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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an 22. 2025

잠시 잠깐 카지노 가입 쿠폰

길지는 않은 따돌림이었지만


중학교 1학년이 끝나기 전에 도시를 가로질러 이사했다. 깜깜한 아침에 좌석버스를 타고 서쪽에 있는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는 금호강이 흐르는 동쪽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씩 버스 타기가 힘들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기말고사에서 수학 시험을 망친 게 전학을 서두른 이유(전에 미영이 이야기에서 썼다)였다. 겨울방학 기간에 전학 절차를 끝낸 나는 학기 끝, 종업식까지 3주를 남긴 애매한 2월에 전학생이 되었다. 교복 하의(치마와 바지)가 빨간 체크무늬에서 초록 체크무늬로 바뀌었다. 귀밑 3cm 길이의 단발머리, 검정 스타킹과 무채색 양말 따위 복장 규정은 지난 학교와 비슷했다.


시골 마을 언덕집 아주머니의 손녀 숙이가 마침 새 학교 1학년이라고 했다. 전학 며칠 전 숙이와 엄마가 우리집에 놀러 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발표가 있던 저녁이었다. 세상사에 이런저런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던 시기였던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나는 서태지 좋아하지도 않는다"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숙이는 서태지의 열렬한 팬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숙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숙이는 키가 커서 맨 뒷자리, 키가 작은 나는 맨 앞자리에 앉은 경아 옆에 앉게 되었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 아래 옅은 주근깨가 콕콕 있는 경아는 귀여우면서도 사나운 인상이었다. 엄격한 교칙을 슬쩍슬쩍 위반하는 컬러풀한 양말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과산화수소수로 탈색한 상고머리는 걱정스러웠다.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자습하는 느슨한 시기라고는 하지만 괴팍한 선생님들이 마음만 먹으면 뺨을 때릴 수도 있는 때였으니까.


첫날 점심시간에 숙이와 경아는 나에게 전에 다니던 학교가 어디냐 같은 간단한 질문을 했다. 별로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없었다. 애들은 칠판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 이야기였지만 끼어들 구석은 없었다. 숙이는 커다란 글씨로 "평균 80점? 90점?"을 쓰고 중요한 단어라는 듯 동그라미를 치며 나를 쳐다봤다. 미세한 적의가 느껴졌고 부끄러웠다. 숙이의 엄마가 나에 대해 칭찬했겠지. 걔는 공부 잘한다더라, 하며 숙이를 슬쩍 나무랐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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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진 눈이 땡그랗고 숏컷이 잘 어울리고 늘씬한 숙이와 친구가 되기는 글렀다. 누가 봐도 노는 애인 경아도 마찬가지였으니 다른 아이를 찾아야 카지노 가입 쿠폰. 나는 엎드려 연습장에 빼곡하게 "바보야 놀자"를 쓰기 시작카지노 가입 쿠폰. 분홍과 초록 펜으로 그림을 그리듯 페이지를 채웠다. 깨알같은 글씨로 큰 글자를 완성하는 낙서가 유행이었던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몰랐지만, 바보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 썩 괜찮은 친구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밀 일기장에나 쓸 법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뭐해? 좀 보자!" 숙이와 경아는 내 연습장을 흘긋 보고 곧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아침 옆 분단에 앉은 아이가 말을 걸었다. "넌 생일이 언제야?" 통통한 얼굴이 새빨갛고 억센 곱슬머리가 사다리꼴로 뻗은 단발머리가 튀는 아이였다. "나랑 친구 할래?"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는 아이에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생일이 언제야? 내가 생일 선물 줄게! 너도 내 생일 챙겨줘." 내 생일은 1월 말이어서 학교에서 축하받은 적이 없었다. 그 아이의 생일은 내일모레라고 했다. 그러면 내가 저 애 생일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이상한 애였다. 그날 쉬는 시간에 내 뒤에 앉은 아이가 나에게 나직이 알려줬다. "쟤, 카지노 가입 쿠폰야. 자꾸 거짓말하거든. 생일도 아닐 거야. 조심해."

엉망진창이구먼. 이 학교.


점심시간에는 짝인 경아가 뒷자리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자고 카지노 가입 쿠폰. 뒤에 앉은 아이의 도시락 반찬 중에 달걀에 부친 햄이 있었다. 하나를 얻어먹고도 자꾸 햄 반찬을 조르는 경아 때문에 내가 다 불편카지노 가입 쿠폰. "하나만 줘~ 에이~ 하나만 줍쇼!" 다양하게 구사하는 한 입만 타령에 반찬 주인이 억지웃음을 지을 때, 경아를 말릴 겸 한마디 카지노 가입 쿠폰. "뭐야~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아뿔싸! 웃으면서 말해도 지나쳤다 싶을 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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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눈이 나를 째려보고 나서도 오후 일과는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다음날 학교에 왔더니 내 자리만 짝이 없었다. 경아가 자기 책상을 뒤로 밀면서 아이들을 모두 한 칸씩 뒤로 보낸 거였다. 어리둥절한 상태가 금방 지나가고 따돌림을 깨닫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점심시간엔 혼자 밥을 먹었던가? 어떤 애가 카지노 가입 쿠폰라고 일러준 볼 빨간 아이와 도시락을 먹었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남은 시간 동안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경아는 뒷자리 아이들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키득댔다.

