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 혈맥론』은 중국 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의 법문을 기록한 선어록이다.
달마대사의 이 어록은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 명상(참선)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훌륭한 법문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더없이 중요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달마대사의 얼굴을 가게나 사무실, 집안에 기복적인 생각에 또는 퇴마용 정도로 걸어놓은 집은 많아도, 달마대사의 어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진정한 선수행자가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물며 일반인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소위 도를 닦는 사람이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이 책은 반드시 봐야 하는 책,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동에 젖어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어보았던 그 느낌을 전문과 함께 해설을 곁들여 나누고자 한다.
달마대사(495년?~536년)는 인도 남부의 팔라바 왕조의 세 번째 왕자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 달마는 달마대사, 달마도사, 보리달마(菩提達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정확한 명칭은 고대 인도어인 Bodhidharma (보디다르마)이며 여기에서 보디(Bodih)는 깨달음을 뜻하고, 다르마(Dharma)는 법을 뜻한다. 보디다르마라는 이름을 우리나라에서는 들리는 대로 부르다 보니 지금처럼 보리달마라고 불리게 된다.
달마는 석가모니. 즉 부처님의 법을 스물일곱 번째로 이어받은 불교 제27조인 반야다라를 만나 출가하게 되고, 반야다라를 스승으로 섬기며 40년간 도를 배웠다.
반야다라 사후에 제28조가 된 달마는 한동안 인도에서의 불교 활동에 전념하게 되는데, 이후 스승이 남긴 말에 따라 중국으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떠났다. 캄보디아를 지나 3년이란 세월을 걸쳐 현재의 중국 광저우(양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중국 남조 양나라 건국 황제였던 양 무제를 만나게 되고, 인연이 아님을 안 달마대사는 이후에 원래 목적지인 낙양으로 향한다.
달마대사는 낙양에서 숭산 소림사에 머물면서 정상 동굴에서 9년 동안 면벽 좌선하였다. 도중에 제자인 혜가를 들였으며, 혜가에게 조사선과 능가경을 전하면서, 중국에서의 제1대 선종이 된다.
-목차-
제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마음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제3장 第三節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힌다.
제4장 第四節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제5장 第五節 屠漢亦得成道(도한역득성도)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제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마음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삼계(三界)가 혼돈하여 일어났으나 모두가 한마음[一心]으로 돌아가나니,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사 문자를 세우지 않았느니라.
(三界混起 同歸一心 前佛後佛 以心傳心 不立文字)
첫 문장은 이 책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깨달음은 언어나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으로만 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천부경(天符經)의 첫 문장을 연상케 한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즉, ‘하나는 비롯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언어와 생각이 있기 전부터 비롯되는 ‘하나’다. 없다가 생겨난 ‘하나’가 아니라 본래부터 있던 ‘하나’다. 만물과 만사의 근원인 이 ‘하나’를 알면 우주 만물을 알게 된다.
81자로 된 천부경(天符經)은 단군시대에 녹도문(鹿圖文·배달국에서 만든 고대 문자로 갑골문자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으로 기록돼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경이라고 알려져 있고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담고 있다.
혈맥론의 첫 문장도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귀결된다’라고 하고 있다. 삼계(三界)란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사는 세 개의 세계를 일컫는다. 즉,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욕계로 구분된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극복되지 못한 무명(無明)의 미혹(迷惑)함 때문에 탄생과 죽음을 반복한다. 이를 윤회(輪廻)라 한다. 삼계는 이러한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인 미계(迷界)를 셋으로 분류한 것이다. 삼계는 비록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간에 다르지만, 삼계 모두는 탄생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에 빠진 상태이다.
삼계(三界)가 혼돈하여 일어났으나 모두가 한마음[一心]으로 돌아가나니,
삼계가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2가지로 표현한다. 하나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감정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소위 깨달음의 마음, 본래 성품, 불성, 참나 등으로 표현되는 만물의 시작점이요 만물의 귀결점 자리를 말한다. 모두가 한마음(一心)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본래 성품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사 문자를 세우지 않았느니라. (前佛後佛 以心傳心 不立文字: 전불후불 이심전심 불립문자)
과거에 일곱 분의 부처(七佛)가 있다고 한다. 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출현했던 여섯 분의 부처님과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해서 일컫는 말이다. 먼저 된 부처가 나중에 되는 부처에게 그 깨달음을 전함에 있어 어떤 논리나 문자나 지성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마음과 마음으로 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한다.
