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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문득 당신께 카지노 게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래 전부터 나는 당신께 한 번쯤 소리나는 대로 카지노 게임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막걸리 먹고 취한 사내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내게 무슨 깊은 한이 있어 그런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매양 또 주저하다 세월만 흘려 보낼 것 같아 딴에는 작정을 하고 쓰는 셈입니다.
- 윤대녕, '상춘곡'(도입부)
윤대녕 선생의 소설 '상춘곡'의 첫 문단이야. 이 소설은 카지노 게임글 형식으로 썼어. 카지노 게임 치고는 좀 길지. 중편 소설 길이야. (음... 참고로 윤 선생님은 아빠가 소설가로 등단할 때 심사위원이셨어.) '소리나는 대로 카지노 게임글을'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오네. '소리나는 대로' 그러니까 가필하거나 고민 없이 평소의 생각 또 지금 드는 생각들을 전하겠다는 거야. 게다가 술 한 잔 들어가면 용기가 나잖아. 특정한 동기부여보다는 카지노 게임를 지금 쓰려고 작정한 거 같고. (아, 그리고... 카지노 게임글 형식으로 읽을만한 소설 소개하면 '상춘곡' 외 기억나는 소설이 신경숙 선생의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소설이야.)
열흘 전, 실로 7년 만에 당신과 해후했을 때 당신은 내게 벚꽃 얘기를 하셨습니다. 4월 말쯤 벚꽃이 피면 그때 다시 만나자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남(南)으로 내려가 벚꽃을 몰고 등고선을 따라 죽 북향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개화 남쪽 지점을 당신의 고향으로 정한 겁니다. 이곳 선운사는 10년 전에 우리가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이 아닙니까.
- 윤대녕, '상춘곡'(세 번째 문단)
소리 나는 대로 '솔직히 말하니까' 잘 읽히지 않냐? 선운사부터 봄을 몰고 상경하겠다는 건데... 그래서 꽃나무 아래에서 '당신'을 다시 해후하겠다는 것. 이런 내용을 작중 화자는 '말하고 있어'. 이건 복습인가?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엄마는 아빠에게 요청하는 게 별로 없어. 그런데 말이야, 더러는 해달라고 하는 게 있기는 있었어. 요즘은 그것조차도 없는데 그게 뭐냐면 '카지노 게임'야.
답장해 주세요.
라고 엄마는 종종 이야기했어. 무참하게도 아빠는 엄마의 카지노 게임에 답장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꼭 하고 싶은 얘기를 소중하게 여겨 카지노 게임에 담았더랬어. 내용이야 얼핏 기억나는 정도지만, 카지노 게임를 쓸 때 너희 엄마의 마음은 잊을 수가 없단다. (너무도 잘 전달되었으니까. 글 쓰는 목적이 그거 아니니?) 백 번을 양보하고 아빠에게 바라는 마음(내용이 아닌)이었거든. 아빠는 살아가면서 점점 더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게 엄마의 카지노 게임 때문만은 아니지만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면서 더 사랑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그건 그렇고.
요즈음엔 카지노 게임들이 예전처럼 사적인 카지노 게임글을 잘 쓰지 않아. DM이나 메시지나 SNS는 잘 모르겠어. (이런 것도 좋아 하지만) 아빠는 '카지노 게임글'이 사라져 가는 게 아쉬워. 카지노 게임를 쓰게 되면 카지노 게임를 받을 카지노 게임에 대해 한껏 생각하게 되거든. 그래서 내 마음이 이 카지노 게임에게 어떤 건가 스스로도 알 수 있게 돼.
엄마가 '답장해 주세요'라고 했던 건 아빠의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일 거야. '글 따위'가 '카지노 게임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어. (그때마다 엄마의 마음을 잘 읽어냈다면 지금의 아빠는 더 좋은 남편이고 아빠가 되어있을 텐데...)
누구에게라도 카지노 게임를 써 보렴. 그리고 답장하렴.
또 다른 카지노 게임글 형식의 소설이 생각났어. 존 버거(John Berger)가 쓴 'A가 X에게'라는 소설이야. 감옥에 갇힌 남자와 감옥 밖의 여자가 주고받는 카지노 게임글들이야. 하지만 여자의 카지노 게임를 받은 남자는 카지노 게임를 쓴 종이 뒤에 약간의 내용으로 답장을 끄적거릴 뿐 감옥 밖으로 내보내진 못해.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은 카지노 게임글과 답장 아닌 답장이랄 수 있는 메모 성격의 글이 대비되어서 소설 속 캐릭터들의 사유를 잘 드러내고 있어.
당신 손목에 있는 흉터를 봅니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 중에 당신은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말해 주세요. 우리 함께 이 긴 밤이 지나도록 그것을 즐길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해 주세요. 당신의 아이다 (감옥 밖의 여자가 쓴 카지노 게임글 부분)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다.
"카지노 게임 단지 해가 질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것뿐이죠. 카지노 게임 단지 해가 질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 (감옥 안의 남자가 쓴 메모)
- 존 버거(김현우 옮김), A가 X에게(부분)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제해서 (그러니까 단어를 고르고 조사를 벼리고 문장을 만들어서 가만히 생각하며 글을 이어 붙여서는) 전해 봐. 글 잘 쓰는 카지노 게임은 그런 까닭에 사랑스러운 카지노 게임이지 않을까. (다음 수업 기다려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