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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견 Apr 22. 2025

5화 디 오더(The Order)

Chapter 5 : The Order

베트남전 이후의 미국


1975년. 베트남전(Vietnam War)은 더 이상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은 철수했고, 남은 것은 수십만의 참전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였다. 특히 남부와 중서부에서 온 저소득 백인 청년들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쳤으나, 돌아온 조국은 더 이상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환호 대신 조롱, 기립박수 대신 실업과 이혼, 거리의 플래카드엔 ‘살인자’라는 말이 적혔다.


그들은 공산당을 저지하고 자유세계를 수호하는 것이애국심이라 믿었다. 그러나돌아온 이 나라엔 좌익이념이 판을 쳤고, 히피와 마약, 프리섹스 그리고 록앤롤만이 범람했다.프랑스 68혁명은 전 세계로 해체주의(포스트 모더니즘)를 확산시켰다. 애국은 구 시대의 유물이였고 남부 시골 출신의 귀향 군인들은 대학가의 진보적 슬로건들을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그들은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급변하는 문화에 대한 분노를 품고 극우 운동으로 흘러들었다. 1970년대 말,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합된 백인우월주의는 아이다호(Idaho), 몬태나(Montana),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를 따라 확산되기 시작카지노 게임. 아리안 네이션(Aryan Nations, Hayden Lake), 내셔널 얼라이언스(National Alliance), 크리스천 아이덴티티(Christian Identity) 운동은 종교와 민족주의, 생존주의가 결합된 신흥 컬트였다. 그곳엔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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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극단주의 테러리즘을 분석한 FBI 내부 보고서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극우 세력에 가담한 인원의 상당수는, 자신들을 배신카지노 게임고 느끼는 자유주의 사회에 환멸을 느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다.” (FBI Domestic Terrorism Analysis Brief, 1982.06.03)


미국 내 극우운동 연구가 캐슬린 벨류(Kathleen Belew)는 이러한 현상을 '귀환병 효과(Returning Soldier Effect)’라고 불렀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Bring the War Home'카지노 게임"귀환병 효과는 백인 권력 운동을 군사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카지노 게임"고 분석카지노 게임.


“많은 백인 권력 운동가는 전쟁의 기술, 트라우마, 이데올로기를 함께 가지고 귀국한 참전 군인이었다.”

“Many white power activists were veterans who brought the skills, trauma, and ideology of war home with them.”캐슬린 벨류(Kathleen Belew)


그들은 “전쟁에서는 이겼으나 정치적으로 패전한 거다”라며 대리 위안을 삼았다. 패전의 원인을 후방에서 반전운동이나 하며 나라를 갉아먹은 '내부의 적', 진보주의 대학생 먹물들, 평화 이상주의자 히피, 유대 상류층, 세금을 축내는 유색인종 등에게서 찾으려 했다. 이 같은 서사는 1차 세계대전 후 독일 군인들이 전쟁 패배를 후방의 유대인 탓으로 돌린 '등에 칼을 꽂은 자(Dolchstoßlegende)' 신화와 놀랍도록 유사카지노 게임. 이로써 다가오는80년대에밀리티아, 극우, 극단적 음모론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태동할 토양이 완성된 것이다.


윌리엄 루서 피어스(William Luther Pierce)도 그런 시대배경이 낳은 인물이였다. 몰락한 남부 귀족 가문의후예로앨런 군사학교를 거쳐물리학 박사를 취득카지노 게임. 그는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라는 소설을 썼다. 허구의 형태를 띠었지만, 이 책은 하나의 묵시록이었다. 가상의 주인공 얼 터너(Earl Turner)는 유대인그림자정부(ZOG)에 맞서 무장 반란을 일으키고, 백인의 국가를 재건한다. 그 서사는 성경처럼 반복되며, 새로운 전사들을 이끌어냈다. 그 중 열성에 찬 한 청년이 있었는데, 바로 디 오더(The Order)를 조직한 로버트 제이 매튜스(Robert Jay Mathews, 1953–1984)였다.


