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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pr 10. 2025

시인의 카지노 게임 추천 시인의 호텔

태백의 차가운 카지노 게임 추천방을 떠올리며

'터미널 근처 카지노 게임 추천에 방을 하나 얻었다.'


몇 년 전 신문에서 본 시인의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호텔도 게스트하우스도 에어비앤비였다면 그런가 보다 지나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관? 요즘에도 여관을 찾는 사람이 있나. 그 옛날 여관에 대한 향수가 있는 세대였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시인인 그가 여관을 찾는다는 그 시작을 놓칠 수가 없었다.


박준 시인은 겨울을 겨울답게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태백을 찾았다고 썼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여행이라기보다는 도피나 유배에 어울리는 곳을 선택했고 그래서 그곳은 여관이어야 했다. 눈보라가 몰아칠 것 같은 산속 깊숙한 외딴 동네에 이제 막 터덜터덜 도착한 한 청년이 그려진다. 사흘 정도 머물 요량으로 나그네처럼 여관비를 흥정하고, 낡은 건물 한 구석 허름한 방을 하나 잡았다. 옛 잡지나 서적이 아니라면 좀처럼 여관 이야기를 보기 쉽지 않은 요즘에 그의 방랑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호텔 이야기를 좋아한다. 뉴욕에 있는 앨곤퀸 호텔(The Algonquin)에는 '시인의 방'이 있다. 1920년대 미국의 시인 도로시 파커가 그곳에서 글을 쓰고 사람을 모아 평론을 즐겼다. '앨곤퀸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는 원탁 모임으로 밤마다 호텔의 창에는 불빛이 들어왔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와도 친분이 있던 도로시 파커는 영화 <스타탄생에 참여하여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탔던 화려한 스타 시인이었다. 호텔의 불을 밝히며 글을 쓰던 파커의 시간들이 호텔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도 그 '시인의 방'에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들었다.


우리에게도 시인의 여관이 있다.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따라 이어지는 돌담길은 서울의 좋아하는 걷기 코스 중 하나이다. 그곳에 소박하고 낡은 여관이 눈에 띈다. 지금은 카페와 북스테이가 된 서촌의 '보안여관'은 1930년대 시인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서정주를 비롯한 김동리, 김달진 등이 ' 동인지 '시인 부락'을 창간하였고 이중섭, 구본웅과 같은 화가들도 작업을 하며 드나들었던 아지트였다.


산책길에 둘러본 보안여관은 좁다란 계단과 복도와 작은 방으로 이어진 구조가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창이 나있는 삐걱거리는 나무문과 문지방, 정사각형꼴 작은 타일 조각들과 벗겨진 콘크리트 벽을 서성이다 보면 추가 묵직한 괘종시계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다. 특히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은 창구가 여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숙박계를 쓰고 드나들었을 그들의 발걸음이 보인다. 이처럼 여관은 작품의 무대로 배경으로 도시에서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1942년부터 2005년까지 60년 동안 수많은 나그네들이 보안카지노 게임 추천을 스쳐갔다. 근대의 시간의 층위로 지금의 풍경이 입혀졌다. 요즘의 '보안 카페'는 돌담뷰를 찾는 사람들의 명소가 되었다. 주말 아침이면 돌담을 바라보며 이 카페의 조식 메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태백의 여관방에 머문 박준 시인의 이야기는 다시 이어진다.


'이튿날에는 여관 주인에게서 안 쓰는 밥상을 하나 얻어와 책상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해서 안 써지던 시가 잘 될 리는 없었다. 결국 나는 태백에서 머무는 사흘 동안 한 편의 시 아니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몇 번 슈퍼에 간 것을 제외하고는 여관 밖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 <너무나 뜨겁거나 차가웠던 태백의 여관 2016,1,19 한겨레 중에서, 박준


시를 써보겠다고 한겨울의 산속을 찾아 여관방의 불을 밝힌 시인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한 줄도 쓰지 못해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을까. 헛된 시간 낭비였을까.

시인은 시 쓰기가 울음 같다고 했다. '울고 싶다고 해서 억지로 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 울고 싶다고 해서 그칠 수도 없는 울음'


시 쓰기 뿐 아니라, 우리 가는 길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찾고 기다리지만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시도하지 않을 수도 없다. 벅차고 고된 순간들을 지난다고 반드시 무언가가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비바람의 무수한 잔해들을 헤치고 나와 멍해진 상태로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낼 즈음 발밑에서 반짝이는 작은 결정체를 발견한다. 그것들을 들어 올려 가만히 바라본다.

울음만 계속되는 날들은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때로 위로가 된다. 박준 시인은 이듬해 여름 다시 태백을 찾았고 그때 겨울에 쓰지 못했던 시를 연달아 썼다고 했다. 다음 계절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박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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