“야, 내가 어제 초등학교 앞에 지나갔거든? 근데 어떤 애가 나를 빤히 보는 거야. 기분이 나쁘잖아. 그래서 앞에 갔지. 야! 너 왜 꼬나보냐? 그랬더니 '무섭게 생겨서요.' 하대? 확 짜증이 나서, 야! 무섭게 생기면 계속 꼬나봐도 되냐? 하니까 ‘아니요.’ 하면서 도망가더라.”

하찮은 무용담, 경아는 무섭게 생기지 않은(예쁘지는 않지만, 귀엽다는 말 정도 기대하는) 자기 얼굴을 순둥한 친구들에게 들이밀며 웃었다. 나는 속으로 대꾸카지노 가입 쿠폰. ‘머리를 그 따위로 탈색하고 눈깔을 그렇게 치뜨고 마스크를 끼고 다니니까 애들이 당연히 쳐다보지.’


맨 앞자리에 내 책상만 덩그러니 남은 채 6교시를 보냈지만, 선생님들은 별말이 없었다. 이틀쯤 지난 후에 엄한 선생님이 혼을 내서 책상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는 없었다. 그렇게 살갑게 굴던 얼굴 빨간 아이도 어색한 아침 인사만 건넬 뿐이었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숙이와 경아가 “너 신발 좋은 거 신었다? 어디서 샀냐?” 했을 뿐, 별일은 없었다. 엄마가 어디서 얻어온 초록색 운동화였다. 얻어온 거라 모른다는 대답을 하기 싫어서 잘 모른다고 대답카지노 가입 쿠폰. 말투를 떠올리며 티가 나는 짝퉁이었던 모양이라고 한참 후에 질문의 의도를 파악카지노 가입 쿠폰.


봄방학 직전 과학실에 앉아 비디오로 쥐라기 공원을 보았는데, 벨로시랩터가 나오는 무서운 장면에서 눈빛 마주칠 친구가 하나도 없어 마지못해 더욱 영화에 집중카지노 가입 쿠폰. 영화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갈 때, 같은 분단 뒷자리에 앉은 안경을 끼고 키가 큰 송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애들이 너 이상하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더라.”

송이의 말에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카지노 가입 쿠폰고 할 수는 없었지만, 고마웠다. 내심 ‘좀 나대는 애’라 여겼던 송이가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방학식 전날에는 두 교시 정도 장기 자랑을 하며 과자 파티를 했는데, 다들 나를 편히 대해주었던 것 같다. 금세 헤어지는 마당에 분위기에 떠밀려 잘 모르는 전학생을 따돌린 것이 마음에 걸렸겠지. 그렇게 1학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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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때에는 같은 반도 아닌 경아와 숙이를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거의 잊을 뻔도 했던 경아를 3학년 때 한 번 마주쳤다. 2학년 때 짝이었던 혜정이가 다른 반이 되어 쉬는 시간에 놀러 갔더니, 하필이면 경아가 혜정의 짝이었다. 나를 본 경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큰 소리로 인사카지노 가입 쿠폰. “안녕! 수진아, 진짜 오랜만이다! 너 혜정이랑 짝이었다면서? 우리 1학년 때 짝이었잖아.” 나는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경아의 머리는 까맸고 장난기 어린 표정에는 한 줌 악의도 보이지 않았다. 꼭 그런 법이었다. 께름칙한 짓을 한 아이는 자기가 잘못카지노 가입 쿠폰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교실을 나갈 때, 마치 우리가 정말 친한 짝꿍이었다는 듯 손을 흔들며 웃던 경아의 얼굴, 지금은 졸업앨범을 뒤적이지 않고는 알아볼 수 없겠지.


빨간 얼굴 아이는 20대 후반에 길에서 한번 마주쳤다. 화려한 티셔츠를 입고 파마머리가 부스스한 여자가 활짝 웃으며 다가오기에 주춤거렸다. “수진아! 수진이 맞지? 나 기억 안 나?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잖아. 너 전학 왔잖아. 어쩌면 그때랑 똑같아? 바로 알아봤어!”

호들갑떠는 아이를 보며 어색하게 안부를 물었다. 잠깐이지만 몹시 반가운 얼굴로 나를 대한 아이는 길 건너를 가리키며 꼭 놀러 오라고 말카지노 가입 쿠폰. 자기 엄마가 하는 노래방인데 출근길이라고. 나도 학원 출근길이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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