교주와 경전


로버트 매튜스는 흔한 미국 중서부의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 1953년 텍사스(Texas) 엘패소(El Paso)에서 출생한 그는 독실한 몰몬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이 속한 가족 공동체가 미국 내에서 점차 주변화되고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워싱턴주 스포캔(Spokane) 외곽의 농촌에서 성장한 그는 조용하고 규율적인 성격으로 알려졌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경계심과 냉소를 내면에 키워가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Robert Jay Mathews


그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종교적 엄숙주의와 인종적 우월성 개념을 결합시키는 사상에 끌리기 시작카지노 게임. 그의 고등학교 교사였던 제임스 케러(James Keller)는 훗날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로버트는 언제나 외로웠다. 하지만 그 고독은 절망이 아니라 신념이었고, 자신이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사명처럼 보였다.”


베트남전의 여파로 실직과 경제난에 시달리던 그의 아버지는 종종 “우린 이 나라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했고, 이러한 가족 분위기 속에서 로버트는 백인의 상실감을 일찍 체득했다. 20대 초반, 그는 아리안 네이션(Aryan Nations) 계열의 급진 기독교 모임에 출입하기 시작했고, 곧 ‘크리스천 아이덴티티(Christian Identity)’ 신학을 접하면서 종교와 인종주의를 결합한 내면 질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로버트는 이 시기 “신이 백인에게만 계시를 맡겼다”는 신념을 신학적 진실로 받아들였고, 흑인과 유대인은 ‘창세기의 가인의 후손’이라는 극단적 해석에 심취해갔다. 이때 그의 손에 들어온 책이 바로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였다.


이 소설은 그에게 단순한 픽션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시였고, 복음서였다. 그는 얼 터너(Earl Turner)의 여정을 자신의 운명처럼 여겼으며, 체제를 뒤엎고 무장 민족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실제 역사로 만들고자 결심카지노 게임. 그는 수첩에 이런 문장을 적어놓곤 카지노 게임.


“우리는 타협하지 않아. 타락한 이 체제를 없애야 해. 넌 내가 못한 걸 이어가야 해.”


그는 결혼 후에도 아이에게 『터너 다이어리』를 성경처럼 읽어주었다. 백인의 부흥과 신정국가의 회복, 정부가 아닌 '계율'로 운영되는 새로운 질서.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국가가 아닌 신앙의 나라, 민주주의가 아닌 유전적 자격에 기반한 무장공동체가 들어서 있었다.


그는 책 속 조직명을 그대로 따서 자신의 조직을 ‘디 오더(The Order)’라 명명카지노 게임. 그것은 실체 없는 소설 속 이름이 아니라, 이제 자신이 몸소 실현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된 것이었다.


계시의 주파수와 제물


1983년 가을, 퍼시픽 노스웨스트(Pacific Northwest)의 어느 외진 산기슭. 밤 공기는 싸늘했고, 나무들은 불안한 그림자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포드 브롱코(Ford Bronco) 차량의 안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주파수는 AM 1060, 프로그램 이름은 『Voice of the Nation』. 진행자는 데이빗 레인(David Lane)이었다. 그는 미국 백인민족주의 운동 내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자, "14 Words" 구호의 창안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이따금씩 설교처럼, 이따금씩 구호처럼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불꽃으로 말할 것이다. 우리의 조국은 침략당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들의 눈빛은 가시처럼 날카로웠고, 긴장감은 고요한 새벽의 공기를 갈랐다. 그날 밤 그들은 결심카지노 게임. 이 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전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차량을 몰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던 중, 그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진짜 이걸 하는 거야?” 맨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늦었어. 이미 선택했어.” 그가 로버트였다.


월터(Walter)는 처음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로버트 일당과 함께 사격 연습을 하며 형제애를 나누던 전직 군인이었지만, 점점 그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우리, 선을 넘고 있진 않아?”

그 말이 끝이었다. 로버트는 그를 조용히 불렀고, 숲속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산의 공기는 무거웠고, 달빛은 흐렸다. 총소리는 단 한 번 났고, 월터의 몸은 구덩이에 파묻혔다.


