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수의견 Apr 16. 2025

3화 음모론 제국의 탄생

Chapter 3: Bone of a Conspiracy Empire

보헤미안 그로브 : 불의 의식과 첫 히트


2000년 7월의 어느 저녁, 알렉스 존스는 북캘리포니아 몽골리아 삼나무 숲을 몰래 통과하고 있었다. 곤충 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 사이로 그는 캠코더를 움켜쥔 손을 꾹 움켜쥐었다. 조심스레 철망을 넘은 그 순간, 그는 한 장면을 목격한다. 노화된 엘리트 남성들, 검은 로브를 두르고, 거대한 돌로 만든 부엉이상 앞에서 불을 지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불타는 관, 그리고 라틴어 주문이 있었다. "Dulce est desipere in loco."

이것은 바로 ‘보헤미안 그로브(Bohemian Grove)’였다. 백악관 참모, 하원의원, 헐리우드 제작자와 군수산업 CEO들이 매년 모여 일주일간 벌이는 비밀 행사. 이 장면은 존스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뒤편에서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연극이 아니다. 이건 글로벌리스트들의 진짜 종교야." — Alex Jones, Bohemian Grove Footage, 2000


며칠 후, 이 장면은 'Dark Secrets Inside Bohemian Grove'라는 제목의 VHS로 편집되어 미국 전역을 뒤흔든다. 총기 박람회, 생존주의자 집회, 보수 기독교 라디오를 통해 확산된 이 영상은 단순한 폭로물이 아니었다. 이는 알렉스 존스가 주류 사회에 던지는 첫 전쟁 선언이자, 미국 음모론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상징적 이미지 중 하나로 남는다.


영상 속 거대한 부엉이는 ‘몰록(Moloch)’이라 불리는 고대 페니키아의 불의 신, 아동 희생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존스는 그 순간을 회상하며 “딥스테이트,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그들이 숨어서 불을 지르고 있을 때, 나는 진실의 불을 켰다! 내 캠코더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 InfoWars, 2001.02.18


그러나 이 영상의 진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뒤따랐다. 주요 언론사와 내부 고발자들은 이 영상이 의례적 연극일 뿐, 실제 사탄 의식이나 범죄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집회는 불꽃놀이와 극적 장식이 많은 정기적 리트릿에 불과하다”고 보도했으며, 참가자 중 한 명은 “그냥 부자들이 와서 술 마시고 연극하는 거야”라고 증언했다.


비판자들은 또 이 영상이 일부 편집으로 긴장감을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카메라 각도, 음향 왜곡, 해석 자막은 모두 ‘극적 해석’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상은 수많은 음모론자들에게 하나의 시청각 복음처럼 받아들여졌다. 진실보다 보는 것의 힘이 컸다.


존스는 이후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무료 카지노 게임


“그게 연극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그들은 불 앞에 섰고, 관을 불태웠어. 메시지는 분명해. 우린 그들의 본심을 본 거야.” — Alex Jones, InfoWars, 2002.03.05


보헤미안 그로브 영상은 ‘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영상 이미지로 증명한 첫 사례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딥스테이트,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글로벌리스트에 대한 온갖 담론의 시각적 근거가 되었다.


한 생존주의자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전엔 책만 읽었다. 존스는 보여줬다. 그 부엉이 앞에서 불타는 관은—그게 미국이었다.” — 익명 생존주의자, 『Conspiracy Nation』, 2004


그날 이후, 음모론은 더 이상 소수자의 상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청각 현실이 되었고, 알렉스 존스는 그 최초의 ‘현장 증인’이 되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


윌리암 쿠퍼를추모하며


1980년대 중반, 텍사스 오스틴 교외. 아스팔트 위로 태양이 내려꽂히는 여름날, 열네 살 소년 알렉스 존스는 마을 도서관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Behold a Pale Horse』라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윌리엄 쿠퍼(William Cooper)의 이 고전은 CIA가 외계인과 협약을 맺었으며, 세계는 뉴월드오더(New World Order)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땀에 젖은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소년의 눈은 점점 커졌고, 그는 나중에 이 장면을 “내 인생의 복음이 열린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의 아버지 데이비드 존스는 치과의사이자 보수적 기독교인이었다. 가정에는 윌리엄 F. 버클리의 책들과 함께, 존 버치 협회의 뉴스레터가 우편함을 통해 정기적으로 배달되었고, 주말이면 가족은 텔레비전 대신 AM 라디오에서 반공 보수논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시대였고, 반공주의·시장주의·기독교 근본주의가 결합된 신우파(New Right)가 등장한 시기였다.


레이건은 연설에서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고 말하며, 연방정부 불신과 민간 자율성을 동시에 주장했다. 그의 시대는 ‘애국심’과 ‘신앙’과 ‘총기 소지’를 동일선상에 올려놓았다. 존스의 가정환경은 이 사상적 공기를 고스란히 흡수했다.


