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심비우스와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필수요소
1986년 처음으로 선서를 해봤습니다. 깨끗하게 제복을 차려입고, 손가락 세 개를 꼿꼿이 세워 '준비'!라는 구호를 외치며 '보이스카우트 선서'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언가 내 입에서 뱉어진 말들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세상에 남을 것 같은 느낌이었죠. 말은 바위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세상을 구를 수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봅니다. 영화 속 법정에서 무수하게 많은 선서를 봅니다. 성서에 손을 얹거나, 공히 신성하거나 엄중한 무언가에 대해 선서를 합니다. 그 말을 어길 시의 처벌까지도 스스로 약속합니다. 그때의 말은 수갑이 될 수도, 수갑을 부술 자유의 날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법정에서도, 국회의 청문회에서도, 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도 선서를 할 때 우리는 그 선서가 '양심'에 기대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래 형사소송법에서도 엄중한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증언이나 진술은 '양심'에 기대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57조(선서의 방식) ①선서는 선서서에 의하여야 한다.
②선서서에는 「카지노 가입 쿠폰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양심이 뭘까요? 맛있는 간식을 올려뒀는데 나눠먹지 않고 혼자 먹는 꼬맹이들에게 '야~ 너 양심이 좀 있어라.'라고 타박할 때의 양심일까요? 아니면 공중화장실을 엉망으로 더럽게 쓴 사람에게 맘 속으로 말하는 '와... 양심이 없네.' 할 때의 양심일까요? 거대한 자연의 시스템과 질서와 조화를 가르쳐주는 최재천 교수의 책 <양심은 인간의 존재를 대해 '양심'을 통해 설명합니다. 서로 얽혀 함께 도울 때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적 지속가능함을 양심을 통해 설명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명한 지식의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공감하고 공생하는 인간으로서 '호모 심비우스'를 이야기합니다. 인간을 다시 정의하는 거죠. 똑똑해서 살아남고, 발전하고, 다른 종과 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타인을 나 아닌 모든 존재를 필수적이고 반드시 함께 살아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에서 발전과 생존이 시작된다는 '호모 심비우스'인 거죠.
기존 자연은 '경쟁(서로가 손해)'관계이거나, '포식/기생(누군가는 꼭 손해)'관계이거나가 주류였지만. 최재천 교수는 자연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관계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으로 '공생 - 협력'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런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한 것입니다. 물론 최재천 교수가 만든 이야기죠. 그리고 그 핵심 가치와 태도로서 '양심'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omo Symbious와 적대적 공생
하지만 공생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정치상황을 누군가는 '적대적 공생'이라고 합니다. 남과 북의 전쟁과 대치 상황도 그에 따른 북한과 남한의 '독재 상황'도 '적대적 공생'이라고 볼 수 있겠죠. '나쁜 상대가 있기에 나도 나쁠 수 있다.' 대립과 갈등이 커질수록 유리하다는 겁니다. 북한 사람들이 뿔 달린 괴물이라고 할 때 불평불만이나, 불공정한 독재와 비리를 문제 삼기 어려운 거죠. 내부를 흔드는 건 적에게 유리한 일이 되어버리니까요.
하지만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은 사실 모순된 언어입니다. 양측 당사자를 똑같은 내용과 위치로 단일화시켜버립니다. 경찰과 강도를 적대적 공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전쟁 양측을 둘 다 나빠! 하고 정리해 버리면 도대체 그 전쟁을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이 한국 정치에서 인용되는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은 '적대적 공멸'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그러나 그 공멸의 원인과 이유는 찬찬히 따져봐야 합니다.
다시 공생의 이야기로 넘어와 볼게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타인과 협력하고, 협조하고, 질서를 지키면서 거대한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그 말을 공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그 공생의 가치를 지키는 건 엄격한 법과 규칙, 처벌이 아니라. 개개인이 '공생'의 사회를 지키려는 마음일 겁니다. 저는 그걸 카지노 가입 쿠폰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을 '카지노 가입 쿠폰'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최근 뉴스 화면에 '선서'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들 모두 '카지노 가입 쿠폰'을 말하고 선서를 합니다. 과연 카지노 가입 쿠폰이, 함께 살아가려는 공생의 마음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