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 내용 일부 포함되어 있음
* 지금까지의 등장인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과 장면에 대한 소개
서희는 하동으로 돌아갈 카지노 게임이다. 일을 결정함에 있어 생각, 판단과 행동의 준거는 모두 하동에 돌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느냐였다. 나를 위해서든 아니든, 어쨌거나 같이 와준 이들에 대한 부채감도 있고. 카지노 게임을 만나면서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냥 성질 못된 여자애라고 치기에는 지키는 선이 명확하다. 행동에 이유도 그렇다. 그런 서희가 친일파의 절에 시주한 거나, 의병들에게 군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것도. 분명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으리라. 문득, 용이에게 소리 지르는 서희가 안쓰럽다. 누군가에게 속마음 하나 털어놓을 수 없고 모든 걸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고, 의지할 만한 이도 없다. 서희 딴에는 다정하진 않지만 박하게 대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와서 내가 나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갈잎을 먹고 사느라 고생이라고 푸념하면, 어쩌란 말이더냐.
1권부터 지금까지 역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용이다.
강청댁과 용이가 그렇게 눈에 밟히더니 5권까지도 여전할 줄은 몰랐지. 서희와 용이, 거복이, 길상이 모두 제각각 삶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제일 답답이는 용이다. 이래저래 물론 자기 탓이 아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활로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용이 이 카지노 게임은 답이 없다. 이렇게 된 게 다 남 탓이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월선이 무당 딸이 아니었더라면, 육례를 갖추어 혼인을 했더라면, 떡판 같은 아들 샛별 같은 딸을 낳아주었더라면,... 천둥만 치지 않았더라면, 홍수만 나지 않았더라면, 흉년이 들지 않았더라면, 액병이 돌지 않았더라면, 전쟁만 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다시 강청댁한테 정을 붙이고 월선을 잊을 수 있었더라면, 보부상 늙은이한테 시집갔던 월선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월선이 또다시 마을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하룻밤 실수, 임이네를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면, 강청댁이 자식을 낳아주었더라면, 죽지 않았더라면-(404p)
자기 탓은 하나 없지. 남 탓이 일상이 되어 은연중에 자기가 농사를 짓지 못하고 간도에서 전전긍긍 사는 것도 남 탓이 되어버린다.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서희 앞에서 푸념하다가 정곡을 찔려버린다. 우유부단하고 다정한 성격은 그저 보통의 평범한 환경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도 못하고 보내버린 순간부터는 어쩌면 예견된 불행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닌 카지노 게임. 벌목을 가는 것도 어쩌면 회피가 아닌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개선해 볼 생각 없이, 이 모든 지겨움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을 지도.
카지노 게임가 길상이와 혼인을 결심하고 상현에게 의남매를 맺자 하며 통보한 장면이 가장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이다. 그리고 호로록 화를 내고 제대로 된 끝맺음 없이 도망치듯 사라진 상현이는 너무 어린아이 같고. 무얼 해볼 생각도 없었으면서, 카지노 게임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저 어여뻐서 좋아했던 걸까. 진짜 좋아한다면 그의 편에 서서 그의 한, 꿈을 온전히 지지해 줄 수는 없는 걸까. 다른 이와 혼인하겠다 하니 그 어미에 그 딸이라는 소리를 하고 도망을 치다니. 아니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해도 되는 말, 안 되는 말 분간도 못하는가. 거기다 술까지 끼얹고 가고. 최대한 상처를 주고 싶었던 걸까. 내가 상처받았으니 너도 더 상처받아야지라는 심보였을지도. 하여간 못났다 못났어. 어쩌면 카지노 게임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상현은 하동에 다시 돌아가는 꿈을 버려서까지 여기에 남아 기대어 살 수 있는 지아비까지는 어렵겠다고.
2부가 시작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했다. 1부부터 나오던 등장인물들의 마음도 점점 어지럽게 얽혀 들기 시작한다. 이제는 길상이 본인만 모르는 길상과 서희의 혼인은 또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서희는 길상과 혼인하겠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는데 길상은 옥이네랑 혼인해야지 이러고 있고. 그런 맘이라는 걸 알면 서희는 또 엄청 자존심 상해할 텐데.