“우린 레이건의 말을 믿었어. 국가를 작게, 자유를 크게. 문제는, 그다음에도 권력은 작아지지 않았다는 거지.” — Alex Jones, InfoWars 회고 방송, 2010


존스는 고등학생 시절, 지역 총기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민병대 네트워크 전단을 수집했고, 일부는 무기 브로커들과 함께 군 surplus 캠프에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총기를 지닌 유일한 마지막 세대였다”고 기억했다. 이 시기의 청소년기, 그는 외톨이었고, 그러나 언제나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학교 선생은 거짓말쟁이야. 진짜 교과서는 여기 있어. 쿠퍼가 쓴 책 말이야." — Alex Jones, 고등학교 친구의 증언 (『The Making of an American Prophet』, 2017)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존스의 초기 영웅 쿠퍼는 그를 비판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알렉스 존스가 보헤미안 그로브와 9/11 음모론으로 급부상하자, 쿠퍼는 InfoWars를 향해 “과장된 상업적 사이비 신자”라고 비난했고, 방송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길 거부했다. 하지만 2001년 11월, 쿠퍼가 아리조나 자택에서 FBI 요원들과 총격전 끝에 사살되자, 존스는 방송 도중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진짜 예언자를 잃었어. 그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거야.” — Alex Jones, InfoWars, 2001.11.07


무료 카지노 게임William "Bill" Cooper


첫방송 : 웨이코와 민병대, 각성의 불


1993년 4월 19일, 텍사스 웨이코 외곽 마운트 카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TV 화면 속에서 무너지는 건물, 뛰쳐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비명, 전차의 무채색 궤도. 그 장면을 오스틴의 침실에서 바라보던 스물 살 청년 알렉스 존스는 침묵한 채 화면을 응시했다. 그는 그날을 “국가가 본색을 드러낸 날”이라 말했다.

그날 이후, 존스는 대학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다. 방송 장비를 사기 위해 파트타임을 세 개나 뛰었고, 집에 돌아오면 VHS 플레이어 앞에서 웨이코 생중계를 반복해서 재생했다. 그는 비디오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여기야. 여기서 연기가 먼저 나와. 전차가 부딪히기 전이라고. 이건... 정부가 불을 지른 거야.”

이 사건은 존스에게 단지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언의 실현이었다. 쿠퍼가 말한 ‘연방정부의 공격성’, 버치 협회가 경고하던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웨이코에서 실현되었다고 그는 믿었다. 웨이코는 그에게 있어, 종말의 시작이자 진실의 계시였다.


1993년 말, 그는 오스틴 커뮤니티 라디오의 마이크를 빌려 첫 방송을 한다. 주제는 단 하나였다—웨이코와 ‘거짓말하는 연방정부’. 방송에서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불타는 교회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죽였어! 이건 전쟁이야. 이제 우리가 깨어날 때야!” — Alex Jones, 첫 커뮤니티 방송, 1993


같은 해, 그는 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VHS로 제작한다. 제목은 『America Wake Up or Waco』. 그는 텍사스 총기 쇼에 직접 나가 부스를 열었고, 영상 상영회도 열었다. 이때부터 InfoWars 이전의 ‘존스 체계’가 시작된다—영상, 분노, 이동식 상영회, 서명 운동, 그리고 직접 판매.


웨이코는 존스에게 있어 모든 출발점이었다. 그가 말하길, “그날 연방정부가 총을 들었다면,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그의 방송은 이후 민병대와 생존주의자들에게 필수 VHS가 되었고, 일부 단체는 그의 영상과 쿠퍼의 강연을 병렬 상영했다.


이때부터 존스는 정부를 “그들(THEY)”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 ‘그들’은 점차 글로벌리스트, 유엔, 언론, 프리메이슨, 은행가로 확장되어갔다. 하지만 그 원점은 항상 그날이었다. 웨이코의 불.

1994년, 그는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 연기가 아직 우리 폐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연기를 뱉어내기 위해 방송을 시작한 거다.”


남부 바이블벨트의 조력자들


1996년 텍사스 오스틴. 거칠고 열기 가득한 라디오 스튜디오의 좁은 방 안, 마이크 너머로 젊은 알렉스 존스(Alex Jones)는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그는 정부가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거대한 거짓말을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전통적인 보수 언론도, 기독교 라디오 방송도, 그리고 AM 토크쇼도 쉽게 수용하기 힘든 급진적 서사였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음모론이라는 말을 비웃으며 그는 거칠게 외쳤다.


"내가 틀렸다면 증명해봐! 나는 진실을 추적하고 있어! (Prove me wrong! I am tracking the truth!)"


그 목소리는, 바이블 벨트 깊숙한 곳의 어느 농가로도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그 음성에 귀 기울이던 또 다른 한 인물은 아칸소 북부의 전직 무기 판매상이자 반정부 애국자 운동가였던 브루스 스펜서(Bruce Spencer)였다. 그는 초기부터 존스에게 방송 장비 세팅, VHF 송출 기술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비디오 제작 시나리오를 검토해주며 몇 차례 자비로 프린팅 비용을 부담했다. 스펜서는 애초에 지역 민병대 통신망을 통해 존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가 가진 에너지가 "90년대 이후 침체되던 진실 운동의 화력을 다시 불 지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켄터키의 험한 산기슭, 오래된 라디오 수신기에서 잡음 너머로 흘러나오는 존스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세 아이를 둔 50대의 생존주의자 윌리엄 하커(William Harker)였다. 그는 전기도 불안정한 목장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곡물 창고 옆의 무선 수신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자식, 뭔가 아는 놈이군," 중얼이며 수첩을 꺼냈다. 다음 날 오전, 그는 존스의 스튜디오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내가 너한테 장비 좀 보내주지. 세상이 망하기 전에 네 방송은 더 많은 사람들한테 가야 돼. 내가 그걸 도와주고 싶군. (I’ll send you some gear, kid. Your voice needs to reach more folks before the whole thing falls apart.)"