며칠 후, 월터의 아내는 그가 사라졌다고 신고했고, 마침 아리안네이션의 위조지폐 의혹을 수사중이던 연방수사국(FBI) 요원 웨인 매니스(Wayne Manis)가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숲속을 수색하던 중, 뒤엉킨 나뭇가지와 덮인 흙 사이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FBI 수사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신은 덮인 흙과 덤불 아래카지노 게임 발견되었고, 탄도학적 증거에 따르면 근거리카지노 게임의 처형식 사격으로 보인다.” ( FBI Evidence Memo, Field Office Spokane, 1983.11.12)


월터(Walter)의 죽음 이후, 로버트 매튜스는 ‘시험’을 통과한 전사들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고, 로버트의 말에 군사적 명령처럼 반응했다. 그가 말하면 따랐고, 그가 침묵하면 기다렸다. 디 오더(The Order)는 사적 충성의 서약 위에 세워진 비밀결사였다.


그들은 총기와 폭약, 전술을 배우고 서로의 과거를 공유했다. 로버트는 처음 터너 다이어리의 저자, 윌리엄 루서 피어스 조직한 내셔널 얼라이언스(National Alliance)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어서 아리안 네이션(Aryan Nations)으로 흘러 들었다. 그는 조직을 거칠 때마다 자기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모든 우두머리가 되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였다. 중요한 건 출신이 아니라 충성의 깊이였다. 로버트는 그들을 두고 ‘남겨진 318명’이라 불렀다. 이는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에 등장하는 백인 혁명가들의 지하조직 인원 수 였다. 그는 자신만의 군단을 꿈꿨다.


“우린 계시를 받은 자들이야. 이 시대의 사도들이지.” 그는 말카지노 게임. “돈과 무기를 준비해야 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의 말은 신탁처럼 조직원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시애틀 은행 강도


1983년 10월 28일. 워싱턴주(Washington) 시애틀(Seattle). 로버트는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에서 첫 번째 무장 작전—군자금 확보를 위한 은행 습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그날 그는 자신의 조직도 똑같은 수순을 밟게 했다.


이들 중엔 몇은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었고, 또 민병대 조직카지노 게임 사격 훈련과 야전 전술을 익힌 전력도 갖고 있었다. 첫 작전을 앞두고도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 훈련을 반복하며 진입 동선, 무장 배치, 탈출 경로까지 익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첫 시도는 긴장되고 두려웠다.


차량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로버트는 조용히 핸들을 잡고 있었고, 그 옆의 조지(George)는 손에 땀이 맺히는 걸 감추려 무릎에 닦아냈다. 뒷좌석의 마이클(Michael)은 연신 입술을 깨물며 무전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우리, 진짜 이걸 하는 거야?" 누군가 낮게 중얼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로버트는 전방에 도착한 차를 보며 중얼였다. “기억해. 이건 시작일 뿐이야. 우린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거야.”


수송 차량이 후문에 멈췄고, 경비원이 뒷문을 여는 순간,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쥔 청년이 외쳤다. “움직이지 마!”공황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냉정해 짐을 느꼈다. 맥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빠르게 각 동선을 확인했고, 무전을 조용히 조작카지노 게임. “1구역 확보. 2진 전진.”


작전은 정확히 9분 14초 만에 종료되었다. 범인들은 정문과 후문으로 갈라져 철수카지노 게임.


FBI 시애틀 현지 수사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총격은 최소 두 개의 무기로부터 발생하였으며, 45구경 탄피가 현장카지노 게임 발견되었다. CCTV에는 무장 괴한 4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확인됨. 침투 및 철수 모두 터너 다이어리에 기술된 전략과 유사한 구조로 이뤄짐.” (FBI Seattle Field Report, 1983.10.29)


총알이 창문을 뚫고 은행 벽에 박혔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바닥에 엎드리는 동안, 로버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무신론적 선민의식을 가진 자였다. 신이 아닌 자신을 신처럼 여기고, 자신이 쓰는 시나리오가 현실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의 동공은 수축돼 있었고, 입가는 이상하게도 웃고 있었다.


“계획은 완벽했어. 이제 두 번째 단계를 준비할 때야.”


터너 다이어리의 다음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정부의 기반을 흔들기 위한 첫 단계는 경제적 기반을 공격하는 것이며, 그것은 단지 은행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향한 포화였다.” (The Turner Diaries, p. 67)


로버트는 이 문장을 수첩에 손으로 적어 넣고 있었다.


