맘속 내용을 가다듬었다. 내가 추측하는 그 부분 때문에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는지 묻고나서, 무엇이 되었든 사과를 하고싶었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래도 그 일이 마음에 남아서 언젠가는 풀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내가 일하는 마켓에서 두어번 마주쳤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녀도 나의 안색이나 늙음 이런 것들 때문에 놀랐을 수도 있다.그렇게 마주친 이후 더욱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같다.
살면서 쌓이는 오해들을 다 풀고 살수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노력해보는 무료 카지노 게임 좋지 않겠는가, 하는 나의 마음에 응답하려고 나선 길이다. 내 맘이 편하고자 그런 무료 카지노 게임라고 할수도 있다. 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한인이 귀한 오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니 소중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가게문을 열었는데, 뒤쪽에 웅성웅성 선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이었다. 손님은 없었다. 언제나 가면 있을지 알았는데, 혹 헬퍼가 있더라도 주인이 있는지 물어보거나 인사차 가지고간 "한국 배"를 전해주고 오면 나중에 연락이라도 오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는데, 무언가 등쪽에서 싸한 바람이 부는 느낌이다. 뒤쪽에 있던 젊은 청년이 다가와서 주인을 찾으니, 그들이 내가 오기 이틀전에 가게를 팔고 나갔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다.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있었는데, 살림집까지 다 팔렸냐고 했더니 그렇다면서, 여주인이 30분전에 무언가를 가지러 잠시 들렸다는 말을 보태주었다. 남자주인의 전화번호만 받고, 조금 아쉬워서 장사가 잘되길 바라며 복권을 한장 사서 나왔다. (30분만 일찍 왔어도 얼굴이라도 볼수 있었겠네.)
그러고보니, 내가 갔던 이틀전이 월말이었다. 차를 타고 내가 오려고 했던 그날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구나 싶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전해받은 번호로 연락했더니 받지 않는다. 모르는 번호여서 그럴까. 다시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과의 인연은 그것까지 인가 보다 싶다.
이 지역이 그렇다. 사업 때문에 와서 살게 된다. 그리고 같은 업종의 무료 카지노 게임들과 이런 저런 관계들을 맺고 살게 되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떠나게 된다. 가게를 다른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넘긴후 머무르는 몇몇 한인들을 제외하면 말이다.한인이 많지 않아, 모두 가족같이 지내면 좋으련만 그런 동화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반목할 일이 생기면, 그것을 풀어낼 방법이 없어서 절연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젊어서 이곳에 왔을때, 그런 일을 꿈꾸었다. 나름대로 한인모임을 결성하기 위해 노력한 편이다. 가게를 하는 한인과 그외 업종, 혹은 은퇴자들이 있었는데,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만으로 결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모임을 주도하는 몇몇 헌신적인 무료 카지노 게임들이 필요했고, 그런 헌신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식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것들은 모두 부서짐의 수순을 밟았고,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소속감없이 몇몇과 교류를 하고 있을 무료 카지노 게임다. 외로워하면서, 혹은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새로 유입되는 한인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고, 결혼같은 것을 통해서 한인 혹은 한국과 관계있는 이들을 끌어들일 방법도 없다.
며칠전 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이 지역에 20여년 살던 부부, 부인은 이미 밴쿠버로 떠나고 본인도 집을 정리하고 떠날 예정이란다. 그가 가기전에 그나마 얼굴을 보았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 위로가 된다. 떠나기 전에 집을 정리중인데, 갖고 있는 책중에 필요한 무료 카지노 게임 있으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목공 기계들이 있는데 그것도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싶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다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런저런 이유로 다시한번 만나기로 했다.
인생의 몸통에 해당하는 긴 세월을 외진 마을에 살았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 다시한번 실감나는 날들이다. 나도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는데 모두들 그런무료 카지노 게임 아닐까.
언니 형부도 나이가 들어가니 한인들이 많은 곳, 한국식당이 있는 곳, 특별히 한인대상 문화센터가 운영되는 그런 곳으로 옮겨야 되지 않느냐고 동생이 걱정하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해서 자꾸 엮으려 했는데 물결따라 모두 흘러가게 되니 더이상 집착이 생기지는 않는다. 모순적이지만욕심은 없어져서 작은 것에 대한감사와 감격은 있는 것같다. 떠나기전에 모습을 드러낸 그분도, 이번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찾아가서 떠나고 남긴 그들의 흔적을 내 눈으로 확인한 일까지, 나홀로 관심일지라도 그런 마음이 내안에 있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 감사하다. 그러고보니, 몇년전 가게를 정리하고 토론토로 컴백하면서 서운하다면서 우리 가게를 찾아왔던 그분들도 생각난다. 내게는 연락하진 않았지만 떠난 사람들도 아마 누군가에겐 자신들의 떠남을 알려주었을 무료 카지노 게임다.
성해나 작가의 책 "두고온 여름"을 읽었다. 한때 가족이었던 재하, 기하의 만남과 그후의 일들에 대한 무료 카지노 게임다. 어쩌다가 그자리에 있게 된 재혼 가정의 두 아들, 친해지고 싶었던 자와 떠나고 싶었던 자의 입장에서 관점을 옮기며 서술했다.
작가는 "한때는 내 곁에 있었지만 떠나간 이들을, 깨끗이 털어내지 못해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마음을 정리하며 이 소설을 썼다"라고 말한다. 이번 방문을 통해서, 앞으로도 만날 무료 카지노 게임보다 떠나 보낼 무료 카지노 게임이 더 많이 있을 것 같아, 소슬한 마음이 든다.
3월 중순에 들면서 스노우벵크가 점차 녹아간다. 올해는 유독 눈이 많이 와서, 지붕에서 떨어진 눈덩이에 처마에 매달린 빗물받이 통이 절단났다. 고드름이 크게 열었던 주차장쪽에서 어느날 우당탕 고드름이 깨지면서 지붕을 따라 설치된 빗물받이까지 쳐서 내려앉은 무료 카지노 게임다. 그 시간에 차나 사람이 그 장소에 있었으면 큰 사고가 날뻔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집앞 지붕에서도 돌처럼 굳은 눈덩이가 떨어져 그쪽의 빗물받이도 내려앉은 무료 카지노 게임 보인다.
깨졌으니, 다시 작업을 해야한다. 옛집이라 고드름 열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이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오지에 교회가 설립된지도 20여년이 넘어간다. 시간만 오래되었을뿐, 아픔과 부끄러움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이곳에 교회가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회에 안나가고 믿는다는 "가나안(안나가)" 교인들이 점차로 많아지는 이 세태에 그것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작은 교회, 일원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무엇인가를 해야하며, 믿음의 끈을 확실히 잡아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쉽지 않다.
이제 교회가 거의 깨져가는 것처럼 보이고, 새롭게 수선을 해서 더 나아가야 할지, 아니면 이참에 긴시간 흔들리던 촛불을 꺼야할지 기로에 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왜 연연하느냐, 한다. 이 지역의 현실을 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친구들도 같은 의견을 내게 준다.
내게 있어서 교회를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은, 마음의 짐을 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듣고싶은 교회 인터넷 방송으로 들으면서 보낼 수도 있을 것같다. 그것이 교회재정과 목회자를 신경쓰지 않으며 살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언젠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한편으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부정당하는 것도 같고. 물론 교회를 통해 나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일 것이다.
어쩌다보니, 거의 마지막 남은 출석하는 "교회 교인"에서 "가나안" 성도로 둔갑하느냐, 아니야 하는 기로에 선 지금, 하나님의 지혜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