윌리엄 하커는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의 오랜 회원이기도 했다. 그의 지역 모임은 열 명 남짓한 시골 주민들로 구성돼 있었지만, 그들의 신념은 결코 작지 않았다. 모임은 마을 교회의 지하 강당이나 하커의 헛간에서 열렸고, 매주 화요일 밤이면 미국 헌법 원본 사본 낭독과 반공 문헌 낭독이 이어졌다. 그들은 유엔에 반대했고,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로스차일드 계열의 금융 쿠데타로 보았으며, 교육부는 공산주의적 세뇌 도구라 믿었다. 그곳에서는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은 총을 든 애국자다"라는 문장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존스의 비디오 『America Destroyed by Design』(1997)는 서로 돌려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얼마 뒤, 텍사스 지역의 또 다른 후원자인 부동산 재벌이자 기독교 우파 운동에 깊이 연루된 제럴드 버틀러(Gerald Butler)가 그의 방송을 듣고 직접 연락을 취했다. 그는 존스의 방송에 감명을 받았고, 스튜디오 확장을 위한 장비 기부와 후원을 시작했다. 버틀러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다. 그는 존스에게 지역 기독교 방송망을 소개했고, 몇몇 복음주의 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그의 메시지를 보급하는 데 도움을 줬다. 존스는 곧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서로를 동지로 인지하고 전우애를 나눴으며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여겼다.


존스의 초창기 팬 층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민병대(Militia) 계열의 생존주의자들, 다른 하나는 말세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무장 압수, 교육 커리큘럼 개편, 총기 규제 정책을 '적그리스도의 음모'로 간주했고, 존스의 방송은 그 의심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증거'처럼 다가왔다.


존스는 1998년부터 텍사스 곳곳에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교회, 총기 상점, 지역 커뮤니티 센터, 가끔은 프리마켓에서까지 연단에 섰다. 그의 말은 단순하고 강렬했다. 자주 땀을 흘렸고, 마치 부흥회 설교처럼 듣는 이의 감정을 자극했다. 현장에서 비디오와 책자를 판매했고, 수익은 다시 스튜디오 장비와 제작비로 환원됐다. 이 시기에 그의 주된 조력자 중 하나는 크레이그 닐슨(Craig Nielson)이라는 전직 군인이었다. 닐슨은 민병대 조직에 연루된 인물로, 존스의 비디오 유통망을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까지 확장시켰다.


또 다른 후원자는 기독교 방송 네트워크 "American Freedom Network"의 운영자였던 제프 데이비스(Jeff Davis)였다. 그는 존스를 방송에 고정 게스트로 초대했고, 종국에는 그를 자체 방송 채널로 이끌었다. 존스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단순한 지역 라디오 호스트'가 아닌, 전국적 영향력을 가진 음모론자이자 정치 활동가로 변모해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그의 주장은 전례 없는 속도로 번져나갔다.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 담론과 일루미나티 음모론은 이제 단순한 괴짜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수적인 남부 기독교계 내에 대중적 통념처럼 자리잡기 시작했다. 교회 설교에서조차 '글로벌 엘리트의 사탄적 계획'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언급되었고, 존스는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대통령 당선은 이 불안을 결정적으로 가속시켰다. 시골 백인 보수층에게 그는 단지 첫 흑인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바마를 세계화된 다문화주의의 상징, 워싱턴 정계와 할리우드, 실리콘밸리의 좌파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반기독교적 타락의 결과물로 보았다. 개인주의적 삶과 기독교적 질서, 전통적 가족관이 글로벌 통제주의적 연방정부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는 공포 속에서, 존스의 방송은 더 이상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생존 전략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느끼는 열등감과 위협은 민주당 정부에 대한 구조적 불신으로 전이됐으며, 그렇게 음모론은 점차 정치적 영역을 잠식해 들어갔고, 알렉스 존스는 그 음모론 제국의 황제로 부상했다.


9/11과 음모론의 대전환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뉴욕 맨해튼 상공을 가로지르던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를 강타했다. 그 시각 텍사스 오스틴의 InfoWars 사무실, 알렉스 존스는 지역 방송용 편집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즉시 마이크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첫 반응은 충격, 이어서 침묵이었다.


"이건 대단히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모든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 Alex Jones, InfoWars 긴급방송, 2001.09.11.


9/11 사건 직후 몇 주, 미국 사회는 애도와 분노, 그리고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뉴욕 소방관들의 시신 수습 장면이 뉴스에 반복되었고, 중동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테러에 대한 보복 여론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 독립언론과 평론가들, 진보 활동가들은 빠른 입법과 군사작전의 속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에서 9/11 음모론이 싹텄다.


『9/11: The Road to Tyranny』는 그 흐름 위에서 만들어졌다. 존스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연방정부가 미리 정보를 알고도 이를 무시했거나, 심지어 모종의 허용을 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주요 장면은 빌딩 붕괴 각도와 폭발음, NORAD(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대응 지연 등을 짚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음을 암시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존스만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대학가와 반전운동 내에서는 ‘9/11 Truth Movement’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독립 다큐멘터리와 칼럼이 등장했다. 『Loose Change』, 『In Plane Sight』 같은 영상들이 유튜브와 초기 파일 공유 네트워크를 통해 급속히 퍼졌고, 조지프 로리오,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 폴 크레이그 로버츠 같은 지식인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기 미국 전역에서는 ‘진실 추구자들(Truthers)’이라 불리는 시민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CNN이 보여주는 그림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었고, 인터넷 게시판과 다큐멘터리에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내부자 소행(Inside Job)’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는 연방정부 내 강경파 또는 정보기관이 고의로 공격을 묵인하거나, 직접 개입했다는 서사였다.