[학인]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問曰 若不立文字 以何爲心)
[달마] 답한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요,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答曰 汝問吾 卽是汝心 吾答汝 卽是吾心)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찌 그대에게 대답할 수 있으며, 그대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
(吾若無心 因何解答汝 汝若無心 因何解問吾)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 시작 없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모두가 그대의 본래 마음이고 모두가 그대의 본래 부처이다.
(問吾卽是汝心 從無始曠大劫以來 乃至施爲運動 一切時中一切處所 皆是汝本心 皆是汝本佛)
마음이 바로 카지노 게임 추천라는 말 역시 그와 같다.
(卽心是佛 亦復如是)
이 마음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다른 부처는 결코 없으며,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깨달음(菩提)과 열반을 구할 수 없다.
(除此心外 終無別佛可得 離此心外 覓菩提涅槃 無有是處)
학인의 첫 질문이 훌륭하다.
‘사람이 언어나 문자를 통해 배우고, 그 익힌 지식이나 깨달음을 후학들에게 가르쳐 주는 게 당연한 논리 아닙니까?세세손손 내려온 그러한 방식이 아니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깨달음을 전하오리까?’
문자를 버려라, 언어를 버려라, 그런 것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달마대사의 첫 일성은본래 성품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순수의식인 마음은 마치 제3의 눈처럼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묻고 답하는 자, 늘 감정에 휩싸여 웃고, 떠들고, 슬퍼하는 자아가 자신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제3의 눈은 당신이 묻는 것을 관(觀)하고 있고, 대답하는 것을 관(觀)하고 있다. 그 순수의식의 마음을 찾음으로써 과거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었고 이제 부처가 되려고 하는 자는 그 순수의식을 관할 때 비로소 열반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본성은 진실하여 원인(因)도 결과(果)도 아니다. 법(法)은 곧 그대로가 마음이다.
(自性眞實 非因非果 法卽是心義)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니라. 만일 “마음 밖에서 부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옳지 못하니라
(自心是菩提 自心是涅槃 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 無有是處)
카지노 게임 추천와 보리가 모두 어디에 있는가?
(佛及菩提皆在何處 )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으니, 붙잡을 수 있겠는가? 허공이란 이름뿐이요, 형상도 부피도 없나니, 잡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느니라. 이렇게 허공을 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어찌 찾을 것인가?
(譬如有人以手捉虛空 得否 虛空但有名 亦無相貌 取不得捨不得 是捉空不得 除此心外覓佛 終不得也)
부처란 자기 마음으로 지어서 얻는 것이거늘, 어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佛是自心作得 因何離此心外覓佛)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오직 마음 하나를 말할 뿐이니,
(前佛後佛只言其心)
마음이 곧 카지노 게임 추천이고 카지노 게임 추천가 곧 마음이다.
마음밖에 카지노 게임 추천 없고 카지노 게임 추천밖에 마음 없다.
(心卽是佛 佛卽是心 心外無佛 佛外無心)
심즉시불, 즉심시불 곧,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가 마음이다. 달마대사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더 이상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고. 마음이 곧 부처라고, 부처가 곧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음 밖에 존재하는 불상이나 어떤 종교적 상징물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늘 형상을 가진 것에 마음이 이끌린다. 세계 최대크기의 거대한 불상에 신심을 일으키고, 최고의 명당자리에 앉아있는 관세음보살에, 또는 산 정상에 있는 불교의 상징물에 부처가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달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밖에서 찾지 말라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되풀이하면서 말하고 있다. 부처를 찾고자 하면 좌정하고 나서 스스로 내 안을 들여다보아 마음을 찾아야 한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若言心外有佛 佛在何處)
마음 밖에 이미 카지노 게임 추천가 없는데
왜 카지노 게임 추천라는 견해를 일으켜서 서로 속이고 속는가?
(心外旣無佛 何起佛見 遞相誑惑)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저 무정물(無情物)에게 사로잡혀서 자유로울 수 없다.