강도 작전 이후, 조직 내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돈은 성공적으로 확보됐지만, 몇몇 구성원은 공포를 감추지 못했다. 한 청년, 토니(Tony)는 자신이 협조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날 밤, 그는 로버트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해?”


로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토니는 사라졌다. 누구도 그의 이름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로버트는 새로운 '의식'을 도입했다. 신도들은 밤마다 ‘서약의 원’을 형성했고, 그 안에서 충성 맹세를 반복했다. 방 안에는 로버트의 눈빛만이 돌처럼 빛났다.


그는 말카지노 게임. “우리 중 하나라도 의심한다면, 그건 체제를 의심하는 거야. 우리에겐 회의할 자유가 없어.”

공포와 숭배. 그것이 디 오더의 또 다른 동력이었다.


앨런 버그 암살


작전 구상은 콜로라도주 덴버(Denver, Colorado) 외곽에 위치한 숙소카지노 게임 시작됐다. 허름한 산장, 외벽엔 군용 위장천이 덮여 있었고, 실내엔 반쯤 닳은 소파와 맥주 캔, 지도와 무기 부품이 널려 있었다. 한밤중, 조직원 여럿이 작은 라디오 앞에 모여 있었다. 주파수는 710AM, 방송은 『The Alan Berg Show』였다. 라디오에선 날카롭고 빠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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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너무 많이 포용했고, 이제는 우리 것조차 지켜야 한다'고요. 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은 이웃 흑인을 쫓아내고 싶은 겁니까? 멕시코계 청소부를 해고하고 싶은 겁니까? 유대인 상점 주인을 때려눕히고 싶은 겁니까?'” (The Alan Berg Show, rebroadcast transcript, 1984.06.12)


그는 유대인이었고, 공개적으로 백인우월주의를 비판카지노 게임. 앨런 버그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촌철살인의 화법과 도발적인 질문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진보 성향의 리버럴 토크쇼 호스트로,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그의 방송을 청취카지노 게임. 그는 백인 민병대 운동을 ‘국가의 기생충’이라 부르기도 카지노 게임.


"오늘도 유색인종 옹호냐? 지긋지긋하다."

"저 입 좀 꿰매야 돼."

"진짜, 저 새낀 보내버려야 해."


로버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에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를 들고 있었다. 책을 펴고 낭독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조롱카지노 게임. 우리를 역사의 쓰레기로 만들려 카지노 게임. 우리는 오직 침묵으로 응답카지노 게임.’ 이게 바로 우리의 길이야.”


순간 방 안은 조용해졌고, 조직원 중 한 명이 조용히 말카지노 게임.


“내가 하지.”


그의 이름은 브루스 피어스(Bruce Pierce)였다. 로버트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이틀 간의 감시 이후 시작됐다. 1984년 6월 18일, 앨런 버그는 라디오 생방송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자신의 집 앞 진입로카지노 게임 총격을 받았다. 총알 13발이 발사되었고, 그 중 12발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현장에는 45구경 탄피가 산재해 있었다.


FBI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버그는 명백히 표적이었으며, 공격은 교전이 아니라 처형에 가까웠다. 현장 탄환 분포는 짧은 거리카지노 게임 집중 발사된 패턴을 보여준다.” (FBI Denver Homicide Report, 1984.06.19)


언론 반응은 일제히 분노와 충격으로 가득했다. 『덴버 포스트(The Denver Post)』는 사설에서 "한 방송인의 목소리가 백색 증오에 의해 영구히 침묵당했다"고 썼고, 『록키 마운틴 뉴스(Rocky Mountain News)』는 이를 "미국 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사설을 통해 “민병대식 광신이 우리 거리로 들어왔다”는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


정치권에서도 반응이 이어졌다. 당시 콜로라도 주지사 리처드 람(Richard Lamm)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총알로 말문을 막으려는 자들의 폭거이며, 우리 헌법의 가치를 향한 모욕"이라 비판했고, 연방 상원의원 게리 하트(Gary Hart)는 "백인 민병대가 단순한 괴담이 아닌, 공공의 적임이 증명되었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 예컨대 『반명예훼손연맹(ADL)』,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스플린터 그룹(Splinter Group for Racial Justice)』 등은 앨런 버그의 죽음을 조직적 정치 테러로 규정하며, 연방정부에 극우폭력에 대한 전면 대응을 촉구했다.