InfoWars는 이를 조직적으로 확산했다. 기존 VHS 유통망을 통해 『9/11: The Road to Tyranny』를 총기 박람회, 민병대 교류회, 생존주의자 집회 등에서 무료 상영했고, 온라인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와 기부를 유도했다.


이 영상은 빌딩 붕괴 각도, 폭발음, NORAD(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대응 지연을 근거로 들며, “무언가 감춰지고 있다”는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같은 시기 『Loose Change』, 『In Plane Sight』와 같은 독립 다큐도 퍼지며 ‘트루서(Truther) 운동’의 불씨를 키웠다. 존스는 청중에게 '당신이 느낀 의심은 정당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것은 하나의 구조화된 불신이었다. 그는 “그들은 당신을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방송에서 이렇게 말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그들이 일부러 공격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이를 무기로 삼을 거란 점은 분명히 보였다.” — Alex Jones, InfoWars, 2002.01.03


InfoWars는 음모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보다, ‘합리적 의심’이라는 구조를 활용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존스를 통해 처음으로 주류 언론 밖의 해석에 접했으며, 이는 이후 ‘딥스테이트’ 서사의 기반이 되었다. 존스는 특히 애국법의 시행, 국토안보부의 출범, 공항 보안검색의 강화, 통신 감청 확대 등을 예시로 들며, 미국이 안보국가에서 감시국가로 이행하는 징후를 지적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자, InfoWars의 수익은 폭증했다. 그는 방송에서 생존식량, 요오드 방사능 방지제, 전쟁 대비용 교재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단순한 정치 논평이 아닌 공포 기반 상업 모델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는 웨이코 사건 이래 지금까지 그랬듯이 미국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급속히 침식되는 현실에 대해 가장 빠르게 반응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 곧 정보에 대한 신뢰의 붕괴였으며, 그 붕괴의 순간에 그는 가장 크게 울려 퍼진 확성기였다. 그는 그것을 “진실을 향한 추적”이라고 불렀고, 바로 “의심할 권리”라는 메시지로 전환되었다. 그는 그것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추적으로 받아들였다.


존스는 이를 통해 InfoWars의 정체성을 ‘의혹의 보루’로 고정시키며, 전례 없는 트래픽 상승을 경험한다. 당시 도메인 접속량은 500% 가까이 상승했고, 후원은 월 1만 달러 단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모델: 예언과 면역제


존스는 단순한 음모론자가 아니라 장사꾼이었다. 2010년대 초 그는 'Survival Shield X-2', 'Brain Force Plus', 'Caveman Vitality' 같은 자사 영양제를 팔며 수천만 달러를 벌었다. 제품은 종말론적 공포에 기생했고, 판매 문구는 마치 설교였다. 광고는 ‘해독’, ‘면역’, ‘집중력’ 등의 단어를 반복했고, 배경음악은 대개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산한 사운드였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연방정부가 당신을 노릴 때, 준비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문구가 사용자를 맞이했다.


InfoWars는 방송이 아닌, 종말론적 종교 상점이 되었다. 존스는 목사였고, 제품은 성사였다. '구매는 신념의 행위'라는 그의 철학은 방송 시청자에게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침투했다. 그는 음모론이라는 세계관을 구성한 뒤,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물품을 판매했다. 비즈니스 모델은 구조적으로 '두려움 → 신념 → 해석 → 구원 → 구매'의 흐름을 따랐다. 그는 생존주의자들의 시장을 창조해냈다기보다는 그것을 교회화했다.


제품들은 단지 비타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연방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면역제'였다. 방송 중간마다 등장하는 광고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병들게 할 때, 우리는 당신을 해독시킨다.”


그의 웹스토어는 2015년 기준 연 매출 2,000만 달러를 돌파했고, 판매의 70% 이상은 이러한 건강보조제품에서 발생했다. 광고와 방송은 분리되지 않았고, 마치 설교와 성찬이 하나의 순서 안에서 교차하듯 InfoWars는 콘텐츠와 상품이 구분되지 않는 구조로 운영되었다. 그는 자신을 “정보전의 예언자”로 불렀고, “두려움은 무기지만 해독은 내 편”이라는 문구를 반복했다.


이러한 비즈니스 구조는 전통적인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제품들이 음모론 서사에 기대어 정당성을 부여받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 『Skeptic Magazine』의 창립자는 이를 “사이비 과학이 음모론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자기강화적 생태계”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무료 카지노 게임


“과학은 불확실성을 탐구하지만, 음모론은 확실성을 판매한다. 그 확실성은 공포를 통해 팔리고, 대체의학은 그 공포에 면역이라는 이름을 붙여 돈을 번다.” — Michael Shermer, 2016년 Skeptics Society 강연


셔머는 InfoWars의 제품들이 과학적 검증보다는 '의심할 자유'라는 정치적 수사에 기대고 있으며, 이는 소비자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감정에 따라 반응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정치화된 건강 공포'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InfoWars의 고객 다수는 자신의 정치 성향과 건강 신념을 혼합하여 존스의 상품을 소비했고, 일부는 그것을 의례처럼 반복적으로 구입했다.