(不能了本心 被他無情物攝 無自由)
만약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
(若也不信 自誑無益)
부처에게는 허물이나 근심이 없는데, 중생이 전도되어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佛無過患 衆生顚倒 不覺不知 自心是佛)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신을 부정하는 종교이다. 불교는 그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명상하여 스스로 마음을 닦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종교다. 당신은 왜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지장전, 미타전, 산신각… 등 숱하게 많은 전각 앞에서 서성이는가. 그대 안에 카지노 게임 추천가 있는데 왜 형상을 우러르며 카지노 게임 추천를 구하는가.
만약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인 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지어다. 부처가 부처를 제도할 수 없는 것이다.
(若知自心是佛 不應心外覓佛 佛不度佛)
마음을 가지고 카지노 게임 추천를 찾는다면 카지노 게임 추천를 알지 못한다.
(將心覓佛 不識佛)
다만 밖에서 부처를 찾기만 하면, 모두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但是外覓佛者 盡是不識自心是佛)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에게 염불하지도 말라.
(亦不得將佛禮佛 不得將心念佛)
카지노 게임 추천는 경(經)을 외우지도 않고, 카지노 게임 추천는 계(戒)를 지키지도 않으며, 카지노 게임 추천는 계를 범하지도 않는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지키는 것도 범하는 것도 없으며, 선(善)도 악(惡)을 짖지도 않는다.
(佛不誦經 佛不持戒 佛不犯戒 佛無持犯 亦不造善惡)
당신은 이미 불성을 가진 존재다. 불성을 찾으면 곧바로 부처인데, 왜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는가.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 어떤 사람은 부처를 만나기 위해 경을 읽고, 염불하고, 천일기도등 무언가에 열중하지만, 이는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격이니 아무런 소득이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불자의 자화상이다. 천수경을 외고, 반야심경, 금강경, 또는 불교 의식을 통째로 다 외운들 아무런 이득이 없다. 당신이 부처인데 왜 부처상 앞에서 108배, 천배, 삼천 배… 절을 하는가. 부처는 신이 아니다. 부처는 훌륭한 인류의 스승이다. 지그한 존경심으로 예의를 차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처가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 안에 스스로 불을 밝혀 부처를 찾아라.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본성을 보아야 하니, 본성이 곧 부처이다.
(若欲覓佛 須是見性 性卽是佛)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念佛)하거나 경을 읽거나, 재(齋)를 지내고, 계(戒)를 지킨다고 하여도 아무런 이익될 것이 없다.
(若不見性 念佛誦經持齋持戒 亦無益處)
염불하면 인과(因果)를 얻고, 경을 외우면 총명(聰明)을 얻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날 수 있고, 보시(布施)하면 복된 과보(果報)를 얻지만, 끝내 카지노 게임 추천를 찾지는 못한다.
(念佛得因果 誦經得聰明 持戒得生天 布施得福報 覓佛終不得也)
당신이 본성을 본다면 지금 즉시 성불하게 된다. 본성을 보는 데 집중하라.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 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계를 지키면 인과법에 의해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경을 외우면 총명해지고, 계를 지키면 하늘나라에 태어나고, 보시하면 복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중생의 윤회를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중생의 삶에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작은 복덕을 받을 수는 있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깨달음은 중생의 윤회 굴레를 벗어나는 것인데, 인과법에 의한 복덕이라는 것도 윤회의 굴레 안에서 생겨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를 분명히 알지 못했거든,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에게 참문(參)해서 생사(生死)의 근본을 깨치도록 할지어다.
(若自己不明了 須參善知識了却生死根本)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선지식이라고 할 수가 없다.
(若不見性 卽不名善知識)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비록 12부 경을 설명할 수 있더라도 역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삼계(三界)에서 받는 고통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若不如此 縱說得十二部經 亦不免生死輪廻 三界受苦 無出期時)
본성을 본 사람만이 선지식이다. 오늘날 대승불교권에 있다고 소승불교라 하며 폄하하는 사례가 많다. 고타마 붓다도 그들이 규정한 소승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소승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붓다를 조롱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승, 소승이 아니라 선지식이 깨달음을 얻었는가아닌가로 판별한다.달마는 깨달음이란본성을 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의 스승이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도 역시 윤회에 갇혀있는 중생이다. 하수가 하수를 이끌어 줄 수는 없다. 스승은 많은 사람을 태운 버스 기사와 같다. 버스 기사가 길을 알지못하면그 버스는 어디로 향하는가? 본성을 본 사람을 선지식으로 삼아라. 목소리가 좋고, 염불을 잘하고, 높은 지위에 있고, 온갖 경전에 해박하다 해도 본성을 보지 못한 선지식은 스승으로 삼지 말아라. 그는 스승이라 할 수 없다. 가사 장삼을 입었다고 모두 다 스승이 될 수 없다. 본성을 본 스승을 찾아라.