FBI 내부 회의카지노 게임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이념 기반 테러로 규정하기로 결의되었고, 사건 발생 사흘 뒤 열린 대책회의카지노 게임는 이렇게 선언되었다.


“이건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이건 사상의 전쟁이다.”

(FBI Counterterrorism Briefing, 1984.06.20)


디 오더 내부에선 숭배 분위기가 흘렀다. 그들은 앨런 버그의 암살을 '혀의 신전에 불을 지른 날'로 불렀다. 누군가는 그날을 기념해 은박지에 말려둔 탄피를 목걸이로 만들기도 카지노 게임.

그리고 로버트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우린 싸우는 게 아냐. 우린 정화하는 거야.”


혁명의 군단


작전은 점차 대담해졌다. 워싱턴(Washington), 유타(Utah), 오리건(Oregon) 전역카지노 게임 연속적으로 벌어진 습격은 수천 달러카지노 게임 수십만 달러의 현금을 조직의 비밀 자금으로 끌어모았다.


가장 충격적인 작전은 1984년 8월, 몬태나주 헬레나(Helena, Montana) 외곽에서 벌어진 현금 수송 차량 습격이었다. 오전 9시 02분, 디 오더 소속 조직원 6명은 산 중턱 커브길에서 수송 차량을 멈춰 세우고, 무장한 채 차량 양옆에서 포위 사격을 개시했다. 운전자는 즉사했고, 경비원 한 명은 팔에 총상을 입고 탈출했다. 작전은 불과 4분 20초 만에 종료되었으며, 탈취된 금액은 미화 132,000달러였다.


FBI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조직은 은행이 아닌 수송 노선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으며, 작전 전술과 무장 수준은 소규모 준군사조직에 근접한다.”(FBI Domestic Terrorism Assessment, 1984.08.22)


이렇게 모은 자금은 총기 구입, 차량 위장, 위조 신분 제작, 그리고 민병대 캠프 훈련비로 전환됐다. 이들은 아이다호(Idaho)와 네바다(Nevada) 산악지대에 분산된 우익 생존주의자 네트워크로부터 사격 훈련장과 야전생존훈련 공간을 제공받았다. 이곳에선 AR-15와 Ruger Mini-14의 분해·조립 훈련, 게릴라식 전진 및 후퇴 전술, 그리고 종교적 강령 교육이 이루어졌다.


자금이 늘어날수록, 그들을 찾아오는 전사들도 함께 늘어갔다. 일부는 단지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고, 또 다른 일부는 실질적인 범행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캠프로 향했다. 이들 중 다수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전직 군인이거나, 교도소에서 급진화된 자들이었다. 로버트는 이들을 '각성한 형제들'이라 불렀고, 신입 전사들은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꿇고 서약했다. 그들은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니었다.


이들은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었다. 디 오더는 점차 군사집단이자 컬트적 종교단체로 진화해 나갔다. 이들이 따르던 신앙은 ‘크리스천 아이덴티티(Christian Identity)’였으며, 그 뿌리는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브리티시 이스라엘리즘(British Israelism)' 교리에 있었다. 자신들이 북이스라엘 열 지파의 진정한 후손이며, 흑인과 유대인은 성경에 예언된 사탄의 자손이라는 반성서적 인종주의 교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 교리는 고전적인 백인 기독교 우월주의를 정당화하는 신학적 프레임을 제공했고, 로버트는 이를 반복적으로 설교에 인용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총을 주셨다. 이 세상의 부정은 우리의 침묵 때문이며, 우리가 다시 피를 뿌릴 때 정의는 시작될 것이다.”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 16장에 묘사된 ‘전면 혁명 준비’에 가까운 군사적, 종교적 분위기가 거의 무르익었다. 무장 요원 수는 FBI 추산 35명을 넘었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민병대 조직(예: 브리티시 이스라엘 군단, Silent Brotherhood)과도 느슨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들의 범죄 행각으로 모은 군자금은 최대 4,300,000달러(약 6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까지도 이제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별도의 식사시간, 교육 프로그램, 예배의식을 함께 하며 '아리아인의 이상향'을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일상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중심지는 워싱턴주 스포캔 북쪽 외곽, 전직 교도소 간수 출신의 신도가 소유한 사유지였다. 이곳은 밀림과 계곡에 둘러싸인 자연지형을 활용해 캠프와 사택, 예배당, 사격장까지 갖춘 소규모 정착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이 가족 공동체를 '새로운 제1성서적 질서(New Biblical Order)'라 칭했고, 아이들에게는 창세기 대신 『터너 다이어리』의 구절을 암송하게 했다. 아내들은 '순결한 여성'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공동 조리와 침묵기도를 반복했고, 아이들은 체벌을 동반한 '백인의 역사 교육'을 받았다. 단순한 조직을 넘어, 이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꿈꾸는 아리아인 국가를 그들만의 법과 교리로 실현해 나가고 있었다.