결과적으로, 알렉스 존스는 의심을 무기로 삼아 신념을 포장하고, 신념 위에 상품을 세웠다. 그는 언어의 힘으로 의심을 점화시켰고, 의학의 이름으로 그 불안을 정당화했다. 방송은 종교였고, 영양제는 면역제였으며, 공포와 불신은 상품이었다. 음모론과 사이비 과학, 대체의학은 그 안에서 완벽하게 손을 잡았다.

무료 카지노 게임


진짜 신앙은 모스크바에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과 정부 인사는 충격과 분노 속에 크렘린을 규탄했지만, InfoWars의 반응은 달랐다. 알렉스 존스는 그날 오후 긴급 생방송을 열었다. 배경엔 고전 러시아 성화가 걸려 있었고,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격앙돼 있었다. 그는 개전 당시 이렇게 말했다.


"이건 글로벌리스트에 대한 정당방위다. 푸틴은 신의 뜻을 따르는 마지막 보루다." — Alex Jones, InfoWars 방송, 2022.02.24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 견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이후 몇 주간 InfoWars는 러시아 국영 매체 RT, Sputnik에서 퍼지는 주장들을 여과 없이 반복했다. 부차 학살은 "우크라이나 내부 세력의 자작극", 제렌스키는 "글로벌리스트의 배우"로 규정되었고,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나치화에 대한 러시아 측 서사도 InfoWars 방송에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국토안보부는 2022년 중간보고서에서 InfoWars가 퍼트린 러시아발 가짜뉴스 사례를 직접 인용하며 이를 '친러시아 협조 미디어 행동'으로 분류했다. 당시 존스는 “우린 러시아 편이 아니라, 진실의 편”이라 응수했다. 하지만 그의 방송이 푸틴 정권의 주요 선전 틀과 점점 더 닮아가는 건 분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종교적 상징과도 맞닿아 있었다. 2016년 무렵부터 그는 서방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InfoWars 방송에서 “로마 가톨릭은 글로벌리스트의 본산”이라 말했고, “서방 개신교는 무력하다”고 비난했다. 반면 러시아 정교회에 대해선 일관되게 “진정한 신앙의 최후 보루”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무료 카지노 게임


"서방 교회는 타락했다. 진짜 신앙은 모스크바에 있다." — Alex Jones, InfoWars, 2018.04.19

그의 아들 렉스 존스(Rex Jones)는 2020년 정교회 교리를 학습하고 세례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일부 팬들은 그가 선택한 세례명이 ‘블라디미르(Vladimir)’였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곧 '예언적 헌신'의 징표로 회자됐다. 방송에서 그는 이 장면을 회상하며 “우리 가족은 진짜 신앙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전 부인 에리카 울프(Erika Wulff)는 요가 강사였으며, 두 사람은 InfoWars 사업 초기 함께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2015년 이후 급격히 악화됐다. 에리카는 법정에서 존스가 자녀 앞에서 극단적 언행을 일삼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알렉스는 카메라가 꺼졌을 때 훨씬 더 음산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혼 후, 렉스는 대부분 존스와 함께 지냈고, 그 역시 방송에 자주 등장하며 InfoWars의 후계자처럼 행동했다.


정교회 개종과 가족 내 종교적 전환은 단순한 신앙 행위라기보다는, 존스의 서사 전체가 점점 ‘서방 몰락 대 동방 구원’이라는 틀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이는 러시아 제국주의 서사와 연결되며, ‘진짜 미국인’과 ‘글로벌리스트의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전쟁으로 재해석되었다.


이러한 서사는 이후 그의 방송뿐만 아니라 각종 상품, 연설, 심지어 InfoWars 스토어에 진열된 ‘정교회 스타일 성화 배너’까지도 포괄하는 일종의 문명 내전 선언문이 되었다.


2024년 8월, 그는 트위터에 글로벌리즘을 비판하며 러시아로 이주가자고 선동하였다.


반유대주의


알렉스 존스는 자신의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도, 반유대주의자도 아니다." — Alex Jones, InfoWars 방송, 2016.05.12


그러나 그의 언어는 언제나 묘하게 암시적이었다. 그는 '글로벌리스트', '국제 은행가', '엘리트 네트워크', '문화 마르크시스트' 같은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직접적인 지칭 없이도 전통적인 반유대 서사를 암묵적으로 호출했다. 청중은 그 은유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초기 영웅 중 하나였던 윌리엄 쿠퍼(William Cooper)는 『Behold a Pale Horse』(1991)에서 중앙은행과 세계정부의 음모를 논하며 『시온 장로 의정서』를 실질적인 사상적 근거로 인용했다. 쿠퍼는 유대인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 서사의 중심에서 비유대적 주체는 등장하지 않았다. 존스 역시 이 구조를 계승했다. 그는 로스차일드 가문, IMF, 조지 소로스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언급했지만, 유대인을 직접 지칭하진 않았다. 그 대신, 청중의 해석에 맡겼다.


러시아 백계 망명자들의 반유대주의는 InfoWars의 구조와도 닮아 있었다.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즘과 유대인을 동일시한 백계 러시아 지식인들은, 서구로 망명한 후 반공·반글로벌리즘 사상과 결합했고, 이는 곧 미국 우파 정체성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시온 의정서』를 편집한 세르게이 닐루스(Sergei Nilus), 그리고 이를 미국에 번역·전파한 보리스 브라솔(Boris Brasol)은 존 버치 협회와 극우 라디오 방송들의 사상적 조상이 되었다.


