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시대에 상담이 그런 카지노 게임 추천라면"
상담이라는 것이 흡사 진보정치 활동의 실천론 같은 것이고, 작고 약한 아이들을 상정해 자기가 좋은 부모놀이를 하려는 유사양육활동이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증진시키려는 사회적 쇼와 같은 것이라면? 적어도 오늘날 지배적인 집단인식이 상담자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고 또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상담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상담자가 아닌 편이 나을 카지노 게임 추천다.
그래, 차라리 나는 상담자가 아니다. 나는 마음을 너무나 좋아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다른 어느 곳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만을 향해 그 깊이와 그 자유로운 향기에만 반해왔다.
나는 마음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인다거나, 사회적 권위 및 권력을 추구한다거나, 모종의 지배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나에게 마음은 순수한 목적이다. 생명에게 삶이 순수한 목적인 것처럼, 마음으로 사는 나에게도 마음은 다만 순수하게 좋아서 끌리는 것이다.
떠올려보면 마음이야말로 늘 그런 카지노 게임 추천 아니었다.
마음에 대해 그 구조와 원리를 다 파악한 척하며 이제 마음을 도구적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들 앞에서 마음은 언제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드러났다. 인간이 만든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새장 안에 결코 포섭될 수 없는 아주 거대한 자유의 면모를 스스로 증거해온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낯선 것, 새로운 것, 미지의 것.
자기 마음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정말로 마음에 대해 알고 있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런 척만 하며 자기통제력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 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심리적 문제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곧 어떤 마음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몰라서 발생한다. 아는 척을 하고 있으면 정말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 일에 대해 모르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마음에 대해 뭘 좀 아는 사람인 척만 하고 있다보니 마음에 대해 무력해진 것이다. 그러니 자기 머리로 상정해놓은 시나리오 밖의 어떤 일만 생겼다 하면 지축이 뒤흔들리며 중심이 요동친다. 소위 불안이라고 부른다.
마음은 불안의 소재인가? 그렇지 않다. 마음에 대해 아는 척하고 있어서, 바로 그 방식으로 자기 마음에 대해 결국에는 무지하게 되었기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면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반석 위에 서있는 것 같은 든든함이 경험된다. 나아가 세상의 그 어떤 혼란 속에서도 자기 마음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환히 비추고 있는 빛을 만나게 된 것과 같다.
내 마음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 모든 생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빛과 접촉하게 된다. 이것은 마음과 정말로 친해지는 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처음으로 낯설게 다시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다가가려는 이 길을 소위 마음공부라고도 부른다. 공부라고 말하니 딱딱하게 들리지만, 실은 소개팅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새롭게 마음을 연인처럼 알아가는 설렘과 기쁨이 있다.
마음을 아이처럼 보거나, 자기 안의 어떤 소인들의 군집으로 보거나, 또는 취약한 피양육자의 모습처럼 보는 식으로, 마음을 계속 '대상화'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음과 정말로 친해지기란 불가능하다. 마음은 대상화되어 있을 때는 결코 그 품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들은 닫힌 마음을 억지로 알아주려고 하고, 일방적으로 자기가 품어주려고도 하며, 도덕주의를 통해 강제로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기도 한다. 연애의 무능력자들이 늘 하는 방식이다. 사랑에 대해 늘 지배와 통제의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자기는 늘 숭고한 사랑의 희생양인 것처럼 구는 것도 이러한 이들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자신과 마음 사이의 관계를 마치 부모와 자신이 맺던 관계의 양상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엄마처럼 대하거나, 또는 자신이 마음을 아이처럼 대하는 엄마가 되려 할 때, 마음과의 연애란 불가능하다.
마음과의 연애가 어려울 때 실제 사람과의 연애도 어려워진다. 당연하다. 자신과 마음이 맺는 관계성의 질이 곧 자신과 타인이 맺게 되는 그 관계성의 질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정말로 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과도 정말로 친해진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정말로 어떻게 친해지는가, 그 답이 여기에 있다. 답은 마음이다.
백날 "나는 나를 사랑해. 작고 여려도 소중한 내 자신을 너무 사랑해." 따위의 말들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닌다 해도, 자기사랑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이런 것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방법 같은 카지노 게임 추천 아니다. 단순한 자기최면이자 자기세뇌다. 강제로 집행하는 폭력의 일종이다.
마음을 낯선 연인처럼 보며 다가갈 때 일어나는 일은 우리 자신이 낯선 연인처럼 조우되는 그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을 억지로 사랑하려는 노력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새끼니까 어떻게든 내가 품어야지, 라는 식으로 '품어주는 엄마 나'와 '품어지는 자식 나'를 상정해 자기 머릿속에서 한바탕 신파를 펼치는 마당놀이 따위는 더욱 하지 않는다.
나는 그토록 힘들게 어르고, 달래고, 돌봐야만 할 성가신 존재인가?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성가신 것으로 경험하는 이들이 자신의 무게를 언제나 질질 이끌고 살아가는 시지프의 흉내를 내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자신이 존재라고 생각하던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언어로 만들어낸 정체성일 뿐이다.
존재가 무엇인지 만난 적이 없기에 우리는 존재에 대해 자주 착각한다.
존재는 이를테면 바탕 같은 것. 커다란 백지 위에 그려진 하나의 작은 그림이 백지를 성가신 무게로 경험하는 일이란 정말로 가능한 것인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자신을 내어주고 있을 뿐인, 그리고 그림을 그 아래에서 받치고 있을 뿐인 그런 바탕은 결코 성가신 것이 될 수 없다.
다만 그림이 그림 자신을 성가시게 경험하는 카지노 게임 추천다. 한때는 멋져보였지만 이제는 시간이 지나 퇴색되고 촌스러워진 그 그림을 여전히 과거의 영광처럼 빛나는 것으로 지속하려 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기에 그림은 성가신 소재가 된 카지노 게임 추천다.
존재는 그때나 지금이나 든든할 뿐이다. 든든하면서도 가볍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신소재와 같다. 자신의 존재를 체험해서 정말로 이해하게 된 이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그저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심되고도 자유로운 삶.
이런저런 조건들을 비루하게 맞춰가며 여러 우상들에 의존할 필요없이 오직 스스로의 존재에만 근거해있는 삶.
내가 이 세상에 나로 태어나 나로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
마음을 정말로 좋아하는 이는 그런 삶으로부터 이끌리며 그런 삶을 살게 된다.
거두절미하고, 상담이란 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좋아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일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삶을 선물로 누리라고 이 세상에 오게 된 엄연한 한 인간이 바로 자신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쪽수가 상담을 정치론에 입각한 양육술 내지 착하고 순한 아이 육성을 위한 교육활동쯤으로 집요하게 고집하고자 한다면, 나는 정말로 상담자가 아닌 편이 나을 것이다.
내가 상담자가 아니라면, 나는 마음에 대해 더 많이 말할 수 있다.
내가 마음에 관해 제일 재미있고도 가장 거대하게 말할 수 있는 방식, 깨달음 얘기나 해보도록 하자.
상담이 이 시대에 혹시 그런 것들이 되었다면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도록 하겠다.
깨달음은 그런 카지노 게임 추천 아니다.
이 글은 여전히 마음을 너무나 좋아하는 이의 마음모험기이며, 모험길에서 만난 마음에 관한 가장 정직하고 분명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