옛날 선성(善星) 비구는 12부 경을 다 외웠건만, 여전히 윤회를 면하지 못했으니, 이는 오직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昔有善星比丘 誦得十二部經 猶自不免輪廻 緣爲不見性)
선성(善星)이 이미 그와 같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서너 권의 경론(經論)을 외우고서 불법(佛法)을 아는 것처럼 외치니,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善星旣如此 今時人 講得三五本經論 以爲佛法者 愚人也)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若不識得自心 誦得閒文書 都無用處)
제아무리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을 모조리 다 외운다고 한들, 깨우침과는 무관하다. 본성을 보지 못하면 그러한 예불행위가 그냥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깨달아라, 그러면 모든 것이 참되다.
카지노 게임 추천를 찾고자 한다면, 바로 본성을 보아야만 한다.
(若要覓佛 直須見性)
본성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자유로운 사람이며(自在)한 사람이며, 해야 할 것도 없는 사람이니라.
(性卽是佛 佛卽是自在人 無事無作人)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종일토록 분주히 밖을 향해 구하면서 부처를 찾더라도 원래 얻을 수 없느니라.
(若不見性 終日茫茫 向外馳求 覓佛元來不得)
비록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다고는 하나, 아직 알지 못했다면,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참문해 간절히 애써 구함으로 마음이 열리도록 해야 한다.
(雖無一物可得 若未會 亦須參善知識 切須苦求 令心會解)
도를 구하거나 명상을 하는 데 있어 3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둘째는 도반을 만나는 것이다. 셋째는 공부할 수 있는 도량(장소)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승, 즉 선지식과의 만남이다. 선지식은 지근 거리에 생존하여 늘 뵐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면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깨우침을 주었던 선지식을 찾아라. 그중에서 진짜라고 여겨지는 분을 스승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일테면 카지노 게임 추천나 예수나 달마대사를 스승으로 삼아라. 그분들의 말씀이 아직도 성성(聖性)하게 존재하지 않는가 말이다.
살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라.
(生死事大 不得空過)
스스로를 속여 보아야 이로울 것이 없다.
(自誑無益)
비록 값진 보배가 산처럼 쌓여 있고, 일가권속이 강의 모래알처럼 많더라도, 눈을 뜨면 보이지만, 눈을 감아도 보이는가?
(縱有珍寶如山 眷屬如恒河沙 開眼卽見 合眼還見?)
그러므로 유위(有爲)의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故知有爲之法如夢幻等)
유위법(有爲法)은 무위법의 상대적 언어이다. 유의(有爲)는 갖가지 인연에 의한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을 일컫는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것, 어떤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유위법이다. 우리가 항용 보는 세계, 우리의 언어, 생각, 철학 신념 등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유위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무위법(無爲法)이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법의 본성으로서 타인에게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도록 가설로서 명칭을 붙인 용어이다. 즉, 진여 법성(眞如法性), 본래 성품, 참나 등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적으로 명명한 말이다.
달마대사는 유위법에 의한 것들은 모두 환영과 같으니 이런 세속적인 것들은 마음 밖에 있는 것들이고, 이런 것들에게 속지 말고, 욕망과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만일 서둘러 스승을 찾지 않는다면, 헛되이 한평생을 보내게 된다.
(若不急尋師 空過一生)
그러므로 부처 될 성품을 본래 가지고 있더라도, 스승을 비롯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하게 깨닫기 어렵다.
(然則佛性自有 若不因師 終不明了)
스승을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자는 만에 하나 정도로 드물다.