존스가 찬양하던 러시아 정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 들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시온주의와 자유주의를 동일시하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담은 강론과 자료를 발표했다.


"유대 자본에 지배당한 서구 기독교는 이미 타락했다." — 러시아 정교회 비공식 교육 문서, Moscow Patriarchate, 2017


존스는 이러한 담론을 InfoWars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유대인을 명시적으로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구조적 적대감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정교회의 반유대적 언어를 이식했다.


2022년 이후, 그는 '유대인 금융 엘리트'라는 표현 대신 '국제 중앙은행가', '글로벌 생물학적 엘리트', '문화 오염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표현들은 러시아 민족주의 담론과 일치했으며, RT나 Sputnik 방송에서 사용되는 용어와도 동일했다. 이는 단순한 영향이 아니라, 의도적인 코드 공유로 해석될 수 있었다.

유대인 인권단체인 ADL(Anti-Defamation League)은 이러한 방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InfoWars는 음모론을 가장한 암시적 반유대주의의 가장 영리한 사례다. 그는 유대인을 언급하지 않지만, 수용자들은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안다." — ADL 보고서, 2022년 3월 14일자


존스는 자신을 반유대주의자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방송은 반유대주의의 문법을 빌렸고, 백계 러시아 망명자들과 러시아 정교회의 담론은 그에게 하나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는 타인을 직접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모를 설명할 때, 그는 늘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같은 인물을 지목했고, 그의 마이크는 언제나 같은 레토릭을 반복했다.


트럼프, 첫번째 음모론자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알렉스 존스는 처음부터 동맹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서사는 놀라울 만큼 겹쳐 있었다. 둘 다 로널드 레이건 시대를 ‘미국의 마지막 영광기’라 회상했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는 양자에게 하나의 회귀적 비전이었다. 연방정부를 불신하며, 글로벌리스트에 대한 경계심을 공유했다.


트럼프는 2001년 9/11 테러 직후부터 이미 “그 빌딩은 뭔가 이상하게 무너졌다. 폭파된 것처럼 보인다” (“The building was very very seriously damaged, and it looked like it was built to take that kind of thing. But something was wrong.” — Trump, WWOR-TV interview, 2001.09.11)고 발언하며, 당시의 의혹을 공론화시킨 첫 주류 인물이었다.


이후 그는 수차례에 걸쳐 오바마의 출생지를 의심하며 버서 운동(Birther Movement)을 주도했고, 2016년에는 “선거가 조작되고 있다”(“The election is absolutely being rigged by the dishonest and distorted media.” — Trump, Twitter, 2016.10.16)고 주장했다.


알렉스 존스는 트럼프의 이 같은 주장에 즉각적 서사적 기반을 제공했다. InfoWars는 ‘딥스테이트’라는 단어를 무기처럼 활용했고, 트럼프는 그것을 그대로 백악관으로 가져갔다. 2016년, 트럼프는 존스의 방송에 출연해 "Your reputation is amazing. I will not let you down."(Alex Jones Show, 2015.12.02)이라는 말을 남겼다. 존스는 이를 방송 오프닝에 삽입했고, 자신이 백악관에 통로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게이트가 터졌을 때, InfoWars는 단순한 방어선을 넘어서 적극적인 반공세를 펼쳤다. 존스는 매일 방송에서 “러시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진짜 적은 CIA, FBI 내부에 숨어있는 반역자들이다”라고 주장했고, 트럼프 역시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 “러시아 스캔들은 마녀사냥이다.


민주당과 가짜뉴스가 만들어낸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The Russia Witch Hunt is the greatest political hoax in the history of our country." — Trump, Twitter, 2018.05.29)이라는 트럼프의 발언은 InfoWars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InfoWars는 이 시기 RT(Russia Today)와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인용했고, 트럼프 역시 RT 소속 기자를 백악관 브리핑에 초대하며 러시아 국영 언론을 우호적으로 대했다. 이때 InfoWars는 RT와 함께 Deep State, George Soros, 유엔 아젠다 2030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증폭시켰고,


알렉스 존스는 “러시아는 적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반글로벌리스트 국가”(“Russia is not the enemy. They’re one of the few nations fighting the New World Order.” — InfoWars, 2017.04.12)라고 방송했다.


그들의 연대는 점점 더 신학적인 언어로 확장되었다. 존스는 트럼프를 ‘예언된 지도자’로 묘사하며, 연방정부 내 반역자들과 맞서는 ‘하늘이 보낸 심판자’라고 불렀다. 트럼프의 외교, 국방,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까지 해석되었고,


InfoWars는 “이것은 단순한 정치가 아니라, 문명 전쟁이다”(“This is not politics. It’s a spiritual war for the future of civilization.” — Alex Jones, InfoWars, 2018.11.06)라는 레토릭을 반복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QAnon이 등장했다. 2017년 말, ‘Q’라는 익명의 인물이 4chan에 처음 게시글을 남기며 “트럼프는 군 내부에 구축된 정의의 연합군과 함께, 전 세계 엘리트 아동 성범죄 네트워크를 붕괴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InfoWars는 초기에 이를 의심했지만, 곧 그 열기를 인정하고 관련 콘텐츠를 적극 송출했다. 알렉스 존스는 “Q가 누구든, 그는 우리 진영의 산물이다. 그들이 만든 진공 속에서 탄생한 음모의 정령”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음모론적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서사틀이었다. “중앙은행은 글로벌리스트의 무기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정부와 싸우고 있다”, “조작된 선거에 대응하지 않으면 자유는 끝난다”—이 모든 문장은 InfoWars의 과거 방송에서 등장했던 언어와 거의 일치했다. 트럼프는 그 서사를 현실에 투사했고, 알렉스 존스는 그 현실에 종교적 광휘를 부여했다.