FBI 본부에서는 이제 이 사건이 단순한 연쇄 강도가 아닌, 본격적인 국내 테러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카지노 게임. 내부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이들을 저지하지 못하면, 『터너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은 현실이 된다.”(FBI Counterterrorism Threat Memo, 1984.09.14.)


FBI의 추적과 반격


디 오더의 범행이 잇따르는 동안, 사건을 맡았던 FBI 요원웨인 매니스(Wayne Manis)는 수차례에 걸쳐 워싱턴 D.C. 본부에 경고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반응은 지지부진카지노 게임. '단순한 무장 강도', '극단적 생존주의자의 일탈 행위'라는 식의 관측이 반복됐고, 실질적인 공조 수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연방 수사기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역 보안관실, 지방 검찰청 역시 사안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수색영장 집행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민병대 조직과 적대적 관계를 피하려는 정치적 계산, 지역 유권자들의 정서, 그리고 극우세력에 대한 묵인적 방관이 공공연히 이어졌다.


하지만 상황은 변해갔다. 디 오더의 습격이 조직화된 양상을 띠며 확대되고, 앨런 버그(Alan Berg)와 같은 공공인물까지 살해당하자, 정치권과 언론은 연일 연방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LA 타임스』 등은 일제히 "백색 테러리즘의 확산"을 경고하며 FBI의 무대응을 비판했다.


1984년 9월 말, 마침내 FBI 본부는 결단을 내렸다. 이들을 더 이상 은행강도 집단이 아니라, 국내 테러조직으로 격상시켜서 수사본부를 출범시킨 것이다. 워싱턴 D.C. 본부에서는 ‘매튜스 그룹’이라는 명칭 아래 전국 차원의 특별 수사팀을 조직했고, 연방검찰과의 공조하에 디 오더(The Order)에 연루된 인물 100여 명의 연락망을 추적하기 시작카지노 게임.


조사관들은 캐나다 국경 근처, 아이다호 산간지대, 오리건의 사유지 등지에 있는 생존주의 캠프를 은밀히 수색했고, 총기상과 급진 기독교 교회들에 대한 신속 영장을 발부받았다. 버려진 산장과 은닉된 무기고에서 디 오더의 문서, 명단, 작전지도, 그리고 『터너 다이어리』 복사본 수십 권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하나의 군대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언젠가 그들 앞에 무릎 꿇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FBI Internal Memo, 1984.10.01)


그러나 그들의 은신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통신은 모두 암호화되었고, 은닉 거점은 각기 다른 명의와 지형에 의존해 위장돼 있었다. 수색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과거 범행 현장에서 회수된 M1 카빈 소총의 탄도 분석 결과가 한 지역 사설 무기상과 연결되면서, 거래에 사용된 위조 신분을 추적하던 FBI 요원들이 용의자 중 한 명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스노우(Richard Snow)였다.


리처드는 디 오더 내부의 경계 대상은 아니었지만, 로버트와의 초기 작전에 함께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체포 직후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사흘 간의 심문과 가족에 대한 법적 압박 이후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에게 신을 주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신은 점점 우리를 집어삼키는 괴물이었어요.”