(不因師悟者 萬中希有)
일생은 덧없다. 서둘러 스승을 만나야 한다. 누구나 카지노 게임 추천가 될 성품이 안에 있건만 스승을 찾지 못해 깨닫지 못한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그가 깎아내는 돌덩이 속에 이미 훌륭한 인물상이 감추어져 말하곤 했다. 조각가로서 그가 할 일은 단지 인물을 덮고 있는 군더더기 같은 돌을 제거해주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 안에 불성을 지니고 있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불성을 찾기 위해, 겉에서 파도치듯 요란한 안이비설신의의 작용을 관하고 멈추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짧은 인생에서 스승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이다.
만약 자기 스스로 인연 따라 깨달아서 성인(聖人)의 뜻을 얻는 이는,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이는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수승한 지혜로다.
(若自己 以緣會合 得聖人意 卽不用參善知識 此卽是生而知之勝學也)
만약 아직 깨달아 알지 못했다면, 모름지기 애써 참구해 배워야 하리니, 가르침에 의하여서만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若未悟解 須勤苦參學 因敎方得悟)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는다면,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니, 미혹한 사람과는 같지 않다.
(若自明了 不學亦得 不同迷人)
스승 없이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은 만에 하나 정도로 드문 일이고, 이는 전생으로부터 공부해 온 수행자이다. 대부분 사람은 그러하지 못하니 눈 밝은 스승을 만나 정진하고 수행해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검고 흰 것을 아직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망령된 말로써 불교를 알린다면, 카지노 게임 추천를 비방하고 법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는 청산유수로 법을 말하여도 모두가 마구니의 말일 뿐 카지노 게임 추천의 말은 아니다. 저 스승은 마구니의 왕이고 제자는 마구니의 하인이거늘,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의 지휘에 따라 모르는 사이에 생사(生死)의 바다에 떨어진다.
(不能分別皂白 妄言宣佛敎勅 謗佛妄法 如斯等類 說法如雨 盡是魔說 卽非佛說 師是魔王 弟子是魔民 迷人任他指揮 不覺墮生死海)
세상에는 별의별 사기꾼도 많아, 참 스승을 만나기가 여간 어렵다. 빈수레가 요란하다. 삿된 도로 중생을 현혹하니, 마치 꽃뱀이 꽃 같은 무늬로 먹이를 유혹하는 것과 같다. 미끼를 조심하라. 아직 본성을 모르는 자는 스승이 아니다.
그저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이면서 망령되이 부처라고 자칭한다면, 이러한 중생은 큰 죄인이라, 온갖 중생을 속여서 마구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느니라.
(但是不見性人 妄稱是佛 此等衆生是大罪人 誑他一切衆生 令入魔界)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도 12부 경전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이것은 모두 마구니의 말이며 마구니 집안의 권속이지, 불교 집안의 제자는 아니다. 이와 같이 검고 흰 것도 가릴 줄 모르거늘 어떻게 생사를 면할 것인가?
(若不見性 說得十二部經敎 盡是魔說 魔家眷屬 不是佛家弟子 旣不辨皂白 憑何免生死)
만약 본성을 본다면 곧 부처이고, 본성을 보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若見性卽是佛 不見性卽是衆生)
본성을 본다면 부처를 본 것이요, 본 것을 보지 못하면 미혹에 빠진 중생이다.
만약 중생의 본성을 떠나서 따로 얻을 불성(佛性)이 있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본성이 곧 불성이다. 본성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가 곧 본성이다.
이 본성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고, 부처를 제외하고는 얻을 본성이 없다.
(若離衆生性別有佛性可得者 佛今在何處 卽衆生性 卽是佛性也 性外無佛 佛卽是性 除此性外 無佛可得 佛外無性可得)
오직 본성을 보는 것을 최고의 수행으로 삼아라. 본성이 다름 아닌 부처다. 왜 본성이 이토록 중요한가. 본성을 본 사람은 더 이상 자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아는 그동안 자아가 자신인 것처럼 속이며 살아왔다. 욕망에 빠지면 욕망이 나 자신이 되었고, 갈애에 빠지면 나 자신이 갈애가 되었다. 감정의 노예가 아닌가. 생각의 노예가 아닌가. 더 이상 노예한테 끄달리지 말고, 먼저 주인을 찾아야 한다. 진짜 주인, 본성을 찾을 때, 비로소 열반에 이르게 된다.
..........《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해설-2로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