둘은 함께 미국 내 가장 위험한 정치-미디어 복합체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것은 2020년 선거를 기점으로, 궁극적 충돌—의사당 폭동이라는 결과로 폭발하게 된다.



디지털 웨이코 : 음모론의 산업화와 에코 챔버


21세기 들어, 음모론은 고립된 소수자의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산업이 되었고, 공동체가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정체성이 되었다. 인터넷이 확장되면서 정보는 민주화되었지만, 동시에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생성되었다. 사용자가 클릭하는 정보는 그에게 더 많은 유사한 콘텐츠를 공급했고, '알고리즘 큐레이터'들은 거대한 **에코 챔버(Echo Chamber)**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 안에서 알렉스 존스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는 웨이코의 잿더미 위에 세워진 새로운 디지털 공동체의 교주처럼, 전 세계 수백만의 ‘믿는 자들’을 구축했다.


이들은 그를 단순한 정보원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관은 InfoWars를 통해 설명되고, 정당화되었으며, 강화되었다. 이 구조는 에이미 추아(Amy Chua)가 『Political Tribes』에서 말한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의 디지털 형태였다. 음모론은 단지 콘텐츠가 아니라, 나와 우리를 구분하는 경계였다. 누가 진실을 믿고, 누가 깨어났으며, 누가 아직도 세뇌당했는가를 가르는 신념의 지문이 되었다.


존스의 주변에는 여러 인물이 포진해 있었다. 데이비드 아이크는 외계 파충류 엘리트 이론으로, 조 로건은 반백신·사이키델릭·음모 인터뷰로, 배넌은 '국민주의 혁명'으로, 터커 칼슨은 FOX 뉴스의 프라임타임에서, 벤 샤피로는 유튜브 정치 담론에서 각자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했지만, 동일한 방향을 가리켰다. 정통 언론은 거짓말을 하고, 엘리트는 부패했으며, 진실은 박해받는다고. 이 공통의 정서는 일종의 디지털 컬트 형성 조건을 만들어냈다.


“엘리트는 당신의 삶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당신을 교체하려 한다.”

— 터커 칼슨(Tucker Carlson), FOX News 방송, 2020.09.03 (출처: FOX News Archive)


존스는 이 집단의 가장 급진적인 언어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소리쳤고, 경고했고, 신자들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그들은 당신의 물을 독살하고 있고, 당신의 아이를 세뇌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 Alex Jones, InfoWars 방송, 2018.11.06 (출처: InfoWars Archive)



이 메시지는 단지 과장된 주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에게 정치적 실천이었다. InfoWars의 시청자는 단지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생존용품 구매자였고, ‘깨어난 국민’이었고, 때로는 투표자이자 시위대였다.


이들 사이의 연대는 느슨하면서도 끈질겼다. 서로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플랫폼에서 비슷한 담론이 반복되었다. 그것은 컬트적 구심점이자, 유사 종교적 체계였다. '깨어난 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진실에 더 가까이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는 백신을, 누군가는 선거 조작을, 또 다른 이는 세계정부를 경계했지만, 그 모두는 하나의 신화 체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구조는 인터넷이라는 신전 위에 지어진 사이버 웨이코였다. 웨이코에서 데이비드 코레시는 폐쇄적 공동체를, 존스는 인터넷 공동체를 만들었다. 코레시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고, 존스는 딥스테이트의 진실을 안다고 말했다. 코레시의 신도들은 방탄복을 입고 총을 들었고, 존스의 신도들은 음모론과 분노를 들었다. 둘의 차이는 형식이었지만, 구조는 유사했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 흐름을 오래 방치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존스의 영상을 추천했고, 스포티파이는 그의 팟캐스트를 차트 상위에 올렸으며, 페이스북은 InfoWars 게시물에 ‘진실’을 검증하지 않았다. 음모론은 클릭을 유도했고, 클릭은 수익을 낳았다. 플랫폼은 침묵했고, 알고리즘은 증폭했다. 그 결과, 진실은 경쟁력이 없고, 음모는 확산력이 강한 콘텐츠가 되었다.


그러나 2018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애플, 페이스북,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이 일제히 InfoWars를 제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증오발언’, ‘허위정보’, ‘폭력 조장’이라는 사유 아래, 존스는 디지털 공론장에서 퇴출당했다. 그날 이후 그는 말했다.


“그들은 내 마이크를 뺏었지만, 내 목소리를 막을 순 없다.”