(Confidential Interview Transcript, 1984.10.03)


리처드의 진술은 조직 구조, 신념 체계, 지역 망명처, 심지어 무전 주파수까지 포함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로버트의 마지막 은신처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포위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최후의 날 – 휘드비 아일랜드 전투


1984년 12월 4일. 워싱턴주(Washington) 북서부 휘드비 아일랜드(Whidbey Island). 로버트 매튜스는 이 섬의 한 외진 절벽 위 목조 오두막에 숨겨져 있었다. 바다와 숲, 협곡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그가 선택한 마지막 전선이었다. FBI는 리처드의 진술을 바탕으로 위성 사진과 지역 제보를 종합해 은신처를 확인했고, 인질구출팀(HRT), 연방주류·담배·총기단속국(ATF), 그리고 해안경비대까지 투입했다.

작전명은 ‘노던 크래시(Northern Crash)’. 연방정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버트에게 항복 기회를 주기로 했다. 오후 3시, 확성기를 통해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로버트 매튜스, 당신은 연방정부에 의해 포위되었다. 무장을 해제하고 즉시 투항하라.”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오두막 창문 너머로 총성이 울렸다. M1 카빈 한 발이 FBI 차량의 보닛을 맞췄고, 대치가 시작되었다.


해가 저물 무렵, HRT는 투항 거부를 확인하고 작전 전환을 승인받았다. 최후의 진압은 야간을 이용한 강제 진입과 기화가스, 최루탄 투척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매튜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이 안에서 자신만의 종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신에 탄띠를 감고, 방독면을 쓴 채 『터너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펴놓고 있었다고 훗날 HRT 대원은 진술카지노 게임.


오후 6시 40분. 최루탄이 투입되었고, 몇 분 뒤 오두막 내부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이후의 상황은 명확하지 않다. 몇몇 대원은 로버트가 최후의 순간 스스로 폭약에 불을 붙였다고 증언했고, 다른 이들은 그가 안에서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12월 5일 새벽. 잿더미 속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신이 수습되었다. 지문이 남지 않을 정도로 소각된 상태였으나, 치아 분석과 유품, 무기 일치로 인해 로버트 제이 매튜스의 사망이 공식 확인되었다.

연방정부는 그날 이후를 “국내 극우테러와의 전면전이 시작된 첫 날”이라 불렀다.


순교자


휘드비 아일랜드의 오두막이 잿더미로 변한 그날 이후, 디 오더는 조직적 붕괴를 맞았다. 그러나 로버트 매튜스의 죽음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었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 그리고 그를 직접 만나본 적 없던 전국의 극우 지하조직들은 곧 그를 ‘전사’, ‘순교자’, ‘새로운 민족의 사도’로 칭하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은 상징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위해 금속으로 된 기념 패를 제작했고, 어떤 웹진에서는 '휘드비의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추모하는 시와 선언문이 올라오기 시작카지노 게임. 그 안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무릎 꿇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선택했고, 우리는 그 죽음 위에 국가를 세울 것이다.”


로버트가 생전에 남겼다는 녹음 파일은 이후 『White Resistance Radio』 같은 극우 매체에 의해 반복 재생되었고, 이 파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차피 죽는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식으로 죽을 것인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것인가.”(Alleged Mathews Tape, distributed 1985)


이후 디 오더의 잔당 일부는 국경을 넘어 캐나다, 멕시코, 또는 미 남부로 흩어졌다. FBI는 1985년 초, 조직 핵심급 13명을 추가 체포하고, 관련 민병대 및 극우단체 70여 개를 기소하거나 압수 수색했다. 그러나 로버트의 서사는 이미 종교적 서사로 바뀌고 있었다.그리고 디 오더의 파괴적 망상은 정확히 10년 후, 아리안공화국군(A.R.A)로 부활한다.


로버트가 최후에 펼쳤던 『터너 다이어리(The Turner Diaries)』는 이후 그를 기리는 의식의 교본이 되었고, 그의 삶과 죽음은 이후 ‘백인의 전쟁’이라는 서사의 도화선이 되었다. 1995년, 티머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를 감행했을 때, 그의 트럭 안카지노 게임도 『터너 다이어리』 한 권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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