길상의 완강한 턱뼈에서 설렁설렁 불어오는 찬바람, 별안간 남의 수족 노릇은 아니하겠노라고 외쳐대는 길상의 고함이 귀청을 찢는다. 아아, 반항과 거부의 격렬한 몸짓이 보인다.
...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 없지. 아암 그건 이 더위에서 온 망상이니라. 망상이고 말고. 네가 나를 떠나 어딜 간단 말이냐? 너의 이십칠 년의 세월은 나를 위해 있었던 거구 내가 세상에 나온 십구 년의 세월을 너는 내게 충성했었다. p.260
하지만 왠지 길상이가 쉬이 혼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또 한바탕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카지노 게임가 어서 삶의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 안도감이란 그저 돈이 많다고 생기는 것이 아닌데. 어려서부터 봐와서 그런지 이제 점점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져간다.
220. 해가는 마음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합니다.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왜 이리 마음이 아플까. 내 마음은 어디에 있어 무엇 때문에 아픈가.
223. 난 하동으로 돌아가야 할 카지노 게임이다.
카지노 게임가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무언가를 지키려는 건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240. 카지노 게임이란 도저히 가망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꿈을 꾸고 어리석게 공상을 하고 하는 모양이오. 그렇게라도 해서 위로를 받으려 하는 심정인지도 모르겠군요.
265. 아무튼 남이 요구를 할 경우 격렬하고 심술궂게 거절하는 카지노 게임의 심리에는 남의 것을 얻으려고만 하는 근성에 혐오를 느낀 탓만은 아닌 성싶고 노상 주기만 하는 자기 처지에 한 가닥 외로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됐으나 마지막까지 읽고 보니, 서희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카지노 게임들에게 일말의 부채감이 있지만 그냥 퍼줄 수는 없고, 내가 우스워 보이는 것도 싫다 살아오면서 나를 온전히 아껴주는 이가 없어서일까. 평생을 기대어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주변 카지노 게임들이 사라지거나, 죽거나, 도망가는 일만 겪어서 더 겁이 많아진 걸까. 내가 더 이상 줄게 없어지면 너는 나를 버릴지도 몰라. 나는 그래서 내 몫 이상을 꼭 잡고 있어야 해. 만일, 내가 겨우 내 몫만 한다면 나는 더 지금보다도 더 외로워질 것 같아.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아.
323. 날마다 마을에서 송장이 지나던 무서운 그해, 카지노 게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스러지던 그 황막한 시기를 살아남았을 때 용이는 방종과 무기력의 수렁에서 기어 나와 자기 자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번에는 용정을 휩쓸고 지나간 화재 뒤끝의 폐허 속에서 생활에 순응하던 구역질 나는 자기 자신과 작별할 수 있었다. 그 치욕스러운 생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용이는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주변 환경과 상황에 의해 치욕스러운 생활로부터 해방이 된다. 언제쯤 이 사내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것인가.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할까.
354.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희망이 약점이라니. 부숴버리고 빼앗길 것이 있는 카지노 게임은 약해지기 마련일까. 금녀의 이야기였지만 서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희망이 아닐까. 서글픈 찰나일까. 희망은 누구에게는 약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꽃이 되지 않을까.
387. 하여간에 계집도 그렇겠지마는 사내한테도 기영머리 마주 풀고 법으로 만낸 여핀네가 오래 살아주어야, 파뿌리 되도록 살아주어야. 계집이 팔자가 세도 안되겠지마는 사내도 팔자가 세믄 그거는 볼 장 다 보는 기라.
강청댁이 살아있을 때는 그렇게 못 견뎌하더니, 이제는 이 모든 불행에 강청댁이 일찍 죽은 탓도 있는 건가.
395. 너희들이 나로 인하여 이 만주벌판에까지 왔더라 그 말이냐? 왜들 이러는 게지!
사실은 이게 서희의 부채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 거절할 수 없는 마음이 밑바닥에 있는 게 아닐까. 다만 그게 다른 카지노 게임이 알아차리게 되면 자신의 양반으로서의 권위가 무시될까, 또 걱정되는 마음. 서희가 하동에 계속 있었더라도 어차피 조준구를 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뭔가 다른 시도를 해야 할 텐데. 그래서 좋은 기회에 같이 떠나게 된 거지만 다른 고생하는 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그 미안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좀 더 신경질적이 되어 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