— Alex Jones, InfoWars 자체 방송, 2018.08.07 (출처: InfoWars.com)


이 말은 절반만 사실이었다. 그의 콘텐츠는 줄어들었고, 후원도 감소했으며, 그는 점점 음지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가 만든 에코 챔버, 그리고 그 구조를 모방한 수많은 새로운 인플루언서들—그들은 여전히 인터넷 위를 떠돌고 있었다. 존스는 약해졌지만, 그의 방식을 이어받은 자들은 계속해서 클릭을 유도하고, 진실을 조롱하며, 불안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구조는 지금도 살아 있다. 음모론은 정보가 아닌 정체성이 되었고, 커뮤니티가 되었고, 기도회가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웨이코 안에 살고 있다. 다만 그 벙커는 더 이상 텍사스 벌판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영적 전장 위에 존재하고 있다.


음모론 제국의 몰락: 샌디훅과 법의 심판


2012년 12월 14일, 미국 코네티컷(Newtown, Connecticut) 샌디훅 초등학교(Sandy Hook Elementary School). 오전 9시 30분 무렵, 총성이 울렸다. 교실 문 앞에 선 20세 청년 애덤 란자(Adam Lanza)는 침묵한 채 총기를 난사했고, 20명의 어린이와 6명의 교직원이 사망했다.


TV 속 화면은 조용한 교외 마을 위에 핏자국을 그려냈다. 진입하는 경찰, 울부짖는 부모들, 공터에 쌓이는 촛불과 테디베어들. 미국 사회는 그날의 충격에 무너졌다. 총기 규제, 정신질환, 학교 안전 문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러나, 그 절망의 틈 사이로—음모론이 고개를 들었다.


알렉스 존스(Alex Jones)는 며칠 후 방송을 열고, 사건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의심은 단순한 논평이 아니었다. 그는 뉴스 영상에서 부모들이 카메라 앞에 서기 직전 웃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주장했고, 응급대응 훈련 일정과 사건 당일의 일시가 겹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크라이시스 액터(Crisis Actor)’라는 개념을 대중 앞에 꺼냈다.


"이건 연출된 사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다른 조작 사건에서도 같은 배우들을 봤어요." ("There is a strong likelihood this was staged. I've seen the same actors in other false flag events." — Alex Jones, InfoWars 방송, 2012.12.19)


그는 사건을 'false flag', 즉 조작된 정부 기획이라고 암시했고, “연방정부가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연출한 사건”이라는 내러티브를 밀어붙였다. 방송은 수백만 명에게 도달했다. 존스는 샌디훅을 '두 번째 9/11'이라 부르며, 진실을 숨기고 있는 자들을 지목했다.


이 음모론은 곧 실질적인 폭력을 낳았다.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당신의 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메일과 전화를 받았고, 몇몇은 신변 위협에 시달리며 이사를 반복해야 했다. 유족 레니 포즈너(Leonard Pozner)는 아들의 무덤이 훼손되는 일을 겪었다. 그는 이후 법적 조치를 취하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우리는 이미 슬픔에 잠겨 있었어요. 하지만 알렉스 존스는 그 슬픔을 전쟁으로 바꿔버렸죠." ("We were already grieving. But Alex Jones turned that grief into a war." — Leonard Pozner, 법정 증언, 2019.06.14)


샌디훅 유족들은 2018년부터 집단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텍사스와 코네티컷 두 주의 법원은 존스에게 무려 총 14억 9천만 달러(약 2조 3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재판 중 존스는 카메라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제가 연출된 사건이라 했습니다. 지금은 후회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실수를 무기화하고 있어요." ("Yes, I said it was staged. Yes, I regret it now. But they are weaponizing my mistake." — Alex Jones, 법정 발언, 2022.08.03, Texas Defamation Trial Transcript) (Texas Defamation Trial Transcript)


그의 변호인단은 ‘과장된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를 들었으나, 배심원은 단호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고통을 상품화했고, 반복해서 그것을 팔았다.”


사법적 결과는 참혹했다. InfoWars는 유튜브, 페이스북, 애플, 스포티파이 등 주요 플랫폼에서 모두 퇴출되었고, 광고주들은 줄줄이 이탈했다. 웹사이트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트래픽은 급감했고, 존스는 개인 및 법인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 현대 음모론의 중심지였던 InfoWars는 구조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존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사설 웹사이트, 일부 스트리밍 플랫폼, 극우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샌디훅 유족에게 사과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억압당한 진실의 전달자'라고 주장했다.


"진실을 말하는 게 죄라면, 나는 유죄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나를 정당화할 거예요." ("If telling the truth is a crime, then I'm guilty. But history will vindicate me." — Alex Jones, InfoWars, 2023.01.17)



샌디훅 사건은 단지 한 음모론자의 몰락이 아니라, 음모론 산업 전체가 넘지 말아야 할 도덕적 임계점을 넘어선 사건이었다. 공적 고통을 사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구조가, 법 앞에서 무너진 사례였다. 그러나 그 구조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다. 존스가 남긴 말, 그가 만든 내러티브, 그가 쓴 문법은 지금도 온라인 어딘가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개인의 실언이나 왜곡된 방송의 문제가 아니었다.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감정적 콘텐츠, 비극을 클릭 수로 환산하는 플랫폼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확산되는 공포 마케팅과 탈진실의 감정 정치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음모론은 이제 더 이상 반문화적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이윤과 주목을 좇는 구조화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 음모론은 빅테크 알고리즘에 의해 재생산되고, 증오와 불신은 여전히 수익이 되는 자산이다. 사이비 종교가 한때 마을을 점령했다면, 지금의 음모론은 인터넷을 점령했다. 그것은 하나의 디지털 신앙이고, 클릭을 성례로 삼는 새로운 형태의 컬트다. 우리는 아직도 그 광신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